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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노블]도화만리(桃花萬里)(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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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회: 서장 -- >

    인도네시아에는 젱롯(Jenglot)이라는 특별한 물건이 있다.

    보통 한 뼘, 크면 30cm 정도의 작은 사람 형상을 하고 있는 그것은 현지의 무당과 주술사들이 가지고 있으며, 제사나 의식을 치를 때 이용된다.

    주로 자바 섬에서 발견되지만 일부는 수마트라 섬에서도 나온다.

    젱롯에 대해서는 수많은 전설과 신화들이 전해진다.

    가장 흔하게 알려진 것은 사람이나 염소의 피를 먹여 키우고 일정한 나이가 지나면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살아 있는 젱롯이 발견된 적은 없다.

    미이라처럼 바짝 마른 상태로 전해져 내려오는 대부분의 젱롯들은 검사 결과 새끼 원숭이의 뼈, 물고기 껍질, 동물의 털가죽 등으로 만든 가짜임이 판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젱롯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주술사들은 매일 그들의 이빨로 자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나오게 한 후 입에 넣어주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그것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미개해서가 아니다.

    진짜로 초자연적인 신통력을 발휘하는 젱롯도 있기 때문이다.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 섞인 진짜 젱롯.

    그것들은 피를 먹는 꼬마 흡혈귀가 아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명상을 한 수도승들이 이 세상에 남기고 간 껍질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사람은 수명이 다하면 영혼이 빠져나가고 육신을 세상에 남기지만, 높은 경지에 오른 수도승은 이른바 금선탈각이라고 말하는 경지에 달해서 몸이 빠져나가고 난 후에 쪼그라든 껍질 일부만 남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젱롯들은 소유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지만 일단 소원성취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그래서 신통하다고 알려진 젱롯은 거액에 거래가 되곤 한다.

    이제까지의 거래 최고액은 130억원.

    인도네시아의 경제규모로 볼 때 놀라운 금액이 아닐 수 없다.

    < -- 2 회: 낯선 시간, 낯선 장소 -- >

    늘 반복되는 일상.

    나는 담배를 빼 물었다.

    “야! 나가서 피워.”

    엄마가 등짝을 후려친다.

    “밖은 춥단 말야.”

    “그럼 끊던가!”

    시도는 해봤지만 그게 잘 안 된다.

    4일 동안 안 피우고 견딘 게 최고 기록이다.

    5일째에 한 모금 빠니까 머리가 핑 돌았다.

    그 이후엔 끊을 생각을 않고 있다.

    엄마가 물었다.

    “기수야. 너 오늘은 몇 시에 나가냐?”

    “늘 똑같지.”

    “그럼 밥 꺼내 먹고 반찬통 뚜껑 덮어서 냉장고에 넣어놓고 가라.”

    “알았어.”

    “다녀온다!”

    “수고하세요!”

    엄마는 서둘러 출근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은 이곳으로 이사 왔고 5년째 살고 있다.

    원래 공부를 잘 하지도 못했지만 학원비를 댈 수 없게 된 이후로는 아예 손을 놔버려서 대학 진학을 애진작에 포기했는데, 엄마는 지금도 그 얘기를 하신다.

    적금 부어서 등록금 마련하자고.

    하지만 아직도 빚이 남아 있어서 쩔쩔매는 판에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얘기다.

    내 점수로 갈 대학이라면 졸업해봤자 곧장 백수로 직행이다. 그럴 바엔 대학 뭐 하러 가나.

    2류 대학이라고 등록금 절반도 아닌데.

    현관문을 잠근 나는 PC를 켰다.

    새 알바를 알아봐야 한다.

    점장과 싸우고 알바 그만 둔 얘기는 엄마한테 하지 않았다. 어차피 뭘 하건 마찬가진데 공연히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다.

    알바 자리는 늘 있다.

    문제는 월급이 제때 나오는지, 주인 인간성이 어떤지 하는 건데, 직접 부딪쳐 봐야 답이 나온다.

    다섯 군데 전화해보고 두 군데 약속을 잡았다.

    ‘한 딸 잡고 갈까?’

    여자 친구도 애인도 없는 내게 AV 콜렉션은 소중한 동반자라고나 할까.

    집에 나 혼자뿐인 아침 시간.

    나갈 직장도 없고, 약속시간은 한참 남았고, 뭐 어떠냐. 함 하자.

    모니터에서 아가씨들이 기모찌를 연발한다.

    ‘당연하지. 너희들이 언제 이런 거 만나봤겠냐.’

    나는 솔직히 남들 앞에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게 없다. 공부도 그렇고, 집안이 부자도 아니고, 키도 보통이고, 그나마 좀 자신 있는 게 얼굴?

    영화배우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봐줄만 하다.

    거울이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존슨.

    남 앞에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참 안타깝다.

    길지, 굵지, 단단하지...

    아! 그런데 그러면 뭐하냐고. 여자가 없는데.

    세상 여자들은 왜 이걸 몰라줄까?

    왜 이런 명품을 아직까지 숫총각으로 놔두는 거냐고!!!

    어쨌거나 늘 한결같은 얼굴로 반겨주는 다메와 기모찌들을 두루 사랑해준 나는 샤워를 하고 집을 나섰다.

    재수 없는 날.

    아침에 부정 탈 짓을 해서 그런가?

    두 군데 다 연락 주겠다는 사장 표정을 보니 글렀다.

    ‘오라고를 말던가.’

    욕이 절로 나온다. 씨발!

    지하철 왕복 요금이 얼만데.

    돌아오는 길은 발에 힘이 탁 풀렸다.

    게다가 옆자리에 동남아 근로자가 탔는데 말이 정말 많다.

    둘이 10년 만에 만난 고향친구라도 되는지, 정말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동방예의지국에 왔으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생각 좀 하라고 씨발! 욕이 또 나왔다.

    근데, 어라! 얘들이 영화 찍나?

    갑자기 겁먹은 표정으로 좌우를 두리번거리더니 나를 붙잡고 뭐라고 막 떠들어댄다.

    그러면서 검정 비닐봉투에 든 걸 내 품에 막 안겼다.

    “왜 이럽니까?”

    “부탁... 주세요...”

    “뭘 달라고?”

    “Keep This... Next Station...”

    한국말보다 영어 발음이 더 좋다.

    “가지고, 다음 역에서 달라고?”

    두 명이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역... 다음 역...”

    뭐 씨발 사슴 숨겨주는 사냥꾼도 아니고. 이 칸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하필 나냐고.

    내가 제일 착해보여서일까나?

    두 명의 동남아 노동자는 내 외투를 여며서 비닐봉투를 감추더니 황급히 다음 칸으로 달려갔다.

    확실히 시선을 끄는 행동이다.

    맞은편에 앉은 승객들이 전부 다 나를 본다.

    아! 씨발. 오늘 진짜 일진 안 좋네.

    잠시 후 지하철이 멈추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릴까 말까.

    내릴 수밖에 없다. 난 원래 선량하니까.

    아니. 선량하지는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동남아 노동자들 물건을 꿀꺽할 놈은 아니다.

    내린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플랫폼에 혼자 서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아까의 그 두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 씨발!”

    그놈들한테마저 속은 건가? 오늘 진짜 꼬이네.

    겨드랑이에서 부시럭거리는 비닐봉지를 확!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하다가, 별로 선량하지도 않은 양심이 또 발목을 잡는 바람에 다음 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다.

    그들이 말한 ‘넥스트 스테이션’이 이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도 없다. 욕 나온다.

    “아! 몰라.”

    나는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다.

    이젠 물건을 돌려주지 못해도 내 잘못이 아니다.

    역에서 내려 언덕을 올라가다가 나는 습관처럼 복권방에 들러서 로또를 찍었다.

    주인 아저씨가 씩 웃는다.

    “오늘은 왜 3개만 찍어?”

    “그냥 주세요.”

    직장 없는 동안은 3개다. 담배 사야 된다.

    주인아저씨가 실실 웃으며 말을 걸었다.

    “프로토 한 번 해 봐.”

    “싫어요.”

    “그건 잘 맞아. 대박은 없어도 짭짤하다니까.”

    “난 복권 잘 못 맞춰요.”

    라고 말하면서 로또를 챙겨 지갑에 넣고 복권방을 나왔다. 매주 로또를 한 장씩 사는 건 엄마와 나의 공통 취미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1주일을 버티는 힘을 준다.

    언젠가는 5등 이상도 당첨되겠지.

    당첨되면 얼마나 좋을까?

    일단 빚을 다 갚을 수 있으니까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나아질 것이다.

    간절하게 원하긴 하지만, 뭐 세상일이 바란다고 다 되는 건 아니니까...

    밖으로 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엄마가 우산 가져갔나?’

    걱정을 하며 집으로 돌아온 나는 옷을 걸어 말리고 PC를 켰다. 그리고 부팅되는 동안 비닐봉투를 열어보았다.

    “어...!”

    깜짝 놀랐다.

    시꺼먼 인형이 나왔는데, 사람 같기도 하고 고릴라 같기도 한 게 존나 못생겼다.

    만져 보니 촉감도 이상했다.

    플라스틱이 아닌 가죽 같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의 털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빠져서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3점슛 성공!

    괴물인형은 관심 밖이다.

    나는 소설 연재 사이트를 클릭했다.

    내게 최고의 위안을 주는 것은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들이다. 최강의 능력을 가지고 무엇이건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설 속의 주인공. 멋지지 않은가.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엔 더욱 깊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 -- 3 회: 낯선 시간, 낯선 장소 -- >

    사천의 대파산(大巴山).

    협서성과 사천성을 가르는 장벽답게 그 산세의 험준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 수백 개의 봉우리 중 하나에 도관이 세워져 있었으니, 이름하여 상춘관(常春觀).

    도교의 한 지파로, 장문인이 단약 만드는 일에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비전들을 통해 온갖 종류의 약들을 만들었고, 그 효능이 뛰어나서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상춘관은 동시에 검술을 가르치는 문파이기도 했다.

    50여 명의 많지 않은 제자들이 아침에 일어나 검술 수련을 한 후에야 각자 맡은 일을 시작했다.

    제자들이 맡은 일이라는 건 약을 만드는 것이다.

    입이 댓자나 나온 한 청년이 작두질을 하며 투덜거렸다.

    “존나 불공평하다고. 노동착취야. 어떻게 된 세상이 최저임금도 안 주냐고. 씨발.”

    중원 땅에서 한국말로 욕을 해대는 사람은 바로 양기수.

    PC 모니터로 무협지를 읽다가 빗소리에 잠이 든 대한민국의 알바인생 청년이었다.

    그가 눈을 뜬 곳이 바로 이곳 상춘관의 숙소였다.

    사람들은 깨어난 그를 보고 몹시 놀라고 반가워했다.

    주화입마에 걸려 다 죽어가던 제자가 눈을 뜨고 벌떡 일어섰기 때문이다.

    약을 팔아 돈을 버는 상춘관 입장에선 제자가 죽는다면 안 좋은 소문이 퍼질 게 분명했기 때문에 장문인도 꽤나 신경을 쓰던 터였다.

    기수는 그 사람들이 누구인지, 왜 자기를 보고 떠드는지, 여기가 어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1년.

    기수는 우선 말을 배우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가장 황당한 것은 아무리 잠에서 깨어나려고 애를 써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다.

    뺨을 때리고, 꼬집고, 심지어는 머리를 침상에 쾅! 쾅! 들이받아 보아도 여전히 이상한 장소였다.

    꿈을 꾸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이어서 엄습한 것은 목마름과 배고픔.

    그걸 해결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밥맛도 이상했고, 국도 배가 고파서 억지로 먹긴 했지만 싱겁고 느끼하기만 했다. 야채볶음도 영 아니었다.

    배가 차니까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집에 안 들어가면 얼마나 걱정하실까?’

    전화라도 걸려고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봤지만 그런 건 없었다.

    심지어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감을 잡았다.

    장소뿐만 아니라 시대도 한참 달랐던 것이다.

    동료로 추정되는 자들이 하는 얘기는 분명히 중국말.

    기수는 자초지종이라도 알고 싶어서 어떻게든 대화를 하려 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몇 번 듣지 않았는데도 단어의 뜻이 짐작되었다.

    그리고 자기도 어영부영 발음을 흉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더듬거리는 소리를 낸지 일주일 만에 동료들과 조금씩 대화가 통했다.

    정말 신기한 일은 말뿐만이 아니라 글자도 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평소에 영어만큼이나 한문도 어려워하던 기수이지만 약초에 관계된 책을 펼치면 어느 페이지를 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결국 2010년대를 살아가던 대한민국의 양기수가 중원 무림의 기수(奇秀)라는 청년 도사가 되는데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기수는 기억을 일부 잃어버린 척하고 동료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신의 한자 이름이 그의 성과 이름이라는 사실, 그리고 거울로 보니 패션 센스는 꽝이지만 어쨌거나 얼굴과 몸은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 외에 뭔가 다른 공통점이 있나 찾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기수는 전쟁통에 버려져 고아가 된 것을 문주님이 데려왔다고만 알 뿐, 부모나 친척에 대해 아무도 몰랐다.

    결국 기수는 적응하고 살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서 무림이나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는 얘기들을 몇 번 읽은 적 있는데, 바로 그런 일들이 자신에게도 일어났다는 게 유일한 설명이 될 수 있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내일 깨어나면 아파트의 내 침대이겠지.’ 하는 기대를 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짚이 깔린 딱딱한 나무침상이었고, 동도 트기 전에 사형들이 나무 막대기로 만든 딱따기 치는 요란한 소리로 깨웠다.

    처음에 가장 힘든 것은 담배 생각이었다.

    낯선 시간, 낯선 장소에 낯선 사람의 몸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금단현상이 생기는 걸 보면 몸까지 한꺼번에 온 게 분명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기수라는 인물은 양기수가 오기 전에도 분명 여기 살고 있었다.

    내공심법을 연마하다가 주화입마에 걸려서 죽기 직전이었다고 했는데, 자신이 와서 생명이 연장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죽을 운명인 사람의 자리만 차지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담배 다음으로 기수를 괴롭힌 것은 인터넷이었다.

    있을 땐 몰랐는데, 없으니까 정말 답답했다.

    최소한 검색엔진에 시간과 공간을 넘는 육체 이동에 대한 질문이라도 올려보고 싶은데, 전기도 없는 세상에서 컴퓨터로 통신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고, 신문도 없고, 해 떨어지면 그냥 자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었다.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나.’

    기수는 몰래 눈물도 흘렸다.

    그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꾸역꾸역 먹다 보니 야채볶음과 기름만 둥둥 뜬 국도 그럭저럭 맛을 느끼게 되었고, 말도 익숙해졌으며, 해 떨어지면 바로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동트기 전에 일어나는 생활패턴도 몸에 익게 되었다.

    그렇게 되는데 1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답답하고, 두렵고, 엄마도 보고 싶었지만 시간과 함께 그런 감정들은 약해졌다.

    그리고 기수에게 즐거움도 한 가지 생겼다.

    그것은 바로 무공연마였다.

    처음엔 또 다시 기혈이 막힐지 모른다면서 모두들 그의 운기를 막았지만 함께 검법을 수련해도 별 이상을 보이지 않자 나중엔 그냥 내버려두었다.

    기수는 검을 들고 초식을 수련하고, 운기조식으로 단전에 뭉친 뜨거운 기운을 몸 구석구석 돌리기도 했다.

    소설로 읽던 것과 실제는 달랐다. 무슨 검강이니, 경공술이니 하는 건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기수의 몸은 기대와 달리 하수였던 것이다.

    그래도 검을 빙빙 돌리며 폼 잡는 게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었다.

    ‘검 한 자루 어깨에 메고 천하를 종횡하며 협의를 행하는 영웅! 나도 그런 걸 할 수 있을까?’

    무협지에서 읽었던 장면들을 떠올리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했지만, 기수의 실력은 상춘관 제자 50명 중에서 20위권에 불과했다.

    무협지로 따지면 주인공이 얍...! 할때 윽...!하고 쓰러지는 엑스트라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머릿속엔 초식이 다 들어 있는데 그것을 실제로 펼쳐내는데 있어서 힘이 딸렸다.

    사형들의 얘기에 따르면 같은 동작을 하루에 100번 1000번씩, 1년이고 10년이고 반복하면 내공이 쌓인다고 했다.

    끔찍한 얘기였다.

    기수에겐 잘 늘지 않는 내공 외에 다른 불만도 한 가지 있었다.

    바로 제자들이 종일 일하면서도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시대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까 그럴 수는 있다고 쳐도, 풍부한 알바 경험을 가진 기수는 노동력 착취를 그냥 넘어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동기와 사제들을 중심으로 노조를 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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