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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날개] The Pain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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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날개] The Pain

    -00. Trauma

    끼긱, 낡은 선풍기의 목이 꺾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맞추어 아이는 방문 사이로 제 손가락 하나 만큼의 좁은 틈을 만들었다. 그리고 빛이 새어나오는 문틈 위로 긴 다이아몬드 형의 한쪽 눈을 바짝 갖다 댄 채 방안의 정황을 살폈다.

    “···네 무릎은 마치 빚어놓은 도자기처럼 깨끗하구나······.”

    고통에 일그러진 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아이는 짧게 깎은 제 아버지의 까만 뒤통수 너머 무엇이 있는가 궁금해, 문틈 사이로 더욱 얼굴을 바짝 짓눌렀다.

    “너는 한 번도 넘어진 적이 없는가 보구나··· 무릎이 이리도 깨끗하니······.”

    남자의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그것은 감탄과 경멸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듯 했다. 찬미와 분노가 교묘하게 섞인 것에는 차라리 신음이라고 할 만한 한숨이 간간히 섞여 나오기도 했다.

    아버지를 절망케 하는 깨끗한 무릎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생각하며 아이는 잠시 고개를 내려 자신의 한쪽 바짓단을 올려보았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막 깔깔한 모랫더미 위에서 엎어져 또 한 번 무릎을 갈아버리곤, 제 화에 못 이겨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그 나이엔 한창 말썽을 피우고, 어딘가에··· 하물며 제 다리에 제가 걸려 엎어지곤 하는데······.”

    제 다리에 제가 걸려 엎어졌던 아이는 딸꾹질처럼 어깨를 흠칫 떨며 피딱지가 앉은 제 무릎 위로 걷었던 바지를 훌쩍 내려 덮었다. 아아, 하고 방안에서 아버지의 신음이 들려왔다. 아버지는 울고 있을까, 생각하며 아이는 다시 문틈에 제 한쪽 눈을 바짝 끼워 맞추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삐죽 솟은 아버지의 뒤통수와 넓적한 등판뿐이었다.

    그리고 사내는 정말 울고 있었다. 오래 전 폭발한 화산의 흔적처럼 울퉁불퉁한 피부 위로 한 줄기 눈물이 뚝, 흘렀다. 그게 끝이었다. 전의를 다잡는 병사처럼 사내는 훌쩍 콧물을 들이키고는, 무릎을 세워 다리를 껴안은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에게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불쑥 내밀었다.

    흣, 달뜬 숨을 들이키며 아이는 제 무릎을 좀 더 꽉 껴안았다. 마치 제 몸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며 평생을 단단한 껍질 속에 갇혀 지내는 갑각류의 무엇처럼, 아이 역시 전의를 다지듯. 그러나 사내는 일순 온화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나는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자아··· 똑바로 앉아라, 등을 펴고 목을 단단히 세워.”

    동그랗게 말린 아이의 등을 넓적한 손바닥으로 쓰다듬으며 사내는 피곤한 목소리로 얼렀다. 그러나 아이의 몸은 이미 단단하게 굳어버린 듯 쉬이 펴지지 않았다. 벽 쪽으로 밀자, 굽었던 등은 펴졌으나, 그 깨끗한 무릎 위로 턱을 괴고 있던 휘어진 목은 좀처럼 곧아지지 않았다. 흐흐,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통스럽게 웃었다.

    “얘야, 그게 뭐니. 꼴이 아주 우습구나. 널 처음 봤을 때부터 바로 어제까지··· 너는 마치 목이 긴 도자기처럼 자세가 곧았는데 지금 그 꼴은 마치······. 하긴, 아이는 모두 비틀린 채 자란단다. 하물며 네가 소함 선생님의 손자라 할지라도··· 아아··· 그래, 어쩌면 너는 소함 선생의 피를 이어받아 그리 곧았는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지금은 어떠냐. 겁에 질려 동그랗게 말린 몸이라니······. 선생이 지금의 너를 보며 그 뻣뻣하신 성품을 조금 휘어주었으면 좋으련만······.”

    바싹 말랐던 사내의 눈길이 다시 습한 기운으로 축축해졌다. 소함 선생님은, 소함 선생님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사내는 몇 번이나 말을 이으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사내의 눈앞에 하얀 한복을 차려입고 곧은 자세로 발물레질을 하며 도자기를 빗고 있는 소함 서은창 선생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내의 입가가 부드럽게 휘었다.

    “선생님은 한 번도 그 하얀 한복을 더럽힌 적이 없었지. 네 그 깨끗한 무릎처럼 말이다.”

    그러나 순간, 와장창 세상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감았던 눈을 번쩍 치켜떴다. 사내의 눈앞에 소함이 그가 초벌구이까지 마쳐놓은 자기를 모두 바닥으로 던져버리며 노발대발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그 더러운 마음가짐으로 대체 무얼 빚고 무얼 굽겠단 말이야!

    “흐으으···!”

    사내는 아이의 부드러운 무릎에 이마를 얹은 채 자신의 한쪽 가슴팍을 쥐어뜯으며 신음했다. 아이의 두려움이 이마로 진동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사내는 이마를 물리지 않았다. 그는 온전히 자신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함이 작품을 몰래 빼돌린 자신의 부정함을 알아차렸던가, 아니면 그저 내놓은 작품이 마음에 차지 않아 내쫓은 것뿐이었던가. 어느 쪽이든 그를 슬프게 했다.

    사내는 어미개의 젖을 찾는 새끼처럼 작은 아이의 품으로 자꾸만 이마를 치밀었다. 그의 눈앞에서 분노하는 소함의 얼굴과 자신의 작품들이 산산조각으로 깨어지는 소리를 지운 것은, 어느새 아이의 반바지 안으로 밀어 넣어진 자신의 손바닥에 와 닿는 반질반질한 촉감이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듯 사내는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공포로 초췌해진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사내는 한 손바닥 안에 달싹 감기는 그 연약한 허벅지를 조금 더 매만지다가, 아이가 입고 있는 유치원복 반바지의 단을 훌쩍 위로 올려보았다.

    “하아······.”

    감탄처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사내는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살을 찌푸린 채 아이의 드러난 허벅다리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어쩌면 이리도 깨끗하니··· 너는 마치 네 할아버지가 빚어놓은 도자기와도 같구나······.”

    사내는 자신의 한쪽 팔뚝보다 가는 아이의 허벅다리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둘러 잡은 채 고운 점토를 반죽하듯 부드럽게 주무르기 시작했다. 아이의 숨소리가 짙어졌다.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신열이 아이의 미간으로 고여 들었다. 그러나 아이는 눈물을 터뜨리기 전에 먼저 허벅다리를 움츠렸다. 발기. 부드럽게 움직이던 사내의 손길이 그쳤다.

    “은호야···”

    사내는 다정스레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낯선 쾌감과 수치로 충격을 받은 듯한 아이는 그제야 익숙한 얼굴의 사내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사내는 허벅다리에서 손을 거두고 기형적인 자신의 몸에 경악한 듯한 아이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건 위험한 게 아니야. ···내게도 아들이 있지. 너보다 세 살이 많단다. 올해 뒤늦게 초등학교에 들어갔어. 하지만 그 아인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단다. 이런 예쁜 옷도 입어보지 못하고······. 하지만 은호야, 네 할아버지가 다시 나를 받아들여준다면, 그래서 내가 소함의 모든 걸 전수받는다면··· 나는 돈을 아주 많이 벌 테지. 그리고 내 아들은 좋은 학교에 들어갈 거다. 근사한 옷을 입고 말이다. 운이 좋으면 언젠가 나도 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 백 몇 호인 사기장으로 지정될 수도 있겠지. 그래, 이건 얼마나 아름다운 꿈이냐, 은호야. ···그러니 그리 겁먹지 마라. 그건 위험한 게 아니야. 그리고 내가 겁을 주려는 건 네가 아니라··· 아아··· 소함 선생님은 한 번도 그 하얀 한복에 더러운 것을 묻히지 않았지··· 바로 네 그 깨끗한 무릎처럼······.”

    청승맞은 시를 읊듯 사내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속삭였다. 바로 그때, 꼬르륵- 하고 아이의 뱃속에서 허기를 알리는 천진스러운 소리가 났다.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듯 사내는 다시 눈을 뜬 채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배가 고픈 게로구나. 그래··· 뭔가 먹을 걸 좀······ 하지만 우리 집엔 맛있는 게 없단다. 내가 좀 더 그럴 듯한 도자기를 만들어서, 그걸 팔 수 있다면 돈이 들어올 테지만··· 소함은 내게 더 이상 아무 것도 가르쳐주지 않았단다. ···그래, 우선은 무얼 좀 사 오마.”

    삐거덕, 엇갈렸던 무릎 뼈가 곧게 펴지는 소리를 내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틈으로 바짝 얼굴을 붙이고 있던 방문 밖의 아이는 허겁지겁 물러났으나, 맞은편 벽에 등뼈가 닿기도 전에 먼저 문이 열리고, 그의 아버지는 우뚝 선 채 엉거주춤한 그를 내려다보았다.

    “···학교는.”

    “······.”

    아이는 대답 대신 해질녘의 하늘이 펼쳐져있는 창문 쪽으로 흘깃 눈짓을 주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 뒤로 팔을 뻗어 문을 닫았다. 찰나, 아이는 방안 너머 바람 빠진 축구공처럼 찌그러져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으나, ‘진원아’ 하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그 짧은 눈길조차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이 방엔 들어가지 마라.”

    “네, 아버지.”

    짧게 대답하는 아이의 목소리에는 제 아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이 담겨져 있었다. 순간 사내의 얼굴이 달구어진 가마처럼 불콰하게 달아올랐다. 그 자신이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들은 자신을 도깨비 혹은 하느님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환상은 언젠가 모두 깨어질 것이다, 아비가 술에 취해있는 모습을 몇 번이나 반복해 지켜보다보면, 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이 그러하듯, 그리고 그 자신 또한 그러했듯.

    안 되지, 안 돼. 사내는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좋은 아버지였던 적은 없었으나, 그것은 언제나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이었다. 눈을 감을 때까지 존경받는 아버지. 사내는 그의 아버지가 바지에 똥을 싸자마자 몇 번의 버스를 갈아타고야 도착한 낯선 지방에 그를 혼자 내려두고 되돌아왔었다.

    “다녀오세요.”

    낡은 신발을 구겨 신는 사내의 뒤에서 아이가 고개를 짤깍이며 인사했다. 오냐, 사내는 뒤돌아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그저 한 마디 던져두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달칵, 닫히는 현관문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아이는 붉게 달아오르는 하늘이 펼쳐진 창가로 가 섰다. 멀리 아버지의 넓적한 등판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점처럼 희미해지는 것을 보고서야 아이는 발길을 돌려 문 닫힌 복도 구석방으로 향했다.

    작은 집이 더 좁아 보인다며 방문은 물론이고 화장실 문까지 활짝 열어놓곤 하던 어머니는 며칠 째 들어오지 않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집을 나간 지 나흘 째 되던 날 밤, 잠결의 아이는 늦게 들어온 아버지가 복도 구석방의 문을 여닫는 소리를 들었다. 그 후로 또, 이틀이 지났다.

    방문은 바깥으로 걸린 고리로만 잠가져 있었다. 손목에 힘을 주는 대로 부드럽게 돌아가는 문고리를 아이는 놀랍다는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집 뒤쪽으로 나있는 철길에서 울려오는 다급한 종소리에 맞추어 힘을 주어 방문을 밀었다. 그리고 맞은편 벽에 찌그러져있는 축구공의 정체와 대면했다.

    “······.”

    잠시 후, 종소리가 알린 대로 거대한 굉음과 함께 창문이 흔들렸다. 아무리 초라한 집일지언정 곁으로 기차가 지나가는 정도로 무너질 리는 없었지만, 발바닥에 와 닿는 진동이 유난히 심하게 느껴져, 진원은 문고리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방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 섰다.

    하굣길에 진원과 그의 무리 녀석들이 철도 위에 올려둔 작은 돌멩이들이 흉포한 기차 바퀴에 깔려 산산조각이 나는 소리가 선명히 들려오는 듯 했다. 그것들은 고운 모래가 되었을까, 아버지가 좋아하는 따뜻한 진흙이 되었을까. 진원은 한쪽 발바닥을 다른 쪽 발등 위에 슥슥 문지르며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기차는 기적소리를 남긴 채 멀리 사라져갔다.

    “···기차, 타본 적 없어?”

    발바닥으로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자, 진원은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며 구석에 찌그러져 앉아 있는 아이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무릎을 세운 채 두 다리를 바짝 당겨 끌어안고 있던 아이는 방문이 열리자 잠시 위를 올려다보았으나, 경악스러울 정도로 흉포한 굉음과 진동에 익숙지 않은 듯 다시 무릎 사이로 고개를 돌돌 말아 넣어버렸다.

    “기차 타본 적 없느냐고.”

    퉁명스러운 목소리의 질문에 아이는 힐긋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익숙지 않은 이에게만 오랫동안 느껴지는 진동의 여운을 발가락 끝으로 간지럽게 음미하며, 아이의 얼굴에 공포와 수치가 동시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진원은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좀처럼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아이가 입은 유치원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옅은 하늘색 줄무늬의 셔츠와 앙증맞은 넥타이, 회색빛의 베스트, 단정한 진녹색 재킷, 같은 색의 반바지, 그리고 무릎 아래까지 올려진 흰색 반 양말.

    문득 아이가 턱을 괴고 있는 무릎 위로 시선이 갔다. 네 무릎은 마치 빚어놓은 도자기처럼 깨끗하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원은 획하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으나,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계절을 잊은 선풍기가 끽끽대며 돌아가고 있었다.

    달뜬 흥분을 느끼며 진원은 다시 아이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정강이를 감싸고 있는 아이의 손끝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다. 손을 잡아줄까, 하고 손을 뻗은 진원은 그러나 손끝으로 아이의 무릎을 훑고 말았다. 아이가 몸을 더 움츠려들었다.

    아버지의 말처럼 그것은 깨끗하고 부드럽고, 그래서 어딘가 인위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무릎이었다. 진원은 아버지의 울음 섞인 탄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턱으로 제 무릎을 바짝 끌어당기는 아이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진원은 집요하리만치 그 무릎 위로 손가락을 구겨 넣었다.

    아이가 조용히 코를 훌쩍이며 바스락댔고, 진원은 삐쩍 말라있는 연약한 아이의 손목을 난폭하게 낚아채고는, 손바닥 전체로 음미하듯 그 깨끗한 무릎을 쓰다듬었다. 몇 번 꺽꺽대며 뒤채던 아이는 결국 힘의 우위를 본능적으로 감지했는지 그저 목을 빠끔 앞으로 내민 채 힘없이 벽에 등을 기댈 뿐이었다.

    “···흣···!”

    그러다 순간, 아이가 발작적으로 몸을 뒤채며 진원의 어깨를 사납게 밀쳐냈다. 진원의 손가락이 아이의 반바지 속을 파고들며 좀 더 부드럽고 깨끗하며 따뜻한 허벅다리를 쓰다듬던 순간이었다.

    “이게!”

    무방비하게 앉아있다 순식간에 밀쳐져 엉덩방아를 찧은 진원이 스프링처럼 훌쩍 일어나 사납게 한 손을 치켜들었다. 폭력의 공포와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맞닿은 적 없는 아이는 그러나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동그랗게 말린 작은 몸, 그리고 드러난 아이의 희고 휜 목덜미. 진원은 들었던 주먹을 내려놓았다.

    방문 옆에 놓아진 낡은 선풍기는 여전히 끼긱, 신음을 뱉으며 돌아가고 있었다. 바람에 진원의 짧은 머리칼이 흩날렸다. 다시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간 진원은 마른 뒷덜미 위로 바짝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훅- 입바람을 불었다. 톡 튀어나온 뒷 목뼈가 드러났다. 한 걸음 물러서자, 아이가 부스스 고개를 들었다.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 아이의 말간 두 눈을, 진원은 바싹 마른 눈으로 고요히 내려다보았다.

    끼긱, 선풍기 목이 꺾이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진원은 조심스레 신발을 벗다말고, 닫았던 현관문을 쾅- 하고 다시 한 번 세게 여닫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구석방에서 유령처럼 흘러나왔다. 다녀왔습니다, 고개를 짤깍이며 인사하는 아들을 향해 사내는 역시 고개를 짧게 끄덕여보이곤, 발을 끌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열어본 냉장고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난감해하는 사내의 뒤로 진원이 따라 들어와 수돗물을 따라 마셨다. 묽은 것을 한꺼번에 삼켜서인지, 이번에는 진원의 뱃속에서 허기를 알리는 소리가 났다. 서늘한 냉기를 내뿜으며 냉장고 문이 닫혔다. 사내가 고개를 돌려 아들을 바라보았다.

    “뭐··· 먹고 싶은 것 있니?”

    “떡볶이요.”

    냉큼 답하는 아들을 잠시 원망스러운 듯 쳐다보던 사내는 빈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곤, 알았다, 한 마디 하며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낡은 신발을 구겨 신으며 현관문의 고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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