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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야경] 노예족 K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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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족 K

    <그것에게 이름은 없다. 그것에게 이름이란 부르기 편한 도구에 불과하지, 그것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앗, 이런 제길!! 아침부터 되는 일이 없군.

    도시락을 두고 왔다!

    자, 잠깐, 진정해. 침착하자구. 겨우 밤새고서 아침 거르고 전력질주로 뛰어와

    선 도시락도 잊어버렸다고 발끈할 것까진 없잖아. 심호흡을 하고, 강의실 창

    밖을 보자고. 도심에선 볼 수 없는 풍성한 나뭇가지가 창밖을 가득히 메워 흔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 우리 기숙사동의 건물 끄트

    머리가 간신히 보였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고. 냉정히 생각하면, 쉬는 시간

    안에 저기까지 갔다 와서 밥 먹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다음 수업은 2시간 연

    강. 이런 젠장!!

    일어나서 식탁위의 도시락을 볼 때까지만 해도 나갈 때 챙겨야지 하고 생각했

    는데 서두르다 깜박한 모양이다. 이런 망할. 밤새도록 과제물하고 허겁지겁

    나갔더니 교수가 고작 감기로 휴강하질 않나. 요즘들어 되는 일이 없어! 휴강

    한거 알았을 때 바로 기숙사에 갔다 왔으면 됐을 텐데 바로 시체처럼 쓰러져

    잠든 바람에, 으윽.

    내 이름은 민이루. 중학교땐 전교 50등 선에서 왔다갔다 했다. 중학교 졸업

    후, 하필이면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내버린 여기 ‘유토’ 학교에 믿기지 않는 합

    격통지를 받고 좋아라 했던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내 머리론 수업을 도통

    따라갈 수가 없질 않나(결코 농담이 아니다. 여긴 4차원 세계?), 귀찮아서 아

    무도 하고싶어하지않는 ‘유대’로 2년 연속 뽑히질 않나(제비뽑기 확률은 1/16

    이었다구), 과제물 제출기한을 착각해서 하마터면 계절학기 학점을 몽땅 날릴

    뻔 하질 않나(이건 냉정히 생각하면 내 실수긴 하지만…). 그래도 이러한 상황

    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내가 스스로도 근성있다 생각한다. 이놈의 학

    교,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구!

    솔직히 말하자면 공립 중학교 전교 50등 이라는 것은 보통 명문고에 명함도

    못 내밀 성적이긴 했지. 보통 인간인 나로서는 대체 어떻게 학교에 합격을 한

    건지, 항상 주변의 넘치는 괴물…이 아니라 수재들에게 채여 학교생활이 고달

    팠다. 이런 일 저런 일 참 쓰라린 추억들이 많다고.

    특히 ‘유대’!! 유대가 된 것이 제일 짜증이야! 유대가 뭐냐고? 뭐, 이해하기 쉽

    게 말하자면 반장이다. 요즘엔 회장이라고 하던가? 우리학교에선 옛날부터 무

    리 류 자에 대표의 대를 합성해서 적당히 학교 이름과 맞춰서 ‘유대’라고 부른

    다. 결국은 반장이나 과대가 하는 일과 다름이 없다. 남들 다 놀 때 과제물 걷

    고 공지사항 알리고 교수 심부름하고, 기타등등 기타등등.

    아침을 거른 것에 대한 공복과 더불어 과거의 별 관련없는 나쁜 기억까지 떠

    오르면서 나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나는 조용히 있다 느닷없이 책상을 콰앙

    내리침으로써 강의실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역시 사람은 배가 고프면 난폭해

    진다니까.

    “내 밥!!! 정말 되는 일이 없어!!”

    “자자, 저길 보십시오. 결식아동이 열받았어요. 우리모두 항상 우리를 위해 봉

    사하는 불우한 유-대- 님을 위해 기부합시다.”

    게다가… 내 친구라고 있는게 저런 녀석뿐이라니. 장난끼 가득한 눈매, 주변에

    서 지저분하다고 해도 끝끝내 고수하는 어깨까지 오는 긴 더벅머리, 어떤 상

    황이든 태연히 끼여들 수 있는 강철같은 신경의 소유자. 박마혁이 일어서서

    모두에게 똑같이 지급된 도시락 뚜껑을 열어 이놈 저놈의 밥과 반찬을 덜기

    시작했다. 흐이구, 그래. 나에겐 저런 배짱이 없으니 저걸 감사해야 하나. 아니

    잠깐, 이것들아! 왜 다들 젓가락을 드는 거야? 도시락을 어느 쉬는시간에 먹던

    너네 자유지만 강의실 안에서 자연스럽게 영양분 섭취하지 말란 말이다! 냄새

    배니까 야외에서 먹으라고 써있잖아! 아무리 옆에서 도시락 뚜껑이 열리면 나

    도 열게 되는게 학교의 법칙이라지만~.

    대체 어째서 이 학교엔 매점도 식당도 없는 거람. 매점도 없고, 매점도 없고,

    매점도 없는데 이게 학교야?!! 물론 정식 학교로 나라에 등록된건 얼마 안 되

    지만 말야, 여긴 기숙사제라고!! 즉, 바깥과는 고립되었단 말이다! 학생에게 일

    체의 군것질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이 악독한 제도 같으니!! 식당이랑 매점 대

    신 뭐가 있는지 알아? 식료품 매장이다, 식료품 매장. 흙묻은 당근이나 덩어리

    고기, 둥그런 양배추 같은 걸 파는 곳 말야. 나도 이 학교 와서야 그런걸 파는

    곳이 진짜로 있구나 했다고.

    유토 고교는, 에, 고교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군. 이 학교는 보통 고등학교완 달

    리 5년제다. 끔찍하지? 대신, 이 학교를 졸업하면 대학 졸업과 동등한 학력을

    인정받게 된다. 고등학교 과정 압축시키고 고등교육으로 넘어가는 체제다. 굳

    이 말하자면 유토는 일종의 대안학교라고 할 수 있지, 특목고가 아니라.

    나는… 이제 겨우 2학년이군. 앞으로 3년이나 남았다. 어이구. 내가 유토에 합

    격했을때 중학교 동창들은 날 열라 부러워 했지. 거의 대학과 같은 시설이라

    면서. 아아, 그때가 그립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도시락 뚜껑여는 생활이 무슨

    대학과 같은 거냐. 이건 초등학교랑 똑같잖아!!

    “이봐, 민이루! 니 노예 왔다!”

    엑?!!

    나는 이 수업 수강신청번호 12번이 날 부르는 소리에 난 황급히 고개를 돌려

    강의실문을 보았다. 어이구, 문제는 내가 걱정하던대로 반에 있는 녀석 전원

    이 내가 보는 방향을 보는 것이다. 마이페이스로 유명한 이 학교 녀석들의 저

    렇게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강의실 뒤쪽 문에는 모두에게 기본으로 지급되는 수수한 녹색 노예복을 입고

    내 도시락 통을 든 채 쭈뼛거리며 기웃거리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훤칠한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공손히 모은 두 손, 시선을 어디다 두는지 알 수 없는 무표

    정한 얼굴에 나는 위가 욱씬거렸다. 이건 분명히 스트레스성 위염일거야.

    젠장, 그렇게 우리 교실에 얼쩡거리지 말라고 했는데 도시락을 가져다주러 온

    모양이었다. 내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교실에 남아있던 녀석

    들의 휘파람이 4중창 스테레오를 만들어냈다.

    “휘익, 휙! 이야, 이루! 네 노예 진짜 미끈하게 생겼다야! 좋겠다! 나랑 바꾸

    자!!”

    “역시 소문이 사실이였군! 이런 예쁜이를 남에게 보이기 싫어서 계속 방에만

    두고 키운다며?”

    조용히 밥이나 처먹어라 이것들아.

    아아…. 이놈들이 정녕 엘리트 고교생(고등학교는 아니지만)이 맞더란 말이더

    냐. 아무리 여자랑 철저히 격리되서 살더라도 멀쩡한 남자보고 농담이라도 예

    쁜이라는 등 흥분하지좀 말라구!! 1/3 정도는 근래에 과학자, 의사, 변호사, 검

    사, 정부고관등등 이 될 녀석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둡군.

    “저어…, 도시락 두고 가신 듯 해 가져왔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안경을 고쳐쓰곤 온갖 야유와 휘파람 속에 내 노예가 들고 있는 도시락

    통을 뺏아들었다. 으, 창피해. 웬 초등학교에서나 보일 법한 풍경이냐. 따끈따

    끈한걸 보니 식은 것을 버리고 다시 싸온 모양이다. 키가 멀대같이 큰 그는 내

    키에 맞춰서 고개를 숙였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저 놈이 큰 거야! 내가 작

    은게 아니라고!!

    그래그래, 이제와서 뭘 숨기랴. 기숙사제의 남학생들이 먹고 있는 저 도시락

    들의 정체. 멀쩡한 남학생들이 미쳤다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점심에 먹을 도시

    락을 오밀조밀 싸고 있겠어? 유토는 정부 측의 지원으로 학생 전원에게 학창

    시절동안 노예족을 1명씩 지급해주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는 시범

    학교다. 물론 기숙사는 원룸이긴 해도 화장실 딸린 독방. 지금 중산층 이상 기

    준으로 각 가정당 1명 정도만 갖고있는 노예이다보니 일명 ‘돈 처바른’학교로

    유명한 유토의 경쟁률은 하늘을 치솟았지.

    …근데, 대체 교육부에서 왜 이런 지원을 하냐구? 아하하하. ‘교육부는 원래

    학생들 상대로 가끔 미친 실험하잖아’ 라고 일축해 버리면 끝이지만, 일이 이

    렇게 된 것에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노예제도는 3차

    산업혁명도 수십년 전에 끝난 오늘날 계속해서 여기저기에서 인권문제로 태

    클을 받고있다. 정작 노예족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게 아니라 몇몇

    ‘머리가 깨어 있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노예의 인권을 보장하라면서 정부

    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워온 것이었다(다들 참 할 일도 없지). 그 결과 3년 전

    새로이 지정된 노예관련 법령은 제법 이리저리 고쳐진 부분이 많았다. 우리들

    은 그 법령을 직접 수행해보면서 결과가 어떻게 되나 한번 지켜보는 실험대

    상, 모니터요원이다.

    우리들은 이 유토 기숙사제 학교에서 ‘학생1명에 노예1명’제도 하에 노예들을

    달고 다니며 그들의 행동을 체크하고 점수를 계산한다. 자신에게 배정된 노예

    를 파출부로 쓰던 노예훈련소에 보내서 교육을 시키던 그건 모니터요원인 우

    리의 자유다. 일종의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할 수 있지. 이 학교는 참 이런걸

    좋아한다니까. 노예는 딱히 할 일을 지정해 주지 않아도 항상 우리를 위해 도

    움이 되도록 뼛속까지 노예근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뭐, 덧붙이자면 학년 말에

    노예의 능력도 우리 점수에 가산된다. 유토 학교 안에 있는 노예훈련소에서

    지급하는 성적표도 있다. 모의시험 가능하다.

    아, 그러고 보니 이번에 새로 제정된 법령엔 제 1조엔 ‘노예’라는 표현이 아니

    라 ‘무소유 선천적 희박 권리 소유자(無所有先天的稀薄權利所有者)’라는 의미

    를 알 수 없는 거창한 표현을 쓰라고 하던데…, 보시다시피 아무도 그렇게 안

    한다. 별로 의미없는 법령이었고, 우리만 덕분에 아주 편하게 학교생활을 하

    는 것이다.

    나에게 배당된 노예의 번호는 kk-7017인데, 난 그냥 k라고 부른다. 이름을 지

    어주는 녀석도 있지만, 어디 두고 보라고. 나는 절대로 이딴 노예족에게 의존

    해서 무능력한 인간이 되지 않을 테니까! 노예따위가 내 인생의 일부가 될 순

    없지. 다른 놈들은 학교 교실 앞까지 데려와서는 그 무겁지도 않은 가방을 들

    게 하는 등 일일이 시중을 받고 있다. 말세야, 말세.

    아아….

    잠시 내가 현실을 잊고 딴생각에 빠져버렸군. 이 내가 현실도피를 하다니. 지

    금 내 눈앞에 직면한 문제는 나에게 배정된 k는 본의 아니게 상당히 외모가 수

    려하다는 점에 있었다. 보통 사회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곳은 남학교다.

    여자구경 못하는 생활의 남학생들은 건전한 정신상태가 매우 결여되어 있다.

    혹시 이럴까봐 내 근처엔 얼씬도 말고 훈련소에나 처박혀있으라고 한 거였는

    데. 침 닦는 시늉좀 내지 말아라 이 변태들아! 아아 안 돼, 흥분하면. 까마귀 우

    짖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쟤네들 시끄럽다….

    “이루야! 니 노예 잠깐 구경좀 하자!”

    “…맘대로 해.”

    “오오!”

    나는 k가 가져온 도시락 뚜껑을 열고 젓가락을 문 채 우물거렸다. 밖으로 나가

    기도 귀찮다. 딴놈들도 먹었는데 나도 그냥 여기서 먹어야겠다. 애들 대부분

    은 이미 벼락같은 속도로 도시락을 해치우고 k에게 몰려가 있었다. 나만 특이

    하게 노예를 끼고 다니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나 보군. 실수

    다.

    …도시락은 먹을만하다. 중학교 때 급식보단, 아니 사람먹을 보통 음식을 학교

    급식이랑 비교하는건 실례인가. 어쨌든 왠만한 일반 식당보다 좋다. 거, k의

    성적표를 보니까 요리실력 A학점. 이 정도면 호텔 주방인력감이다. 하지만 k

    를 포함해 노예들은 도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

    뭐? 아냐아냐. 난 연줄이나 인맥을 혐오하는 자타공인 능력 중시주의자이다.

    그런데도 내가 노예의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아주 싫어하는 이유가 뭔

    지 알아?

    바로 저런 장면 때문이다.

    “이봐, 예쁜이, 시계좀 보자. kk-7017? 이름이 뭐야?”

    수강번호 3번이 k의 오른쪽 손목을 틀어쥐었다. 노예들이 차고 다니는 일명

    ‘시계’라 불리는 저것은 시간은 표시되지 않지만 노예들의 행동점수를 입력할

    수 있고 등록번호도 새겨져 있는 명찰표다. 저걸 차면 주인이 있는 노예라는

    뜻이지.

    잠깐, 오해할 것 같아 말해두지만 k는 결코 여자같이 예쁘장하게 생기지 않았

    다. 그냥 뭐…, 조금 잘 생겼나. 항상 눈을 내리깔고 무지무지 어두운 표정을

    한 녀석이다.

    …그래그래, 인정하지. 턱선 시원하고 이목구비 뚜렷한 것이 제법 미남이다.

    같은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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