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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어]닭뼈의 왕자님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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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한 번도 의자에 앉아 본 적이 없다. 의자는 손님이나 식당 주인이 앉는 곳이다. 다른 일하는 사람들은 워낙 바빠 식당에서는 앉을 틈이 없었기에 루어스는 그렇게만 믿고 있었다.

    다시 일어서긴 했지만 의자에 앉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루어스를 향해 악페온이 버럭 소리쳤다.

    "당장 앉아!"

    "아, 어… 예, 예……."

    허둥지둥하며, 루어스가 의자에 앉았다. 엉덩이를 붙이기는 했지만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은 듯 안절부절 못했다. 악페온은 큰 죄라도 저지른 듯 덜덜 떨고 있는 루어스의 앞에, 테이블 위에 책 한 권을 펼쳐 놓았다.

    "읽을 수 있나?"

    고아로 부려 먹혔던 루어스가 글자를 배웠을 리 없었다. 책인란 걸 들여다보는 것도 그의 기억으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항상 끄덕거리던 고개가 좌우로 짧게 흔들렸다. 역시, 하고 악페온이 만족스레 미소 지었다. 요새는 맹문률도 많이 낮아져 혹시나 싶었던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하고 글도 전혀 읽지 못한다는 것이지. 좋아, 썩 괜찮아."

    말도 아예 모른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게 구미 딱 맞는 실험대상을 구하기는 힘든 형편이다. 악페온은 상냥한 얼굴을 꾸미며 진통제를 듬뿍 넣은 차를 루어스에게 내밀었다.

    "자, 마시거라."

    단 한 번의 의심이란 것을 해보지 못한 루어스는 얌전히 그의 말에 따랐다.

    테이블 위에는 인간의 머리, 특히 뇌 부분을 자세히 묘사한 해부도가 펼쳐져 있었다. 틈틈이 필기를 해가며 악페온이 중얼거렸다.

    "이론상으로는 분명 이 부근이 언어를 담당하는 곳이란 말이야……."

    한가하게 자료책을 뒤적이는 그의 앞에는 루어스가 앉아 있었다. 그 가는 몸으로는 꿈쩍도 하지 못하는 무거운 의자에 온 몸이 묶인 채였다. 재갈로 막혀있어 가는 신음성만 새어나왔지만 얼굴은 고통에 의해 흘러나온 눈물로 온통 범벅이었다. 유달리 동자가 커 검푸름 가득한 눈에도 핏발이 잔뜩 섰다. 거미줄에 꽁꽁 묶인 가련한 먹잇감처럼 파들파들 경련하던 루어스가 풀썩, 고개를 떨어뜨렸다. 통증을 견디다 못해 기절하고 만 것이었다.

    "버틸 만은 한 모양이로군. 상태를 봐서 다음번엔 강도를 조금 더 높여 볼까."

    사각사각 필기를 하던 악페온이 각성제를 뿌려 루어스를 억지로 일으켰다. 겁에 질린 눈이 끔벅끔벅 눈물을 토해낸다. 그래도 더 이상의 고통은 없었다. 재갈을 벗기고 줄을 풀어 준 악페온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 말해서는 안 된다. 너는 그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명령에만 따르면 돼."

    루어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또다시 아프게 될까봐 무서웠다. 딱딱하게 얼굴을 굳혔던 악페온이 다시금 사람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좋아. 이제 나가자."

    들켜선 곤란했기에 악페온이 먼저 문 쪽으로 다가갔다. 바깥을 살핀 뒤 루어스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손을 뻗어 문의 잠금을 푼 순간, 벌컥 문이 크게 열렸다.

    "이봐, 방금 솔온이! 어? 닭 뼈 아냐?"

    문을 연 학자가 악페온의 뒤쪽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루어스를 보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악페온이 황급히 변명했다/

    "청소를 시키려고-."

    "뭐? 하지만 2층에는…."

    "중요한 실험실에는 들여보내지 않아! 서재 정리만 시켰을 뿐이네. 어차피 글도 모르는 녀석이니 문제 될 건 없잖은가."

    "…하긴."

    악페온의 변명에 학자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험실까진 어쩔 수 없대도 서제 청소까진 귀찮지. 개인 서재야 글만 모르면 문제 될 것도 없고. …거 괜찮네. 야, 닭 뼈! 내 서제도 청소해."

    개인 서재는 연구 자료가 보관되어 있어 수습 학자에게 청소를 시킬수도 없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접 청소를 해야 했는데 루어스는 학자도 아니오, 글도 아예 모르는 멍청이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는 슬금슬금 걸어 나오는 루어스에게 복도 저편을 손가락질해 보였다.

    "저기 끝에서 두 번째 방이다. 다른 건 건드리지 말고 바닥이랑 책상만 닦아. 먼지가 한참을 쌓여서…."

    루어스는 머리를 꾸벅 숙이며 그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악페온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두 번으로 끝날 시험이 아니다. 저 닭 뼈가 다른 학자들의 눈치 안보고 2층으로 내려 올 수 있다면 편한 일이다.

    그렇게 루어스는 2층의 청소까지 맡게 되었다.

    * * *

    1.

    쏴아아-

    시원한 바람이 계곡의 바닥을 훑고 지나가며 길을 걷던 객의 이마를 식혀주었다. 객은 턱을 조이는 답답한 갓끈을 풀어 갓을 벗고 그 바람을 즐겼다. 갓을 벗어 드러난 사내의 얼굴은 사내라고 생각키 어려울 정도로 희고 고왔다. 초승달 모양을 그리는 가지런하고 가는 눈썹에, 사슴처럼 그렁그렁한 눈망울, 버선코처럼 작고 맵시 있는 코와 연지라도 찍어 바른 듯 붉고 통통한 입술까지 누가 보면 남장을 한 여인네로 착각하기라도 할 법한 미모였다. 하지만 목에 툭 튀어나온 울대나, “어, 시원하다.” 하고 중얼거리는 목소리나 부정할 수 없는 사내의 것이었다.

    객은 과거 많은 벼슬을 지낸 뼈대 있는 양반가 백흥 송씨 집안의 자제 송지언이었다. 한때 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세를 떨치던 집안이었지만, 송지언의 고조부께서 공조참판을 지내신 이후 문중에는 과거급제자가 없었다. 송지언의 조부가 벼슬은 고사하고 색주와 투전에 빠져 집안의 재산을 탕진했으니, 이제는 그 가세가 크게 기울어 대대로 물려온 전답과 땅을 팔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그런 와중인지라 어릴 적부터 영민했던 송지언에 대한 집안 어르신들의 기대는 특출 났다. 당연하리란 듯 그가 과거급제를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송지언이 3년마다 있는 식년지에서 낙방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벌써 두 번째 낙방이고 하니 집으로 돌아가는 발길이 가벼울 수가 없었다. 데리고 온 몸종도 여행길에 병에 걸려 두고 올 수밖에 없었는데, 하도 마음이 무거워 되지도 않는 위로를 주워섬기는 몸종이 없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다.

    송지언은 갓을 벗은 김에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계곡에 내려갔다. 계곡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얼어붙을 듯 맑고 시렸다. 목을 축이고 커다란 바윗돌에 걸터앉아 오랜 여행으로 지친 발을 담그고 있으려니 절로 시름이 덜렸다. 주변의 수려한 경관 또한 그에 한몫을 했다. 이제 시작되는 여름을 맞아 산은 초록으로 새 단장을 했고, 먹이를 물고 바삐 새끼에게 날아가는 매 한 마리가 멀리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 멍하니 앉아있으려니 세상사 근심해봤자 무슨 소용 있으랴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 이미 낙방한 것을 어쩌랴, 다시 집으로 돌아가 열심히 수학하는 일만이 방법 아니겠는가. 송지언은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과 안사람을 생각했다.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인데 이리 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재촉하듯 뭉게구름이 잔뜩 몰려와 산봉우리를 뒤덮기 시작했다. 산 중의 날씨는 변덕스러운데 장마가 시작될 즈음인지라 큰 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송지언은 젖은 발을 털고 버선과 신발을 다시 꿰어 신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을 잃은 것인가.’

    후둑후둑 떨어져 내리는 빗줄기가 하도 굵어 어깨가 다 아팠다. 사방은 한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암흑천지. 걷던 고갯길이 넘어진 고목으로 막혀 다른 길을 몰라 에둘러 간답시고 숲속으로 발을 들였던 것이 실수였다. 해가 지면서 당장 비가 쏟아질 듯 바람이 스산해 발길을 서둘렀지만, 주위가 어두워지며 걷던 고갯길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그 고갯길로 계속 가면 객들이 쉬다 갈 수 있는 산막이 있다 했는데, 이대로는 꼼짝없이 한데에서 밤을 새겠다 싶었다. 들짐승이라도 나오면 어떡하나 고민하기가 무섭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들짐승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이리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데 짐승이 돌아다닐 리가 없는 것이다.

    발은 썩은 낙엽 속으로 푹푹 빠져들고, 손은 붙잡고 지나친 나뭇가지들에 긁혀 가시가 잔뜩 박혔다. 이대로는 도저히 걸을 수 없다는 생각에 어디라도 비를 피할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방이 칠흑 같은 어둠이고, 억수 같은 비에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으니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결국 송지언은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큰 나무 뿌리에 올라앉아 몸을 옹그렸다. 아주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무성한 나뭇잎들이 어느 정도 비를 가려주었다. 이따금씩 바람이 한번 불때마다 와스스 와스스 빗방울과 함께 숲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오싹하게 들려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끌어안고 송지언은 딱딱딱 부딪치는 이를 악 물었다.

    ‘내 생에 최악의 밤이구나.’

    하지만 최악의 밤은 아직 멀었다. 사방을 잠식한 어둠과 체온을 앗아가는 빗속에서 송지언은 공포에 떨었다.

    비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송지언은 젖은 채로 깜박 졸았다. 사방이 어슴푸레 밝아올 때쯤에는 밤새 비를 맞은 탓에 온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손발이 저렸다. 고뿔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마를 짚어보니 열이 상당했다. 시야조차 어질어질하여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계속 거기 그러고 있다가는 죽기 십상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송지언은 비틀거리며 자신이 걸어온 고갯길을 찾아 헤매었다. 허나 온 사방이 축축이 젖은 나무와 낙엽과 비탈길 뿐. 빼곡한 수림은 어느 쪽으로도 시야를 터주지 않겠다는 듯 완강해보였다.

    송지언은 일단 눈에 보이는 산 능선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어차피 방향을 가늠할 수 없으니 능선에 올라서면 시야가 트여 무언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돌이 구르고 흙이 무너져 그저 눈에 보이는 능선을 향해 걷는 것만도 너무 힘이 들었다. 툭하면 덤불이 길을 가로막고 커다란 바윗돌과 비탈이 발길을 거부하니 똑바로 걸을 수가 없는 탓이다. 오르는 열과 몽롱한 시선, 후들거리며 떨리는 다리도 그에 한몫을 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몇 번이고 까무룩 시야가 멀어졌다.

    늦은 오후가 되어 세 발짝에 한번 씩 쉬어가며 간신히 능선에 도착했을 때에는, 눈을 들어 승리감에 도취되기보다는 허리를 숙여 토악질을 하기에 바빴다. 자신이 뱉어난 시큼한 토사물에서 비척비척 멀어져 나무에 등을 기댄 송지언은 트인 시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암석이 머리를 디민 봉우리와 이어진 능선은 삐뚤삐뚤했다. 잡풀과 키 작은 소나무들이 그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비탈은 송지언이 발을 담갔을지도 모르는 계곡 골짜기로 이어져 있었고, 다시 하늘로 솟구친 비탈이 건너편 산등성이로 연결되어 물결무늬를 그리며 사방으로 뻗쳐갔다.

    여기를 봐도 산이고, 저기를 봐도 산이다.

    길 비스무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람의 흔적은 눈곱만치도 찾을 수 없다. 크게 낙담한 송지언은 몸종을 두고 온 것을 마음깊이 후회했다. 귀향길이 늦어지더라도 그놈과 함께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아랫것을 수발드는 꼴이 되기 싫어 머물던 주막의 주모에게 그놈을 부탁하고 먼저 내려왔던 것이다. 그놈이 그나마 방향 읽는 재주가 있어 길을 잃어도 곧잘 다시 길을 찾아내고, 머무를 때와 나아갈 때, 가야할 곳과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알고 있었는데 이리 첩첩산중 홀로 서 있으려니 무섬증에 가까운 무력함이 찾아들었다. 송지언은 나무에서 주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밤새 비를 맞은데다 열이 오르는 차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무리하게 움직였더니 기력이 다한 것이다.

    ‘내 여기서 객사하더라도 한 발짝도 더는 못 움직이겠다.’

    송지언은 몇 번 눈을 깜박깜박하다가,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송지언이 열다섯에 맞아들인 부인은 남쪽 지방에 소문이 자자한 미인이었다. 한때 영의정까지 지낸 명문가 석송 산씨 집안의 규수였고, 공조참판을 지내신 고조부가 그 댁에 신세를 진 것이 많아 예전부터 인연이 각별하여 송지언과는 어릴 적부터 약조되어 있던 사이었다. 부모가 점지해주는 사람을 인연으로 맺는 게 당연한 양반가인지라 그녀가 박색이었다 한들 거절할 수 없었겠지만, 몸종이 안사람이 될 처자가 미인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말해주었을 때 기뻤던 것도 사실이다. 혼례를 올릴 때는 사람들이 신랑신부가 전부 인물이 훤하고 잘생겼으니 딸을 놓든 아들을 놓든 구혼자가 줄을 잇겠다 말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그녀는 좀처럼 회임을 하지 못했다. 당시엔 어린 나이었던지라 아직까지 자식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던 송지언은 별 생각이 없었지만, 송지언을 늦게 보았던 부모님은 성화가 대단했다. 어머니는 회임을 돕는 약재며 보양식을 갖다 먹이다가, 송지언이 스물이 되고 며느리가 스물 셋이 되도록 소식이 없자 대놓고 구박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부부의 잠자리 문제에까지 참견을 하고 정숙하던 여자가 그에 초조함을 느끼고 잠자리를 조르기 시작하자 송지언은 공부를 핑계로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아들을 나무랄 수는 없으니 며느리만 능력 없다 들볶는 시어머니에, 독수공방의 나날이 이어지니 그녀의 옷소매가 눈물로 마를 날이 없었다. 송지언은 그녀가 안쓰럽고 미안했지만, 우선은 과거급제가 먼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쓰지 않았다. 헌데 이리 죽을 고비를 맞고 보니 다른 누구보다도 그녀가 불쌍했다. 사내들이 다 탐낼 만큼 아리따운 얼굴임에도 과부로 수절하고 늙어갈 그녀를 생각하니 참으로 안된 것이다. 후사조차 얻지 못하고 자신이 이리 죽으면, 상심한 어머니가 남편 잡아먹는 요물이라 그녀를 닦달할 터인데 그 한을 어찌한단 말인가?

    ‘내 살아야지, 부모님을 위해서, 안사람을 위해서, 내 살아서 돌아가야지.’

    송지언은 돌아오는 의식 속에서 그리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엉성한 서까래였다. 서까래위에 대충 엮어 얹은 짚더미가 당장이라도 아래로 쏟아질 듯 했다. 시선을 조금 더 아래로 내렸다가 송지언은 기절할 듯 놀랐다. 커다란 호랑이가 정면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송지언은 간신히 그것이 호랑이 가죽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벽에서부터 바닥까지 길게 딸린 호랑이의 길이는 어마어마해서, 살아있었다면 사람 하나쯤은 그냥 삼키고도 남을 것 같았다. 호랑이 가죽 옆에는 고깃덩이들과 뭔지 모를 풀 더미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벽에는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요상한 날붙이들이 늘어서 있었다. 송지언은 짚을 깔고 가죽을 덮어 만든 잠자리에 누워 있었다. 벽면은 돌과 흙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창이 없어 어두컴컴했다. 바깥으로 길게 빠진 입구에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움집안을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구조를 받은 것인가.’

    산중에서 길을 잃고 큰 비를 만나 꼼짝없이 죽나 했는데, 사람 명이 그리 쉬이 끊길 리가 없지. 송지언은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열이 다 내리지 않아 온 몸이 쑤셨고 공복에 속이 쓰렸지만 먼저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움집에 있는 물건들을 보아하니 송지언을 구한 것은 아무래도 사냥꾼인 것 같았다. 사냥꾼들은 사람을 상대 않고 산에서 짐승을 잡고 사는지라 천하고 무례하여, 평소라면 양반가의 자제이자 선비인 송지언과 말 섞을 일이 없겠지만 생명의 은인이니 이야기가 다르다. 송지언은 털가죽 더미 밖으로 발을 내밀어 몸을 일으키려다, 발목에 시큰한 아픔을 느끼고 비명을 지르며 도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발목을 보니 팅팅 부어올라 시퍼렇게 변해있는 것이 크게 삐거나 부러진 모양이었다. 발목을 다친 기억은 없었다. 발목을 다쳤더라면 그리 산중을 헤매고 다닐 수 있을 리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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