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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 그리운 나무 그늘에서 1,2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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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링턴 제국 황실 친위 기사단 제1 기사대장 겸 근위대장이자 제국 최강의 검사이고 올해 정월에는 기사 중의 기사로 꼽혀 황실 기사단으로부터 상장까지 받은 켄트 아이테스 자작은 창 밖으로 기울어 가는 높은 반달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붙잡아 오늘밤은 과연 폐하께서 누구의 침소로 찾아가실까를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던 귀부인들이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놀랐다.

    “어머?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신가요?”

    “설마 폐하께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켄트 경, 절대로 후작 부인께서 섭섭하게 대하지 않으실 텐데요.”

    켄트는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바쁜 24시간 중에 가장 사적인 시간 12시간을 곁에 붙어 호위하는-그것은 즉, 그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따귀를 갈기기를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는 것보다 많이 하는 황제가 몹시도 총애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에게서 무엇이라도 알아내려는 사람이나 청탁하려는 사람은 무척 많았다. 켄트는 평민 출신이었고, 비록 총애를 받아 작위를 얻어 자작 가문을 열었지만 형제가 아홉이나 되고 병든 어머니가 있는 집안은 결코 유복하지 못했다. 그를 통한다고 해서 황제가 청탁을 받아들일 리는 없지만, 정보를 약간 흘리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랬다가 들통 나면 황제가 버럭 화를 낼 것이라 청탁이 아니라 지금처럼 작은 질문이라도 소심한 켄트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매번 이렇게 물리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한숨이 나온다. 그러나 지금 반달을 보고 한숨을 쉰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밤이 되기 때문이다.

    켄트는 밤이 두려웠다. 그가 해만 떨어지면 괴로워한다는 것은 황제 휘하의 근위대 소속 기사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며 사람됨이 진중하고 무거워 한 마디 말이 천금과도 같은 이 기사 중의 기사를 늘 놀림감으로 삼는 이유이지만, 다행히도 그의 명예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단지 자신들만이 놀리고 있었을 뿐이지, 밖으로 말을 퍼뜨리는 일은 없었다.

    “소관은 시간이 되었으므로 이만 폐하께 가 봐야 합니다. 레이디들께서는 놀리지 마시고 이만 저를 보내 주십시오.”

    “어머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여자들은 아쉬운 듯이 그를 놓아주었다.

    켄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내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황제의 침전으로 향하는 복도에 선 근위 기사들이 그를 보고 줄줄이 경례를 붙인다. 그리고 곧 인적이 끊겼다.

    대륙을 일통한 칼링턴 제국의 제6대 황제 렉세르세스 엘드릿지 데클뤼 칼링턴, 렉세르세스 3세는 조회가 끝난 후에 국사를 보는 시간을 제외하고 사적인 시간 동안에는 거의 사람을 거느리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덕분에 원래의 규정에 따르면 16인이 하루 4교대로 지키게 되어 있지만 그 대부분의 임무가 거의 켄트에게 맡겨져 있었다. 렉세르세스 황제는 그 자신이 이미 제국에서 몇 사람 적수가 없는 일류의 검사였고 조만간 소드 마스터가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받고 있기도 했다.

    그는 열아홉 살에 즉위하자마자 고작 근위 기사의 실력으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며 거침없이 근위대를 모욕했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당년의 일류 검사이자 소드 마스터였던 선황 렉세르세스 2세의 때에부터 30년을 지속된 황제들의 반항에 황실 기사단장 메를리네 백작은 머리를 싸매고 병석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렇다고 정말로 황제를 빈 몸으로 슬렁슬렁 다니게 할 수는 없었던 황실의 친척들과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모여 항의한 결과 겨우 타협점으로 얻어낸 것이 ‘공적인 시간과 황궁 밖에 머무를 때의 시간은 모두 규정대로 호위한다. 단, 황궁 내에 있는 사적인 시간 동안에는 오로지 황제 본인보다 강한 사람만이 그를 지킬 자격이 있다’는 것이었다. 열아홉 살의 황제는 신나게 황실 기사들과 차례차례 싸워 겨우 스무 명에게만 패배했는데, 그 대부분이 요직에 있는 사람이라 황제를 24시간 따라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하여 황제는 한동안 마음 편히 혼자 돌아다녔다. 그의 사촌형 레이먼드 이블린 윈포드 공작이 부드러운 미소와 따끔한 훈계로 설득하여 겨우 네 명의 근시(近侍)를 항상 곁에 두는 것을 허락했다. 레이먼드는 윈포드 공작가의 시위(侍衛)로서 일하고 있던 켄트를 황제에게 추천했고, 신기하게도 그는 켄트만은 마음에 들어 하여 24시간 중 언제라도 곁에 와도 좋다고 허락했던 것이다.

    네 명의 근시가 있으면 종일 기분이 나쁜 황제가 켄트가 있으면 평소와 다를 바 없을 뿐더러, 그를 검술로 단 열두 합 만에 박살낸 켄트는 그가 내건 ‘나보다 강한 자만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조건에도 걸맞았다. 게다가 사람이 하나뿐이니 황제의 기분도 특별히 나빠지지 않았으며 남들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황실의 사람들과 기사단장들은 합심하여 켄트의 가용 시간을 모조리 황제의 호위에 밀어 넣은 것이다.

    별로 불만은 없었다. 처음에는 인정을 받은 것이 기뻤고, 아홉이나 되는 동생과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불편함 없이 모실 만큼 많은 봉록을 받게 되자 눈이 돌아갔고 마침내 생각한 적도 없는 작위까지 받았다. 일이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낮에는 윈포드 공작가의 시위로 일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단기로 할 수 있는 용병일까지도 하면서 날마다 부업에 시달리던 때에 비하면, 번쩍번쩍한 보석이 달린 검을 차고 비싼 옷을 입고 비록 소드 마스터인 자신보다는 약하지만 최강의 검사라 전쟁터에라도 나가지 않는 이상 목숨의 위기 따위 올 리가 없는 황제의 뒤에 따라다니는 것은 천국 같은 일이었다.

    힘든 것은 그런 일이 아니다. 고작 하루에 12시간 정도, 그 중에서도 몇 시간은 잠자는 황제를 두고 안락의자에 앉아 눈을 붙이는 일이다. 그리고 황제의 침소에 있는 안락의자는 15년을 사용하여 쿠션이 모두 죽어 버린 데다가 몸을 구겨 넣어야만 하는 켄트의 낡아빠진 침대보다 훨씬 편했다. 처음에는 후궁에서 황제가 여자들과 나체로 뒹구는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곤욕스러웠지만 익숙해지는 것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고, 8년 동안 켜켜이 쌓인 감정도 처음부터 체념하고 있었던 만큼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러나 물론 그가 괴로운 것은 황제에게 원인이 있었다.

    침전의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네 명의 근위기사가 그를 보고 경례를 했다. 켄트도 마주 경례했다. 근시들을 모두 방에서 쫓아낸 것을 보니 오늘도…….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러라는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아서 켄트는 꽉 막힌 목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기사들이 물러갔다.

    그는 금으로 된 문고리를 잡고 두어 번 두드렸다. 보통 서민의 집 대문보다 세 배 이상 큰 이 문은 이렇게 두드려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침전 자체도 천정이 드높아서 켄트의 집 네 채는 들어갈 것처럼 생겼기 때문에 만약 황제가 잠들어 있다면 듣지 못할 것이다.

    켄트는 차라리 그가 잠이 들어 있어서 밤새 자신이 여기 서 있거나,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 내일 벌을 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안에서부터 황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켄?”

    “예, 접니다.”

    “들어와.”

    그는 한 차례 한숨을 쉬고 문을 조금 열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다.

    불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 커다란 창문으로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렉세르세스 황제는……, 옷이라고는 한 쪼가리도 안 걸친 나체로 반쯤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폐하.”

    “세르세.”

    “폐하.”

    “세르세라니까. 벌써 7년 전에 애칭을 허용했는데 너도 진짜 끈질기군.”

    켄트는 억지로 눈을 침대의 기둥에 박힌 에메랄드로 옮겼지만 이내 슬금슬금 기어 올라가 그의 매끈한 다리를 훑었다. 그리고 무심결에 다리 사이에서 당당히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있는 페니스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이미 발기해 있었다.

    세르세가 책을 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켄트에게 팔을 뻗었다. 검은 실크 시트 위에 흰 피부가 선명한 대조를 이루어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켄트는 눈을 깜박거리며 언제나처럼 그에게 홀렸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다 있을까. 필요 없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유연하고 날씬한 근육으로 뒤덮인 몸이 소리도 없이 움직인다. 옷을 입으면 얼핏 가늘게까지 보여 켄트는 처음 그가 자신이 휘두른 투핸드 소드의 강격을 받아내는 것에 경악했지만, 이렇게 벗은 몸을 보면 납득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육체였다. 용병이나 기사들 중에 남자로서 굉장하다고 감탄하게 되는 몸은 있지만 이처럼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있지도 않았다.

    “켄.”

    “예?”

    “반했냐?”

    켄트는 얼굴을 확 붉히며 뒤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그 전에 세르세가 먼저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황명.”

    “아, 받들겠습니다.”

    “벗어.”

    붉어질 시간도 없었다. 켄트는 새파랗게 질렸다. 세르세가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켜 보이며 다시 말했다.

    “나를 이렇게 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든 걸로 이미 항명죄라는 걸 알고 있겠지? 달이 가운데로 오기 전에 오라고 했잖아.”

    “폐하.”

    “벗어.”

    켄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검띠를 풀고 그가 명령하는 대로 우물쭈물 옷을 벗었다. 자신의 것도 이미 흰 속옷을 뚫어 오를 듯이 솟아 푹 젖은 얇은 옷감 너머로 살색이 비쳐 보였다.

    “그것도 벗어야지. 아직도 뭘 해야 좋을지 모르다니 바보인가?”

    쿠션에 느긋하게 기대며 세르세가 다시 웃었다. 켄트는 붉어진 채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세르세의 말이 맞다. 벌써 2년이 넘었다. 아직도 무엇을 어째야 좋을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켄트는 그와 이런 행위를 하는 것에 조금도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변덕이라고 생각했다. 온갖 미녀를 후궁에 들이고 미소년까지 섭렵했으니 인생이 지겹기도 할 것이라고. 가장 만만하게 옆에 있는 것이 자신이었고, 그래서 그냥 유혹해 봤을 것이다. 설마하니 전날까지 등 뒤에 서서 자신의 정사를 지켜보던 호위 기사가 벌써 자책하면서도 수없이 마음속에서 그를 범하며 성기를 주물러 대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켄트는 조심스럽게 속옷을 끌어내렸다. 그리고 세르세가 손짓하는 대로 침상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하핫, 그만 좀 해. 부끄럼 탈 나이가 아니잖아. 거기 앉아서 뭐할 건가? 새색시도 아니고.”

    “폐하.”

    “가까이 와.”

    세르세의 손짓에 따라 주춤거리며 조금 앞으로 나가자 그가 켄트의 팔을 잡아 휙 끌어당겼다. 비틀비틀 넘어지면서 정통으로 세르세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박아 버린 켄트는 그대로 굳었다. 음액(陰液)의 냄새가 결코 달콤할 리 없는데 그의 것은 사향만큼이나 달콤한 향기였다. 눈을 뗄 수가 없다. 세르세가 다시 소리 내어 웃어서, 켄트는 무심코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일어나 앉아.”

    “폐하.”

    “내가 언제 무리한 일을 강요했나?”

    가늘고 우아한 손가락이 켄트의 턱선을 가볍게 쓸었다. 소름끼칠 정도로 관능적인 손짓이었다. 세르세가 보랏빛 눈동자에 정욕을 떠올리고 숨결이 닿을 만큼 얼굴을 접근시키고 속삭였다.

    “오기도 전부터 세우고 있던 주제에 설마 나한테 질렸을 리는 없겠지? 구멍을 보는 것보다 육봉을 보고 흥분하는 것을 보면 이제 나한테 쑤시는 것보다 쑤셔져 보고 싶은가?”

    “폐, 폐하…….”

    “의외로 너 같은 사내에게 그런 취미가 있는 경우도 있지. 나는 네게 넣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만약 원한다면 한두 번쯤은 해봐도 괜찮아.”

    켄트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말이 맞다. 지금도 후궁에서 그의 총애를 기다리며 애달파하는 미녀가 수없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의 절반 정도는 아직 한 번도 사내의 맨몸을 본 적도 없는 순진한 처녀일 것이다. 굳이 남자를 원한다 해도 자신과 같은 덩치밖에는 볼 것이 없는 우락부락한 남자를 고를 필요가 없었다. 세르세의 후궁에는 여인만이 아니라 아리따운 소년도 몇 사람 있었는데, 그가 몇 차례 소년을 탐했기 때문에 총애를 받도록 하기 위해 귀족 가문에서 고르고 고른 미소년들을 들여보냈던 것이다. 나는 꼴리는 대로 하겠다, 너희도 꼴리는 대로 해봐라, 그래서 서로 맞아 떨어지면 좋고, 라는 방약무인한 마인드의 소유자인 세르세는 8년째 총애하여 부인(夫人)으로 삼은 엘리딘에게 완전히 후궁을 맡겨버리고 스스로는 돌아보지 않았으므로 누가 들어오든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있다는 것조차 모르지는 않을 테니, 굳이 계간(鷄姦)을 원한다면 꽃처럼 어여쁜 소년을 취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렇게 계속 켄트를 찾을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호위 기사이므로 밤마다 곁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고, 남의 눈을 피하기도 편하다. 제아무리 세르세라도 역시 사내에게 엉덩이를 내준다는 소문은 내고 싶지 않은가 보다고 그는 씁쓸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걸 원하지 않는다면, 나를 안아.”

    색스러운 목소리가 귓속에 속삭여지고, 부드러운 입술이 켄트의 귓불을 살짝 물었다. 헉하고 켄트는 신음했다.

    그를 안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니다. 싫을 리 없다.

    아니, 싫었다. 자신이 단지 ‘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싫었다.

    “싫다면, 지금 나를 밀어내고 옷을 주워 입으면 돼. 항명죄로 처형하지는 않을 테니까. 평소처럼 거기 의자에 앉아서 밤을 새라고.”

    거절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자신만만한 목소리였다. 켄트는 눈을 질끈 감고 팔을 뻗어 세르세를 껴안고 쿠션 무더기 속으로 쓰러졌다. 세르세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는 이 2년 반 동안 단 한 번도 세르세의 유혹을 거절하는 것에 성공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감히 마주보아서도 안 되는 남자를 깔고 뭉개 다리를 벌린다. 세르세는 비록 그보다 머리 하나가 작고 몸도 가늘었지만 어디까지나 그에게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전신이 완전하게 단련된 검사이자 전사 중의 전사였다. 그 팔다리가 쾌락을 갈구하며 수치 따위는 알지도 못한다는 듯이 엉켜오면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하여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세르세는 작게 웃음을 흘리며 그가 다급하게 자신에게 덤비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그 눈빛에, 미소에, 오만하게 어디 나를 만족시켜 보라고 손짓하는 태도에서 일종의 애정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랑이라고 부르기는 아득히 먼 것이다.

    알면서도, 그가 허락하는 만큼 정(精)을 쏟아 붓지 않고는 참지 못한다. 허락하지 않으면 끝까지 가지 못하고 안달하며 종일 뜨거운 몸을 부여잡고 괴롭게 신음해야 했다.

    처음은 지금으로부터 마침 2년하고도 몇 달 전, 보름달이 희게 뜬 정월의 밤이었다. 호위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사방을 경계해야만 하는 켄트에게는 물론 무도회 같은 것은 지루했지만, 세르세도 지겨웠던 모양이다. 벽의 꽃이 아니라 목재가 되어 서 있던 켄트는 그가 자정이 되기 전에 슬쩍 홀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알고 따라 나섰다. 그는 찰거머리처럼 붙어 다니는 호위 기사를 딱히 의식하지도 않고 사람이 없는 후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흰 물방울을 흩뿌리는 분수대의 앞에 멈춰 서서 비로소 켄트를 발견한 듯이 돌아보고, 말했다.

    “나를 안아”라고.

    그리고 켄트는 그를 안았다.

    심연으로 떨어지려는 의식이 파드득 튀어 올랐다. 차가운 물방울이 흐르는 세르세의 어깨를 물고 있다가 켄트는 번쩍 눈을 떴다.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세르세는 이미 곁에 없었다. 침전의 바로 옆에 커다란 욕탕을 마련해서 항상 뜨거운 물을 채워 놓고, 후궁에서 자는 날도 반드시 시종들이 대리석으로 만든 욕조를 가지고 다닐 만큼 물을 좋아하는 세르세는 질펀한 정사를 하고 나면 항상 바로 욕탕으로 들어가 시간을 끈다. 켄트는 대개 바로 일어나 몇 겹으로 깔린 검은 실크의 맨 윗겹을 걷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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