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blue blue friday 외전 - 7

163일전 | 119읽음


온 몸으로 기뻐할 수가 없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나 기뻐할 수 있는지 조차 모른다.



“.........“



저기 누워 있는 황당한 녀석을 사실은, 나도 좋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좋아하는 건지 알지


못한다. 친구는 괜찮다. 부대끼고 부딪치며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좋아하는 상대는?


울리고 괴롭히고 어쩌면 주섭이 때 보다 더 지독하게 상처입히게 될 지도 모른다.


저 놈이 바라는 것은, 주섭이가 바랬던 것 보다도 훨씬 더 강한 것이기때문에, 그것을 빤히 아는 나로서는 더


난감하다. 저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애처럽게 매달리는 놈에게 <너 혼자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따위를 지


껄일 수는 없지 않은가.



왜 날 좋아한다는 거지? 착각 아닐까?


뭐, 그동안 괴롭힘을 많이 당해서 쓸만한 놈 하나 물어보겠다는 거라든가.


아니지, 저 놈을 봐선 그런 얍삽한 짓을 할 정도의 주변머리는 없어.


아무리 내 앞에서 연기를 한다고 해도 바보스러울 정도의 애처로운 저 몰골은 분명히 진심이야.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다 싶었는데 갑자기 문이 발칵 열렸다.


들어선 것은 흐트러진 모습의 중년 아저씨.


파리한 얼굴에 수심에 찬 얼굴을 보아하니 이 아저씨 정인이 아버진가 보다.



“어떻게 된 거냐!“



소리치는 아저씨에게 침착하게 대답해 주었다.



“길거리에서 쓰러졌습니다. 고열과 신경쇠약 뭐, 그런 것 같습니다. 아주머니가 막 의사만나러 나가셨는데 못


보셨나요?“



정인이네 아버지는 멍하니 나와 누워 있는 놈을 번갈아보더니 한숨을 깊이 내쉬고 그 다음은 날 보았다. 너무나


지친 얼굴에 조금 미안한 기분이 되어 나는 의자를 내밀었다.



“저, 오셨으니 전 가보지요.“


“자네가 데려온 건가?“



정인이아버지는 지친 얼굴로 나를 보고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억지로 마주 잡자 감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뭐, 뭘요. 전 그만.....“


“그냥 가게는 할 수 없지. 자네 이름은 뭔가?“


“저,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도 이제 집에 가봐야 하니까......“


“은인인데 그냥 갈 수는 없어. 같은 학교는 아닌 거 같고...“



약간은 탐색하는 시선이 거북해져서 나는 조금 솔직히 말했다.



“그러니까, 저 녀석, 아니 정인이가 저번 학교에 있었을 때 안면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앞


에서 만났고요.“



저번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얼굴이 확 굳었다. 그 얼굴을 보고 나는 조금 씁쓸한 기분이 되어서 고개만 숙여 보였다.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냥 갈 수가 없어서 .......“


“......“



적개심과도 같은 감정이 약간 스치는 것을 보았다.


이 아저씨는 김정인이 놈이 학교에서 당한 일을 알고 그 학교 놈이라면 무조건 이를 갈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이름이나마 대고 가게나.“


“윤이원입니다. 평원고등학교 3학년입니다.“


“...정일고가 아니었어?“


“정말로 오다가다 잠깐 안면만 있는 사이입니다. 저 녀석은 제 이름도 모릅니다.“



미심쩍다는 시선에 피식 웃자, 아저씨도 조금은 미안했는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내가 조금 예민해져서 말이네. 일단, 연락처라도...“


“대단한 거 아닙니다. 정말 가 보겠습니다.“


“그게....“



아저씨가 뭐라하려 할 때 나는 몸을 돌렸다. 꾸벅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오자 가슴 한 구석이 답답했다.


이미 사내새끼가 윤간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던 터라, 저 부모들도 제 정신은 아니었을 게다. 그래서


저리도 민감할 테지. 덩치 큰 사내새끼가 비리비리한 놈 하나 업고 왔다는 것 자체가 불안한 사태인 게다.


어쩐지 계집애 임신시켜놓고 도망치는 놈이 된 거 같아 기분이 묘했다.


깊이 생각하지는 말자. 만약 저 놈과 또 만나게 된다면, 그렇게 된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좀 시간이 지나 저 놈도 머리가 식으면 이게 정상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게 될 테니까.






11. 김정인




“학교 다녀 올께요.“



인사를 하고 막 나서려는 순간 아버지가 불렀다.



“태워다 주마.“


“에?“


“데려다 준다고.“



아버지가 차 키를 들고 일어서서 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잠시 동안 아버지가 무슨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고 어머니는 약간 어색한 미소를 띄운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몸이 시원치 않잖아? 게다가 학교는 멀고.“



아버지 답지 않은 묘한 변명에 나는 피식 웃었다.


아버지가 차를 대문 앞에 대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탄 것이 대체 얼마만의 일인가를 한참


생각해 보았다. 중학교 졸업 이래로 아버지와 함께 차를 탄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입학하자 마자 생긴 그 폭행사건은 아버지에게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임을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아버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비리비리하긴 했어도 나는 남자다. 아버지는 그런 방면으로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을 터였다. 나는 아버지


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비록, 용서할 수는 없었지만.



“타라.“



차에 올라타서도 아버지는 내내 침묵했다.


뭐라 할 말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래 아버지는 나를 똑바로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항상 옆으로 비껴선 시선으로 멀리서만 바라보았다.


아니, 나와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동정을 바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원은 바라고 있었다.


아버지라는 것은, 부모라는 것은 나를 언제나 구해주는 영웅이다.


내가 가장 괴로운 일을 당했을 때 부모가 나서서 짠 하고 구해주기를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다. 나를 이렇게


한 놈들에게 아버지가 주먹질을 하고 발길질을 한다는 구체적인 것을 바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무언가를 해 주기를 바랬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배신했다. 어머니는 울기만 한 채 동정의 눈으로, 그리고 기묘한 혐오의 눈으로 바라보


았고 아버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않은 채 혐오와 경멸, 그리고 고통의 기색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이 알아 왔던 평범한 아들이 아니라, 남자를 꼬시는 남자아닌 남자. 그 기묘한 정체성에 대해서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했다. 남자가 남자를 범한다는 것은, 그들의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단 한번이 아니라, 몇 번에 걸쳐서.


그들 속에서 나는 김정인이라는 그들의 자식이 아니라,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어리석고 연약한, 그리고 암


컷의 냄새를 풍기는 거세당한 수컷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나에게 쉴 곳이, 구원의 손길이 전혀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나는, 절대적인 내 편이


필요했는데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편이 아니었다.






“윤이원.“



갑작스런 말에 나는 고개를 들고 아버지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핸들을 쥔 채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내 쪽을 보려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쪽에서 말을 건 것은 드문 일이었기때문에 나는 집중했다.



“윤이원이라고 했어. 아는 친구냐?“


“모르겠는데요. 누구인가요?“


“너를 데려온 친구 말이다. 평원고등학교인가, 거기 3학년이라고 하더라.“


“에?“



나는 망치를 얻어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아버지에게 댔단 말인가.



“그, 그 사람 이름이 윤이원이라고 했어요? 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붙잡고 되물었다. 아버지는 내 반응이 의외였던 듯 내쪽을 살짝 돌아보았다.



“무슨......“


“그 사람 이름이 윤이원이에요? 네? 정말로? 이름을 알려준 건가요?“


“...소리 지르지 마라. 그 친구가 자기 이름이 그렇다고 말했어. 너랑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난 사이라고.....“


“그냥 우연이 아니에요! 그 사람은 나를 몇 번이나 구해주었다구요!“



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람이에요! 그사람이 정말로 자기 이름을 알려준 거에요?


네? 말해요! 어서!“



내가 아버지의 팔뚝을 잡아 끈 탓에 하마터면 사고가 날 뻔했다. 아버지는 의외로 내가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데에도 탓하지 않고 핸들을 옆으로 돌려서 보도 옆에 댔다. 뒤에서 몇 몇 차들이 빵빵 소리를 냈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세히 말해봐.“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주먹을 쥔 채 이마에 대고 계속해서 흐느꼈다.


아아, 그래. 그 사람의 이름이 윤이원이었다.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울림을 가진 이름이다. 항상 뻣뻣


한 어투를 쓰는 사람 답지 않게 이원이라는 이름은 얼마나 부드러운가.



“.....정인아.“



아버지가 낮게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내 이름을 부른 아버지의 어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팔을 뻗어와 내 어깨를 끌어 당겼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한 순간 멍해졌다.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아버지의 품안에 안겨


있다. 지금 아버지가 나를 부르고 나를 끌어 안은 것이다.


아버지에게 안긴 것은 대체 얼마만의 일인지 기억도 할 수 없었다. 몇 백년, 몇 천년은 된 일인 듯 했다. 너무


생소한 감촉이라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마주 끌어 안아야 할 지 아니면 그냥 손을


무릎 위에 놓아야 할지, 그도 아니면 아버지를 밀어 내야 할지.


두 손을 어떻게 놓아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윤이원이라는 친구가 널 구해준 거냐?“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나는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가 외면했던 나를 쓰다듬어 주었던 사람이에요. 피와 정액으로 뒤범벅된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사람이에요. 아무도 불러주지 않았던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웃어 주었던 사람이에요. 나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사람이에요.


말은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눈물은 내내 흘러내렸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만 정인아.“



아버지가 낮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너는, 내 아들이야. 절대로.....절대로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아.“



나는 눈물 범벅이 된 채 아버지 가슴에 이마를 댔다. 아버지의 실크 넥타이가 눈물에 얼룩이 지는 것이 보였지


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그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친구를 만나면, 반드시 전해 줘라. 내가......정말로, 고마워한다고. 내 아들을 도와주어서 정말로 고마워


하고 있다고.“



아버지의 말이 약간 떨렸다. 내 어깨를 잡은 아버지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가슴에 이마를 댄 채


로 아버지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목덜미에 따스한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난생처음, 나는 아버지의 눈물을 보았다. 아니, 느꼈다.






12. 윤이원




“.......어떻게 오셨습니까?“


“이런 애송이가 취향이었던가.“



난데없는 남자의 등장에 나는 조금 어리둥절 해 있었다.



삼일에 한 번 정도 외삼촌의 오피스텔에서 잤다. 친구놈들은 죽은 사람의 침대에서 구른다는 것 자체가 찝찝하지


않느냐고 계속해서 말했고 게다가 외삼촌이 손목 그은 욕조에서 목욕을 한다는 것 자체가 끔찍스럽다는 소리를


계속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나는 아니었다.


삼촌이 죽긴 했지만 욕조의 잘못도, 침대의 잘못도 아니었다. 삼촌은 자살했고 그 장소는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 자신의 방안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30여평의 오피스텔을 거의 손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팔겠다고 말


했지만 나는 그 것을 내가 갖겠다고 말했다. 아버지역시 조금 찜찜했던 모양이지만 내가 그냥 눌러 지내겠다고 하


자, 3일에 한 번씩은 반드시 집에 돌아오라는 조건을 건 뒤에야 허락했다. 사실 허락을 구할 일은 아니었지만 아


버지는 외삼촌의 자살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내가 혼자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하기라도 했는지 평소라면 굴러다니는 개똥 취급하던 내 패거리들도 함께 지내라는 말까지 덧붙였


던 것이다.


어쨌든 오피스텔에서 지내는 동안 삼촌의 옷가지나 뭐 그런 것은 적당히 처분했지만 그림들과 화구들은 그대로 놔


두었다. 그림들 중에는 눈 돌아갈 만큼 비싸다는 그림이 있기는 있을 터이고 그런 것을 구별할 줄 모르는 나는 일


단 어딘가에 팔거나 어떻게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삼촌이 물건을 옮기거나 치우기에는 아직 밑바닥에 깔린 감정


이 남아 있었다. 외삼촌은 감정이 풍부한 남자, 아니 여자였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침입자가 들어선 것이다.


삼촌의 침대에서 한참 자고 있던 중, 갑자기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열쇠를 비틀어 연 침입자는 유유히


침실로 들어오더니 침입자 답지 않은 태도로 불을 켰다. 그리고 침대 위에 팬티 바람으로 누워 있는 나를 뚫어지


도록 노려보고 있었다.



“.......“


“놀라지도 않는 군. 란은 어디에 있나?“


“......란?“


“모르는 것은 설마 아닐테지. 물건들은 다 그대로 있던데?“



남자는, 아주 큰 체격은 결코 아니었다. 나보다도 어쩌면 몇 센티는 작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굉장한 강렬


함을 가지고 있었다. 단단해 보이는 근육과 차갑고 냉혹해 보이는 눈매, 그리고 야비함과 강렬함이 공존하는 입


가가 남자가 가진 연륜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



“넌 누구야?“



사십대 초반, 혹은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고급스러운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양복 모델이라도 되는 듯 매


끄러운 몸짓으로 자연스레 침대 끝에 앉은 그는 노골적으로 내 몸을 훑었다.



“란이 좋아할 스타일이긴 하군, 하지만 너무 어려. 너 미성년이냐?“



내가 별로 말을 하지 않자 그의 눈썹이 조금 치켜 올라갔다.



“혹시, 일본에서 왔습니까?“



내가 처음으로 그렇게 말하자 그는 눈썹을 찌푸렸다. 불쾌하다는 표현인 모양이지만 그것조차 남자에겐 꽤 어울렸다.



“그리고, 아사하라 겐 씨가 맞고요?“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 야쿠자. 외삼촌의 전 애인.



“그런데, 넌 누구냐?“



흥미롭다는 듯 나를 아래 위로 훑었다. 나는 그가 담배를 입에 무는 동안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삼촌의 화장대


앞으로 걸어가 서랍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봉투에는 <겐 에게>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그것을 그에게 건네자


그는 마치 배우처럼 눈썹을 치켜 올리더니 봉투를 받아드는 대신 물었다.



“뭐냐?“


“삼촌이 당신에게 남긴 것.“


“삼촌?“


“나는 윤이원. 조카.“



내가 짧게 소개하자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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