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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북사세요]체인드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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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도(王都)의 마법사 --> 이런 일에 그들이 날 찾은 것은 예상 외였다. 뜬금 없이 셀람이 날 찾기에 난 그가 이전부터 붙잡고 있던 방정식의 세번째 미지수를 계산해 낸 줄 알았다. 그래서 한밤중임에도 불구하고 마구간에서 말을 굳이 꺼내 익숙하지도 못한 밤길에 말을 달려 키르다라 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나 성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것은 셀람이 아니었다. 기사 두 명이 내 양 어깨를 마치 견제하듯이 눌러대면서 어디론가 나를 이끌었다. 난 매우 불쾌해졌으나 그들은 돌덩어리같이 무뚝뚝한 태도를 고수했다. 성내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난 결국 그들이 날 이끄는 대로 따라가고 말았다. 석주가 늘어진 회랑과 어두운 복도를 지나쳐 나는 어딘가 귀인의 거처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안내 되었다. 양옆에서 날 짓눌러대는 불곰 처럼 거대한 기사들에게 반강제로 끌려가는 것을 안내라고 부를수 있다면 말이지. 소년 몸종이 램프를 들고 큰 문 앞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초조한 얼굴의 그가 우릴 발견하고는 몸을 크게 움찔 떨었다.

    "오셨군요!" 그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억눌린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어서 들어 가세요, 들어 가십시오, 마법사님." 그러면서 몸종이 날 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다. 여기서마저 고삐 꿰인 송아지처럼 멍청하게 끌려 들어갈 순 없었다. 난 발에 힘을 주어 제자리에 섰다. 기사 두 명이 날 밀치려고 했으나 난 넘어지면 넘어졌지 더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였고, 그들이 결국 먼저 포기했다. 강제로 날 끌고 가려면 끌고 갈 수도 있었겠으나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는 그들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건데, 이 자들에게 대화의 여지가 남아 있음은 명백했다.

    "무슨 일로 날 여기까지 불렀지?" 난 기사들이 아니라 몸종을 향해 물었다.

    "날 부른건 셀람인데, 그는 어디 있어?" 몸종이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잘근거렸다. 이 어린 소년은 열 다섯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낯이 아주 창백했고 도무지 침착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램프를 든 손을 달달달 떨어대고 있었다.

    "셀람 님은 안에 계십니다, 나리." 그가 약간 헐떡거리면서 대답했다.

    "셀람이 안에 있다고?"

    "네." 몸종은 어쩔 줄 모르고 내 뒤에 선 기사들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나를 바라보기를 세번 반복했고, 내가 굳게 버티어 서 있자 결국 다시 대답했다.

    "나리를 굳이 여기로 모셔온 것은 나리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입니다."

    "내게?"

    "예..." 그가 조금 훌쩍거렸다. 난 그가 눈물을 한방울이라도 떨군다면 즉시 두꺼비로 바꿔 버리리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왕도의 마법을 빌리고 싶습니다."

    "왕도의 마법을?"

    "예에." 몸종은 다행히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대답했다.

    "셀람 님께 먼저 부탁드렸습니다만 셀람 님께서 꼭... 마법사 나리의 힘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휴우.. 난 길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셀람이 어디서 또 입을 털었는지 날 귀찮은 일에 연루시키고 만 것이다.

    "셀람 님께서 안에서 기다리십니다, 저어, 왕도의 마법사님, 부디..." 몸종이 초조하게 날 재촉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부디 안으로 드십시오." 난 두 번째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몸종이 반색을 하며 몸을 돌려 문 앞으로 화급히 걸어갔다. 그리고는 얼른 따라오라는 듯 날 뒤돌아 보았다. 거대한 양문형 출입문은 무거운 오동나무로 되어 있었고 청동 문고리는 이를 드러낸 용머리 모양이었다. 몸종은 문고리를 잡아 당겨 문 한 쪽을 열었다. 그가 날 먼저 들어가게 했다. 난 한 발자국 문 안쪽으로 들어갔다. 천장이 높고 어두운 방이었다. 방의 양쪽 벽에 램프가 걸려 있었고 아마 창문인 듯한 측면 벽에는 두꺼운 커튼이 내려져 있었다. 방안에 깔린 묵직한 공기는 마치 물리적인 밀도를 가진 것처럼 팔다리를 무겁게 했다. 방 안에서는 피와 쇠 냄새가 났다. 무언가를 끓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고, 피와 쇠 냄새에 잠시 가려졌던 약초 냄새가 느껴졌다.

    "레마, 왔군요!" 셀람의 목소리였다. 그가 내게로 종종걸음쳐 다가왔다. 그는 팔을 걷어부친 셔츠와 바지 차림이었다. 평소에 입고 다니는 로브조차 어딘가에 벗어 던지고 어깨까지 오는 더벅머리도 뒤로 질끈 묶은 가벼운 모양새였다.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보였다. 난 미간을 찡그렸다.

    "무슨 일이죠?"

    "이리로 와보세요." 그가 내 소매를 잡아 당겼다. 난 그가 잡아당기는 대로 몇 걸음 다가갔다. 내실(內室)로 이어진 짧은 복도를 지나자 피 냄새가 강해졌다. 갈라진 살과 멈추지 않은 신선한 피 냄새였다. 내 얼굴이 점점 더 구겨지고 있었다.

    "부상자가 있나요?"

    "있죠."

    "키르다라의 마법사들은 치료하지 못하겠다고 했나요?" 내 목소리의 빈정거림을 셀람도 충분히 알아 들었을 것이었다. 그가 약간 어깨를 으쓱했다.

    "키르다라의 마법사를 부르지 않기를 원했어요."

    "누가요?"

    "부상자가요."

    "하..." 난 기가 막혀서 혀를 차고 말았다.

    "그래서 왕도의 마법을 빌리겠다?"

    "부상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기를 원해요."

    "키르다라의 마법사들은 천 년간 자기들 마법 비전을 밖으로 절대 노출 시키지 않은 무거운 입으로 유명하지 않나요?" 내 빈정거림에 대답한것은 셀람이 아니었다. 커튼 안쪽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키르다라 바깥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키르다라 내부에서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나지막하고 침착한 목소리였다. 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주 침대의 안쪽, 기둥 두 개 사이에 걸린 커튼이 반쯤 젖혀져 있었고 그 안쪽에 누워 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난 다시 고개를 돌려 셀람을 바라 보았다. 셀람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처럼 어설프게 웃고 있었다.

    "도와 줘요. 의술 마법 잘 하잖아요. 내 전공은 그런 게 아니어서..."

    "나도 아니에요." 난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셀람이 기죽지 않고 히히, 하고 가증스럽게 웃었다.

    "당신은 뭐든 잘 하잖아요, 레마."

    "..." 난 거기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휙 돌렸다. 얼마 뒤, 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내 스스로도 이 능청스러운 동향의 마법사에게 지나치게 무르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어디 한 번 보죠."

    "역시! 레마 밖에 없다니까!" 셀람이 과다하게 칭찬하며 나를 끌어 안으려는 것을 나는 탁 쳐냈다. 침대 곁으로 걸어가 커튼을 더 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은 젊은 남자였다. 그는 침대맡의 배게에 상체를 기대고 반쯤 누워 있는 자세였다. 그가 날 바라 보았다.

    "왕도의 마법사님?" 그의 목소리는 아까 내 비아냥거림에 답했던 그 목소리였다. 부상자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고요한 목소리. 그리고 그의 얼굴 또한 고요했다. 남자는 젊었다. 스물 다섯 살, 혹은 그 아래거나 아니면 약간 위이거나. 결코 서른을 넘은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멀끔한 얼굴. 콧날이 날렵하고 이마가 반듯해서 전체적으로 시원시원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짧은 금빛 고수머리가 그 이마를 살짝 덮고 있었다. 눈꼬리가 길었고 눈매가 날렵했다. 검은자위의 면적이 적은 삼백안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표정 탓에 사나운 인상은 적었다. 목이 늘씬하고 어깨가 넓었다. 빈틈 없는 근육이 그의 상체를 감싸고 있었다. 불필요한 살이나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완벽하게 조형된 상반신이었다. 그리고 그의 뒷덜미와 양 어깨, 넓은 등, 팔뚝을 거쳐 손등까지 내려온 검붉은 칠각룡의 문신. 그의 목을 넘어서 양 어깨 위로 튀어나온 검붉은 용머리의 일곱 개 뿔. 그것은 흐릿한 램프 불빛을 받아 마치 진짜 용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난 입을 다물었다. 이 키르다라에서 이러한 문신을 가진 자는 많지 않다. 오로지 칠각룡을 자처하는 키르다라의 지배자 혈족과, 그들에게 충성 서약을 한 용기사들만이 이 칠각룡의 문신을 가지고 있었다. 내 표정이 굳어진 것을 눈치 챘는지 그렇지 못했는지 그는 그저 평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서 흘러 내리고 있는 피가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그를 부상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인지, 왜 부상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가기를 원하지 않는지, 이 자와 셀람의 관계는 무엇인지, 많은 질문이 있었으나 실은 궁금하지도 않았고 내가 알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셀람이 당신을 불렀습니까?"

    "음, 그런 셈이죠." 난 건성으로 대답하며 그의 환부를 살폈다. 셀람이 임시 처치로 붙여 놓은 듯한 붕대를 살짝 들어내자 상처가 드러났다. 무언가 뭉툭한 것에 찢긴 듯한 상처였다. 상처의 길이는 적어도 십오 센티미터 정도는 되었다. 환부는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므로 봉합도, 지혈도 쉽지 않을 듯 싶었다.

    "내가 여기 올 때까지 손 놓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내가 셀람을 돌아보며 묻자, 셀람이 "설마요!" 하고 극구 부정했다.

    "골든실을 썼어요. 여기서 구할 수 있는 항생 약품이 그것 뿐이라서."

    "그거면 충분하지 뭐." 난 짧게 중얼거렸다.

    "아편을 좀 써야겠는데요. 환부가 엉망이라 봉합하기 위해서 조금 정리를 해야 겠어요."

    "끓이고 있어요."

    "봉합할만한 도구는 있어요?"

    "직접 꿰매게요?"

    "그럼 당신이 할래요?" 내가 짜증스럽게 반문하자 셀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못하니까 당신 부른 거죠. 그냥 확인차 물어 봤어요."

    "됐으니까 아편이나 가져 와요." 셀람이 아편을 가져왔다. 그가 환자에게 아편을 먹였다. 젊은 부상자는 전혀 아픈 기색도 없고, 발버둥치지도 않고, 고요하게 우리가 시키는 대로 했다. 내가 달궈진 바늘을 이용해서 그의 환부를 봉합하고 지혈을 위해 맨드라미 으깬 것을 상처에 붙였을 때도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난 이 남자가 아편에 취해 정신을 잃었나 했는데 그것은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도중 정신을 잃은 환자는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므로. 셀람은 좋은 도우미였다. 그는 딱 필요한 만큼만 나를 도왔다. 이따금씩 수다로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할 때도 있었으나 입을 놀리는 동안 손 또한 결코 쉬지 않는 것이 그의 장점이었으므로 수다스러움 정도는 관대하게 보아 넘길 수 있었다.

    "됐어요." 십오 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난 손을 뗐다. 손과 팔꿈치까지 피투성이였다. 피는 거의 멎어 있었다. 이제는 항생 약초가 제대로 역할을 해내고 상처가 문제 없이 아무는 것만을 바랄 뿐이었다.

    "흠. 문신 모양을 맞출 수는 없었어요. 약간 비늘이 어긋나겠군요." 내 말에 남자가 양 입꼬리를 약간 치켜 올려서 미소를 지었다.

    "상관 없습니다." 그야 목숨을 건진다면 그깟 문신이 뭐가 중요하겠어? 그것이, 이 키르다라의 지배자 혈족인 칠각룡들에게 목숨 만큼이나 소중하고 자존심 그 자체라고 여겨지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어쨌든 내가 알 바는 아니었다. 난 뒤로 물러섰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건 다 했어요. 셀람, 나머지는 당신이 해요. 설마 그것조차 못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절 뭘로 보시고. 그쯤이야 맡겨 달라구요." 셀람이 내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과도한 애교였다. 난 대번에 얼굴을 구겼고 그런 내 반응에 셀람이 일부러 섭섭한척 어깨를 늘어 트렸다.

    "도와 줘서 고마워요. 그러니까 난..의술 같은건 영... 왕도에 있을 때도 그쪽은 거의 공부 안 했고."

    "사람이 뭐든 잘할 순 없죠."

    "레마는 뭐든 잘 하잖아요." 난 대답 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바깥쪽에 아까의 몸종이 안절부절 못하고 서 있었다. 내가 나오자 그가 숨이 넘어갈것처럼 헐떡이기 시작했다.

    "마법사님, 어, 어떻게,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희 주인 나리는 무사하십니까?"

    "일단은." 난 짤막하게 대답한뒤 바로 그에게 다시 말했다.

    "물이나 가져와라. 이 피를 좀 씻어내야 겠으니까."

    "예, 예!" 그가 허둥지둥 달려갔다. 충성심에 비해 허둥거리는 꼴을 보아 하건데 몸종으로서 능숙한 자는 아니었다. 그가 곧 대야에 온수를 그득 담아 가져왔다. 난 손의 피를 씻어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뒤, 옷을 한 번 슥슥 털어서 정리하고서 망설임 없이 방을 떠났다.

    "나리, 마법사 나리!" 몸종이 날 애타게 불렀다.

    "저희 주인 나리를 더 안 봐주십니까? 이대로 가십니까? 아무 문제 없을까요? 괜찮으세요?"

    "그건 셀람에게 물어보도록 해라. 그가 알아서 할 거니까." 난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이번에야말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컴컴한 야밤 익숙지도 못한 말을 타고 돌아오며 다음부터는 결코 셀람의 부름에 함부로 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키르다라 사람들은 그다지 흥겨운 인종은 아니었으나 그럴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향락에 취하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향락은 왕도와 달리 지식에의 탐구, 장엄한 음악과 정교한 예술 작품, 백 가지의 향신료가 쓰인 섬세한 음식 같은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알코올의 비율이 적어도 절반은 되는 것 같은 독주, 영문 모를 (말 그대로 영문 모를, 즉 원래 소재가 무엇인지 모를) 요리들, 지독한 냄새가 나는 생선 절임이나 탑처럼 높게 쌓아 올린 과일들... 대체 과일은 왜 저렇게 쌓아 놓는거지? 나는 물론 이런 자리를 싫어했으므로 당연히 내내 기분이 안 좋았다. 피하고 피했으나 결국은 도살장으로 소가 끌려오듯 이 자리에 오고 만 것이다. 내 눈앞으로 넓게 펼쳐진 수십 개의 식탁들과 그 위에 그득하게 차려진 음식들이 마치 주지육림의 산 처럼 넘실거렸다. 마침 배가 두둑하게 나오고 흰 옷을 입은 시종이 양손으로 커다란 은쟁반 위에 담긴 구운 공작새를 들고 나온 참이었다. 커다란 홀에는 삼백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몇명의 기사들이 모여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었고 그들이 손에 든 놋쇠 잔에서 술이 넘쳐 바닥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 사냥개들이 바닥을 킁킁거리다가 사람들의 발에 채이거나 그보다 운이 좋으면 살점이 많이 붙어 있는 뼈를 낚아 채곤 했다. 나와 달리 셀람은 이런 자리를 아주 기꺼워했다. 홀의 여기저기에서 그에게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해 왔다. 그는 인사를 마주 하고 그 아는 척에 반응을 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열다섯 개쯤은 더 필요할 것 같아 보였다. 난 셀람이 사람들에게 파묻혀서 정신 없이 사교의 장을 벌이는 동안 그의 곁을 떠나 가장 구석 자리로 갔다.

    "레마, 레마? 레마, 어디 가요! 이 사람들을 당신에게 소개 시켜 주려고 일부러, 이쪽은 키르다라 마도탑의... 아! 보르스 경! 안녕하세요? 네, 저야 뭐 언제나..." 어쨌든 셀람은 내가 키르다라에서 머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마련해준 사람이므로 그에 대해서는 충분히 존중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자리에는 절대, 절대 오지 않았을 테니까. 난 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작은 식탁 앞에 앉았다. 몇 가지 음식이 테이블 위에 가득하게 쌓여 있었다. 은 접시 위에 납작한 복숭아가 산처럼 높게 쌓여 있었다. 아무래도 이렇게 무식하게 쌓아 놓는 것이 키르다라의 과일 놓는 방법인 것 같았다. 난 그 원뿔형 복숭아 탑의 삼 층에서 복숭아 한 개를 빼냈다. 복숭아는 달고 왕도의 것과는 달리 약간은 단단한 과육을 갖고 있었다. 나쁘지 않았다. 몸종이 내 곁을 지나가면서 내 앞에 무거운 놋쇠 잔을 쿵 하고 내려 놓고는 바쁘게 다른 식탁을 향해 달려갔다. 놋쇠 잔으로부터 아주 독한 알코올과 민트가 섞인 향기가 올라왔다. 난 그것을 아주 조금 맛보았다.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으나 좋은 술마저 거부하지는 않는데, 도통 이 키르다라에는 마실 만한 것이 없었다. 그리슬란드 브랜디나 왕도에서 담근 포도주가 그리웠다. 그때 비어 있던 내 옆 의자에 누군가가 털썩 앉았다. 난 단번에 눈썹 사이를 찡그렸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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