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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설수]달팽이 2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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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팽이 2부

    짧은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달팽이가 살던 어항에는 작은 화초가 자라고 있었다.

    달팽이가 죽었단다.

    상추와 물만 주면 사는데. 그것조차 지한은 하지 않았다.

    아주 작은 관심만으로도 내 애완동물은 살 수 있는 놈이었다. 상처하나 나지 않고 면도날위도 다닐 수 있는 대단한 놈이었다.

    그런데 죽었다.

    지한은 달팽이가 죽은 것도 일주일이나 지나서 알았다고 한다. 내가 일본으로 출국한지 일주일 되던 날, 달팽이는 무관심 속에 죽어버렸다.

    “아, 또 눈.”

    남자의 목소리에 희미한 짜증이 서려있다. 카페의 오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이름 모를 노래의 가사에 귀 기울이고 있던 나는 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창밖으로 약한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 대형 유리창에 듬성듬성 자리를 잡은 눈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얼음의 결정보다 물기를 더 많이 머금은 진눈깨비였다.

    “이런 눈은 평소보다 훨씬 운전하기 힘들거든요.”

    아까부터 남자는 내가 대꾸를 하지 않아도 열심히 말을 이어간다.

    “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자 남자는 용기를 얻은 듯 목소리를 키웠다.

    “온도가 조금만 내려가도 빙판길이 되기 쉬우니까요. 오늘 같은 날 차 막히는 건 예사고,”

    이번엔 대답하지 않고 조금 미지근한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스피커에서 새로운 음악이 흘러 나왔고 나는 다시 가사에 귀를 기울였다. 이 카페 주인의 취향이 마음에 든다. 누군가의 소개로 휴가 나올 때마다 방문한 곳인데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카페지만 음악의 선곡이나 인테리어, 결정적으로 커피 맛에 제법 정성을 들인 티가 난다.

    “얼마 전에 제대했다구요? 그럼 곧 복학하겠군요.”

    남자는 자신의 커피 잔 손잡이를 몇 번이나 잡았다 놓았다하더니 저 말을 꺼냈다. 학생이냐고 묻기에, 얼마 전 전역한 사실을 이야기 했다.

    “며칠 전에 복학 신청서 냈어요. 3월부터 구린내 나는 복학생 노릇 좀 해야죠.”

    “그쪽과 구린내라니 안어울립니다.”

    다시 내 말이 끊어질까 빠르게 이어진 남자의 말, 아직도 미련이 남은 모양인지 나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연이어 날린다.

    “그거 칭찬이죠? 잘 받아먹겠습니다.”

    우선은 남자의 호의를 받아주었다. 그리 나쁜 남자 같지는 않은데 영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나는 대체 이 남자의 뭘 보고 합석을 받아들인 걸까?

    이곳을 게이 카페라고 부르긴 좀 웃기다. 간간히 섞인 여자들을 봐서, 그녀들은 이 카페의 주인이 게이, 그리고 이곳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런 성향이라는 것을 모르고 왔을 것이다. 그래서 난 여기가 마음에 든다. 게이 바나 게이 클럽은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고 발걸음을 하지 않은지도 오래다. 그간 내 성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지난 3년 정말 바빴다. 남자, 연애, 데이트. 나에겐 사치스러운 것들이었다.

    “오늘 남은 시간 괜찮은가요?”

    남자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다. 보통 상대에게 이런 식의 제안을 하고 거절 받아 본적 없는 게 분명하다. 남자는 평균을 거뜬히 넘어서는 외모였다. 큰 키, 가무잡잡한 피부, 열심히 다듬은 근육, 최신유행 스타일의 헤어까지. 그리고 테이블에 중형차의 키를 명품 지갑위에 올려두고 있다.

    나 외모도 끝내주지만 돈도 많아.

    남자는 말 대신 다른 것들로 자신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카페에 휴가 때마다 들렸던 것을 바리스타는 기억하고 있었다. 쓴맛의 커피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자신만의 에스프레소가 있다며 권했고 입맛에 맞았다. 오늘도 같은 커피를 받아 들고 창가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핸드북을 꺼내 막 두어 장쯤 읽었을 때, 이 남자가 내게 합석을 요구했다.

    물끄러미 남자를 올려다봤다. 대부분 거절하곤 했지만 가끔 이런 식으로 낯선 남자와 마주 앉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마주한 남자들은 한결같이 가무잡잡한 피부에 큰 키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몇 분 안에 잠시의 호감은 짜게 식어버린다.

    지금도 남자의 제안에 아무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대답대신 얼굴을 창밖으로 돌렸다. 바람에 흩날리는 진눈깨비가 자꾸 시선을 끈다. 고작 물기 조금 남기는 유리창의 흔적이 전부인데도 나는 또다시 눈의 결정을 쫓고 있었다.

    “제가 오늘 고등학교 반창회가 있어요. 좀 일찍 나왔더니 시간이 남아서 커피한잔 하려고 온 거에요.”

    “아, 네.”

    좀 전까지 자신을 자랑하던, 자기애 강하던 남자의 그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거절이 처음인건가? 남의 감정을 추측하고 이해하는데 관심 없다. 우연히 알게 된 반창회 따위 가지 않으려 여길 찾아온 것인데 이 남자를 만났다.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이 남자의 어디가 마음에 든 거야?

    윤곽이 모호한 대답만 머리를 맴돈다. 아, 이런 기분, 별로다.

    “그럼 먼저 일어날게요. 오늘 같은 날 운전 조심하세요.”

    머뭇거림 없이 일어나 테이블위에 놓인 빌지를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빌지에는 남자와 내가 마신 커피 값이 함께 프린트 되어 있었다. 뭐, 그렇게 나쁜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내가 자신의 것도 함께 계산하려는 것을 눈치 챈 남자가 카운터로 나오려했다. 그러나 방금 카페 문으로 들어온 누군가를 보더니 이내 시선은 그리로 향한다. 아마, 내가 나가고 나면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좀 전 들어온 이에게 합석을 요구할 것이다.

    카운터로 와 계산을 마무리 하던 바리스타가 어깨를 들썩이며 입술 끝을 올린다. 원래 이런 거다. 내게도 없는 감정이 남자에게도 있었을 리 없다.

    도로에는 여전히 진눈깨비가 느리게 내리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떨어진 진눈깨비는 눈물 한 방울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한다. 택시를 탈까 했지만 좀 전 ‘오늘 같은 날 차 막히는 건 예사고,’라던 남자의 말이 떠올라 지하철 역사로 방향을 틀었다.

    지하철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하고 3년 만에 만날 7반 녀석들을 향해 유리문을 밀었다.

    “이지원! 이게 얼마만이야!”

    “어이 7반! 다들 잘 지냈어?”

    주점에 들어서자마자 무리를 이루고 있던 시커먼 남자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쏟아졌다. 구석자리에서 일어서 나를 반기는 놈부터 그대로 테이블을 뛰어 넘어 나를 안아버리는 광명이까지.

    “좇나 나쁜 새끼!”

    3년 만에 본 윤광명이 나를 거칠게 껴안았다. 그리고 온몸이 으스러질 정도로 팔에 힘을 준다.

    “야, 아파. 지나친 애정 표현은 삼가해주길.”

    우리가 어울리지 않는 포옹으로 길을 막고 있으니 주점 통로에 지나가던 이들의 좀 비켜달라는 말에 광명은 나를 놓았다.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했더니 이미 서로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동이 난 듯 자연스레 내게 관심이 집중되었다.

    “지원이 넌 어떻게 세상의 때 따위는 먹지 않은 얼굴이냐?”

    “곱다 고와, 무슨 사내새끼 피부가 우리 누나보다 곱냐?”

    “자식아, 너 담배 안 하지? 사내란 자고로 담배를…….”

    “새끼야, 너처럼 하루에 두 갑씩 피우다가는 세상 언제 골로 갈지 몰라. 담배는 안하는 게 좋지. 지원아, 근데 너 키 좀 큰 것 같다?”

    팔을 뻗어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었다. 녀석들 말대로 컸다. 여전히 훤칠하다고는 볼 수 없어도 이제 작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다.

    “쨔잔~ 아직 180은 안된다만 그래도 광명이랑 비슷하지 않냐?”

    내말에 광명이 발끈하고 일어섰다. 녀석은 그럴 리 없다며 당장 대어보자며 흥분했고 신발까지 벗어 본 대결은 정말 둘이 별 차이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3년 만에 보는 같은 반 녀석들이다. 그렇게 떠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졸업인사까지 하고 헤어 질 수 있었는데 그 당시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늘 같은 반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남아 있던 나였다.

    얼마 전 복학신청서를 내러간 학교에서 고 3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를 만났다. 바뀐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고 며칠 후 반창회를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고민하고 나온 자리였지만 다시 본 이들은 그런 고민을 무색하게 할 만큼 반가웠고 좋았다. 이 시끄럽고 낮은 저음의 지방방송들이 이렇게 사랑스럽다니.

    “이지원, 넌 어떻게 그렇게 가버렸냐? 나중에 수능 끝나고 한참 후에 담임이 가르쳐 주더라. 하여튼 속을 알 수 없는 새끼. 나한테도 말 안하고.”

    오지라퍼 윤광명이 나에게 원망을 쏟아 붓는다. 미안한 마음에 광명의 옆에 붙어서 연신 잔에 술을 채워주고 원샷을 몇 번이나 해주었다.

    나는 수능을 3일 앞두고 절친했던 광명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일본으로 여행 겸 어학연수를 갔다. 3월을 넘어, 4월 중순에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식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어학연수를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고등학교 통학 때문에 미루고 미루었던 아파트 입주를 했다. 제법 먼 거리의 아파트로 이사한 탓에 광명이 날 만날 기회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휴대폰도 아예 해지하고 떠났기에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광명이가 나 없어서 외로웠었구나. 이제 형아가 있으니 외로워 마.”

    나는 광명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장난스러운 말투로 녀석을 달랬다.

    “꺼져! 이제 너 필요 없어. 두살 연상의 여친도 있으시겠다.”

    “오오오~!”

    광명의 여친이라는 소리에 일순간 굵은 야유가 쏟아졌다. 나도 ‘오~!’하며 부러 빈정대주었더니 살짝 붉어지는 녀석의 얼굴이 괜히 재미있었다.

    “광명이도 여친을 사귀는데 난 왜 없는 거냐? 술이나 마시자.”

    한쪽 구석에서 광명이를 부러워하며 농담을 뿌려댄 한 녀석이 소주잔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더니 주변에 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부어라~, 마셔라~, 안주킬러들은 회비 더 내라~. 그간 쌓인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반창회의 분위기는 제법 농익어간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지만 어제 같은 교실에서 인사하고 헤어진 것 같았다. 즐겁고 유쾌한 모습, 술기운이 약간 돌아 붉어진 녀석들의 얼굴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그들에게 골고루 시선을 주며 이 분위기에 동화되고 있을 때쯤 나의 빈 잔에 소주를 따르던 광명이 물었다.

    “근데 너 왜 과외학생한테도 말 안하고 갔냐?”

    “과외학생?”

    “그 있잖아. 니가 수시합격하고 일본어 과외 했던, 이름이…… 아! 하 무슨 민인데”

    “누구?”

    하 무슨 민? 분명 우리 반은 아니다.

    “기억 안나? 그 5반의 아! 하정민. 키 크고 합기도 하던, 같이 집에도 가고 그랬잖아.”

    아, 아―.

    그제야 떠올랐다. 그러나 딱히 할 말이 없어 소주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내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광명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자식이 너 없어지고 나서 거의 매일 나 찾아 온 거 알아?”

    “하정민이 널?”

    광명이도 하정민과 친했던가?

    그런데 내 입으로 ‘하정민’이라는 이름을 내뱉는 게 이렇게 이상하다니. 무엇인지 모를 감정으로 입술 끝이 아린다. 이 녀석들과 마찬가지로 하정민도 3년만이라서 그럴 것이다. 졸업앨범도 우리 7반 이외엔 펼쳐보지 않았다. 그러니 더 이상한 것이다. 하정민은 우리 반도 아니었다. 같은 시기에 명성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동창생, 우리의 관계는 그게 전부다.

    “그래. 너 어디 갔냐고 무슨 소식 없냐고 날 얼마나 들볶았는지 알아? 너랑 하정민이 그렇게까지 친한 줄 몰랐는데 의외로 많이 친했나 봐? 니 소식 물으러 올 때마다 그 표정이 장난 아니었거든. 무슨 바람난 마누라 소식 들으러 온 것처럼.”

    광명은 도통 이해 못할 말들을 떠들어댔다.

    하정민이 날 왜 찾았을까?

    우리가 그렇게 친했었나?

    “그래? 나 정민이랑 별로 안 친했는데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과외를 해줄 거였으면 제대로 끝을 내고 토꼈어야지.”

    일본어 과외를 해 준 기억은 전혀 없다. 분명 내가 정민에게 과외 따위 해준 적은 없으니까 광명의 말대로 끝내고 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찜찜하지?

    하정민은 그냥 동창이 아니었던가?

    “어? 하정민? 나랑 같은 학교다.”

    구석에 앉은 한 녀석이 대뜸 그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는 술잔을 들고 내 자리 앞으로 와서 앉았다. 이 녀석과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녀석은 오랜만에 보는 나와 무슨 주제로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나랑 같은 학교야. 지원이 너 하정민이랑 친했냐? 그 자식 복학하면 말해줘야지. 너 만났다고.”

    “저기, 아니. 말 안 해줘도 돼. 별로 안 친했어.”

    나는 급히 녀석의 입을 막았다. 난감한 나의 표정을 본 녀석은 다시 술잔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정민이 김수인이랑 원래 친했었냐?”

    하정민, 김수인.

    과거위에 차곡차곡 쌓아올린 한 부분이 순식간에 허물어진 느낌이다. 3년 만에 내 귀에 닿은 두 이름. 너무도 낯선, 그러나 청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게 하는 두 이름.

    “김수인 이라면 3반의 그 귀여운 싸가지?”

    “어, 기억난다. 그 새끼 체육대회 계주도 나가고 그랬잖아. 작은 게 열라 빨랐어.”

    새로 등장한 이름에 테이블 주변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내 앞에 앉은 녀석이 신나는 듯 입을 열었다.

    “그 두 놈 다 우리 학교거든. 수인이는 미대 쪽이고, 정민이는 경영대 쪽일걸? 하여튼 입학하고는 거의 매일 붙어 다니더라. 수인이가 정민이한테 매달려 다니는 게 얼마나 웃긴 줄 알아? 완전히 C.C야, C.C.”

    “둘이 좀 친하긴 했는데. 같은 학교 되더니 완전히 눈 맞아서 진짜 사귀나?”

    “하정민이 뭐가 아쉬워서?”

    “김수인이 도덕 김쌔미보다 이쁘다고 우리끼리 농담한거 기억 안나?”

    “맞다. 김수인이 더 예뻤다. 도덕 김쌔미보다.”

    그래, 그 얼굴도 떠오른다. 늘 나를 향해 짓던 장난스러운 눈웃음.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는 귀여운 표정, 짙은 갈색 머리, 작은 키, 마른 몸, 하복 소매가 여전히 팔꿈치에 닿았던, 하늘하늘 펄럭이던 교복바지에 얇은 허벅지가 그대로 드러났던, 그 김수인.

    그런데 왜 그 얼굴이 이토록 싫은 거지? 귀엽게 생겼는데. 남학생 치고 지나치게 곱상한데. 속이 매스꺼울 정도로 싫다.

    “하정민 공부 꽤 하지 않았어? 근데 왜 G대야? 더 좋은데 갔을 성적이었는데.”

    “야! 지금 나의 G대를 무시하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누군가의 말.

    ‘수인이? 그 자식은 미대입시 준비하잖아. 그림 꽤 잘 그리거든. 우리 학교 미술상은 수인이가 다 휩쓸 거다. G대 고등학교 미술대회 은상인가 탔어. 아마 가산점 받아서 적당히 공부하면 무조건 합격일걸.’

    분명 하정민이 저렇게 말했었다.

    “그 자식 수능 완전히 망쳤다더라. 나 과외 했던 대학생이 정민이도 했었잖아. 수능 직전에 완전히 컨디션 엉망이었다고 그러던데?”

    또 다른 누군가가 거들며 새로운 사실 하나를 내게 던진다.

    머리가 어지러워, 토할 것 같아.

    이래서 반창회 따위 나오고 싶지 않았어.

    “뭐야? 7반 반창회인데 다른 반 애들 이야기만 할 거야? 그리고 내년에는 담임선생님이랑도 같이…….”

    다른 반 학생의 이름이 계속 거론되자 반장이 거북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시킨다. 분위기가 급하게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나서야 진정된 나는 소주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한참 동안 저 두 이름에 예민한 감각을 세워서인지 입 속이 바싹 말라있었다. 쓴 소주가 입술부터 목 끝까지 도달한 갈증을 개운하고 촉촉하게 해소시켜주었다.

    “지원아, 근데 너 군대는 갔다 왔냐?”

    술잔을 비우자마자 광명이 비꼬듯 물어왔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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