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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르시온] 등과등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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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과 등 하*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웃음소리는 익숙했다. 언제나 늘 있던 평범한 주말의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저녁 준비를 하면서 TV버라이어티를 보는 게 내 취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은 그 어떤 주말과도 다른, 특별한 날이었다. 그래서 난 조용히 워커를 벗고 거실로 들어와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벽에 붙었다.

    바로 앞이 거실이었고 오른쪽이 주방이었다. 빼곰이 얼굴을 내밀자 뭔가를 만드는 중인지, 앞치마를 하고 있는 영희가 보였다. 사내다운데다 머리를 금발로 염색한 영희가 앞치마를 한 모습은 꽤나 멋졌다. 그래서 보고만 있으려니 영희의 눈동자가 옆으로 움직였고, 날 발견했다.

    “우와!”

    움찔한 영희는 들고 있던 그릇을 떨어뜨릴 뻔 했지만 가까스로 붙잡았다. 잘 젖고 있던 계란을 떨어뜨리지 않은 것에 안도해하던 영희는 괴물이 되어서 날 노려봤다.

    “너 미쳤어?! 내 계란탕이 저 세상 갈 뻔 했잖아!”

    “……미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하는 나는 여전히 벽 뒤에 붙어 있었다. 원래 이런 식으로 귀여운 척 하는 걸 싫어하는 영희였다. 그래서 조금씩 옆으로 나와 영희 앞에 섰다.

    “오늘 왜 들어왔어?”

    이상한 말이었다. 왜 그렇게 묻는 건가 싶어 쳐다보자 영희의 입가로 비웃음이 걸렸다.

    “초딩이냐? 산천어 잡으러 강원도까지 가면 1박은 기본 아니야? 만리장성 쌓아야지.”

    만리장성이라니. 그런 말이 어디에 있나 싶어서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 우리는 그런 거 아니야.”

    “그, 그런 거 아니라면 왜 강원도까지 가.”

    지금 나 놀리려고 말 더듬는 것까지 따라하고 있었다. 사람이 저렇게 못됐다. 하지만 애초에 말로는 영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찔리는 게 많은 쪽이었기 때문에 입 다물고 조용히 있는 게 답일 지도 몰랐다. 입 꾹 다문 채로 시선을 옆으로 돌리려니 영희의 손가락이 당장 내 입술을 가리켰다.

    “입술은 좀 드셨나 본데? 부운 것 같다?”

    바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런 행동이 더 영희의 비웃음을 살 뿐이라는 걸 알아도, 어쩔 수 없었다.

    실실 거리고 웃는 영희를 보자니 괜히 화가 났다. 어른의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기는 영희이니 우리들의 모습이 우습기만 할 터였다. 하지만 우리들은 진지했다. 오늘 키스 한 것만 해도 거의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그렇게 급하게 진도 빼지 않아도 돼.”

    눈에 힘 딱 주고 하는 말에 영희는 의외일 정도로 순순히 어깨를 으쓱였다.

    “뭐, 네가 그렇게 말하면 그런 거겠지. 난 지금까지 만나고 하루 만에 섹스 하는 패턴이 익숙하니까. 솔직히 보통 연애 감각은 모르겠다.”

    하루 만에 섹스 하는 패턴이 익숙하다니. 나는 그걸 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희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앞에 의자를 끌고 앉았다.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은 발치에 내려놨다. 가방을 두자 불현듯 콘돔 생각이 났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 이야기 꺼내봤자 또 비웃음만 당할 테니.

    난 손에 턱을 괸 채로 영희를 바라봤다. 긴 말은 하지 않아도 내 얼굴이나 분위기로 대충 이해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영희는 계란을 마저 풀면서 물었다.

    “좋았냐?”

    “응.”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았어. 정말…….”

    오늘 있었던 일들이 영화처럼 눈 앞을 스쳐지나갔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멋있는 것 같아.”

    “그런 멋있는 놈을 왜 그냥 두고 와. 일단 넘겨 뜨려야지.”

    분위기 확 깨는 말에 난 당장 ‘야! 김영희!’라고 소리를 쳤지만, 영희는 헤헤헤-하면서 비웃을 따름이었다.

    10시를 좀 넘기자 화영에게서 잘 자라는 문자가 왔고, 이번에는 나도 제대로 답장을 했다. 그러자 다음으로 온 문자가 [감기에 걸리니까 이불 잘 덮고 자요.]라는 거였다. 그 문자가 너무 좋아서 한참을 보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보다가 저도 모르게 헤죽거리면서 웃었다. 바로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이상한 듯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바로 표정 수습에 들어갔지만, 자꾸만 올라가는 입술꼬리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회사에 도착하고 바로 근처를 둘러봤다. 최근 들어서 화영과 마주치는 빈도가 늘었기 때문에 이번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다고 해서 매번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혹 모르는 일이니 편의점에 들어가서 좀 기다려 볼까도 싶었지만 그때 경미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면서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간 경미를 보자니 따라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바깥에 있는 걸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터였다. 정말 어쩔 수 없이 경미를 따라 움직였다.

    언제나처럼 일찍 나와서 일 할 준비를 하는 중에도 내 핸드폰은 컴퓨터 모니터 옆에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주말에 화영과 데이트를 했다. 전과는 다르게, 크게 한발 진전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 해서 남들 눈에 띄게 연애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아무 것도 오지 않는 핸드폰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커피를 뽑아와 자리에 앉아있는 와중에도 멍하니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경미씨가 ‘사장님이 모이래요.’라고 하는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운데 복도 안쪽에 급하게 무선 마이크가 준비가 되고 각 부서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나왔다. 많았기 때문에 순식간에 복도가 꽉 찼다.

    종종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말하길 즐기는 사장님이었다. 한 번 시작하면 30분은 기본이었다. 다른 때라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궁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난 느긋하게 말을 꺼내는 사장님을 바라봤다.

    “좋은 아침이에요.”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속삭임에 눈을 들었다. 재건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그는 겉옷을 벗지도 않고 있었다. 지각을 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꾸벅였다. 사장님이 말씀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은 거였다. 하지만 재건씨는 사장님이 말을 하든지, 말든지 전혀 상관없다는 듯 손을 비비면서 어깨를 움츠렸다.

    “갑자기 확 추워진 것 같아요. 안 그래요?”

    “……사장님 말씀하시잖아요.”

    시끄럽게 굴면 안 된다는 뉘앙스로 말을 꺼냈다. 내 지적에 재건씬 입을 다무나 싶더니 곧 ‘그게 뭐 어때서?’ 같은 얼굴로 날 바라봤다.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 모습에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았다.

    난 조용히 사장님의 말을 들을 셈이었다. 하지만 재건씬 그런 날 가만 두지 않았다.

    “주말 잘 지냈어요? 눈 엄청 왔던데. 난 놀러 나가려고 했다가 선회해서 다시 집에 들어왔잖아요. 너무 심심해서 화영이한테 연락을 했는데 문자 한통 없더라고요. 정말 매정한 놈이에요. 안 그래요?”

    “……….”

    왜 하필 화영에 대해서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태연하게 그냥 넘길 셈이었지만, 화영하고 주말에 시간을 보냈기 그리 할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너무도 행복하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올라서 얼굴로 열이 올랐다. 이러면 안 된다는데. 모르는 척 해야 하는데. 그런 생각으로 헛기침을 하자 재건이 재차 내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거기, 강재건.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냐. 나 지금 설을 앞두고 직원들 사기 증진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결국 사장님 눈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정확히 이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사장님 덕분에 엄청나게 무안해졌다. 내 탓은 아니라 해도 마냥 재건의 옆에 서있을 수가 업어서 옆으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재건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너무 춥네요.”

    “지각한 놈이 춥다고 해봤자 하나도 안 들려. 집중해라. 집중.”

    “네~. 알았습니다.”

    웃으면서 팔짱을 끼는 재건의 모습에 사장님은 웃었다. 그들이 친척 사이라는 걸 모를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지적 받는 게 두려워 지루한 연설 내내 입 꾹 다물고 있어야 했지만, 그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싱글거리고 웃는 호남인 그를 두고 몇몇 여사원이 뒤를 흘깃 거리고 봤다. 그건 남자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성에겐 호감을, 동성에겐 동경을 가지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냉정하게 보면 잘 생긴 사람인 건 맞았다. 처음에는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뚝 떨어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능력도 어느 정도 갖춘 것 같았다. 내심으로 그를 무시하고 있던 성식도 최근 마음을 고쳐 먹은 것 같았다. 같이 일을 하고 난 후부터 재건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였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가. 난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말단 사원이니까. 난 거의 끝나가는 사장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오늘 가령씨, 피부 굉장히 좋아 보이는데요?”

    사무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자마자 던져진 말에 난 얼어붙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그런 느낌으로 고개를 들자 파티션에 양 팔을 올린 채로 날 내려다보는 재건씨가 보였다.

    “언제나 늘 생각하는 거지만, 피부가 정말 좋아요. 화장하는 여자들보다 훨씬 더 뽀얀 것 같단 말이야. 그런 피부 숨기고 다니는 건 죄에요. 안경 벗고 머리 좀 정리하고 다니지 그래요? 그러면 엄청 인기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한 말 좀 하지 마십시오.”

    정말은 당장 멱살을 잡고 ‘입 닥치고 네 자리로 가.’라고 하고 싶은 걸 꾹 참는 거였다. 말은 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눈빛으로 전달되는 건 있기 마련인데 재건은 모르는 척 웃는 얼굴로 날 내려다볼 따름이었다. 그때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경미씨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언제나 늘 생각하는 건데, 가령씨 피부 정말 좋아요.”

    “나도 동감. 얼굴에서 몇 미리까지 두터운 화장칠을 하는 여자들에 비하면 완전 양반이지.”

    뒤를 지나치던 성식이 던지는 말에 여기저기서 ‘피부는 정말 좋지.’라는 의견들이 하나둘 나왔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오늘 단체로 짜고 날 곤란하게 만들기로 작정한 건가? 왜들 저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너무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른 곳으로 들어가서 숨어버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난 반대인데? 처음 봤을 때 오덕인가 싶었는데요?”

    때에 맞춰 안쪽에서 들리는 지혜씨의 목소리가 이렇게나 반갑긴 처음이었다. 이번엔 저 화제에 따라서 긍정의 의견들이 쇄도하고 다들 함께 웃으면서 이 헤프닝은 마무리를 지으면 되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가령씰 그렇게 보는 지혜씨 같은 사람을 두고 뭐라고 하는 지 알아요?”

    갑작스러운 재건의 말에 난 그를 올려다봤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마. 그냥 여기서 끝내요. 당신 때문에 내 수명이 줄고 있는 거 안 보여?!!

    잔뜩 일그러진 내 얼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재건씬 이죽거렸다. 손가락을 위로 든 그는 그걸 천천히 까닥이며 말했다.

    “열폭.”

    그 말에 난 고개를 푹 숙였다. 동시에 사무실 여기저기서 ‘풉, 푸하.’하는 웃음들이 들려왔다. 지혜도 양 손으로 입을 막고는 어깨를 떨며 웃고 있었다. 사람들의 이런 반응이 반갑기는 커녕 무섭기만 했다. 지금 지혜가 어떤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을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복수의 칼날을 가는 원한 덩어리가 되었을 터였다. 원래 입사 당시부터 지혜씨와는 안 맞는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재건씨가 그 악화된 관계에 훌륭하게 기름을 끼얹은 거였다.

    허털해 하는 날 두고 재건씬 웃으면서 파티션을 두드렸다.

    “자, 다들 일합시다. 고마워요. 덕분에 오늘 아침도 화기애애하게 시작하는 구만.”

    자기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지금도 일부러 그런 게 분명해. 나쁜 인간 같으니라고. 정말은 더 욕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핸드폰을 보고, 화영의 얼굴을 떠올리며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참자. 참자. 진정하자. 하지만 이번 일을 지혜씨가 그냥 넘어가진 않을 텐데.

    “지혜씨가 엄청 노려보네요.”

    그런 내 걱정에 맞춰서 경미씨가 작게 속삭였다.

    난 지혜씨를 바라보며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언젠가 원한이라는 원념에 찔려 죽을 것 같아요.”

    경미씨 얼굴로 안타까움이 서렸다. 지혜의 성격을 알기에 앞으로 내게 무슨 일이 생길지를 알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결재서류를 내게 건넸다.

    “이거 한번 읽어보세요.”

    경미씨하고는 원래 일을 공유하는 부분이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월요일이 시작하기 전에 서로 한 일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였다. 파일을 받는 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고맙습니다.’라고 중얼거렸다.

    아침부터 뭔가가 뻥뻥 터지는 구나 싶은 것도 금방이었다. 원래 해야 할 일들을 시작하게 되자 다들 바빠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점심시간이었고 난 핸드폰을 들었다. 아무 것도 온 게 없었다. 그걸 보게 되는 순간 실망하게 되는 건 왜일까 싶었다.

    원래 화영씨나 나나 각자 할 일이 있었다. 점심 시간이라 해서 매일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할 것도 없고 괜히 꽁해질 필요도 없었다. 내가 바빠서 오전에 핸드폰을 살필 여력이 없듯이 그건 화영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도 괜히 신경쓰인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내기도 뭐하고, 아닌가. 보내도 괜찮은 걸까. 난 핸드폰을 집어 들었고 그때 성식씨가 밥 먹자고 했다. 오늘은 회사 건물 뒤쪽에 있는 밥집으로 가서 먹기로 했다. 재건씬 일이 있는지 일어나지 않았고 그건 대머리 강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재건씨가 오니까 괜히 라이벌 의식 갖는 것 같지 않아요?”

    “그래봤자 상대가 되나. 능력도 그렇고 인기도 그렇고, 뭐든지 재건씨가 앞서잖아.”

    “이런 말은 하기 뭐하지만 대머리가 재건씨를 이실 순 없지. 머리털만 보더라도 말이야.”

    강부장이 대머리라는 걸 염두하고 꼬는 말이었다. 다들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난 조용히 있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너무하다면서 강부장을 두둔할 셈은 아니었다. 핸드폰에서 시선을 뗄 수 없을 따름이었다.

    먼저 문자를 보내볼까? 아니야. 기다려 볼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고민하다가 결국 문자 하나를 보냈다. [점심 맛있게 먹어요.] 이 정도가 내 최선이었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오늘 날이 춥다는 말도 할 걸, 하는 후회가 물 밀듯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미 문자는 보냈다. 하나 보내고 다시 문자를 넣으면 사람이 너무 극성 맞아 보일 것 같았다. 그냥 이 정도에서 끝내. 그런 느낌으로 핸드폰을 콱 쥐었다.

    “가령씨. 요즘 연애하지요?”

    “네?”

    갑작스러운 말에 너무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무흣한 얼굴을 한 성식과 시선이 부딪쳤다.

    “요즘 이상하게 핸드폰에 신경쓰는 것 같은데, 생긴 거에요?”

    새끼손가락을 까닥이며 웃는 성식을 두고 난 얼어붙었다. 이거 걸리면 엄청나게 놀림 받을 거야. 난 반사적으로 그런 게 아니라고 했지만 지혜씨가 거들었다.

    “요즘 핸드폰을 꼭 모니터 옆에 두더라고요. 누구 연락 기다리는 것처럼. 아까도 계속 핸드폰 만지작거렸잖아요. 누구한테 연락한 거예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저 아는 사람한테 연락 한 것뿐이에요.”

    이렇게 말을 해둬야 나중이 편하다는 걸 알지만, 알게 모르게 마음 한켠이 답답해졌다. 역시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선 안 되는 거겠지. 아니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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