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blue blue friday 외전 - 8

128일전 | 40읽음

투를 받아들어 봉투의 겉봉을 뜯었다. 그러나, 그 안에


서는 편지고 뭐고 아무 것도 없었다. 나온 것은 단 하나, 다이아몬드의 반지 두 개 뿐이었다.


남자용의 반지와, 여자용의 반지.


남자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 졌다. 그는 문득 그 반지들을 움켜 쥐더니 나를 쏘아보았다.



“......란은 어디있어?“


“석달전에 죽었어요.“


“뭐?“



명백한 충격의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퍼져나갔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손바닥 안에서 빛나고 있는 두


개의 반지를 쳐다보았다. 무심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최소한 1캐럿은 되어 보였다. 백금의 링으로 장식된 그


심플한 다이아몬드는 꽤나 아름다웠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직한 음성이었지만 으르렁거리는 듯한 울림이 남아 있었다. 그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날 쏘아보았다. 마치


내가 죽였다는 듯한 그 얼굴에 소름이 끼쳤지만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자살.“


“자살? 말도 안 돼!“



그가 빽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발작하거나 내게 달려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반지를 꽉 쥔 채 잠시 침대를


쏘아보았다. 원래 성격이 꽤나 침착한 편이었던 모양이다. 충격의 표정은 확실했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굴 사귄다고 했었는데. 그렇게 행복해 하고 있었는데.“



그가 낮게 중얼거렸다. 굳이 내게 대답을 요구하는 듯한 것 같지는 않기에 그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헤어졌고, 손목을 그었어요.“



내가 짧게 말하자 그는 고개를 번쩍 들더니 나를 쏘아보았다.



“그게 전부냐?“


“네.“


“어떤 새끼때문에 손목을 그었다는 거냐? 엉? 그런 거냐!“



나는 분노로 부들부들 떠는 그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입을 다물자 그는 입을 꽉 다물고는 결국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난폭하게 양복 웃도리를 벗어 화장대 의자에 걸치더니 넥타이를 풀기 시작했다.


뭔가 하고 그를 쳐다보자 그는 지친 듯 말했다.



“여기서 잘 거다.“



나는 킹 사이즈의 침대와 그와 나의 덩치를 비교해 보았다. 별 상관은 없을 듯 했다.



“그리고, 너.“



그는 갑자기 와이셔츠를 벗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란의 조카치고는 대단히 괴이한 성격이구나.“



그는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는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운 채 그가 오기 전의


상태, 즉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먹을 거 없냐?“


“없어요.“



나는 양치질을 하면서 냉장고를 뒤지는 남자에게 대꾸했다.



“할 수 없군, 나가서 사먹어야 하나. 란은 요리를 제법 했는데.“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생각난 듯 나를 향해 물었다.



“너, 겁 안 나냐?“


“에?“


“나, 게이야. 그것도 진성게이다. 그런데 그렇게 홀라당 벗고 알짱거려도 겁나지 않느냐고. 아니면, 유혹이냐?“



나는 트렁크 팬티 차림인 나와 와이셔츠에 바지를 단정히 입은 그의 차림새를 비교했다.



“남자면 아무나 덮칠 건 아니잖아요?“



내 대꾸에 그는 피식 웃더니 킬킬 거렸다.



“그건 그래. 난 너 같은 덩치는 별로 취미 없어. 야들한 놈이 좋아.“


“그래요?“



나는 양치질을 끝내면서 물었다.



“그런데 란이라는 건, 설마하니 외삼촌의 별명이나 애칭인가요?“


“아아. 바아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붙여진 이름이 란짱이었어. 나중에 수술 하고 난 뒤엔 짱을 빼고 불러달라


고 조르곤 했지.“


“몇 년 사귀었나요?“


“4년.“


“헤에.“


“애인으로 1년, 스폰서로 2년. 나머지는 친구로.“


“스폰서는 무엇이죠?“



내 말에 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수술비 대주는 스폰서 말이야. 대신 내게는 봉사했지, 나 이외에도 스폰서가 두 명 더 있었으니까. 돈 많은


녀석 말이야.“


“흐음. 세 명의 남자에게 돈을 받아 수술을 했다 그거군요?“


“수술비용이 엄청나니까.“


“떼어내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 했는데.“



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그는 피식 웃더니 생각 난 듯 말했다.



“아침 같이 하자. 근처 식당에 가지.“


“여기 지하에 식당가가 있으니 뭐 거기로 가죠.“


“뭐가 있는데?“


“해장국집.“





외삼촌의 왕년 애인이자 스폰서였던 남자와 함께 해장국을 먹었다. 그는 매운것을 잘 못 먹을 것 같았지만 의외


로 꽤 잘 먹어 치웠다. 배가 꽤나 고팠는지 두 그릇을 그대로 비웠다. 나 역시 꽤나 배가 고팠었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있었지.“



식후 담배를 각자 피우면서 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에는 11시가 넘어 있었다. 그래도 손님대접이랍시고 커피를


타려고 물을 끓이자 그는 그림으로 가득 찬 거실의 소파에 주저 앉은 채 다짜고짜 입을 열었다.



“란은 왜 수술을 해야만 했을까 하고.“


“왜 했는데요?“


“그래도 그럭저럭 란은 수술 안해도 여자로 통할 만한 얼굴이었는데 굳이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하고 몇 번이


나 생각했었어.“



내 질문은 대꾸도 않고 혼자 지껄이는 남자를 나도 무시하기로 했다.



“여자. 왜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 어차피 화장도 하고, 여자 옷도 입고 언니라고 낄낄거리기도 하고.........


다 똑같은데.“



그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생각 난 듯 다이아 반지 중 남자 것은 내쪽을 향해 던졌다. 하마터면 못


받을 뻔했기때문에 내가 움찔하며 받아 들자 그는 낮게 말했다.



“너 가져.“


“당신 거 아닌가요?“


“란 거야. 내가 그에게 선물했던 거야.“


“여자 반지는?“


“수술 후에 내가 선물했던 거지. 둘다 란 거야.“



남자반지는 여자가 되기 전의 외삼촌 것이었던가. 나는 새삼스럽게 그 반지를 들여다 보다가 손가락에 끼었다.


하지만 새끼에 끼긴 크고, 약지에 끼기엔 작고, 중지에 끼는 건 어림도 없다. 결국은 그냥 주머니에 넣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 반지들을 남겼던 모양이죠?“


“유서는?“


“내게 모든 걸 준다는 말 이왼 없었어요. 그리고 당신에게로 가는 그 봉투가 전부.“


“녀석 답군.“



그는 갑자기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더니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란은 널 굉장히 좋아했던 모양이지?“


“그럴지도.“


“.......이 그림 중 태반이 널 그린 건데?“


“에?“



내가 멀뚱하게 그를 보자 그는 담배를 입에 물면서 피식 웃었다.



“몰랐구나, 너. 란은 널 꽤나 좋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역시 조카라서 손을 댈 수 없었던 게지.“



그런가. 그래서 이토록 내 그림이 많았던 걸까.


내가 새삼 거실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그림들을 돌아보자 그가 재미있다는 듯이 킬킬 거렸다.



“너는 완벽하게 란의 취향이야. 잘 빠진 몸에 쿨한 얼굴, 젊었을 때의 나와 비슷해.“


“결국은 자기 자랑이군요.“



내가 중얼거리자 그는 조금 소리 높혀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란은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미친듯이 그림을 그려대지. 절대 얼굴은 그리지 않아. 나중에 자기


마음이 들통나면 안 되니까. 조각조각 그림을 그리지. 크로키나 간단한 스케치만으로 끝내는 게 대부분이니까


당사자는 모르고 넘어가기 쉽겠지만.“



나는 그가 천천히 삼촌의 스케치 북을 훑어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애인, 친구, 스폰서.


어찌되었든 그가 삼촌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은 사실인 듯했다. 어쩌면 그는 외삼촌의 화대를 뜯는 기둥서방이었을


지도 모르고, 또 순진한 외삼촌을 꼬드겨 타락으로 인도했던 자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촌은 나와 그에게만


유서를 남겼다. 삼촌은 자살로 몰아댔던 그 울고 있던 남자에게가 아니라 나와 저 남자에게.


묘한 기분이 되었다.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나를 원하고 있었다. 삼촌은 사실 나를 원하고 있었다. 이렇게나 내 그림이 많을 정도로


나를 원하고 있었다. 수십, 수백장이나 그러댄 그림들 중에 몇 장이나 내 그림일까? 만약 외삼촌이 날 유혹해 왔


다면 나는 아마 잤을 텐데. 여자의 몸이니까 부담은 별로 없었을 터였다. 물론 피가 이어져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긴 했겠지만 그래도 애가 생기는 것도 아닌, 그냥 섹스만이라면 자도 상관은 없었들 터였다.


.........그런데 왜 그 놈이 생각나는 걸까.


바지 주머니에서 딱딱한 반지가 만져졌다. 비쌀 것이 분명한 반지.



한동안 김정인, 그 녀석을 잊고 있었다. 병원에 입원 시킨 뒤에 한번쯤 병문안을 갈까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


니다. 하지만 이것저것 신경을 쓰다보니 결국은 가지 않게 되었다. 오래 입원할 것도 아닐 테니 또 찾아가는 게


우스울 것 같기역시 놈은 나와 자고 싶다는 것일까. 물론 싫지는 않았다. 김정인은 귀여운 데가 있었고 꽤 예쁘장 했으며 여자


에게 익숙한 나에게도 싫은 느낌은 주지 않았다.



“......차라리 자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찝찝하진 않았을 텐데.“



갑작스레 꺼낸 그의 말에 생각에서 벗어났다. 그는 스케치 북을 적당히 발끝으로 밀어버리면서 내 등을 그린 그림


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네 거냐?“


“네.“


“.....잘 그렸군.“


“혹시 삼촌 물건 중에서 가져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져가세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가져가고 싶은 건 없어, 란이 건네준 반지면 그뿐이야.“


“그림들은요?“


“별로, 다른 놈을 그린 그림을 걸어 놓을 정도로 난 마음이 넓지는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생각난 듯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들어 내게 건냈다.



“받아.“



<타이고 물산 이사 아사하라 겐>


명함을 받아 들고 읽자, 그는 피식 웃었다.



“문제가 있으면 찾아와. 네 꼴을 보아하니 평범하게 살긴 그른 놈 같으니까. 이것도 한 침대의 인연이니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화장대에 걸쳐져 있는 자신의 양복 웃도리를 걸쳤다.



“커피 마시고 가요.“


“유혹하지 마.“


“취향 아니라면서요?“


“외로울 때는 누구라도 상관하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내 어깨를 잡아 당겨 입술에 키스했다. 물어 뜯듯이 강렬한 키스여서 나는 쾌감


보다는 아픔을 느꼈다.



“란의 장례는 어떻게 치렀어?“



그가 귓가에서 속삭이듯 물었다. 간지러워서 엉덩이라도 긁고 싶었지만 참았다.



“화장했어요. 그게 유언이었으니까.“


“한강변에서 날렸냐?“


“네.“


“흐응.“



그는 다시 내 뒤통수를 잡아 각도를 바꾸어 키스를 퍼부었다. 순순히 입을 벌린 채 서 있자, 그는 조금 마음이


바뀌었는지 입을 뗐다.



“재미 없는 놈.“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나요?“


“출장이야. 게다가 한달에 서너번은 반드시 연락하는 녀석이 석달간 연락을 끊었으니까 더더욱이 신경이 쓰였


고.........“



그는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내 뺨을 손가락으로 훑어내렸다.



“너, 진짜 이쪽이 아니냐?“


“아직 남자랑 해본 적은 없어요.“


“호오?“


“펠라는 받아본 적 있지만.“


“후.“



그는 피식 웃더니 문득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나는 그의 손바닥 위에 놓인 것이 은빛의 열쇠라는 것을 깨달


았다. 이 오피스텔의 열쇠인 것이다.



“상관 없어요. 가지고 있어도.“



내 말에 그ˆp 고개를 저었다.



“준다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 뿐이다. 여긴 내 서울 아지트이기도 했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열쇠를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정신없긴 하지만, 매력적인 사람이다.


외삼촌이 왜 그를 좋아했는지 이해는 간다. 그도 분명히 삼촌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12. 김정인




걸으면서 생각한다.


대체 살아간다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아니, 살아 있는 것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몇 번을 생각해도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해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나는 힘도 없고 여기저기 힘 있는 것들


에게 물려다니는 고깃조각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1년 반, 고등학교에 들어온 1년 반 동안의 일이었을 뿐이다. 나는 이제 17살이다. 17년간


부모님은 날 사랑해 주었고 어릴 때의 친구들과 조부모님과 친척들은 나를 귀여워해 주었다. 그러니까, 그 지


옥같던 1년 반의 세월을 제외하고 15년간은, 15년 반은 버텨야 한다. 내가 사랑받은 만큼.


그 얼마나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생각일까.


지금에 와서 문득 생각해본다. 정말 나는 윤이원이라는 그 사람을 왜 열망했던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그리고 보통사람들이 나에게 가지는 그 부드러운 애정을 확인한 뒤에 다시 생각해 본다.



윤이원.



그 사람은 나에게 사람의 감각을 되돌려 주었다. 내가 사람임을, 돌아보고 쉴 수 있는 어떤 계기를 주었다. 부모


도 아닌, 완전한 타인인 그가.



윤이원.



얼마나 경이적인 사람일까. 얼마나 놀라운 이름일까. 그에게 성욕을 느낀다는 것 조차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하지


만, 다시 생각해보면 성욕도 사실은 보통 사람이 가지는 감각이니까 내가 게이가 되었다는 어떤 확인절차에 불과


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아직은 두렵다.


누군가가 나를 만지고, 내가 누군가를 만진다는 것이 정말 죽을 정도로 두렵다.





“김정인! 얼이 빠졌냐!“



체육복을 갈아입고 나가는 내 짝 박하문이 소리를 질러주었다. 이번의 짝은 남자애였다. 여자였던 저번에 비하면


어딘가 엉성한 데가 있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무관심이라는 것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중학교때 항상 봐 왔던 그런 평범한 타입으로, 잘 놀고 잘 떠들고 성적은 중간에 먹어대는 것과 여자들에게 관심


이 만땅인 녀석. 특별히 친절하거나 불친절한 게 아니라 그냥 보통의 무관심한 태도를 가진 녀석은 내게도 별 감


정이 없어 보였다. 물론 수업시간에 졸때에는 내게 노트를 빌려달라고 아양을 떨기도 하지만.



“잘 웃네.“



갑자기 누군가가 등을 툭 쳐서 놀랐다. 돌아보니 반장인 유상철이었다. 녀석은 운동화끈을 고쳐 매면서 내쪽을


흘긋보았다.



“이젠 좀 나아진 거 같아.“


“응, 전학하자마자 정말 호되게 앓았지.“


“식중독이었다며?“


“그랬던가봐. 거기에 감기몸살.“



내가 피식 웃자 반장은 내 머리통을 한 대 더 쳤다.



“약골같으니. 그래도 이젠 사람 몰골이네.“


“응.“



순순히 걱정해 준 데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유상철은 내 말에 조금 당황하더니 머슥한 표정으로 말했다.



“별로 걱정하지 않았어. 그렇게 정색하고 고맙다고 하면 무지 면 팔려.“


“하하. 아니, 그래도 노트니 뭐니 진도 나간 것까지 일일이 표시해 주었잖아?“


“그건 부반장인 김나미가 한 거야. 나는 그냥 노트 복사만 했다구.“


“헤에, 고맙다고 다시 말을 해야 겠네.“


“그렇게 고마우면 한 턱 내.“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는 반장을 보면서 나도 마주 씨익 웃어 주었다.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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