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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외전 금잔초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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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웬돌린] 인연 외전, 금잠초金簪草

    "전하와 같이 있으니 한식조차 맛있네요. 전하께오서는 황후전의 음식이 입에 맞으셨는지요? 이 어미가 염려됩니다."

    황후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녀의 건너편에 앉아 식사를 하던 우기련은 환하게 웃었다. 올해 십오 세, 그 어떤 여인보다 아름다운 황태자는 꽃망울이 터지는 듯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모후께서 드시는 음식들은 수준이 높고 놀라울 정도로 입에 맞아 소자는 감탄할 따름입니다."

    기련이 일어서자 황후도 같이 일어섰다. 황후궁 대문까지 기련을 배웅한 황후가 기련의 손을 잡았다. 매일 시녀들이 꽃물로 부드럽게 관리해 온 새하얀 손이 그보다 더 하얀 기련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다독였다.

    "어미는 전하의 강녕함만을 천신께 바라고 있답니다."

    "예, 마마."

    "언제나 강녕하셔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건강이 우선임을 잊지 마셔요. 그대와 금상께서는 이 제국의 모든 것임을 잊으셔서는 안 됩니다."

    황후의 따뜻한 목소리에 기련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예, 마마. 마마께오서도 늘 굳건하셔야 합니다. 금상께서도 그리고 이 소자도 늘 마마의 존재에 기대고 있음을 언제나 기억해 주소서."

    황후가 웃었다. 애련한 미소였다.

    가련이 돌아서고도 황후는 오랫동안 대문 앞에 서 있었다. 고귀한 여인이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제국에서 천후라 칭송받는 그녀답게 피가 통하지도 않은 아들이 혹여 잘못될까 근심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기련은 황후궁에서 보이지 않는 모퉁이로 돌아서자마자 내관에게 속삭였다.

    "궁의를 데려와라."

    내관이 슬쩍 기련을 올려다보더니 "복명하겠나이다, 전하."라고 말하고 급히 사라졌다. 기련은 소매춤에서 손수건으로 싸인 것을 꺼내 움켜쥐었다. 황어黃漁조각이었다.

    황후궁의 음식은 맛있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황후는 아마 연황궁의 숙수를 데려다가 기련의 입맛을 샅샅이 훑었으리라. 그렇지 않고서는 기련이 즐기는 음식만으로 한 상을 채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황에에서만은 약간 달콤한 맛이 났다. 그 인위적인 달콤한 맛. 혀끝을 아리게 하는 그 맛은 분명 독의 맛이다. 아마도 하선독일 것이다. 기련은 이미 독의 정체를 알면서도 일부러 궁의를 불렀다. 궁의가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태자가 황후궁에서 초조반을 들자마자 궁의를 불렀다는 소문은 날이 저물기도 전에 이 거대한 황궁 구석구석까지 퍼질 것이다.

    황후궁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말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련이 가볍게 말등으로 뛰어올랐다. 버릇처럼 안장을 확인했다. 기련의 흑마는 따로 관리되는 짐승이었다. 쉬. 쉬. 기련은 말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흑마는 사람의 기척에 민감했다. 모든 것에 예민하고 민감한 말이었다. 그만큼 다루기 어려웠고 그래서 누군가가 수작을 부리기도 불가능한 말이었다.

    기련의 말이 땅을 박찼다. 은군들이 경공으로 따라붙었다는 것을 알기에 기련은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말을 몰았다.

    외궁을 지나 연환궁으로 향했을 때였다. 연못 옆을 지나는데 벚나무가 보였다. 올해도 꽃을 피운 벗나무는 애련한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전대륙을 샅샅이 뒤져 수형이 수려한 나무들만 모아놓았다는 황궁에는 벚나무만 해도 천지에 널려 있었다. 딱히 눈길을 끌 구석이 없었다.

    '봄꽃나무가 예뻐요.'

    아마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기련은 평생 그 벚나무에 시선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제 여동생은 또박또박 말도 잘 하던데 아이는 말이 어설펐다. 그래도 할 말은 다했다. 인형처럼 귀여운 외모를 한 아이는 기련을 볼 때마다 멍해졌다. 그 눈에 비친 순수한 감탄을 보고 있자면 기련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기련의 외모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고 기련 자신도 그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종종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에 넋을 잃는 걸 볼 때마다 기련은 조금 귀찮다고 생각했었다. 세수조차 스스로 하지 않는 기련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외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남들이 넋을 잃는 건 그저 대화의 맥이 끊기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들이 찬탄하든 하지 않든 기련은 그들의 윗사람이었다. 그들은 기련에게 복종해야 했다. 그런데 일일이 넋을 놓으면 기련은 그들에게 두 번 세 번 말을 되풀이해야 했고 그건 정말 신물 나는 짓이었다. 심지어 그들이 기련의 외모에 혼이 빠진 거였다면 그들을 책망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기련을 볼 때. 입술을 멍하게 열고 기련의 눈을 가만히 올려다볼 때. 그 연약한 갈색 눈동자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초조할 지경이었다. 넌 어떤 모습을 보고 있는 걸까. 기련은 아이가 보는 모습이 무엇이든 그대로 머무르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이의 감탄을 영원히 끌어내고 싶었다.

    아이가 마지막으로 그의 궁에 들렀던 것은 작년 초동월이었다.

    눈발이 흐릿하게 날리는 날 아이는 온몸을 털이 북실북실 달린 피풍으로 감싸고 입궁했었다. 기련은 그날을 선명하게 기억했다. 서소환지로 출발하기 사흘 전의 일이었다. 강력한 황태자가 되기 위해 무시무시한 전쟁터로 떠나야 했는데도 왠지 전쟁터로 떠나는 일은 뒷전이고 아이가 그날 연황궁에 들어 사흘간 같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들떴다. 기련은 평소와 똑같이 선하고 나긋나긋한 태자가 되기 위해 평소보다 더 많이 인내하여야 했다. 인내심이 거의 바닥날 때쯤에 아이가 왔다. 춥다고 어찌나 꽁꽁 싸맸는지 아이는 뒤뚱뒤뚱 걸어오고 있었다. 기련은 하은당의 대청마루에 서서 아이가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섬돌 아래에서 곡배했다. 여전히 아이의 곡배는 어설펐다.

    아이의 얼굴이 새빨갰다. 더운가 하여 아이를 안아 올린 기련은 아이의 얼굴이 빨갛다기보다는 파랗게 질려 있는 쪽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어서 옷을 벗기자 아이가 밭은 숨을 쉬었다. 옷에 목이 졸려 있었던 것이다. 기련은 궁의를 부르고 아이를 하은당의 침전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콜록거리면서도 아이는 또 기련에게 넋을 잃었다. 파랗게 질렸던 얼굴은 붉게 변해 있었다. 발긋한 뺨을 하고 아이는 기련에게 말갛게 웃어 보였었다.

    기련은 아이를 안고 다녔다. 식사를 떠먹여 주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안아서 밖에 데리고 나갔다. 아이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기련은 아이에게 전서응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감탄하는 것을 보자 마음이 뿌듯해졌다.

    아이를 보낼 때 아이는 가려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전하.'

    아이의 작은 입술이 오물거렸다. 곽 상궁이 조심스럽게 입혀놓은 옷은 아이의 몸에 달라붙어 있으면서도 아이의 숨통을 막지는 않은 듯 얼굴이 그저 말갛기만 했다.

    '응?'

    '또…… 와도 될까요?'

    기련은 웃었다. 당연하지. 꼭 오렴. 그렇게 말하자 아이가 환하게 웃었다. 몇 번이고 아이는 기련을 돌아보았다.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기련은 아이를 연환궁 마당까지 배웅해주었다. 아이는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자꾸만 돌아보면서 대문을 나섰다.

    아이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야 연환궁으로 들어오던 기련은 문득 제 손바닥의 냄새를 맡았다. 희미하게나마 아이의 냄세가 배어 있었다. 감칠맛이 느껴지는 냄새. 기련은 웃었었다.

    벚나무를 볼 때마다 아이 생각이 났다. 아이는 벚나무를 두고 봄꽃나무라 말했다. 그 어감이 기묘하게 어여뻐 기련은 굳이 아이에게 저 나무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에 품에 안은 아이의 목덜미에 이마를 비비며 다소 심술궂게 속삭였다.

    '넌 뭐든지 예쁘다고 하는구나. 저 나무도 예쁘고, 나도 예쁘고?'

    '전하는…… 세상에서 가장 예뻐요.'

    수줍은 목소리. 붉은 뺨. 바람이 희미하게 불었고 아이는 말갛게 웃었다.

    존대도 제대로 못해서 엉망인 말투로 예쁘다 했다. 처음으로 기련은 자신의 외모에 감사했다. 아이는 기련을 좋아했다. 기련에게 안길 때마다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서는, 그래도 밀어내지 않고 답삭 안겼다.

    그 몸에서는 아기 냄새가 났다. 핥아보고 싶을 정도로 달콤한 냄새였다. 단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혀가 썩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었다. 그런데도 아이만은 자꾸 핥고 싶어졌다. 보고 싶었고, 손에 닿는 곳에 두고 싶었고, 끌어안고 싶었고, 핥고 싶었다. 그 다음에는 뭘 하고 싶을지 기련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멀리 밀어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는 부르지 말자. 그렇게 결심한 것이 고작 저번 초동월이었다.

    그런데 벌써부터 보고 싶었다. 잘 잊는 듯했는데 또 이렇게 아이가 떠올랐다. 약간 뜨거운 체온과 그 달콤한 향과 어눌하지만 벅찬 감정이 흘러나오는 목소리. 그 모든 걸 다시 눈앞에 두고 싶어졌다.

    서소환지에서도 이랬었다. 난생처음 가본 전쟁터는 기련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거기서는 더 이상 선한 얼굴의 태자를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마음껏 즐겼다. 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기련에게 생기를 부여했다. 황태자가 가장 괴로운 전장에서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고? 아니, 기련에게 그곳은 금원보다 더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사냥터였다.

    그러나 가끔 밤에 기련은 아이가 보고 싶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종종 꿈에서도 아이를 떠올렸다. 아이다운 뜨끈뜨끈한 작은 몸을 떠올릴 ‹š마다 왠지 목이 말랐다. 자리끼로 입을 축여도 그때뿐이었다.

    아이는 귀여웠다.

    무엇이든 해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하기 그지없었다. 멍한 눈동자. 그저 홀린 듯이 바라보는 그 시선. 그 시선이 실재할 수 있었다면 기련은 아예 제 얼굴에 그 시선을 묶어두었으리라. 아이의 그 녹을 듯한 시선이 기련을 자꾸 부추겼다. 기련은 고개를 저었다. 다시는 아이를 부르지 않겠다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약간의 중독증세게 있습니다. 아마도 하선독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궁의가 조심스럽게 고해왔을 때 기련은 또다시 아이를 떠올렸다. 기련만 보면 말간 얼굴로 잔뜩 홀려서는, 그래도 멍하게 웃는 그 얼굴을. 황궁에 있는 이들은 어떤 아름다운 꿈을 꾼다 하여도 그렇게 웃지는 못하리라.

    "하선독?"

    그 독이 무엇인지 뻔히 알면서도 기련은 되물었다. 궁의는 입이 무겁겠지만 그럼에도 제 상관이 캐물으면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로 병든 개나 말을 죽일 때 쓰는 독입니다."

    기련은 쓸쓸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러면서도 어지간히 황후가 몸이 닳았다고 생각했다. 황후의 소생인 이황자가 올해 관례를 치렀다. 황태자의 모친은 예외 없이 사형에 처해지지만, 그것은 어린 태자를 이용할 수 있을 기간에 한정한다. 즉, 태자가 관례를 치르면 태자는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이미 모친과는 별개의 인간이다.

    사실 이 법은 황태자가 황제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체로는 황후의 소생이 황태자가 되지만, 황후의 소생이 관례를 치르기 전까지는 다른 황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 황자의 친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한다. 황후의 소생이 관례를 치르면 그는 태자의 자리를 원하기 되지만, 그 태자의 자리를 줄 수 있는 이는 황제뿐이다. 황제는 태자의 자리를 휘두르며 자식과 부인들에게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알았다. 너는 입을 조심하여야 할 것이다."

    기련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지밀로 들어왔다. 퍽이나. 내의원에 들자마자 태의가 추궁하면 어쩔 수 없이 입을 열게 될 것이다. 태의가 황제에게 달려가기까지는 얼마나 걸릴까. 아마 내일 오전 문안에서 황제는 자초지종을 말해보라며 기련을 달랠 것이 확실했다.

    어리석은 계집.

    기련은 픽 실소했다.

    황후가 기련을 황태자로 책봉하도록 주장한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일이었다. '삼황자가 아직 어리다고는 하나 천하가 내려주신 무골이라 앞으로의 정복사업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며 또한 총명하기 이를 데 없어 치세가 순탄할 것이옵니다.'로 시작되는 황후의 천거사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명문이었다.

    그러나 황후는 사실 기련을 황태자로 올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황비를 죽이고 싶었을 뿐이었다. 황후의 주장으로 기련의 모친인 연화 황비는 목숨을 잃었다.

    황제는 아이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정복과 여인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연화 황비가 죽자 그동안 관심도 두지 않던 기련에게 관심을 보였다. 기련의 얼굴에서 연화 황비의 모습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기련은 문무 양쪽에서 전부 재능을 보였기에 연화 황비와 자신의 아이가 재능으로 가득 차있다는 것에 뿌듯해하기까지 했다. 황제는 기련을 총애했다. 아이를 싫어하는 그가 유일하게 총애한 아들이었다.

    소탐대실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었다. 황후는 당황했다. 자신이 천거한 태자이니 꼬투리를 잡을 수도 없었다. 아들은 커져 가는데 기련은 태자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힐 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황후가 그 장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일을 친 모양이다.

    "허원아."

    조허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 전하."

    "형님의 계집에게 건네주어라."

    이황자는 황후 몰래 궁녀와 놀아나고 있었다. 기련은 그 일을 아주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 궁녀는 기련의 사주를 받고 있었다. 이황자는 새침한 궁녀와의 밤일에 빠져 있지만 천만에. 그 궁녀는 방중술을 제대로 배운 인력이었다. 기련이 명해 곽 상궁이 심어놓은 계집이기도 했다.

    궁녀는 집안이 어려워 입궁하였지만 늘 부모를 걱정하고는 했다. 식솔이 많이 딸린 집이었다. 기련은 궁녀의 집을 잘 살게 해주었다.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는 않았다. 겉으로 보자면 궁녀의 부친은 한 대방의 무남독녀를 구해준 것을 인연으로 그 상당의 행수가 되는 벼락출세를 겪었다. 물론 기련의 수작이었다. 궁녀는 그 일로 약값이 없어 죽어가던 모친이 살아나자 그라면 목숨이 아니라 넋도 걸 정도로 충성을 바쳤다. 그녀는 자신이 누구에게 충성을 바치는지도 몰랐다. 실제로 그녀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 조허원이었다. 그러나 허원은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기에 그녀는 그저 자신의 집안이 일으켜졌다는 사실만 보고 충성심을 바쳐올 뿐이었다.

    이런 일을 할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아들이 직접 보여드리지요, 모후.

    기련이 후후 웃었다. 중독이라. 태자인 그를 비롯한 황자들은 모두 일정량의 독을 섭취하며 독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왔다. 그러나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독이 있었다. 하선독처럼 알려진 독뿐만이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독도 많았다. 하선독처럼 특유의 혀가 아린 달콤한 맛이 나는 물건이 아니라 무색무미무취의 독들도 널려 있었다.

    아마 황후는 일부러 하선독을 골랐을 것이다. 기련을 개나 말 같은 짐승처럼 죽이고 싶은 마음에. 그러나 이걸 어쩌나. 기련은 그런 독으로는 죽지 않는다. 기련은 개나 말보다 더 질기고 사나운 명줄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덤벼보십시오.

    이런 식으로 가벼이 덤비지 마시고요. 당신은 탐욕스러운 여인 아닙니까. 더 덤벼보세요. 더.

    기련은 입술을 핥았다. 황후가 어떻게 나오게 될지 기대가 되었다. 잔인한 본성이 뱃속에서 들끓었다. 생각 같아서는 야밤에 쳐들어가 이황자를 죽이고 싶었다. 한 겹씩, 그 피부를 뜨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말밖에 없는 놈이 얼마나 돼지같이 비명을 지를까.

    이런 소모전 따위 지겨웠다. 기련은 자신의 적들이 쳐들어오는 쪽이 좋았다. 잔뜩 피를 보는 것이 더 취향이었다. 피 냄새가 코끝에서 맴도는 듯해서 기련은 이를 드러내고 웃다가 웃음을 멈췄다.

    아이가 보고 싶었다.

    자신 안에 깨어난 짐승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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