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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fail]훼손 외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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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훼손) by.leefail

    대종소리가 새벽을 가른다. 데엥, 데엥, 데엥…….

    그 소리에 묵직한 적요를 견디지 못하고 밤새 뒤척인 몸을 일으켰다. 다시 대종이 데엥…… 하는 소리를 낼 적에 적요가 물처럼 일렁인다. 희뿌연 빛에 손목의 시계를 비춰보니 새벽 네 시다.

    시간을 가늠하자 다시 대종이 떨며 귀를 적셔오는 울림을 만들어낸다. 새벽 예불을 알리는 종은 마치 누군가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듯이 운다. 잠자기는 글렀다 싶어 녹작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는 이불을 걷어치우고 일어섰다.

    창호문을 열고 나가자 싸늘한 새벽공기가 얼굴을 갈긴다. 차갑지만 차가운 만큼 복잡한 가슴을 후련하게 만드는 공기다. 청아한 공기를 가슴까지 깊게 들이켰다.

    어젯밤 눈이 내렸다. 창졸간에 눈은 산을 뒤덮고 사찰을 뒤덮었다. 산과 산 아래의 마을 모든 것이 눈으로 뒤덮여 눈부신 새벽이다. 새벽 예불을 드리러가는 중들이 하나 둘 소리도 없이 나타나 눈길을 걸어간다. 춥지도 않은지 하얀 목덜미를 드러낸 채 걷는 자들의 얼굴은 각고로 단련되어 깎아내린 얼음처럼 투명하고 맑다. 온갖 욕망으로 가득 차 있는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것조차 겸연쩍고 민망한 일이다.

    대청에 나와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이는 동자승이 혼몽인 냥 그저 바라만 보았다.

    “안녕히 주무셨는지요, 시주님.”

    “…….”

    두 손을 합장한 채 다가와 인사를 하는 동자승은 열다섯 해를 산 사내아이다. 열다섯. 정확히 내 나이의 절반을 살았다. 십 오년 전 어느 날 피골이 상접한 여인이 이 장연사에 사내아이를 버리고 도망쳤다고 한다. 그 사실도 모르고 부처가 제 아비인 줄 아는 동자승은 몇 번 산문을 내려갔던 일 빼고 이곳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근처에 학교가 없어 학교도 다니지 않는 사내아이는 이 산과 절이 세상의 전부라고 여기고 있다. 아무것도 보지 못했음으로 욕이 무엇인지 모른다. 물샐 틈 없는 불성인 것이다.

    “잘 잤습니다.”

    “첫날인데 혹 잠자리가 불편하지는 않으셨습니까?”

    “편했습니다.”

    동자승은 내 말에 아이임을 증명하는 미소를 지어보이곤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경내를 지나쳐 올라간다. 욕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내아이는 세상을 등지고 출가한 땡중들과 함께 전혀 다른 관념과 싸움을 할 것이다. 땡중들은 이미 맛보고 익히고 즐겼던 욕과 싸울 것이고 욕의 부질없음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제 속에서 말라붙은 껌처럼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긴 고행 끝에 깨달을 것이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곧 욕망이라는 것으로 선을 이루고 어떻게든 끼워 맞춰 부처의 것이 아닌 타협하는 땡중의 불심을 여래의 진리인 냥 품게 되리라. 그러나 동자승은 그저 쭈그리듯 꿇고 앉아 있는 제 다리가 저려 옴을 원망하고 부처께 용서를 구할 것이다. 자신을 탓하며 상생을 이룩할 수 있는 착한 일을 더 하겠다고 다짐할 것이다. 급이 다르다. 태곳적부터 살아온 세상이 다른 것이다.

    열다섯. 나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들이 예불을 다 마칠 때까지 마루에 앉아 눈을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노스님의 목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지면 다짐을 하는 동자승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온다. 다라니니 어쩌니 하는 말의 뜻을 전혀 모르고 있으면서도 또박또박 총지, 능지라고 대꾸한다. 예불을 끝낸 그들이 다시 경내로 내려올 때까지도 세상은 검푸르다. 몇몇은 다시 똥 묻는 관념과 싸우기 위해 제 숙사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쓸데없는 생각으로 시간을 소비할 것이다. 해탈하기 위해선 관념과 싸워 이겨야 한다고 한다. 욕을 욕으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헛된 노력들. 먹어야 하고 싸야 하고 자야하는 인간의 몸으로 하는 그들의 해탈에 대한 추구는 역설적인 반어법에 불과하다. 설사 극복한다 하더라도 해탈을 향해 욕을 극복하려는 욕을 불태우는 그들은 이미 욕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떨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을 것이리라. 한마디로 부질없고 소용없는 짓거리. 더불어 우스운 짓거리다.

    예불을 마친 동자승은 싸리 빗자루를 들고 와 눈 쌓인 경내를 쓸기 시작한다. 눈 맑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며 비질을 할까.

    갑자기 담배가 태우고 싶어진다. 방안으로 들어가 옷가지를 뒤져 몇 개비 남지 않은 담뱃갑을 라이터와 함께 들고 다시 나와 앉았다. 얼마 남지 않아 아까운 탓에 필터의 끝까지 아끼고 아껴가며 피워 올리고 있으려니 비질을 하는 동자승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그 눈을 마주치자 황급하게 다시 고개를 숙인다. 몸에 정갈하게 걸쳐져 있는 잿빛 승복으로 선연하게 드러난 목덜미에서 김이 솟아오르고 있다. 내가 절간에서 담배나 피우고 있다는 것을 노스님이 알면 그 모습이 과히 좋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런 몸짓이다.

    동자승은 담배가 어떠한 물건이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이 주는 안락은 모른다. 그저 나쁘다는 것만 안다. 설사 담배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해도 이것이 주는 안락 또한 모르리라. 안락을 느끼기 위해선 불편과 고통이라는 단어를 몸소 감수해야만 한다. 하나만 아는 것은 진짜로 아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개비를 다 피워 발치에 던졌다. 눈 속에 파지직 소리를 내며 꺼져버리는 필터는 그 형체조차 희미하다.

    경내를 쓸던 동자승은 자신을 부르는 스님의 목소리에 빗자루를 벽에 잘 세워두고 달려간다. 공양을 준비하려는 모양이다.

    절간은 고요하다. 아직 깨지 않은 객스님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어난다고 해도 절간은 고요하다. 고요가 사위에 팽배한 곳. 시끄럽고 어두운 곳에서 피곤을 풀던 나는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곳이다. 너무 조용해서 차라리 불안하다.

    이곳에 있는 객스님은 세 명이다. 고시를 준비한다는 법대생, 서울서 잘 나가던 기업체를 운영하다 쫄딱 망해 한때는 사장으로 위세가 등등했던 남자가 한 명, 그리고 검찰의 법망을 피해 은신하고 있는 또 하나의 남자. 지리산 자락에 붙어 있는 절간은 그 존재조차 불분명할 정도로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숨어있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을 거라는 흑곰의 말을 다시 떠올리며 흩날리는 눈발을 바라보았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는 노스님 옆에서 동자승이 분주하게 몸을 놀리고 있다. 말없는 노스님의 입술은 말라붙어 있는 것처럼 묵직하다. 대답 없는 그에게 무언가를 종알종알 떠들어대는 동자승의 입술은 선연한 붉은 색이다. 동백이 그러할 것이고 눈밭에 떨어진 피가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분을 떡칠하고 립스틱을 처덕처덕 발랐던 정다방의 미스리 입술과도 비슷해 보인다.

    그 속은 아무것도 없다. 텅텅 비어있는 불심이다.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고 만져본 것도 없다. 없다는 것의 무고하고 무지한 분노가 튀어 오른다. 자잘한 불티같은 분노가 치솟고 있다. 무얼까……

    열다섯에 나는 사람을 찔렀다. 나 역시 어미가 없고 아비가 없다. 내 어미는 절간에 나를 버린 것이 아니고 고아원에 내다버렸다. 질이 나쁜 고아원이었다. 네 살 때부터 서울역 앞에서 앵벌이를 했다. 콧물을 질질 흘리고 새카만 때를 얼굴에 묻힌 채 눈물을 흘려대면 얼어붙은 뺨은 겨울바람에 쩍쩍 갈라졌다. 땟국이 묻어 있는 내 얼굴을 외면하며 제 갈 길을 재촉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까지 선연하다. 눈을 감으면 그대로 떠오르고 잠이 들면 꿈을 꾼다.

    일곱 살 때까지 앵벌이를 했다. 머리의 알이 굵어지며 남의 지갑을 훔치는 법을 배웠다. 열 몇살 먹을 적부터 복잡한 서울의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를 했다. 사당역 어디쯤에서 사람을 찔렀다. 그때가 열다섯이었다.

    “시주님 식사하세요.”

    동자승이 밥상을 들고 와 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지럽게 얽혀있는 내 이부자리를 보고 밥상을 문간에 내려놓은 동자승이 서둘러 이불을 개킨다. 무릎걸음으로 방안을 휘저어대며 그 순연한 냄새를 퍼트리고 있다. 날갯짓을 치듯이. 파닥거리면서.

    “그럼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밥상을 내 앞으로 놓아주며 일어서는 동자승의 팔목을 잡았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그득하게 담겨 있는 밥공기를 말했다.

    “많습니다. 같이 먹으면 안 되겠습니까.”

    “전 스님들하고 먹으면 됩니다. 개의치 마시고 식사 하세요.”

    시주를 한 입장이라 그 반찬의 격이 다를 것임에 분명했다.

    “밥 생각이 별로 없는데 그냥 물리기도 죄송합니다. 대신 먹어줄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의 선택만 할 수 있는 물음을 던져본다. 제 입이 고파서가 아니라 내가 상을 물리치면 노스님의 노력이 다 허투가 되겠다는 생각에 동자승은 머뭇머뭇한다. 머뭇머뭇 떨려오는 손목을 다시 한 번 잡아당기니 그제야 풀썩 아랫목에 앉는다. 어서 먹으라고 그 손에 수저를 쥐어주었다.

    “시주님 다음부턴 이러시면 안 됩니다.”

    오물오물 적은 찬가지에 밥을 먹는 동자승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파르라니 깎은 작은 머리는 짐승의 알처럼 보기 좋은 원형을 이루고 있다. 눈이 마주쳐도 이번엔 피하지 않는다. 고즈넉한 눈은 눈물도 흘리지 않는데 촉촉하게 젖어있다. 그 눈을 저도 모르게 빤히 쳐다보았다.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런 거친 탐색의 욕구를 담고 있는 내 눈을 역시 동자승은 당연하게 마주쳐온다. 간단없을 것 같은 시선을 내가 먼저 돌렸다. 식사 하라고 다시 말했다. 동자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하다는 의례적인 말을 내뱉고 보리를 섞은 밥을 제 입보다 훨씬 더 크게 푹 떠서 넣는다. 목구멍에 걸릴 듯 걸리지 않고 부지런히 밥을 씹는다. 누군가 쳐다보는데도 망설임 없이 맛있게 먹는 동자승을 관찰하듯 응시했다.

    식사 중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을 받은 것 같다. 할 말이 분명 있어 뒤채는 눈으로 나를 쳐다볼 뿐 입을 열진 않는다. 그 많은 밥을 다 삼켜 배가 빵빵하게 부른 동자승은 놋그릇에 남아 있는 작은 밥알 하나까지 물로 씻어 깨끗하게 먹고 나서야 입을 연다.

    “시주님 밥맛이 없으시면 감자를 삶아 드릴까요.”

    고개를 저었다. 하얀 목덜미가 아까부터 눈에 밟힌다. 추워 보인다고 말을 하니 동자승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는다.

    “추위도 다 부처님의 뜻입니다. 산짐승도 옷을 걸치지 않는 걸요. 솜을 대어 별로 춥지 않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노스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자승이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그 행방을 알고 있었다는 듯 어서 나오라고 채근하는 목소리다.

    “여민아. 여민아.”

    여민, 동자승의 이름은 여민이다. 여민이라. 입안으로 조용히 불러보았다.

    “네. 스님. 시주님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혹시 시장하시면 말씀하세요.”

    여민이 다 비운 밥상을 가뿐하게 들고 일어설 때 문을 열어주었다. 문고리가 덜렁거리고 열린 문 사이로 노스님의 얼굴이 보인다. 역시 세상사를 초월한 눈동자이다. 감히 마주보기 힘들다.

    “시주님 식사하시는데 왜 방해를 하는 게냐.”

    노스님은 밥상을 들고 있는 여민의 머리에 딱하고 꿀밤을 먹인다. 그것은 여민의 순수한 방정을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는 그 행동을 외면하며 방문을 닫았다.

    이 산 저 산, 이 바다 저 바다. 젊은 시절과 늙은 시절을 야승처럼 떠돌며 봄여름가을겨울을 선방에 틀어박혀 고행을 빙자한 고뇌의 심연을 파고들었을 테다. 어느 순간 해탈하여 세상과 완벽하게 유리된 노스님은 존재와 그 의미, 삶과 죽음의 구분을 없앴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선과 악을 알기에 여민이 얼마나 순수하고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고 있는 것이다. 두 세계를 다 알고 있다. 흑과 백. 그 명명백백하게 구분되어지는 삶. 선뜩한 유리감이 나의 가슴을 가르고 있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무겁다. 어두컴컴한 중에 출납자 몇이 바랑을 들고 산을 내려가고 여민은 황량함이 잠긴 사찰에 혼자 남겨져 얼어붙은 연못가에 쭈그리고 앉는다. 그리고 나뭇가지로 그 안을 쿡쿡 찔러대고 있다. 그때 어디선가 눈사태가 나는 가. 소름이 돋는 자연의 소리가 귓등을 후려치고 지나간다. 세파를 겪어 굳어졌다고 믿었던 내 두려움이 느닷없이 떨려오는데 그 거친 소리에도 여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연못이 얼며 그 안에 갇혀버린 단풍잎을 빼내기 위해 나뭇가지로 얼음을 쑤셔대고만 있다. 그 의미 없는 노동이 여민에겐 놀이인 것이다. 열다섯, 그때 나는 사람의 배를 찔렀고 열다섯, 여민은 얼음을 깨고 있다. 그런 여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연못을 쑤시던 나뭇가지를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사뿐사뿐. 다른 땡중들과 마찬가지로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다.

    “시주님 심심하지 않으십니까?”

    여민의 눈동자에는 어린아이의 영악한 장난기가 어려 있다기보다 순연한 불성이 자리하고 있다. 문득 내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반항하는 십대의 치기 같기도 했고 배고픔으로 인해 뱃가죽이 벌럭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가라앉히고 심상하게 대꾸했다.

    “조금 심심합니다.”

    “전 불경 읽을 건데 같이 보시겠습니까?”

    “…….”

    여민의 발랄하고 맹랑한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다. 방안으로 들어가 정좌를 하고 앉은 여민은 부처의 덕을 칭송하는 경을 또박또박 읽어간다. 나 역시 정좌를 하고 앉아 있다 이유모를 답답함과 짜증을 느끼고 자세를 풀었다. 풀어진 자세는 그 낭랑한 경소리가 높아질 적마다 점점 더 풀어져 어느새 반쯤은 누운 자세가 되어버린다.

    “시주님 그렇게 앉아 계시면 안 됩니다.”

    “왜 안 됩니까.”

    어떻게 앉아야 하느냐고 되물으니 제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이며 마른 허벅지를 탁탁 내리친다. 이렇게요. 이렇게 앉으셔야 합니다. 바랑을 들고 산자락을 내려가던 스님들 중에 지주스님의 얼굴이 포함되어 있음을 떠올린다.

    무얼까. 무슨 마음일까. 아까 여민의 눈을 마주했을 때 느낀 울컥거림이 다시 뱃속에서 치고 올라온다. 또박또박 불경을 읽어나가는 여민에게 다가갔다. 무엇을 보고 읽고 있냐는 듯 엉덩이 걸음으로 여민의 등 뒤에 앉았다. 고개를 빼고 여민의 어깨에 턱을 걸치며 낡은 책의 파락거리는 한자를 바라보았다.

    “시주님 똑바로 앉으셔야지요.”

    내 턱이 걸쳐져 있는 제 어깨를 빼고 몸을 비틀어 내 가슴을 미는 여민의 손을 잡았다. 사찰엔 지금 아무도 없다. 한때 사장이었다는 사내는 산짐승을 잡겠다며 이른 아침에 나갔고 고시를 준비한다는 법대생은 산사태가 나던 태풍이 불던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제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잿빛 승복에서 마른 햇빛 냄새가 난다. 여민의 목덜미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부드럽고 따듯한, 그래서 망쳐놓고 싶은.

    “불경이 재미없으십니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내 대답에 여민은 웃으며 내 손안에 있는 제 손을 비틀어 빼고는 말한다.

    “저 역시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지마는 읽다보면 불편했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불편한 마음이 무엇입니까.”

    여민은 내 질문에 한참을 고민한다. 감기로 몸을 앓은 적이 있었을는지는 몰라도 마음을 앓아본 적이 없는 여민은 제가 내뱉고도 불편했던 마음이 무언지 계속 고민하기만 한다. 그 손을 꽉 잡은 채 등 뒤로 다른 손을 펼쳐 내 품에 소년을 가둬본다. 내가 저에게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여민은 여전히 불편한 마음이 무엇인지 고뇌하며 맑은 눈을 또로록 굴리다가 고뇌의 결과를 말해준다.

    “시주님 불편한 마음은 불심이 사라질 때 인 것 같습니다. 잠이 많은 저는 아침마다 불심이 사라지거든요. 예불을 드려야 하는데 이불 속이 더 좋으니 그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 말에 낮게 웃으며 여민의 뺨에 내 뺨을 비볐다. 가만히 안겨 있는 여민이 그때서야 뒤치락거리며 나를 밀어내려고 한다.

    “답답합니다. 시주님.”

    여민의 몸을 강하게 옥죄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욕정으로 뒤채고 있는 속에 비해 나 스스로도 놀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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