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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Shoot The Moon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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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이 없는 아침. 반짝 눈을 떠 깜박깜박 정신을 차리고는 벌떡 일어나 침대와 몸뚱이를 분리시킨다. 그것이 그리 힘들지 않은, 빛이 익숙한 형태로 흘러드는 여느 때의 아침이었다.

    역시, 운동은 최고야.

    문휴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어김없다. 어김없이 운동 찬양이다. 15년 전 자신을 늦잠과 지각과 회초리의 늪에서 구제해준 가장 상식적이고 건전한 수단. 운동을 인생의 파트너로 신봉하는 남자는 오늘도 씩씩하게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기다 만 애벌레의 흔적이 남은 침대는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

    매일 아침 동네 뒷산으로 운동을 간다. 집세가 싼 곳을 알아보다보니 뒷산에 가까이 살게 되었다. 교통이 좀 불편하긴 하지만 불만이랄 것은 없다. 출퇴근이야 걸어서 하면 되고, 이 나이 먹어 어머니 신세를 지며 마련한 싱글 아파트에 욕심을 부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름 아침의 산에서 마주하는 얼굴들은 아무래도 연령대가 높았다. 알록달록한 운동복에 기능성 운동화를 신은 노인들이 부지런히 등산 루트를 오간다. 몇몇은 ‘여어’ 혹은 ‘어이’하며 인사를 건네 오기도 하는데, ‘절 아십니까?’ 싶었던 처음과 달리 이제는 이쪽에서도 제법 타이밍 좋게 마주 인사를 하게 되었다.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영업자일수록 중요한 것은 생활의 규칙성이라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평일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쉬며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리듬을 맞추는 것 말이다. 그래서 문휴는 출근 시간에 관계없이 매일 이른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도 규칙적으로 잠을 잔다. 주말도 마찬가지다.

    ‘변명하지 마, 새꺄. 너는 그냥 날 때부터 그렇게 고지식하게 생겨먹었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마찬가지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건우는 그런 문휴를 비웃곤 했지만 상관없다. 그처럼 저열하고 악의에 넘치는 말은 무시해버리는 것이 상책이요 진정한 무도인의 자세거니와, 본래 그런 것에 휩쓸리는 성격도 아니었다.

    혼자서 살아가는 20대 후반의 남자에게 스스로의 생활력을 긍정하고 또 응원하는 것, 그것은 세 끼 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장문휴는 규칙과 상식을 무엇보다도 신뢰하는 남자였다.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도장의 문을 여는 순간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자신은 평범한 생활인에서 무도인으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도장을 차린지 이제 1년, 정통에 입각한 육성 공간을 만들자던 처음의 마음가짐을 매일같이 되새기며 도장의 문턱을 넘는다. 좀처럼 늘지 않는 관원 수에 슬슬 초조해지기도 하지만 아직까지는 질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전날 바지런히 정리해둔 도장 안은 깨끗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사는 집과는 비할 바가 못 되게 이곳의 청결에는 신경을 쓴다. 모든 문을 활짝 열어젖혀 환기를 하고 사무실에서부터 도장, 탈의실과 샤워실, 화장실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점검하며 관원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 부지런히, 그러나 고요히 시작되는 하루.

    오전에는 단 한명의 관원이 방문할 예정이었다.

    “아침에도 뛰다 오셨는가?”

    얼마 전 포털에서 태권도를 검색해 최신 뉴스를 살펴보던 중, ‘팔순 노인, 태권도 6단 승단 화제!’ 와 같은 기사를 읽은 적이있다. 직장에서 은퇴한 후 도장을 다니기 시작, 16년 동안 꾸준히 연마하여 이루어낸 성과라는 것이다. 순수하게 감탄하는 마음으로 기사를 읽어 내려가던 마음 한 편으로는 내심 씁쓸함을 느낀 것이 사실이었다.

    “예.”

    신문을 읽으면서도 현실과의 괴리를 느껴야 하는가.

    눈앞에 마주한 예순의 노신사, 마찬가지로 은퇴 이후 처음 태권도를 입문한 사내는 강기나 투지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사람 좋은 얼굴로 마냥 웃고 있었다.

    “그래도 한 판 더 뛰어줄 수 있는가?”

    “…예, 어르신. 문제없습니다.”

    문휴는 그렇게 말하며 도장의 열쇠를 들고 먼저 문을 나서고, 남자는 ‘또 신세를 지겠구먼.’하며 느긋한 걸음으로 도장을 나왔다. 그리고 그 느긋한 걸음 그대로, 산책일이다. 가벼운 등반도 아니고 말 그대로 동네 천변길을 산책하는 것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오후 1,2,3반에는 격주로 한 번 체력 단련을 위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오래달리기, 왕복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줄넘기 등의 기본 체력 훈련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인데, 우연히 그 시간대에 도장에 ‘놀러 온’ 노신사가 당신도 이따금 체력 단련을 시켜달라며 청해왔다. 그리고 그가 택한 체력 단련의 방법은, 천변 산책이다.

    그렇다 도장에 ‘놀러 온’ 노신사. 이 나이 지긋한 전직 은행원은 도통 무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로, 관원이 적어 졸지에 1:1 교습을 받는 태권도장을 동네 이발소나 노인정이라도 되는 듯 드나들곤 했다. 단은커녕 급을 올리려는 욕심조차 크지 안하 아직도 기본 동작과 간단한 품새조차 헷갈려한다. 체력단련을 하자며 격주도 아니고 매주 한번씩은 야외 수련을 청하고, 막상 나가면 느긋한 산보만으로 한 시간 반을 채우곤 도장 앞도 아닌 당신의 집 근처에서 ‘내일 보세.’ 하고 바이바이.

    워낙 연배가 되신 분이니 은근한 하대야 그렇다 치자. 관장이나 사범의 호칭만이라도 끝까지 고수하고 싶었지만 변치 않는 노신사의 태도에 그마저도 관두었다. 대신에 ‘융통성 있고 느긋한’ 프로그램이 마음에 든다며 친구들에게 추천하겠다는 말에는 정중히 사양을 전했다. 자신을 문화 센터의 노인 운동 강사 정도로 취급하는 이가 또 한 명 늘어나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범은 여태 색시가 없는가?”

    허허허, 웃으며 건네 오는 질문에는 돌아가신 조부의 그림자가 비춰지기도 했고 말이다.

    “예, 아직입니다.”

    나란히 갖춰 입은 도복이 쑥스럽게 여겨질 만치 느긋한 걸음. 7월 초입의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오는 천변길을 거닐며 나누는 대화조차 한가하기 그지없다.

    친가의 어르신들이 신경을 써주신 덕에 목이 좋은 곳에 도장을 차릴 수 있었고, 운영 방식이라면 모를까 홍보에 있어서는 착실히 유행을 따라 초기 관원이 모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중학생 사이의 아이들로 구성된 오후 1,2,3반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인원을 채울 수 있었지만 유독 성인을 대상으로 한 오전 1반, 고등부와 성인을 대상으로 한 저녁 1,2반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성인 중에서도 중장년층이 주요 대상인 오전반은 특히나 기근이 심했다. 본격적인 태권도 훈련보다는 느긋한 심신의 수련과 마음의 안녕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이는 이 노신사만이 1년을 꼬박 채워 오전 시간을 함께 해오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 서른이라 하지 않았나? 요즘 젊은이 치곤 착실하니 자리도 일직 잡은 편이고, 인물도 훤칠하니 기력도 왕성할 나이에 그카믄 쓰나. 내 아는 지점장 중에 고명딸 귀하게 길러 혼기 찬 집이 꽤 되는데 다리 좀 놔주면?”

    여태 색시가 없냐는 첫마디에서부터 능히 짐작이 가능한 본론에 문휴는 자연스러운 척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자리 잡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르신.”

    이런 화제는 머뭇대며 길게 대화를 이어가봐야 상대방의 호기심만 자극할 뿐이다. 문휴는 한 점 마음에 거리낄 것 없는 정직한 한마디만을 내뱉고 말을 아꼈다. 대신에 그 뒤로도 이런저런 얘기를 신나게 늘어놓는 노신사의 얘기를 별말 없이 묵묵히 들어주었다. 오늘은 한 번쯤 ‘저기 넓은 터에 가 품새 연습이라도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하고 제안해보려 했지만 도무지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말이 좀 많지? 사범도 내 나이 먹고 은퇴해보면 알어. 일선에서 물러난 늙다리한테는 마누라랑 손주 새끼들 말고 대화할 상대라면 누구든 쌍수 들고 환영인 거거든. 흠흠.”

    말을 들어보니 현역 시절에는 지점장이나 그 비슷한 곳까지는 가셨던 듯한데, 꽤나 기세등등했을 권위일랑 조금도 내보이지 않고 어느 시골 마을 오지랖 넓은 이장님 같다. 그러니 어지간히 고지식한 성격의 문휴로서도 이 게으름 많은 수련생을 내칠 수가 없는 것이다.

    비록 가끔, 신문 기사를 읽으며 현실에의 씁슬함을 안겨주긴 하지만 말이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결국은 도장에서 2,30여분 떨어진 노신사의 집 근처까지 바래다주는 꼴이 되고서야 등을 돌릴 수 있었다. 결혼이나 애인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꽤나 태연할 수 있었던 문휴도 점심을 들고 가라며 팔을 끌어당기는 데에는 적잖이 진땀을 뺐다. 한사코 마다하며 돌아서는 등 뒤로도 한참 식은땀이 흘렀다. 연장자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돌아가는 길에는 천변길이 아닌 일반 도보를 따라 걸었다. 빙 돌아가지 않고 직선으로 뻗어 빠르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볍게 열기가 오른 도복 안으로 더운 기운을 품은 바람이 불어왔다. 한낮의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하얀 도복 차림의 자신을 흘끔거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발걸음을 서두르느라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오후 1반 병아리들이 몰려오기까지는 약간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원칙을 어길 수는 없다. 저녁 시간까지 일터의 불을 켜둬야 하는 자영업자, 그리고 생활 체육인의 특성상 문휴는 점심과 저녁을 항상 도장에서 먹는다. 도시락 같은 걸 쌀 만큼 아기자기한 성격은 아니라 근처 식당에서 고정적으로 가정식 백반을 대어 먹기를 1년째. 덧붙여 평일에는 가급적 개인 약속 같은 것은 만들지 않는다. 애인이 생기면 당장에 이 원칙에 균열이 생길까 염려되어 소개팅과 맞선에 소극적이라는 것은 마음속의 비밀로 해두자.

    한마디로, 장문휴에게는 식사 시간을 포함해 최대한 도장에 붙박여 있는 것이 일단의 생활 철칙이었다. 그리고 이 원칙을 고수할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날 때부터 고지식하게 생겨 먹었다는 친구의 말이 뇌리를 스치는 것은 모른 척 하자.

    오후 1반에는 병아리 중에서도 상병아리들이 모인다. 요즘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하교 시간이 다소 늦고, 무엇보다도 태권도장을 우선순위로 두는 부모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심때가 막 지난 이 시간에 모여드는 관원은 평균 키가 허리 아래 닿을까 말까 한 고맹이들, 개중에는 처음 도장에 온 날 우런창 구령 소리에 놀라 오줌을 지린 아이도 있다. 허리에 두른 띠는 기껏해야 노랑이나 초록이다.

    “정렬!”

    그러나 운동용 매트를 깐 도장 안을 맨 발바닥으로 우다다 뛰어다니던 깃털 하얀 병아리들도 문휴의 한 마디에 의젓한 표정으로 줄을 맞추기 시작한다. 니 자리가 아니라는 둥 자기ㅏ 자리가 맞다는 둥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느라 다소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제법 한다. 방금 인사를 마친 신입 병아리의 젊은 어머니가 아들 녀석 하는 폼을 보곤 입가를 슬쩍 가리며 웃는 것이 보였다.

    ‘다른 학부모님들께 소개받아 오신 거라면 아시겠지만, 저희 도장은 오락적인 요소가 타 도장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관장의 이름을 걸고 말씀드리건대 체벌이나 아이 정서에 타격이 갈 거친 언행은 일절 하지 않는다고 약속드립니다만…쉬엄쉬엄 즐기며 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어머님. 대신에 평상시 인사나 언행 등의 지도를 통해 예의범절의 내면화를 목표로 하고 있고, 단정한 품행과 정서 순화를 위해 매일 명상을….’

    ‘호호호. 젊은 관장님 생긴 게 워낙 훈훈하셔서 정서 교육은 따로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둘째 생기면 이리로 태교하러 와야겠네. 우리 애는 초딩 주제에 꽤 의젓하기도 하고, 지난달에 등록한 지미이라고 있죠? 눈 왕방울만한 여자애. 그 애랑 방과 후 데이트 하려는 게 목적이라 지민이만 잘 구슬려주면 우리 애도 잘 따를 거예요. 여자 하기 날므인게 남자라더니 그 말이 초딩 커플에게까지 적용되는 세상이에요, 참.’

    산으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는 학부모의 수도에 문휴는 더 말하지 않고 그저 단순한, 온유한 웃음을 지으려 노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학부모를 보면 처음에는 요령도 모르고 대번에 눈살을 찌푸렸더랬다. 교육 방침을 제대로 듣지 않고 후에 불만을 토로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이렇게 화통하고 단순명쾌한 학부모가 도장과도, 문휴 자신의 성격과도 잘 맞는다는 것을.

    신입 병아이의 젊은 어머니도 실컷 자기 얘기를 하다가 사무실 문을 나서기 전에야 참, 하고는 덧붙였다.

    ‘운동 학원에서 운동만 시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못 하겠다고 깨갱되면 호되게 엉덩이를 때려주세요.’

    오늘은 한 주 간 익힌 품새를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금요일. 그리고 매일의 수련은 언제나 꼬물꼬물한 다리를 접어 반가부자 ‘흉내’를 내는 명상으로 마무리된다. 신입 병아리의 보호자에게 말한 대로 직접적인 수련 외에 행하는 특별한 훈련은 이것뿐이다. 줄넘기 스텝 익히기, 웅변, 키 성장 체조, 효행 교육 등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태권도장에서 흔히 병행하는 자잘한 프로그램들은 일절 없다. 아니, 어떤 것들은 조금씩 손을 봐주기도 하지만 굳이 생색을 내며 들어내지는 않는다.

    체력 단련과 정신 수련이야 운동 안의 자연히 융화시키면 되는 일 아닌가. 괜한 잔가지를 치는 것은 운동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의심 많은 부모들에게 자녀 교육을 위해 효율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심어주기 위한 눈 가리고 아웅이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사범으로 일하던 도장은 시에서도 손에 꼽히게 큰 규모와 체계를 지닌 곳으로 지나치게 레크레이션화되어 애초부터 문휴의 성격과는 맞지 않았다. 그래도 2년이 넘도록 묵묵히 다녔던 것은 처음 태권도를 시작할 때부터 인생의 은사님으로 모셔온 스승이 소개해준 자리였기 때문이다. 늘 지옥 같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꽤나 고역스러운 사회생활의 첫 걸음이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2년 전, 부모까지 함께 하는 2박 3일 캠프를 마치고선 위에 구멍이 나 골골대는 꼴을 때마침 찾아온 숙부에게 보이고 말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실질적인 대부 노릇을 해온 숙부였지만 이제나저제나 문휴로서는 어려운 분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남겨준 유산의 구체적인 액수를 말하며 ‘네 놈의 도장’을 차려보지 않겠느냐는 말에는 단박에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업계 평균을 놓고 보아도 이른 나이란 것은 알았지만 처음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열일곱부터 지금까지 한 마음으로 태권도만 생각해온 문휴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오랜 은사는 역시 성급함을 이유로 문휴의 결정을 반대했고, 몇몇 연락하고 지내는 대학 동기들도 질투 반 염려 반으로 문휴를 말렸다. 그리고 결정적인 위기는 목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 계약까지 마친 뒤에 찾아왔다.

    애초에 아버지의 유산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그 실체는 제주에 내려가 계신 어머니에게까지 입막음을 하고 말을 맞춰가며 치밀하게 문휴를 속아 넘긴 숙부의 연극이었다. 본래부터 문휴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던 숙모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이 불안해 꼬리를 물어가 보니, 조부께서 숙부 몫으로 물려준 유산을 한 몫 크게 쪼개어 문휴 일을 꾸리는 것을 숙모가 뒤늦게 알고 두 분이 크게 부부 싸움을 했다는 것이다.

    포기해야 옳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엇다. 실제로도 그리 하려고 했다.

    ‘남의 집 부부 사이를 이 지경가지 만들면서 끌고 온 일을 이제 와 엎겠다고? 이 패기라곤 빈대 좆만큼도 없는 녀석아! 내 체면에 똥을 끼얹겠다는 거야? 형님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생색내며 조카아들 좀 챙기겠다는데, 어디 이제 와 뒤집으려 들어 너? 잔말 말고 하자는 대로 해!’

    ‘…….’

    ‘…아 누가 그냥 준대? 절반 딱 떼서 받아먹을 테니까 그리 알아. 나머지 반? 너 막 입대해서 총알받이 하고 있을 적에 니 할아버지 눈 감으시며 거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애끼지 말고 너랑 문경이 맛있는 것 사 먹이라셨어. 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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