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어]닭뼈의 왕자님 - 4

128일전 | 129읽음

다리로 벽을 짚고 기다시피 문으로 향했다. 사내의 집은 작은 언덕 아래 반쯤 묻히다시피 만들어진 움막이었다. 바람과 비를 피하기 위함인지 입구가 밖으로 길게 휘어져 있었다. 바깥은 해가 기우는 참이었다. 움집 앞에는 큰 바위 하나가 박혀 있는 좁은 뜰이 있었고, 움집 주변으로 나무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었다. 뜰 가운데에 사내가 피워둔 모닥불이 발갛게 타고 있었으며 그 주변으로 꿩의 깃털과 뼛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사내는 뜰 한쪽에 있는 바위위에 올라서서 등을 돌리고 소변을 누고 있었다. 굵은 물줄기가 풀숲으로 쏟아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뜨끈한 지린내가 송지언이 서 있는 곳에까지 풍겨왔다.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지만, 등에 와 닿는 송지언의 시선을 느꼈는지 입을 열었다.



“내 너처럼 이쁜 것은 처음 봤으니 평생토록 아껴주겠다. 내 이 산의 주인인데, 너와 네가 낳을 아이하나 책임 못 지겠느냐?”



사내는 양물을 두어 번 털어 오줌방울을 떨어내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황망한 표정의 송지언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다. 배불리 먹여주고, 짐승들로부터 지켜주마. 너 같이 여린 것은 이런 산중에 그냥 냅두면 꼼짝없이 잡아먹힌다. 나처럼 강한 사내도 달리 없다. 허니 앙탈은 고만 부리고 이쁘게 안겨봐라.”



사내가 송지언을 가로막고 입구에 서자 사방이 캄캄해졌다. 송지언은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하지만 그 움직임으로는 사내가 내미는 손을 피할 재간이 없었다. 송지언은 몸을 돌리고 집 안으로라도 달아나려 했지만 곧 긴 팔이 그의 허리를 잡아챘다. 다시 껴입은 옷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내는 송지언의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것을 발기발기 찢어버렸다. 송지언을 뒤에서 안은 채 사내는 그의 살 내음을 맡듯 목덜미와 어깨에 코를 부볐다. 사내의 턱에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이 송지언의 피부를 벌겋게 만들었다. 한 팔로 버둥거리는 그를 가볍게 안고, 한 팔로 그의 엉덩이를 벗기고 잠자리에 밀어 눕힌다. 송지언의 등에 돌덩이같은 가슴을 겹치는가 싶더니, 작은 엉덩이를 두 손으로 터트릴 듯 주물렀다.



“요 작은 엉덩이를 봐라. 한 입에 삼키겠구나.”



등줄기를 따라 길게 핥아 내려간 혀가 송지언의 엉덩이를 씹었다. 엉덩이 살을 입안으로 가득 빨아들이고 우물거린다. 사내의 송곳니가 엉덩이 살을 찌르는 것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송지언은 아픈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미친 듯 날뛰었지만 송지언의 반항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는 송지언의 팔 다리를 가볍게 제압하고, 아직 속에 자신의 정액이 남은 송지언의 축축한 구멍으로 두껍고 긴 음경을 집어넣었다. 어깨를 깔아뭉갠 자신의 손을 피가 나도록 물어뜯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짐짓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닮은 건강한 사내아이와, 너 닮은 예쁜 여자아이하나만 있으면 좋겠구나.”



정사는 아까보다 훨씬 더 길었다. 무작정 박아대던 아까와는 달리 완급을 조절하며 시간을 끄는 사내 밑에서 송지언은 딱 죽을 만치 괴로웠다. 종내는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축 늘어져 눈이 풀린 채 남자의 허리짓에 흔들렸다. 팔과 다리는 필요 없는 물건인양 남자의 등 뒤에서 털렁거렸고,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사내뿐이었다. 사내의 뜨거운 체온과 끈적거리는 땀, 거친 호흡과 내뱉는 신음, 그리고 몸속을 들락거리는 불덩이. 그것들이 주는 고통이 전부였다.






송지언은 몸의 고통과 피로에도 불구하고, 한숨도 자지 못했다. 정사를 마친 남자는 쇳덩이나 다름없는 팔을 송지언의 몸 위에 올려놓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 호흡소리마저 지극히 낮아 죽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내가 잠든 새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몸이 너무 아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열이 쩔쩔 끓었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내장이 쏟아질 것처럼 쓰리고 허전한 구멍뿐만이 아니라, 며칠째 비어있는 위장이 쥐어짜는 듯 했으며 배까지 사르르 아팠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아픈게 이상하다 싶었다. 결국 설사기운을 느끼고 송지언은 사내의 팔을 치우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멀리 도망은 갈 수 없어도 잠자리에다 변을 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요강이라도 있었으면 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것은 없었고, 송지언은 천근인 몸으로 엉금엉금 바닥으로 기어 내려갔다.



그때, 다리를 덥석 붙잡히고 송지언은 깜짝 놀랐다.



“힉!”



“어디 가는 거냐.”



깊이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사내가 언제 자고 있었느냐는 듯이 번쩍거리는 눈을 하고 송지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송지언은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사내가 그 몸 중 보지 않은 곳이 없고 핥지 않은 곳이 없어 더 이상 수치는 느껴지지 않았다. 송지언은 식은땀이 흥건한 얼굴로 웅얼거렸다.



“변… 변소는 어디에……”



“똥 누려고?”



허나 남의 생리현상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사내의 언행에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후들거리는 송지언의 팔다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번쩍 안아들었다.



“뭐, 뭐하는 게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쪼그리고 앉기 힘들게 아냐.”



사내는 송지언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움집 뒤의 수풀 속으로 들어가더니 아기 변을 누이듯 송지언의 무릎 뒤에 팔을 걸고 자신의 다리 사이로 송지언의 엉덩이를 내렸다. 송지언은 그런 자세가 까무라칠 정도로 창피할 뿐만 아니라 사내의 품속에서 변을 볼 마음이 없었으므로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여태까지 그랬듯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놓아주시오, 호, 혼자 볼 수 있소. 놓아주시오!”



“얼른 누기나 해.”



도리어 그런 식으로 다리가 벌려지자 절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면서, 구멍에서 무언가가 왈칵 쏟아졌다. 송지언은 괄약근에 힘을 주고 배설을 막으려 했지만 부어올라 힘을 잃은 채 벌려진 항문은 정액이 섞인 설사를 질질 토해냈다. 구린내와 함께 설사가 수풀위로 투둑 투둑 쏟아졌다. 송지언은 남자의 팔뚝위에 손톱을 세웠다. 기가 막혔다. 다 큰 성인 남성이 같은 사내의 품속에 안겨 이런 식으로 변을 보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사내의 물건을 몸속에 품은 것보다 더, 더 수치스러웠다. 그런 가장 동물적이고 생리적이며 더러운 것을 내보이다니…… 송지언은 왈칵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설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듯 눈물 역시 막을 수 없었다. 송지언은 입술을 터지도록 깨문 채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하지만 사내는 자신이 송지언에게 수치를 안겨주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흐아암, 하고 하품을 쩍 하더니 졸린 목소리로 말했다.



“다 눴냐?”



송지언은 대답하지 못하고 끅끅 눈물만 흘렸다. 송지언이 우는 것이 배가 아파서라고 생각한 듯, 사내는 물었다.



“많이 아프냐?”



아팠다. 온 몸이 아팠다. 사내가 꿰뚫고 간 구멍과 사내가 핥고 지나간 몸 중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픈 것은 그가 찢어발긴 송지언의 자존심이었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기본적인 자존심까지 사내는 아무 생각 없이 깔아뭉개고 있었다.



사내는 송지언을 안고 움집 옆 들통에 받아둔 물에 손을 담가 송지언의 아래를 씻겼다. 어찌 보면 갓난아기를 돌보듯 정성스럽고 꼼꼼한 손길이었다. 하지만 송지언은 그에서 아무런 고마움도 느낄 수 없었다. 사내는 송지언의 엉덩이를 닦은 손으로 눈물콧물 범벅이 된 송지언의 얼굴도 문질렀다. 송지언의 얼굴을 물로 훑어내고 다시 잠자리로 데리고 간 사내는, 송지언을 품에 뉘이고 그의 배에 큰 손을 얹었다. 그리고 배를 살살 문지르기 시작했다. 곧 사내는 다시 한 번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배를 문지르는 손이 점점 느려지더니, 다시 곯아떨어졌다. 사내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송지언은 새벽이 밝아올 때까지 눈가가 짓물러질 정도로 계속 울었다.



생에 가장 비참한 밤이었다.






송지언이 간신히 잠들 수 있었던 것은, 새벽에 사내가 일어나 끓인 고깃국을 먹고 나서였다. 그 고깃국을 먹었던 것은, 순전히 어떻게든 이곳에서 도망쳐 나가야한다는 생존욕구 때문이었다. 물론 고통스러운 공복도 한몫을 했겠지만, 먹고 기운을 차려 몸을 회복하지 않으면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깊은 산중이었고, 자신의 실종 사실을 고향집에서조차 언제 알 수 있을지 모르므로 누군가의 구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자신은 자신이 구제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몸을 회복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소금을 넣지 않은 고깃국은 비리기만 하고 아무런 맛이 없어, 평소에도 입이 짧은 송지언은 그것을 거의 남기고 말았다. 하지만 칼로 쑤시는 것 같은 공복이 가라앉고 나자 마침내 수마가 찾아들었고, 송지언은 기쁘게 그 달콤한 잠 속에 자신을 내맡겼다. 어쩌면 다시 일어났을 때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기절이나 다름없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수면이었기에, 송지언은 다시 눈을 떴을 때 자신이 얼마나 잤는지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깊은 숙면은 효과가 있었는지, 송지언은 길을 잃고 비를 맞았을 때부터 그를 괴롭혔던 열이 내려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친 발목과 찢어진 항문은 여전히 아팠지만 팔다리를 저리게 만들던 오한도 없어졌다. 밖이 아직 밝은 것을 보고 송지언은 그나마 멀쩡한 바지를 주워 입고 바깥으로 절룩거리며 걸어 나갔다. 몸 상태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며칠간의 극심한 고생으로 기력이 빠져, 다리에는 여전히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바깥으로 나갔지만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없다 하더라도 이 다리로는 멀리 갈 수 없었기에 송지언은 일단 주변 지리라도 살펴두자는 생각으로 뜰을 돌아다니다 한쪽에 있는 높은 바위를 보고 그 위로 기어 올라갔다. 뜰 주변은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그 바위위만은 제외였다. 바위위에 올라서니 아래 계곡과 건너편 산의 능선이 훤히 보였다. 그제야 송지언은 이 움집이 산 주변을 경계하기 좋은 지리적 요지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곧 송지언은 뛸 듯 기뻐했다. 멀어 보이긴 했지만, 건너편 산에 희미한, 아주 희미한 산길이 나 있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무 사이 끊일 듯 끊어지지 않고 희게 드러나 있는 가냘픈 선은, 틀림없이 사람이 다니는 길이었다. 저곳까지만 갈 수 있다면 길을 따라 가다 사람을 만나거나 인가가 있는 곳에 당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송지언이 그 길이 어디에서 어디까지 이어져 있나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있는데, 뒤에서 버스럭 버스럭 수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송지언은 혹시라도 자신의 심중을 들킬 새라 바위위에서 내려왔다. 저쪽 수풀 길 사이에서 사내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내는 피투성이였다. 사내가 뒤집어쓰고 있는 피는 바로 그가 걸머진 커다란 멧돼지에게서 쏟아지는 것이었다. 멧돼지는 목이 찢겨 뼈가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집에서 기르는 돼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덩치가 크면서 사납게 생겨, 돼지라기보다는 맹수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맹수 같은 것은 바로 사내였다. 멧돼지를 그 꼴로 죽인 것은 아무래도 사내의 허리춤에 꽂힌, 낫하고도 비슷하게 생긴 이상한 쇳자루인 것 같은데, 몹시 투박하여 도대체 어찌 저것으로 저런 상처를 낼 수 있는지 의문일 뿐이었다.



멧돼지를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뜰에 내던진 사내는 이를 드러내고 씩 웃었다.



“드디어 일어났냐.”



송지언은 주춤거리며 생기로 빛나는 사내의 시선을 피했다. 사내의 가슴팍으로 시선을 비껴 내리니 다친 것인지 사내의 가슴팍이 길게 찢어진 것이 보였다. 꽤나 아플 것 같은데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다.



“사흘이나 일어나지 않아 죽는가 했다.”



자신이 사흘이나 잤단 말인가.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를 보자 영영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송지언은 아까 본 길을 떠올리고 그런 생각을 지웠다. 죽으려면 벌써 죽었을 수도 있는 목숨이다. 아직까지 붙어있으니,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사내는 일어나 있는 송지언을 보니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이제 일어났으니 많이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너는 많이 먹게 생기지 않았지만 매일 곰 한 마리씩 먹는다 해도 괜찮다. 얼마든지 잡아다 줄 테니까, 얼른 아기를 만들어 줘.”



송지언은 자신은 사내라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말을 하진 않았다.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사내가 납득할 것 같지도 않고, 묘하게 기분 좋아 보이는 사내를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를 다 떠나, 그냥 사내와 말을 섞는 것 자체가 기분 나빴다. 사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개가 말하는 것처럼 기묘한 위화감과 이질감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사내는 허리춤에서 낫처럼 꺾인 쇠막대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힘껏 멧돼지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퍽, 하고 살점과 피가 튀어 오르더니, 목살이 쩍하고 벌어지며 완전히 뼈를 드러내었다. 송지언은 깜짝 놀라 물러나다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사내는 어렵잖게 멧돼지의 목을 끊어내고, 쇠막대로 가죽을 긁어 올리더니 이로 끊어 그것을 벗겨냈다. 맨 손으로 찢다시피 해서 배를 가르자 내장이 푸왁 쏟아져 나왔다. 송지언은 난생 처음 보는 도축광경에 얼이 빠졌다. 꿈틀거리는 살과 번들거리는 피가 너무도 선연했다. 그 생생함 속에서 헤엄치는 사내의 모습은 기묘하게 인상적이었다. 사내는 멧돼지의 뱃속에서 내장을 긁어내고 그것을 어깨에 걸친 후 잘라낸 멧돼지의 머리를 들고 송지언의 쪽으로 다가왔다. 송지언은 얼른 비켜섰다. 사내는 송지언이 올라섰던 바위위로 올라가 아래로 그것들을 힘껏 던졌다. 바위는 높다란 비탈에 있었기에 그것들은 멀리 아래 수풀 속으로 굴러 떨어져 사라졌다. 사내는 남은 고기를 몇 덩이로 해체한 뒤 그것들을 부러트린 나무 꼬챙이에 꿰어 가지사이에 걸쳐놨다. 그리고 몸을 돌렸을 때 사내는 완전 핏물에 담갔다 꺼낸 듯 했다.



“너도 씻으러 갈 테냐?”



“……에?”



“잠자리가 푹 젖도록 식은땀을 줄줄 흘렸잖아.”



그제야 송지언은 찝찝한 몸을 자각했다. 너무 충격적인 일들의 연속이었던지라 몸을 깨끗이 한다는 기본관념조차 희미해져 있었던 것이다. 사내가 송지언에게 다가오자 피비린내가 엄청나게 풍겼다. 송지언은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느꼈지만 여태까지 그랬듯 사내는 송지언의 표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피를 뒤집어 쓴 몸 그대로 송지언을 들쳐 업으려 했다.



“내가 걸을 수 있소.”



송지언은 완강히 거부했지만 사내는 “발목을 다쳤으니 그런 걸음걸이로는 해가 져도 못 갈 것이다.” 라는 말로 그의 거부를 일축했다. 사내의 등에 업히자 역한 피비린내 때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송지언을 등에 업은 남자는 비호처럼 날래게 수풀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빠르기에 송지언은 반사적으로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사내는 달리고 박차고 뛰고 내려앉고 다시 달렸다. 입체적이고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그 움직임은 어지럽기까지 했다. 주변을 익혀둬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무엇도 볼 수 없었다. 정신없이 덜컥덜컥 흔들리기를 얼마 간. 사내가 걸음을 멈추자 송지언은 숲 가운데에 생겨난 못을 볼 수 있었다. 바닥은 온통 못을 만드는 물줄기로 인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못은 그다지 깊지도 크지도 않았으며, 트인 하늘 사이로 햇살이 떨어져 따뜻해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담그니 손가락이 시릴 만큼 차가웠다. 사내는 허리춤에 두르고 있던 털가죽을 벗어버리고 못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가 튀기는 물방울과 벌겋게 변하는 물빛에 송지언은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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