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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정]아카시아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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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카시아 길 Acacia-lined road

     그의 사랑은 의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지속되어왔다. 열 손가락을 모두 접어야만 헤아릴 수 있는 동안, 계절은 정확히 서른아홉 번 바뀌었고 서준영은 네 명의 연인을 만났다. 첫 번째를 제외한 셋은 객관적으로 봐도 그보다 떨어지는 외관의 여자들이었다. 그 중 세 명은 울면서, 나머지 하나는 불같이 화내며 이별을 선고했다. 매번 가차 없이 돌아간 뺨에 손자국이 남아도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남자 친구가 제 눈앞에서 다른 남자와 입술을 비비는데 넘어갈 여자는 한 명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혀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어 퉁퉁 부운 뺨으로 말없이 바닥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때마다 검은 눈동자는 여지없이 떨렸다. 비참했다. 여자 친구의 손찌검이 아니라, 자신을 이렇게 맞게 한 박인후가 자존심을 한도 끝도 없이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박인후는 알고 있었다. 알고도 준영을 진창으로 밀어 넣었다. 고향에서 누구나 다 알아주는 십 년 지기 친구.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 대학은 서로 떨어졌으나 같은 서울 바닥 안에 있다는 이유로 한 아파트를 얻어 사는 친구, 서준영과 박인후. 하지만 둘은 완벽한 친구가 아니었다. 그 시간 동안 서준영이 박인후를 짝사랑해온 것이었다.

     준영은 내색하지 않았으나 가슴에 고인 열망이 갈수록 차고 넘쳤다. 결국 절절한 감정이 늪이 되어 조금씩 바깥으로 새어 나갔다. 얼굴을 보면 달아오르는 뺨, 손끝만 스쳐도 달음박질하는 심장, 희미하게 휘감기는 시선이 아련한 마음을 대신하였다. 그의 지향은 오직 한 곳이었으니, 인후는 그것을 일찌감치 눈치 챘다.

     친구의 연심에 그가 선택한 대응은 무관심이었다. 다 알고도 모르는 척 했다. 그런데 준영에게 여자 친구라도 생기려 하면 태도가 바뀌었다. 준영의 진짜 애인 앞에서 되레 자신이 애인인 듯 굴었다. 그때만큼은 평소의 무뚝뚝함이 어디론가 녹아 없어졌다. 꼼꼼히 친구를 챙기고, 감싸고, 키스했다. 그러나 단 둘이 되면 인후는 다시 변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반항하는 준영을 잡아다 억지로 몸을 섞기도 했다. 그런 섹스가 심심치 않았다. 덕분에 준영은 몇 없던 연애마저 모두 망치고 점점 지쳐갔다. 그의 사랑은 무릎이 꺾여 발밑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사랑.

     준영이 전공서적 귀퉁이에 끼적끼적 적었다. 회색 흑탄으로 형태를 이룬 글씨는 분명 온전한 사랑이 맞으나, 준영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전에는 단순히 사랑이라는 말만 들어도 입가가 간질간질 바람처럼 웃음이 흘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바삭하게 말라가는 감정을 느꼈다. 눈꺼풀을 한 번 깜빡이고 다시 손을 움직여 글씨를 썼다. 박인후. 이번에도 모르는 단어였다. 그의 옆에서 시간을 보낼수록 점점 더 먼 사람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름을 적으려다가 말았다. 그 옆에 제 이름까지 새겼다가는 그야말로 길을 찾을 수 없어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샤프를 내려놓고 책을 덮었다. 공부가 될 리 없었다. 시험 기간이라 일찌감치 도서관에 와 자리를 맡았지만, 이런 마음으로는 있으나 마나였다. 서적과 노트, 프린트 물을 차곡차곡 정리했다. 종이 아래 숨어있던 휴대폰이 드르륵 드르륵 몸을 떨었다. 당황한 준영이 얼른 낚아챘다. 도서관에서 휴대폰 진동은 금기였다. 무음으로 설정해놓았던 것 같은데 착각이었나.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외부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박인후.

     풀면 풀수록 알 수 없는 문제가 다시 나왔다. 마음이 축 젖었다. 일단 휴대전화를 뒷주머니에 넣고 빈 백팩을 한쪽 어깨에 멨다. 진동이 계속 울리는 탓에 짐을 가방에 넣을 여유가 없었다. 물건들을 끌어안고 도서관을 나왔다. 두리번거리다 반쯤 창문이 열린 휴게실 창틀에 책을 걸쳐 두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잠시 망설이다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 뭐하다 이제 받아.

     무뚝뚝한 목소리가 불쑥 가슴을 찔렀다. 건조한 말투에 준영은 멍하니 창틀에 지탱한 책을 내려다보았다. 인후가 이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었음에도 서운했다. 이 남자의 무심한 말 한 마디는 늘 기운 잃게 만들었다.

     “도서관이었어.”

     - 나와.

     준영은 한 숨 쉬었다. 그렇지 않아도 집중이 되지 않아 자리를 털고 일어난 참이었다. 하지만 인후가 그걸 알 리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도서관에서 있다가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바깥에 나온 줄 알 터였다. 그런데도 하던 공부를 접고 오라는 말을 너무 당연하게 뱉었다. 뭐라고 대꾸할 기운이 사라졌다. 준영은 그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통화를 끝냈다. 나와. 단 한 마디뿐이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었다. 독수리상 앞이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오면 중앙도서관인데 인후는 늘 그곳으로 불러냈다. 눈을 가늘게 찡그리고 휴대폰 끝으로 이마를 꾹 눌렀다. 남은 왼손으로 창틀에 걸쳐 놓은 물건을 잡는다는 게 그만 툭 건드려 전부 창밖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아래로 떨어지는 짐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던 준영이 이번에는 거칠게 뒷머리를 긁었다. 되는 일이 없었다. 숨을 짧게 훅 몰아 뱉은 뒤, 아래층으로 종종 내려갔다.

     현관 앞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책을 봤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학생들은 바닥에 나뒹구는 책이며 바인더, 필통 등을 흘끔흘끔 쳐다보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선을 뚫고 들어가 물건 주울 생각을 하니 다시 한 숨이 나왔다. 애써 덤덤한 얼굴로 바람에 날리는 프린트를 주우려고 허리를 숙이는데, 아차,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철퍼덕 소리가 넘어진 준영의 귀로도 들렸다. 제 몸과 바닥이 마찰하면서 난 소리였다. 주변에서 푸웃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점심시간이라 지나는 이들이 많았다. 바닥에 늘씬하게 들러붙은 준영은 도저히 얼굴을 들 지 못했다. 재수가 이렇게까지 사나울 수는 없었다. 어찌나 창피한지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끙끙거리며 이마를 땅에 박고 있는데, 검은 로퍼가 눈앞으로 들어왔다. 이 새끼는 또 뭐야. 준영이 참담한 제 하루 일진에 이를 가는 동안에도 발걸음은 자리를 뜨지 않고 한참 서성거렸다. 그냥 지나가. 구경하지 말고 제발 그냥 지나가. 그가 빌었다.

     “준영이니?”

     서성거리던 로퍼가 멈췄다. 준영은 제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천천히 고개 들었다. 해를 등지고 선 이는 역광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미간을 찡그리자, 남자가 제 손으로 부신 눈가를 가려주었다. 커다란 손바닥이 만들어준 그늘 아래서 준영은 눈을 두 번 깜빡거렸다. 익숙한 얼굴이 빙긋 웃고 있었다.

     “유진 선배.”

     준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유진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갈색 머리카락이 보슬보슬 흔들렸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조금 자랐다. 유진이 해를 가리지 않은 손으로 준영의 이마를 문질러주었다. 준영이 흠칫 눈을 찡그렸다. 관자놀이로 모래 알갱이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유진은 눈 감은 얼굴에서 티끌을 꼼꼼히 떼어낸 뒤 겨드랑이에 넣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타인이 제 얼굴을 만져 눈을 줄곧 감지 못하고, 흙이 눈에 들어갈까 제대로 뜨지도 못했던 준영은 그제야 좀 편안해졌다. 좀 창피한 얼굴로 유진에게 웃어보였다. 홀로 길바닥에 뻗어 시선을 받고 있었던 터라 유진이 몹시 반가웠다.

     부드러운 이목구비에 약간 나지막한 목소리. 표정이 없을 때는 단정한 인상이지만, 웃으면 앳된 소년처럼 눈매가 사르르 녹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운데, 매너까지 또래답지 않게 깍듯해 인기가 많은 선배였다. 어느 정도냐면 준영이 언젠가 학교 복사실에서 ‘의과대 장유진을 입에 넣고 달콤하게 녹여봤으면 좋겠다’는 여학생들의 수위 짙은 농담을 들은 적까지 있었다. 저들끼리 속닥속닥 망상을 펼치는 여자들을 보며 준영은 몹시 당황했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남자 후배인 제가 봐도 확실히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니, 여자 입장에서는 심장이 간질거릴 법도 했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이 다 구경하고 있는 와중에 손 내밀어주지 않았는가.

     “걸게 넘어졌구나.”

     짐이 다 튕겨나가 나뒹굴 정도네. 유진이 중얼거리자 준영은 얼굴이 빨개진 채 헛기침을 했다. 짐은 3층에서 떨어트렸다는 걸 밝히지 않기로 했다. 책을 죄 창밖으로 날리고 그걸 주우려고 달려오다 넘어진 것 보다는, 길가다 넘어져서 책을 떨어트렸다는 게 그나마 나았다. 유진은 사람들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뒹구는 책들을 줍기 시작했다. 준영도 앉은 채 프린트 물을 끌어 모았다. 유진이 물건들을 탁탁 털어 가방에 넣은 뒤, 준영을 내려다보고 미간을 조금 구겼다.

     “준영아, 무릎.”

     준영은 유진을 보며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저 선배 왜 인상 썼지? 시선을 따라 고개 숙여 제 무릎을 내려다보았다. 밀크 진으로 불긋불긋한 기운이 스미고 있었다. 넘어지면서 무릎이 거칠한 쓸려 벗겨진 모양이었다. 지금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눈으로 피가 나는 걸 보니 갑자기 아픔이 밀려들었다. 아야. 그는 눈가를 찡그리고 책 읽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일어날 수 있겠어? 양호실 가자.”

     “예?”

     준영이 유진을 올려다보았다. 순간 인후가 기다리고 있는 게 떠올랐다. 양호실은 학생회관 건물에 있었다. 이곳 중앙도서관과 마주보고 있지만, 이 이상 늦게 가면 그렇지 않아도 무뚝뚝한 인후의 얼굴이 더 일그러져 있을 게 분명했다. 괜찮다고 고개를 한 번 저어보였으나, 유진이 그를 재촉했다.

     “내가 괜찮지 않아. 무릎이 다 까져서 그게 뭐야.”

     “정말 괜찮아요. 집에 가서 약 바르면 되는데.”

     “그 약, 학교에서 바르고 가. 대학 등록금이 얼만데 양호실 정도는 마음껏 이용 해야지.”

     일부러 가볍게 말한 유진이 짐이 가득 든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준영의 손목을 잡았다. 준영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 알고 지내는 선배이기는 했으나 대뜸 손을 잡히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타인과의 스킨십이 익숙하지 않았다. 피부를 감싼 손바닥이 몹시 뜨거웠다. 아까 얼굴을 털어 줄 때보다 더 긴장되었다. 그러나 유진은 손목을 잡은 것에 별 다른 느낌이 없는 듯 했다. 가방을 추켜올리고, 후배의 팔을 부드럽게 끌어당겼다. 그 힘에 이끌리듯 준영이 다리에 힘을 넣었다.

     “서준영.”

     반쯤 무릎을 세우는데 귓가로 딱딱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낮고 서늘한, 감정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음성. 준영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좁혔다. 인후였다.

     준영을 주시하던 유진은 제 후배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자신을 경계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마주치자마자 날카롭게 살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유진은 한숨처럼 웃었다. 상황 파악이 빠른 남자였다.

     손안에 쥐고 있는 준영의 팔목. 이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놓지 않았다. 그는 예의 없는 사람을 싫어했다. 서로 이름도 모르면서 저렇게 의식적으로 싸늘한 공기를 풍기는 남자에게 친절할 이유는 없었다.

     인후는 표정 없는 얼굴로 둘을 보고 있었다. 마른 손목이 큼직한 손에 휘어 잡혀 있었다. 이어 이쪽을 돌아보지 않는 검은 뒤통수를 보았다. 당황해서 굳은 거겠지. 함께한 시간이 긴만큼 그는 준영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잡힌 손목을 훑고, 시선을 쭉 올려 준영을 잡고 있는 이를 보았다. 모르는 남자였다. 제 학교가 아니니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서글서글한 눈매 덕분에 전체적인 인상이 선해 보이는 남자였다. 얼굴만 봐서는 마냥 부드러운데 잘 잡힌 어깨며 늘씬하지만 강단 있어 보이는 팔이 남자 냄새도 제법 풍기고 있었다. 인후가 그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나오라고 했지.”

     낮은 목소리에 준영이 으응 대답하며 고개를 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인후의 얼굴은 평소보다 더 날카로워 보였다. 입술이 자꾸 말라 혀를 내어 적셨다.

     “그런데.”

     인후가 턱짓으로 준영의 손목을 가리켰다. 그런데 왜 여기서 모르는 내가 남자한테 잡혀 있느냐는 뜻이었다. 준영은 그걸 단번에 이해했다.

     “나가던 중이었어.”

     “이봐요.”

     유진이 인후를 불렀다. 제게 잡힌 손목이 떨리고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약했다. 준영이 긴장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무릎에 피가 나는 게 보일 텐데 몰아붙이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인후는 유진이 마치 없는 사람이라는 듯 그의 부름을 무시했다. 시선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향해 있었다.

     “그 손 놓고 일어나 서준영.”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진이 놓아야만 하는 손이었다. 허. 유진은 헛웃음을 터트렸고, 준영은 그런 선배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입 모양으로 죄송해요 속삭이고 잡힌 손목을 슬그머니 빼내었다. 준영이 곤란한 상황이라는 게 눈에 빤히 보여, 유진은 객기 부리지 않고 순순히 놔주었다. 본래 배려가 몸에 익은 남자였다. 준영이 스스로 몸을 일으키자 인후가 다가왔다. 일어선 남자를 제 뒤에 세우고 유진과 마주섰다. 말없이 유진의 눈을 응시하다가 그가 들고 있는 준영의 가방을 가져왔다. 도발에 가까운 태도. 유진은 웃고 말았다.

     인후는 웃지 않았다. 준영의 손목을 쥐고 성큼성큼 도서관 앞을 빠져나왔다. 걸음이 빠른 남자를 인후가 엉거주춤 따라 걸었다. 무릎이 아팠다. 잠깐만 멈추자고 하고 싶은데,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섣불리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인후는 도서관 입구를 한참 내려와 인적 드문 아카시아 길에서 갑자기 멈췄다. 으앗. 준영은 또 걸음이 꼬여 앞 선 등에 코를 박고 말았다. 그 순간 제 별명을 통감했다. 하체부실. 팔랑팔랑 잘 넘어진다고 주위 사람들이 혀를 찰 때마다 그냥 싱겁게 웃고 말 일이 아니었다. 준영은 인후의 등을 짚은 채 고개를 떼었다. 아쿠, 인후야 미안. 얼얼한 코를 문지르며 멋쩍게 사과하자, 인후가 짧게 한 숨 쉬었다.

     “애냐.”

     돌아선 남자는 역시 표정이 없었다. 짤막한 핀잔에 준영은 고개를 저었다. 인후는 서늘한 눈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가 냉정한 것은 가슴 아팠다. 준영은 이제 아프지도 않은 코를 괜히 더 세게 문지르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지 않아도 저린 무릎이 더 욱신욱신했다. 준영은 최대한 어깨를 펴고 상대의 눈을 피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온도 없는 눈빛을 다 받아내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전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인후의 시선은 계속 되었다. 바람이 불어 둘의 머리카락이 날렸다. 한참 뒤 그가 준영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준영이 당황해 한 발자국 비키려 했지만 발목을 단단히 잡혔다. 인후는 준영의 청바지를 걷어 올렸다. 사내 녀석 다리가 어찌나 가는지 통이 좁은 옷이 무릎 위까지 어렵지 않게 올라갔다. 마른 다리를 잠시 쳐다본 인후는 소리 없이 숨을 뱉고, 무릎을 살폈다. 상처가 깊지는 않은데 부위가 넓은 걸로 보아 표피가 옷에 쓸린 모양이었다. 살갗 벗겨진 자리에 핏물 솟은 건 당연하고, 동그란 무릎 뼈 아래까지 한 뼘 정도 약간 말라붙어 있었다. 당장은 피가 새로 나지 않지만 움직일 때마다 다시 올라올 것 같았다.

     쯧. 혀를 한 번 차고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를 좋아하는 후배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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