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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 소년환상지 2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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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바뀌었다.

    아니.

    역사는 미묘하게 비틀렸다. 본래 홍위제는 상홍양의 조카딸인 상설연을 황후로 맞아야 했다. 황제는 모비인 자한황태후의 병세가 심각해 진 1 월부터 3월까지 황후를 들여야 한다는 상소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받는데 어머니의 와병을 이유로 거절했다. 3월의 어느 날, 계속 되 는 국혼 요청에 참다못한 황제는 조례에 칼을 들고 가 대신들을 위협해 조정이 거세게 들썩였다.

    홍위 10년, 4월.

    문무고관을 칼로 위협한 황제에 대한 개탄의 말이 나오려고 할 때 황제는 상홍양의 조카딸이자, 상홍양의 아우인 상규양의 둘째 딸 상설연 에게 청혼서를 보낸다.

    황제의 친필로 쓰인 청혼서에 관한 소문은 황도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청혼서의 내용인즉슨, 그대와 혼인을 바라니 부디 청혼을 받아주기를 바란다는 것과 현재 당신을 낳아주신 어머니께서 와병 중이라 혼인 을 할 수 없으니 모쪼록 당신의 곤란한 상황을 다정하고도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달라는 것, 그리고 곧 혼례식을 치러 그대가 입궁하여 황 궁에서 볼 수 있기를 소원한다는 것이다.

    황제의 친필 청혼서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황제를 괴롭히던 국혼 요청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상설연에 대한 드높은 칭송과 함께 풍태후께서 하루빨리 쾌차 하시어 두 분의 국혼이 이루어지기를 진실로 바란다는 축언이 잇따랐다.

    상설연과 상씨 일가는 황제의 청혼서를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황제는 다시 한 번 친필로 혼약서를 써서 보낸다. 상설연 역시 답서로 혼약서를 보낸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혼약서로 황실과 상 씨 가문의 혼인이 성립하게 된다. 이로써 본래 황후로 입궁하여야 할 상설연은 황후 예정자로 황후와 똑같은 위치를 갖게 된다.

    황실 족보에 상설연은 황후로 기록되고, 상설연은 입궁은 하지 않은 채이지만 황후이자 며느리의 입장으로 태황태후와 두 분 황태후, 선황 의 비빈들에게 단오절 선물을 보냈다.

    황제가 미쳤다.

    그 정도의 험악한 말이 오가는 상황에서 남자는 한 장의 청혼서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는 역사에 쓰인 대로 상씨 일가의 계획을 수 용하는 것으로 결정하였으나 행동은 달라서 역사는 기이하게 뒤틀리고 결과는 그보다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긴 나무 그림자 앞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낯선 기류가 다가왔다.

    "......."

    봄이었다. 올해 봄은 유난히 따뜻해 꽃나무가 일찍 개화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쓸고 갈 때마다화사한 꽃잎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열은 색 꽃잎이 훌날리는 공간으로 들어오는 남자는 현실감이 없었다. 그 남자가 아득한 역사 속의 황제라는 걸 잘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내가 말없이 예를 올렸다.

    「일어나라」

    나는 문득 황제에게 앞으로 펼쳐질 모든 사건에 대해서 폭로해 보고픈 충동을 느꼈다. 나와 남자, 우리 사이에 600년의 시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6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대 차이는 어떤 것인지 의아하기도 했다.

    홍위 10년, 7월.

    황제의 모비인 자한황태후가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황제는 어머니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를 원한다는 이유로 국혼을 무기한 연기했다.

    홍위 11년, 6월.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인 태황태후께서 돌아가셨다.

    "......."

    다시 국혼은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되었다. 조정에서 3년 탈상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대략 그 이후로 국혼에 대한 논의는 미루기로 했다.

    3년 뒤.

    홍위 14년, 칠월 스무하루.

    아침.

    조례가 열리는 곳에 잘 차려 입은 무복에 궁대를 패용하고 손에는 검을 들고 나타난 황제가 말씀하셨다. 황실 사냥 대회를 주최하겠다. 황 제께 머리를 조아리며 상홍양이 사냥터는 어디이옵니까, 라고 여쭈었고 황제가 웃으며 답했다.

    ‘황궁.’

    남자는 역사를 따라 차근차근히 걸어가고 있었다.

    「뭘 그리 넋 놓고 있느냐.」

    황후의 입궁이 미뤄지며 조정의 분위기도 양상을 달리 했다. 상홍양과 황후의 부친인 황제의 장인인 상규양이 함께 황제를 압박해야 하는 데 상씨 형제는 미세하게 분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든 것을 뜻대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상홍양은 역사와 다르지 않은데, 아직 황후가 입궁하지 않은 채라 상규양은 황제에게 우호적이고, 두 사람 사이의 틈을 감지한 조정의 각료들이 발 빠르게 대학사 상홍양과 황후 예정자 의 부친 상규양 사이를 오갔다. 상홍양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이들이 흩어지고 또 모였다 흩어지며 저희들끼리 편을 나누고 경쟁 을 하는 와중에 특별히 눈에 보이게 한 것은 없는 황제는 필요한 것을 야금야금 챙기고 있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셨습니까.」

    멍함에서 깨어 난 나는 의도치 않게 냉랭하게 말했다.

    「걸어서?」

    남자가 실없는 대답을 진지하게 했다.

    「재미없습니다.」

    나는 여전히 멍한 기분으로 차게 말했다.

    「내가 여기 오는데 문제라도 있나?」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 내 손을 잡아당기며 느긋하게 대꾸했다. 나를 움켜쥐는 커다란손에서 빠르게 손을 빼내고 떼어낸 손을 공손하게 치 웠다. 내 행동이 가소로운지 남자가 희미하게 웃으며 다시 한 번 내 손을 낚아채갔다.

    「놔주십시오.」

    아버지와 형님들은 황제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니냐고 심각하게 말했지만 역사적으로 황제와 미소년의 스캔들은 특별할 게 없다.

    중국의 황제들은 물론, 로마의 황제들, 아랍의 술탄들 모두 미소년을 탐하던 군주가 있으며 포로 중에 미소년은 각지의 군주로 보내졌으며 수청을 거부하다 처형당한 미소년의 기록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아서 황제 곁에 예쁘장한 소년이 있다면 스캔들 대상이 되는 게 이상하지 않 고 당연하다고 생각될 정도다.

    미소년 수난의 역사는 퍽 장대하다.

    특히 중국은 반악이니, 송옥이니 예로부터 전설적으로 잘생긴 남자에 대한 칭찬과 기록이 적지 않은 만큼 미소년과 잘생긴 황제의 연애에 떠드는데 망설임이 없을 터다.

    「싫은데.」

    황제는 어 린애를 다루듯 나를 대했다.

    「이러다 장가도 못가겠습니다.」 내 울컥한 말에 남자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

    「놔주십시오.」

    댁은 장가라도 갔지. 아닌가? 이 남자는 유부남인 것도 유부남이 아닌 것도 아니다. 사실 그게 더 기분이 나쁘다. 유부남이면 유부남이고, 유부남이 아니면 아닌 거지.

    「너, 혼인하기 싫다며.」

    황제가 째째하게 과거에 내가 한 말을 들먹였다.

    「예.」

    내가 예전에 그랬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장가 갈 걱정이냐?」

    나는 혼인에 대해 여전히 비관적이었다. 이 얼굴과 몸이 내 것이 아니기도 했고, 여자에 환장한 아버지와 형님의 방탕한 행태를 가까이서 지켜보다 보니 혼인 따위 다 부질없음을 알게 되었다.

    「장가를 안 가는 것과 못가는 건 다르지 않습니까.」

    「나 때문에 장가를 못 간다는 건가?」

    「폐하와 제가 손을 잡고 다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황제께서 다 큰 사내 손을 붙잡고 다니면 남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저와 정분났다는 의심만 받을 게 아닙니까. 저는 폐하와 그런 식으로 엮이는 건 사양하고 싶습니다. 폐하의 말씀대로 이제 말할 수 있으니 그만 손을 놓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제가 폐하의 손을 붙들고 별별 말 다 쓰기는 했습니다만, 그건 어쩔 수 없었던 거잖아요.」

    「효용을 다 했으니 버리겠다?」

    남자가 비약이 난무하는 화법을 구사했다. 졸지에 나는 황제를 저 필요할 때 쓸 만큼 쓰고 버린 방자한 무엇이 되었다. 뒷골이 뻐근하도록 울화가 치밀었지만 남자를 기분 내키는 대로 밀치고 갈 수 없었다.

    빌어먹을, 황제.

    「폐하. 저는 화제국의 미자하도, 안름도, 용양군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이러다 과장하기 좋아하는 시인들이 폐하와손잡고 다니는 저에 대 한 시라도 쓰면 어떡합니까.」

    역사에 단 한 줄 글로도 남고 싶지도 않지만 그런 형태로는 더더욱 남고 싶지 않다.

    「너에 대한 시라면 이미 네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가 있을 걸?」

    「.......」

    「전혀 믿지 않는 얼굴인데. 진짜다. 내가 단지 소문만 듣고 너를 알았다고 생각하나? 네 그 얼굴 보고 나름 시인나부랭이라고 자신하는 이 들이 손 묶고 가만히 있을 리 없잖아. 아직 너와 내가손잡고 다니는 다정한 사이라고 쓴 글은 본 적 없다만그게 뭐.」

    황제가 장난 가득한 웃음을 지은 채 떠들었다.

    「저는 그런 거 싫습니다.」

    「나는 좋은데.」

    그 대화는 언젠가 나눈 말과 흡사했다.

    「네?」

    「나는 남자라도 너라면 괜찮아.」 「…네……?」

    황제가 장난스럽게 생글거리는 얼굴로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단박에 이해가되지 않아서 멍하니 네? 하고 되묻기만 했다. 사고력이 형편없 어진 나를 본 남자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어?」

    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었다.

    「눈치 못 챘단 말이야?」

    남자가 다시 한 번 내게 답을 바라지 않는 질문을 던졌다. 잘생긴 눈썹이 한쪽으로 쓱 기울었다가제자리로 돌아갔다. 나를 마주하던 장난 가득하던 웃음은 사라지고 진지한 얼굴이 나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넸다.

    「내가 너 많이 좋아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고요한 얼굴이 나직하게 고백했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졌다.

    긴 나무 그림자 아래로 다시 한 번 부드러운 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화사한 꽃잎이 따듯한 기류를 따라 풍성하게 나부꼈다. 얼굴을 쓰다듬 는 간지러운 바람과 꽃잎의 감촉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림 같은 풍경이었다.

    스무 살다운, 조금은 어린 소년 같기도 한 천진한 고백을 순수하게 내뱉는 남자의 얼굴에서 불순함이라고 찾아볼 수 없었다. 시야로 파고 드는 현실감이 없는 광경에 이지를 빼앗기는 것만 같았다. 귓가로 번진 말의 진위를 파악할 틈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입술이 열렸다. 감당 할 수 없는 당황은 나의 공격성과 대담성을 끌어내었다.

    「농, 농담 마십시오!」

    버럭 소리를 지르고 재빨리 도망쳤다.

    한(漢)나라 무제 때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이 저술한 역사서 사기(史記)는 본기(本記) 12권, 표(表) 10권, 서(書) 8권, 세가(世家) 30권, 열전(列傳) 70권 등 전1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기의 정수라 평가되는 중국의 고대 인물들을 다룬 개인의 전기를 열전(列傳)이라 한다.

    BC 90년경에 완성된 이 역사서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며 동서양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관 포지교(管胞之交)’, ‘토사구팽(兒死約꿍)’과 같은 고사성어로도 널리 알려진 사기 열전에는 ‘여도지조|(餘桃之罪)’란 말 또한 기록되어 있다.

    여도지죄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이다.

    사기열전 중 한비자.

    세난(說難)편에서.

    전국시대의 위(衛)나라에 미자하(親子理)라는 미동(美童)이 있었는데 너무 잘생겨서 위나라 임금 영공의 총애를 받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미자하는 급한 김에 임금의 수레를 타고 어머니 병문안을 다녀왔는데 당시 국왕의 수레를 함부로 쓰면 발뒤꿈치를 잘리는 ‘월형’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임금은 죄를 묻기는커녕 “효성스럽도다! 어머니를 위해서 월형까지 범하다니.”라고 말했다.

    또 미자하가 군주와 과수원에 놀러 갔다가, 복숭아를 먹어보니 맛이 달아 다 먹지 않고 (먹던 것을) 군주에게 바쳤다. 이는 불경죄로 처벌 받을 수 있는 중대한 죄였음에도, 임금은 “나를 끔찍이도 위해주는구나. 자기 입도 잊어버리고 나를 생각하다니!”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홀러 미자하가 미색(美色)이 쇠해지고 임금의 총애를 잃었을 때, 죄를 지었다. 그러자 임금이 호통 치길 “네 이놈. 너는 예 전에 군명을 사칭해 내 수레를 함부로 홈쳐 탔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내게 주었지. 고얀 놈이로구나!”라며 중한 벌을 내렸다고 했다.

    한비자는 이 에피소드를 평하기를 “미자하의 행동은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변한 것은 군주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총애를 받 을 때에는 군주의 마음에 들어 더욱 친밀해지지만,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가 마땅한 것이라 무슨 말을 할 때는 군주의 마음을 잘 헤아려서 상황 봐 가면서 해야 할 것”이라 했다.

    “개소리.”

    내 입에서 거친 말이 토해졌다.

    본래 한비자가 이 에피소드를 쓴 것은 세난, 세(說) 즉 자기 의견을 진술하여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는 방법이 쉽지 않다는 듯 에서 난(難)이라고도 한다. 무릇 남에게 자기의견을 진술하기가 어렵다는 것으로 설득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가 정확히 뜻하는 바는 설득하려는 상대, 듣는 이의 마음을 헤아려 나의 언변을 그의 마음 에 맞출 수 있는가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간언하거나 처세, 유세를 할 때 상대의 마음을 잘 헤아리라는 그런 말이다.

    그러나 내게는 눈에 쓰인 콩깍지가 벗겨지면 어떻게 되는가를 잘 알려주는 고사로 보일 뿐이다. 또한 BC 770년부터 BC 221 년 사이, 춘추 전국시대에 위나라 왕이 총애하던 미소년의 미모가 시들자 마음이 식었다는 흔한 남자의 변심에 관한 이야기이자, 지독한 외모지상주의 에 미동을 좋아한 음흉한 중년 남자의 염치없고도 찌질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써둔 것에 불과했다.

    거기다 이게 BC, 기원전에 있었던 일이다.

    무려 기원전!

    까놓고 말해서 얼빠 중년 왕이 예쁜 미소년을 곁에 두고 예뻐했는데 예쁠 땐 뭔 짓을 해도 예쁘다고 해놓고 예쁨이 가시고 눈에 콩깍지가 벗겨지며 예쁠 때 오냐오냐 하고 넘어간 죄까지 끄집어내 벌을 주고 내다버렸다는 후안무치한 이야기다.

    "......."

    현실의 황제, 제후, 군, 왕, 권력자는 대개 저렇다.

    탁.

    전혀 다른 의미지만 홍위제는, 황제는 저런 황제였다. 그 남자는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었다. 단지 아름다움이 쇠해서 버리는 게 아니라 황 제가 생각할 때 상대의 가치가 득보다 실이 크다면 자신에게 얼마나 충성했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했건 서로 얼마나 각별한 관계이건 상관치 않고 끝을 고할 성정이었다.

    신경질적으로 덮은 책을 다시 펼쳤다.

    파라락.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 줄기 아래에 한 자 길이의 거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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