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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어]초롱불 아귀1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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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롱불 아귀

    산 고갯길에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 질은 어둠 속을 헤치며 봇짐을 멘 사내 하나가 고갯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가느다란 달빛에 의지한 발걸음이 휘청휘청 위태롭기 그지없다. 인적이라곤 허름한 산채 하나 없는 첩첩 산중에 서 산짐승의 안광이 번뜩번뜩 나그네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에서 먹구름이 스멀스멀 괜한 장난질로 달빛을 가리울 때마다 나그네는 우뚝 멈춰 선 채 오들오들 떨었다.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것 없이 마구 가다가는 좁다랗게 이어지는 산길, 뚝 놓치고는 헤매기 십상이다. 늑댄지 여운지 목청 높일 때마다 얼른 산중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 밤중에 길을 놓쳐서야 아주 딱 산주인 밥이 되기 좋은 것이었다.

    "음?"

    얼마쯤 가다가 또 달빛을 잃고서 걸음을 멈춘 나그네가 돌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만치서 무언 반짝반짝 빛을 홀리고 있는 것이었다. 짐승의 안광이라기엔 과히 밝은 빛이다. 흔들흔들 움직이는 빛을 눈을 게슴츠레하여 쳐다보는데 그때 다시 달이 얼굴을 험히 드러내었다. 어둠에 가려졌다 허옇게 나타나는 불빛의 정체에 나그네가 아, 하고 작게 반가운 감탄사를 흘렸다.

    남은 초롱불을 든 스물 남짓 한 어린 청년이다. 행색은 초라했지만 얼굴은 희게 고왔다. 제법 꼼꼼히 땋아 내린 검은 머리채가 허리춤까지 닿아있다. 검게 검은 눈망울에 희미하니 슬픈 것을 어린 채 양 손으로 큼직한 초롱불을 들고 서 서 있었다.

    "이보게 도령-."

    나그네는 성큼성큼 어린 청년에게로 다가갔다. 이린 무섭게 호젓한 산길에서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반가운데 한 초롱불까지 들고 있다. 어찌 아니 기쁠 수가 없어 이내의 낯은 싱글싱글 크게 웃고 있었다.

    "내 불이 없어서 그런데 동행할 수 있겠나?"

    순한 송아지 같은 눈을 크게 한 번 끔뻑한 청년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없이, 초롱불을 한들한들 들고서 앞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그 뒤를 잰 걸음으로 쫓아가며 나그네가 재차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멀리 나온 행색은 아닌 듯한데, 혹 이 근처에 사는가?"

    청년은 나그네를 힐끗 돌아보면서 이번에도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말수가 없다 못해 일순 섬뜩해질 정도라 나그네의 눈가에 의심이 짧게 어렸다. 혹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은 아닐까.

    "그- 혹 싶어서 말인데, 말을 하지 못하는 건가."

    이번에도 느린 끄덕임이 돌아왔다. 그랬었군, 하고 나그네가 혀를 쯧쯧 찼다. 한결 안심 된 표정으로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암만 보아도 시커멓게 물든 나무 일색이다.

    "이런 산중에도 민가가 있었군."

    마을과는 제법 멀리 떨어진 깊은 산중이다. 이런 곳에서 산다 하면 필경 무언가 사연이 있으리라. 그는 초롱불에 아스라이 비치는 어린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차림은 남루해도 생김새는 반반하다. 혹 남장한 처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곱게 생겼다. 총총하게 긴 속눈썹 아래 살짝 내리니 눈동자가 은근하니 색기 같은 것을 띠고 있어, 나그네는 무심코 군침이 돌았다.

    팔을 콱 움켜쥐면 변변한 반항도 못해보고 그대로 끌려올 듯 가녀린 도령이다. 누구 하나 도와줄 이도 없는 첩첩 산중이다. 심지어 말도 못하니 어디 가서 하소연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산중에 사는 처지에 글을 익혔을 리도 만무하고 계집도 아니니 욕정대로 찍어 누른다 한들 뒤탈 같은 건 없을 터였다.

    도리를 모르는 무뢰한이라면 진즉 겁간하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나그네는 그렇게까지 배덕한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순간 마음이 흔들린 스스로를 탓하며 헛기침을 몇 번 내뱉었다.

    한쪽은 부끄러움에 가까운 어색함 탓에, 다른 한쪽은 원래부터 말을 하지 못하는 탓에 두 사람은 침묵 속에 얼마간 걸음을 옮겨갔다. 그러다가 우뚝, 앞서가던 청년이 발을 멈추어 섰다. 높이 쭉 들려올라간 초롱불빛 아래로 두 갈래로 나눠진 길이 비춰졌다.

    "이거 갈림길이로군."

    나그네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표식 하나 없는 산길의 갈림길이다. 어두컴컴한 밤길이라 설사 무언가 표가 나있다 하더라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홀로 왔더라면 잘못된 길로 들어서거나 아계 이 자리서 걸음을 멈출 수밖 게 없었을 것이다.

    갈림길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던 청년이 초롱불을 한쪽 길을 향하여 치켜들어보였다. 다른 쪽에 비해 더 넓고 다듬어진 길이다. 그리 길을 가리키고 더는 나아갈 생각 없이 돌아보는 그의 태도에 나그네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도령은 저쪽 길로 강하는 모양이로군. 이쪽은 마을로 향하고?"

    전처럼 느릿한 끄덕임이 돌아왔다. 나그네는 하하 웃으며 봇짐을 뒤져 작은 종미뭉치 하나를 꺼내었다. 약간 굳은 흰 떡을 싼 것이다. 그것을 청년에게 내민다.

    "내 마땅히 답해줄 것은 없고, 이거나 좀 들게. 이런 산중에서는 쉬이 구할 수 없는 움씩일 터이니."

    쌀로 찐 역은 그럭저럭 먹고 사는 농가에서도 잔칫날에나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떡을 청년의 손에 쥐어준 나그네는 덕분에 길 잘 찾아간다 말하고는 제법 험한 달빛을 등불삼아 휘적휘적 고갯길을 내려갔다. 어린 청년은 한 손에는 초롱불을, 한 손에는 흰 떡을 쥐고서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조용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어째 네놈 혼자더냐!"

    벼락같은 외침이 왁, 하고 마르고 작은 몸을 내리 덮쳤다. 거칠고 초라한 갈림길의 안쪽에서 어린 청년이 사나운 호통에 파르르르 몸을 떤다.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목소리의 주인이 걸어 나왔다. 키가 크다. 육척을 훌쩍 넘어보였다.

    한 손에는 주둥이에서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늑대가 들려있다. 사람처럼 옷을 입고 있었지만 낯빛은 시퍼렇다. 반면 두 눈알과 입안은 시뻘겋고 톱니 같은 이빨이 빼곡하게 돋아있다. 그것이 으르렁거리며 허리를 숙여 청년의 몸에다 대고 들창코를 벌름거렸다.

    "분명 냄새가 나는데, 인간 냄새가 나는데. 한데 왜 네놈 혼자란 말미냐!"

    버럭버럭 소리치면서 푸른 아귀가 발을 꽝 굴렀다. 청년이 재차 몸을 잔즉 움츠리며 떨었다. 겁에 질린 채로 입술을 꾹 때문이다.

    "지지리도 쓸모없는 것! 다 잡은 먹이를 놓쳐버려!! 육시랄 사내새끼! 계집을 주워왔어야 했는데!"

    기어이 분을 못 미기고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조그만 몸을 팩, 후려쳤다. 마치 바람에 휩싸인 댓잎처림 힘없이 훌쩍 날아간 청년이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놓쳐버려 같이 뒹굴던 초롱불이 깜박깜박 하다가 이내 꺼진다. 그래도 흰 떡은 손아귀에 짝 쥐었다.

    "육갑떨지 말고 일어나! 병신새끼!"

    금방이라도 찢어 죽일 듯, 밟아 죽일 듯 펄펄 뛰었지만 아귀는 그 이상 청년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다. 인간이 다니는 길에는 나설 수 없는 귀신이다. 청년이 초롱불을 들고서 아귀 길로 먹잇감을 유인해 오지 않는다면 인간의 피 맛은 영보기 힘든 것이다.

    "다음번에도 먹이를 놓치면 네놈을 대신 씹어 먹겠다!"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으르렁거린 아귀가 몸을 돌렸다. 비실비실 일어난 청년이 꺼진 초롱불을 주워들었다. 검게 가라앉은 눈망울은 원망 한 점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한쪽 다리를 크게 부딪치기라도 했는지 절룩절룩 아귀의 뒤쫓아 간다. 얼마간 숲을 헤집고 들어가자 허름한 산채 하나가 나타났다. 사냥꾼이 쓰던 것을 아귀가 그를 죽이고 빼앗은 것이다. 그래도 두 칸 방에 부엌이며 따로이 창고까지 갖춘 그 집에서 몸집이 조금 작은, 그럼에도 육척에 가까운 키의 암컷 아귀가 나타났다. 암컷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제 짝과 청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늘도 허탕이오?"

    수컷 아귀가 어깨에 질어지고 있던 죽은 늑대를 마당에 내팽개치며 투덜거렸다.

    "이 멍청한 것이 다 잡은 먹이를 그냥 보냈다!!"

    암컷의 시뻘건 눈이 업으로 길게 째졌다. 어린애 머리통쯤은 한 번에 움켜쥘 만큼 큼직한 손에 우스워 보일 정도로 얄팍하게 가는 회초리를 들었다. 암컷이 이를 드러내며 청년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망할 버러지!"

    청년은 체념한 몸짓으로 절룩절룩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벗어젖히는 웃옷 아래로 상처투성이의 등이 드러난다. 흉터가 빼곡한 그 얄팍한 등 위로 회초리가 획- 하고 공기를 갈랐다.

    -챠악!

    "……."

    목소리를 잃은 청년은 그저 입술만 꾹 깨물었다. 하안 등 위로 단번에 붉은 실선이 그어지며 빨간 것이 흘러내린다.

    그러기를 수차례, 피 범벅이 된 등에 암수 아귀가 달라붙었다. 마치 사탕 핥듯이 시뻘건 혀를 길게 날름이며 쭉쭉 빨아댄다. 등을 내어주고 웅크린 청년의 창백한 이마며 목덜미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산채로 잡아먹히는 것과 다름없는 느낌. 소리를 낼 수 있다면 몇 번이고 크게 비명을 내질렀을 것이다.

    "에이, 입맛만 버렸네."

    "또 멍청하게 굴면 갈기갈기 찢어 먹겠다!"

    아귀들은 늑대 시체를 움켜쥐고서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어 고기를 쭉쭉 찢고 씹어 삼키는 게걸스런 소리가 너덜너덜한 창호지 사이로 흘러나온다. 마당에 버려진 청년은 소리가 되지 않는 신음성을 내뱉으며 몸을 추슬렀다. 그나마 아귀가 핥은 상처는 약을 바른 것처럼 회복이 빨라 다행이었다. 그는 흙바닥에 뒹구는 허름한 옷을 꿰어 입 고 비틀비틀 부엌으로 향했다

    밤눈이 밝아 불이 필요 없는 아귀였기에 집안은 캄캄했지만 유일하게 아궁이에만은 불씨가 작게 살아있었다. 청년은 초롱불을 한쪽에 내려놓고 가물가물한 불씨에 바싹 말린 풀잎을 밀어 넣었다. 불씨가 몸집을 어느 정도 불리자 이번에는 나뭇가지며 장작을 툭툭 몇 던져 넣었다. 타오르는 아궁이에서 부드러운 온기가 흘러나와 지치고 아픈 몸을 감싸 안았다. 발간 불꽃을 바라보며 웅크려 앉은 청년은 호된 매질 속에서도 꼭 쥐고 있었던 흰 떡을 꺼내 들었다. 아귀들이 그를 아주 굶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얻을 수 있는 먹을거리라곤 그들이 남긴 짐승의 찌꺼기뿐이었다. 때문에 청년은 산나물이며 나무열매, 버섯 따위를 주워와 배를 채우곤 하였다. 어릴 적에는 독이 든 것을 잘못 먹어 몇 번이고 죽을 뻔 하기도 했지만 아귀들은 구하기 힘든 인간 어린애를 그냥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위험할 때마다 아귀의 퍼런 피가 꺼져가는 숨결을 다시 붙잡아 끌고 왔다. 제대로 된 보살핌은 없었지만 목숨을 부지할 정도의 도움은 주어져 여태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찍, 찌익

    흰 떡을 한 입 작게 베어 무는 청년의 곁으로 새카만 털의 쥐 한 마리가 다가왔다. 눈이며 네 발, 꼬리 끝까지 아주 까만 그 쥐는 친근감 있게 청년의 발치에 머리를 비볐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그 쥐를 청년은 아직 목소리를 빼앗기지 않았을 때 쥐서방이라고 불렀다. 향상 짝을 거느리고 있는 쥐서방은 청년이 본 것만 해도 스무 마리 미상의 상대가 있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대단한 호색한이다. 그래도 제 새끼나 새끼를 낳은 짝은 각별히 보살피는 기특한 면이 있기도 하였다. 청년은 다리를 타고 올라 무릎까지 기어 올라온 쥐서방의 머리를 검지로 쓰다듬어 주었다. 떡을 조금 떼어주자 냉큼 받아 물고는 풀쩍 뛰어 부엌 구석으로 내달린다. 얼마 전 몸을 푼 쥐서방의 짝이 그곳에 있었다. 청년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다시 떡을 먹기 시작했다. 다 먹지는 않고 꼭 절반을 남겨두어 종미로 감싸 쥐가 오르기 힘든 높은 선반 에다 얹어 두었다.

    다시 아궁이 앞으로 간 청년은 거적을 깔고 그 위에 작게 웅크려 누웠다. 처자식에게 먹이를 주고 온 쥐서방이 찍찍 하더니 얇고 허름한 천자락을 끌고 온다. 상체나 겨우 가리는 그것으로 몸을 덮고는 청년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타닥타닥 불티 튀는 소리 사이로 조용한 숨소리가 섞여들었다.

    야행성인 아귀는 낮이면 세상모르게 잠이 든다. 지붕이 떠나가라 울리는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를 뒤로하고 청년은 집을 빠져나갔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다. 도토리며 알밤을 열심히 저장해대는 다람쥐처럼 그도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모아두어야만 했다. 아귀가 먹다 남아 던져주는 고기조각으로는 겨울을 버텨내기 힘들었다. 어설픈 솜씨로 직접 짠 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서 산 속을 걸어가는 청년의 발치로 쪼르르르 쥐서방이 따라붙었다. 풀쩍 다리로 뛰어 오르더니 옷자락을 붙잡고 척척척 순식간에 어깨까지 기어 올라가 자리를 잡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겨울만 아니라면 산에서 먹을거리를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귀의 냄새가 몸에 밴 탓에 위험한 산짐승들이 공격해 오는 일도 없다. 평범한 짐승이라면 멀찍이서 냄새만 말고도 부리나케 도망가 버리는 것이다.

    졸졸졸 깨끗한 물이 흐르는 제법 큼직한 개울에 다다른 청년이 바구니를 물가 바위 위에 내려놓았다. 어젯밤 아귀 들이 뜯어먹고 마당에 내던져놓은 늑대 고기 한 접을 실에 묶어서는 물살이 느린 곳에 퐁당 담갔다. 장시간 기다리자 살짝 묵직한 느낌이 실에서 전해져온다. 재빨리 끌어당긴 실 끝에 가재 한 마리가 집게발로 살점을 꽉 집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청년은 물리지 않도록 조심해서 떼어낸 가재를 바구니에 담았다. 잔뜩 성미 난 가재가 집게발을 높게 치켜든 채 바구니 속을 배회한다. 재차 한 마리를 더 낚아 올리는데 푸르게 우거진 숲속에서 작은 인영 하나가 튀어나왔다.

    "초롱불아아!!"

    예닐곱 살 정도의 꼬마다. 이런 깊은 산속에 평범한 인간 어린애가 돌아다닐 리 없고, 변신한 여우였다. 아직 술법이 미숙해 허옇게 텁수룩한 머리 위로 삼각형 귀가 쫑긋 솟고 엉덩이에도 복슬복슬한 꼬리가 흔들리고 있다. 그래도 어디서 주웠는지 옷은 갖춰 입고 있었다. 두다다 달려온 흰 여우 호랑이가 개울가에 쪼그리고 앉은 청년의 옆구리 에 찰싹 달라붙었다.

    "초롱불아!"

    동그란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다. 청년은 이름이 없었지만 호랑이는 그를 초롱불이라고 불렀다. 예전, 아직 청년이 말을 할 수 있었을 때 우연히 마주친 호랑이가 그를 향해 이게 뭐야, 하고 물었었다. 인간 말이 어눌한 호랑이는 청년의 이름을 물은 것이었지만 청년은 마침 들고 있던 초롱불을 가리키는 것인 줄로 알고 초롱불이에요, 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 뒤로 청년은 초롱불이 되었다. 유일하게 누군가 불러주는 이름이 그것뿐이었이기에.

    "아우, 아귀 냄새! 아귀가 또 핥았어?"

    청년, 초롱불의 몸에다 대고 작은 코를 큼큼거리며 호랑이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평소에도 아귀 냄새가 배어있었지만 그래도 유심히 코를 기울이면 희미하게나마 초롱불의 냄새가 났었다. 젖은 풀잎과 비슷한, 기분 좋게 깨끗한 냄새가. 하지만 지금은 아귀 냄새가 너무도 짙어 초롱불의 냄새를 죄 가려버렸다. 호랑이가 분을 내며 씩씩거렸다.

    "아귀 그 나쁜 놈들! 초롱불을 자꾸자꾸 잡아먹어!"

    아주 죽여서 먹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이것저것 빼앗아가고 있다. 초롱불의 목소리도 아귀가 먹어치웠다. 먹잇감인 인간들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빼앗아 삼켜버렸다. 그때 일을 생각해낸 호랑이가 커다란 황금색 눈동자에 눈물을 울먹울먹 드리웠다.

    "초롱불 목소리가 얼마나 예뻤는데!"

    호랑이야, 하고 부르는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릴 적 기억으로 흥얼거리는 수줍은 노랫소리 도 다시는 듣지 못한다. 어허엉, 하고 울음을 토해내기 직전의 호랑이의 머리를 상처입어 거칠지만 따스한 손이 쓰다듬었다. 자신은 괜찮다는 듯 부드럽게 내려다보는 시선에 호랑이는 눈물을 꿀꺽꿀꺽 삼켰다.

    "내가 조금만 더 크면, 아귀 놈들 죄다 쫓아 버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초롱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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