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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곰-Justice 저스티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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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일 먼저 느낀 것은 풀냄새였다. 어느새 산을 뒤덮은 야생화들에 둘러싸인 채 남자는 멍하니 중얼거린다.

    “배고파.”

    눈앞에 펼쳐진 꽃밭을 바라보다 한 움큼 꺾어 입가에 대 보지만 그렇다고 식욕이 일지는 않았다. 미련 없이 꽃을 집어던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잠에서 깨어나고도 한참을 미적거리다 겨우 집 밖으로 나오니 허기가 거세게 밀려오고 있었다. 바로 일어나 씻고 아침을 챙겨먹는 그런 바람직하고 부지런한 일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행한 적 없는 그로선 이 상황이 늘 난감했다.

    배는 고프지만 사 먹으러가기엔 귀찮고 그렇다고 장을 봐서 요리를 하기엔 시장이 너무 멀었다. 아니, 사실 이런 산골에 사는 주제에 어떻게 장을 보러간단 말인가. 또 시장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게 문제다.

    보통 이럴 땐 어떡했더라. 남자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이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던 것 같은데, 분명 누군가 밥을 줬던 것 같은데 이번엔 깨어나 보니 아무도 주변에 없었다.

    “늙어서 그런가. 아침을 먹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니까.”

    앳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든 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주름 하나 없는 매끈한 얼굴로 구시렁거리며 앞으로 나

    아간다.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을 휘적휘적 지나가던 남자는 꽃향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미묘하게 단내가 나서 허기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냥 먹을까, 확 먹어버릴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비척거리며 걷던 그의 앞에 물컹하면서도 단단한 게 콱 밟혔다.

    이 익숙한 감촉은 혹시 고기인가! 지나가다 돌을 밟고 넘어져 뇌진탕으로 죽은 멍청한 멧돼지 시체라도 운 좋게 발견한 것일까! 남자는 기대에 찬 눈으로 밑을 내려다본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것은 돼지가 아니었다.

    남자는 대번에 실망한 눈빛으로 인상을 구겼다. 그 곳엔 사람이 누워있었다.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린 채 누워있는 가는 체구의 남자가 창백한 얼굴로 시체처럼 늘어져 있던 것이다.

    “……고기는 고긴데.”

    종족도 다르고 살도 별로 없고 그 고기가 아니로구나! 남자는 절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끝에는 거의 절규와 같은 독백을 하며 남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였다. 덥석 자신의 발길을 잡는 마른 손이 보인다.

    “……줘.”

    “뭘 달라고?”

    설마 시체주제에 지금 돈을 달라는 것인가. 남자는 얼굴에 그늘이 짙게 깔린다. 잔뜩 경계하는 표정을 짓는데 다시 한 번 신음 섞인 간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 려줘.”

    남자는 그 말에 눈을 크게 치켜뜬다. 자신의 발을 붙잡은 절박하지만 힘없는 손을 쳐내며 그가 외쳤다.

    “차라리 돈을 달라고 해.”

    “…….”

    “밑도 끝도 없이 살려달라니, 이거 초면에 예의가 아니잖아.”

    내가 무슨 사회봉사활동이 취미인줄 아나. 지나가는 사람한테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남자는 구시렁거리며 냉정하게 지나가려고 했다.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툭하면 남에게 의지하려고 해서 문제야.”

    혀를 쯧쯧 차며 앞으로 나아갈 때였다. 웬 주머니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어이구, 여기 쓰레기가 버려져 있네?”

    주워서 버려야겠구나. 남자는 자연스럽게 주머니를 손에 들었다. 시체처럼 늘어진 남자와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도 않은 참이었다. 이런 산골짜기에 웬 주머니람, 남자는 별난 우연도 다 있다며 중얼거리는데 열자마자 마침 딱딱한 빵이 보였다.

    “오오~운이 좋군. 썩기 전에 먹어야지.”

    음식을 버리면 벌을 받는 법이고 이 빵을 만든 사람도 분명 썩기보다는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남자는 냉큼 우걱우걱 빵을 먹어치우는데 마침 안을 뒤져보니 물과 치즈도 있었다.

    “이야, 도시락이 따로 없네.”

    남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입가심으로 육포까지 전부 먹어치웠을 무렵이었다. 멀리서 마차 하나가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남자는 입에 빵가루를 묻힌 채 멍하니 지켜보다 마부와 눈이 마주쳤다.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어린 청년은 무심한 얼굴로 밑에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건 뭡니까.”

    “뭐?”

    “저 먹지도 못할 것처럼 생긴 시체 말입니다.”

    그의 시선은 남자의 뒤에서 손을 꿈틀거리는 청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는 그 말에 뒤늦게 아아 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요즘 노숙자가 늘어서 큰일이야.”

    하여간 이 나라는 변하질 않는다니까. 아무 일자리라도 구하지 않고 툭하면 제 길이 아니라느니 도시로 나간다느니 떠들어대다 결국 이렇게 거지가 되어버리는 청년들이 늘었다며 남자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마을 한 구석에서 삼삼오오 모여 요즘 젊은 것들은, 으로 시작 되는 수다를 떠는 늙은이처럼 실컷 구시렁거린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청년에게 다가갔다.

    “어이쿠, 무거워라.”

    한 손으로 청년의 뒷덜미를 잡아 채 마차 위로 휙 던져버린 남자는 등을 두들기며 자신도 마차에 올랐다.

    “그런데 넌 어디 갔다 이제 온 거냐. 배고파 죽는 줄 알았잖아.”

    “안 그래도 시장을 보고 오는 길입니다.”

    “빨리 와야 될 거 아니야.”

    “최대한 빨리 온 거거든요?”

    남자의 지적에 마부는 시큰둥한 말투로 대꾸했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말들이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다니는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들판이라 마차는 꽃밭을 짓이기며 나아가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져오자 따사로운 햇살이 점점 더 밝게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구름도 없이 맑고 깨끗한 공기로 꽃밭 아래엔 험준한 계곡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

    실타 산맥은 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험한 곳이었다. 침엽수가 빽빽하게 들어선 입구부터 길을 잃기 십상이었고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철벽이었다. 예로부터 많은 모험가나 마법사가 도전했지만 대자연의 강력한 거부와 결계로 발을 들이지 못하곤 했다.

    “그런 것 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들어왔는데요?”

    “그러게. 시체 꼴을 해서는 말이지.

    두 남자는 작은 저택 발코니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의 잔이 비자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곱상한 인상의 청년이 티팟에 남은 뜨거운 차를 따라준다.

    “옌님, 그럼 저 시체는 어떡할까요?”

    “양지바른 곳에 묻어야 도리겠지. 린케이.”

    옌이라고 불린 이십대 후반에서 끽해야 서른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무심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 말에 린케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젊은데 어쩌다 이런 데 나자빠져 있었을까요.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 올라오지도 않는데 말이죠.”

    “이왕 죽을 거 남들과는 다른 곳에서 죽자는 객기 아닐까? 젊은이들은 종종 그런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곤 하지. 그럴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면 오죽 좋을까.”

    옌은 접시에 하나 남은 마지막 비스킷을 입에 넣으며 심드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힐끗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 보며 아련한 눈빛을 보낸다. 린케이도 옌을 따라 하늘로 시선을 옮겼다.

    “어쨌든 이곳이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니까요. 죽을 자리는 잘 정한 것 같네요. 그 청년, 부디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야 할 텐데.”

    “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만?”

    두 사람이 도란도란 떠들고 있는 사이 앞에 있던 무성한 잡초사이에서 튀어나온 청년이 손을 들고 말했다. 내려쬐는 햇빛에 어깨까지 오는 백금색 머리카락이 반짝였다. 몸에 걸친 옷은 헐렁해서 손을 내리자 마른 어깨를 타고 자꾸만 내려온다.

    그는 눈이 무신 탓인지 하늘색에 가까운 옅은 푸른 눈동자를 껌뻑이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하얀 얼굴을 땀을 잔뜩 흘러 비를 맞은 것처럼 젖어있었다.

    “잡초가 너무 많네요.”

    “그렇겠지. 계속 방치해뒀으니까.”

    옌은 그 말에 여전히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린케이는 청년이 지나온 작은 길을 보며 손뼉을 쳤다.

    “그래도 시체 분께서 열심히 치워주신 덕에 사람이 하나 지나갈 길을 생겼군요.”

    “시체 아닙니다. 제 이름은 세스…….”

    시체라고 불리던 남자가 눈가를 찡그리며 반박을 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옌이 자리에 앉아있던 그대로 팔을 뻗어 그릇을 내밀었다.

    “과자 좀 더 가져와.”

    “…….”

    “왜? 싫어?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고 있으니 뭐라도 하겠다는 건 시체 너잖아.”

    옌은 인상을 찡그리며 하여간 요즘 젊은 것들은 앞뒤가 다르다며 작게 덧붙인다. 쫌스러운 늙은이처럼 구는 그를 보며 시체라고 불린 남자는 그릇을 뺏어들었다.

    “시체 아니라니까요. 제 이름은 세스…….”

    “그래, 그래. 알았어. 시체. 얼른 가져 와.”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옌은 차를 홀짝이며 대꾸했다. 귀찮아하는 그 태도에 세스라고 불린 남자는 눈을 치켜뜨며 입술을 깨물었지만 상대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그를 노려보던 세스는 결국 한숨을 흘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옌이 손에 든 차를 홀짝이는 사이에 비스킷을 가지고 나타났다. 고운 아미를 찡그린 채 나타난 그는 테이블에 그릇을 퉁명스럽게 놓으며 다시 낫을 들고 잡초 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허리까지 오는 풀들이 귀찮은지 인상을 찡그리며 주저앉자 그의 모습은 전처럼 보이지 않는다.

    저택 앞은 온통 잡초들로 뒤덮여 있었다. 사각거리며 풀을 베는 소리와 길에 쌓이는 잡초들이 아니었다면 사람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린케이는 그 모습을 보며 빙긋 웃는다.

    “생긴 건 기생오라비 같아도 의외로 고분고분하고 부지런하군요.”

    “식객주제에 눈치라도 있어야지.”

    옌은 오만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세스가 이 저택에 실려 온 것은 이틀 전이었다. 계속 의식을 잃고 있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정신을 차린 그가 눈을 떴을 땐 방엔 아무도 없었다. 낡았지만 커다란 침대 위에서 일어난 그는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갔고 이곳의 주인인 옌이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시체가 일어났다.’

    ‘옌님, 그럼 더 이상 시체가 아니라 좀비라고 해야죠.’

    그의 수하로 보이는 린케이도 만났다. 사람보고 대뜸 시체니 노숙자니 막말을 서슴지 않는 그들은 자기소개는커녕 밥은 알아서 챙겨먹으라는 둥 아침부터 할 일이 없으면 잡초라도 베서 은혜를 갚으라는 둥 자신을 부려먹고 있었다.

    이 험난한 산맥에 사람들이 사는 것도 신기한데 이렇게 젊은 남자 둘이, 그것도 산과 어울리지 저택에서 사는 건 더욱 희한한 일이었다. 세스는 경계어린 눈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이 저택의 주인으로 보이는 옌은 담요를 덮은 채 소파에 앉아있었다. 깨끗하긴 하지만 척 보기에도 낡은 나무와 천은 아주 오래된 고가구임을 알 수 있었다. 옌은 자신의 무릎을 두들기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나이가 드니 관절이 아파.”

    밤이라서 쌀쌀하다곤 하지만 봄이라 날씨가 따듯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할머니처럼 두꺼운 담요를 덮은 채 불빛을 쬐고 있었다. 세스가 그 모습을 수상하게 바라보고 있자 건너편에 있던 린케이가 대꾸를 해온다.

    “그건 운동부족 아닐까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자 세스는 박수라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직 한참 젊어 보이는 얼굴로 늙은이처럼 구는 그를 보니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옌은 기껏해야 서른 정도나 되었을까 싶은 모습이었다. 얼굴엔 주름은커녕 깨끗한 피부며 새까만 머리카락엔 새치하나 없고 생기가 넘쳐흐르는데 계속 칠순 지난 노인처럼 굴곤 했다. 뭐 하나 제가 하는 일 없이 나이든 내가 해야겠냐며 하루 종일 린케이와 세스의 시중을 받았다.

    거의 앉아있지만 척 보기에도 꽤 장신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몸집도 크니 몹시 튼튼할 것처럼 생겨서는 약한 소리만 해대니 신뢰가 전혀 가질 않았다. 열심히 그를 살피고 있는데 린케이를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옌의 시선이 자신에게 돌아온다. 놀라 몸을 굳히자 옌은 사나운 눈길을 던진다.

    “뭘 봐? 할 일 없으면 앞에 가서 뱀이라도 잡아오라고.”

    “뱀은 왜요?”

    “왜긴, 몸에 좋잖아.”

    “…….”

    옌은 도끼눈을 뜬 채 단호하게 대답했다. 너무 잠만 잤더니 허리가 아프다며 덧붙이는 그를 보며 세스는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인간 대체 몇 살일까. 산에 살다보니 맛이 가 버린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뜨악해서 바라보는데 근처에 있던 린케이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웃는다.

    “옌님도 참, 뱀은 무슨 뱀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스는 자신 말고도 정상인이 있다는 반가움을 느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나 밝아졌던 표정은 처참히 구겨지고 만다.

    “그건 정력에 좋은 건데 옌님은 그럴 여자도 없잖아요. 이 산속에서 구할 수 있는 상대라곤 잘해봤자 멧돼지 정도?”

    “뭣이라!”

    린케이의 지적에 조금 전까지 관절이 아프다던 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흥분하는 그를 보며 상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쓸모가 없죠. 차라리 인삼이라든가 버섯이라든가 그런 걸 찾는 게 낫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정력에 좋은 거라면 더 먹어야지. 나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어? 정말 멧돼지랑 하시려고요?”

    “멍청아, 멧돼지 말고!”

    “그럼 반달곰이라든가 구렁이라든가.”

    “왜 그렇게 몰아가는 건데! 적어도 사람으로 해!”

    절망은 참 쉽게도 찾아왔다. 세스는 헛소리를 하는 두 사람을 내버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종일 무가치한 논쟁을 반복하고 있었다. 주로 린케이가 빈정거리면 옌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며 화를 낸다. 세스는 발코니로 나와 아직 뜨거운 차를 두 손으로 잡은 채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하루 종일 잡초를 베느라 몸이 뻐근했다. 그래도 눈앞에 정원은 겨우 마차 하나가 지나갈 틈밖에 만들지 못했다. 앞으로 일주일은 더 베어야 할 것 같았다.

    커다란 달빛이 비추는 산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짙은 어둠이 깔린 하늘 아래 넓은 들판엔 야생화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그 밑으로는 녹색 바다가 펼쳐진 것처럼 푸른 산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밤이긴 해도 밝은 달빛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아래의 풍경은 무시무시한 협곡이었다.

    절벽으로 다가가며 세스는 자신이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내리고 두 손을 올리자 마른 팔이 드러난다. 지방이 거의 없는 가는 팔목은 이런 곳까지 등반할 힘이 전혀 없었다. 해골처럼 마른 건 아니지만 척 보기에도 허약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자신의 팔목을 바라보던 세스는 천천히 팔을 내리고 뒤로 돌았다. 야생화들 사이로 멀리 떨어진 작은 저택이 보였다. 시골 마을에서나 볼법한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집이었다.

    꼭 동화책 속에서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꽃밭을 헤치고 나아가며 세스는 높은 산 위에 낡은 저택을 바라본다. 수상한 두 젊은 남자가 아옹다옹하며 발코니로 나오고 있었다.

    “야, 시체 뭐하냐. 거기 절벽이라서 위험하다고. 정말 시체가 되고 싶은 거냐?”

    옌이 자신을 보더니 손을 들며 외쳤다. 몇 번이나 이름을 알려주었지만 좀처럼 고치지 않는다.

    “이름 외우기가 그렇게 힘이 듭니까?”

    불쾌한 얼굴로 물었지만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나이 탓을 한다.

    “늙으면 기억력이 감퇴되는 법이지.”

    “몇 살이신데요?”

    “세는 걸 포기한지 오래라 몰라.”

    “오래 안 걸릴 것 같은데요.”

    기껏해야 서른일 것 같은 남자의 말에 세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옌은 씩 웃으며 뻔뻔한 대꾸를 했다.

    “내가 좀 동안이긴 하지.”

    “…….”

    할 말은 많지만 지적하는 것도 지겨웠다. 세스는 분한 얼굴로 그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떨어트렸다. 남자는 역시 수상함 그 자체였다.

    “잠이나 자라. 이곳은 위험하니까.”

    그는 자신보다 조금 작은 세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씩 웃는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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