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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mbof] 스올시티 sheolcity 1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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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름끼치는 찬바람이 새어 들어와, 언제쯤 감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엉킨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희미한 소란스러움이 들려왔다. 미세한 틈으로 들어온 달빛이 공포에 휩싸인 내 눈을 똑바로 비췄다. 커진 동공이 극도로 긴장한 나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길게 뻗었던 다리를 조용히 오므렸다. 옆에 놓아두었던 자동권총을 손에 들고 어깨를 낮게 움츠렸다. 기괴한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서로 소통하듯 어둠속에서 연달아 들려왔다.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귓속으로 기괴한 소리가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접은 두 다리를 가슴으로 당겨 끌어안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스올시티 sheolcity : 살아남은 자

    오늘은, 어젯밤 나를 공포에 떨도록 만든 원인을 찾기로 정했다. 무엇이 나타나지 않으면 대체로 조용한 ‘그것’이 간밤에는 어째서 그렇게 시끄러웠는지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내가 그토록 절실히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작은 희망이, 곧 절망이라는 쓴 고배를 마시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지만, 그 작은 희망은, 곧 내가 살아가는 이유였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데도 나는 가야만 했다. 작은 희망조차 편하게 놓지 못하는, 용기 따위라곤 없는 나약한 놈이기에.

    나는 공포심으로 솟구쳐 나오려는 구토를 간신히 참아내고, 크로스 백팩을 등에 둘러매었다.

    머리꼭대기에 뜬 해를 확인해서야 12~2시쯤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화창한 날씨였다. 차가운 밤과는 다른 포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걸친 체크무늬의 도톰한 면 남방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양 주머니에 들어있는 묵직한 탄창이 조금 신경 쓰이는 것 외에는 걷기가 괜찮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거리는 한산했다. 일요일의 이른 아침처럼 웅크리고 잠든 모습이었다. 바람이 불면, 곳곳의 나뭇잎들 스치는 소리가 침묵 속에서 낮게 들려왔다. 길게 뻗은 골목길의 어느 2층집 주택 입구 앞에는 자동차며 자전거들이 어수선하게 세워져 있었다. 바람에 힘없이 끼익 열린 목재현관문 위로 무수한 손자국들이 찍혀있었다. 검은 손자국들. 이어진 잿빛 담벼락에도 무차별로 찍혀 있는 그것들은 배고픔에 굶주린 ‘그것’의 흔적이었다. 따사로운 환한 햇빛 때문에 지금 ‘그것’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밤에 들었던 소리가 환청이라 생각될 정도로 거리는 조용했고 여유로움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한시도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평온한 일상들. 출근하기위해 현관문을 나선다. 마침 앞집의 어린 여학생도 등교를 위해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여학생을 기다리던 또래 친구들이 연신 웃으며 재잘거린다. 현관문이 열린 어느 집 마당에서는 누군가 싱그러운 화목에 물을 뿌리고, 생기가 움트는 골목길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스쳐지나가던 사람이 반갑게 목례를 한다. 비좁은 곳을 지나가려는 차들의 경적소리와 컹컹 개 짖는 소리, 요란한 리듬의 벨이 울리는 폰을 들어 전화를 받던 남자가 지나가는 방앗간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떡 냄새에 뒤돌아본다. 그런 남자와 부딪히지 않게 몸을 슬쩍 피한 여자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는다. 평범한 일상들.

    과거는 꿈보다 아련하고 씁쓸했다. 갑자기 두통이 밀려와 눈을 길게 감았다 떴다. 과거를 생각하고 나면 항상 두통이 뒤따랐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단념을 하면서 생긴 후유증인 걸까.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메슥거림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진 않았다.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잔상들을 털어내기 위해 낮은 한숨을 조용히 두어 번 내쉬었다.

    거리는 전과 변함없었다. 하늘은 맑고 화목은 푸르렀다. 그런데도 이렇게 끔찍한 것은 말이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북적대던 인간들이 온데간데없이 모조리 사라지고 나 홀로 이 세계에 남았다는 것과 골목 구석구석 길가 군데군데 아직 불 켜진 광고판, 상점들의 창가, 멈춰있는 차들의 창문에 남아있는 검붉은 핏자국들. ‘그것’들의 존재였다.

    미군용 워커는 생각보다 무거웠지만, 발자국소리가 들리지 않아 만족스러웠다. 멀리서 높게 세워진 아파트단지들이 보였다. 으스스한 주택단지를 벗어나서는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조용한 8차선 도로주변을 살피며 가로질렀다. 혼란스러웠던 그 날 아마 일어났을 8중 이상의 추돌현장을 지나쳤다. 도로건너의 널찍한 부지에는 40층 이상의 높은 빌딩들이 햇빛을 반사시키며 반짝거렸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자동권총을 좀 더 힘주어 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밤의 소란은 이 부근쯤이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그것’이 굶주린 하이에나들처럼 괴성을 질러댄 곳. 하지만 시멘트 바닥에 간간히 남아있는 타이어자국외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그것’역시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위화감이 들었다. 어딘가에 있을 ‘그것’들은 아직 나의 존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알고 있다면, 이렇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도록 놔두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것’은 간밤에 도대체 이 부근에서 무엇을 한 것일까? 그 자리에서 빙 돌며 주위를 살피다가 나는 등줄기로 흐르는 식은땀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이 예감이 맞는지,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주변을 조사하기 위해 빌딩을 지나쳤다. 빌딩 뒤쪽의 빙 둘러진 상가들 사이로 보이는 빌딩과 별 차이 없는 높이의 주상복합의 아파트 단지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게 강한 텔레파시를 보내왔다. 차량용 바리케이트가 반쯤 부서진 체 출입을 막고 있는 입구에 서서 구조를 살폈다. O자 형태로 세워진 건물이었다. 예감이 더욱 정확하게 꽂히는 것 같았다. 이 건물은 ‘그것’에 있어 최적의 장소처럼 보였다. 어떤 각도로 들어오는 볕이든 피하기 매우 좋은 구조배치와 어쩌면 곳곳에 숨어서 아직 생존하고 있을지도 모를, 잠재된 먹이가 있을 가능성이 큰 장소였다.

    두려움과 다른 의미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일말의 작은 가능성이라도 나에겐 희망이었다.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손에 들린 무기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장전이 되 있는 것을 확인하고, 허리 뒤춤에 가로로 꽂아둔 M9바요넷[30센티 미군용 나이프]을 확인했다. 가방 안에 고이 모셔둔 것들이 다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려다 그만두고 길게 숨을 들이켰다 훅 뱉었다. 갈증이 일었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살피기에는 여러모로 위험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소비될 것이라 판단하고, 지상을 빙 둘러서 5시 남 방향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기로 했다. 인적 없이 고요한 상점들을 차례로 지났다. 내추럴 라이프니 뭐니 해서 만들어놓은 짧은 산책로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움찔 거리고 말았다. 이곳은 주택단지보다 더한 음지였다. 한참을 관리 받지 못한 나무와 수풀이 림을 이루고 있었다. 신경을 곤두세워 두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갈만한 고운 자갈길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이윽고 바닥마감재가 바뀌었다.

    고급바닥재를 사용한 반질반질한 바닥에는 온통 오물 투성이었다. 원형을 식별해 낼 수 있는 것은 핏자국뿐이었다. 오래전에 뿌려진 듯 검게 말라버린 흔적도 있었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이는 검붉은 핏물도 인위적으로 부서진 것 같은 구덩이에 고여 말라가고 있었다. 침을 삼키며 자동권총을 들어 총구를 겨눴다. 목표물은 움직이는 것 모두였다. 당장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수 있도록 검지를 움직였다. 몸을 낮추고 숨을 죽였다. 머리 위에 쳐져서 넓은 영역으로 그늘을 만들어내고 있는 대리석 지붕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왼손에 총을 든 체로, 오른 손으로 허리 뒤춤의 M9바요넷을 뽑아 손에 쥐었다.

    발아래의 핏자국이 건물의 안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시큰한 피비린내와 특유의 역겨운 냄새가 온 사방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조심히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갔다. 길의 폭은 10미터 내외였다.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수풀 림은 그늘아래서 금세 아무렇게나 엉켜서 울창해진 듯 했다. 엉망진창으로 자라난 잡초와 넝쿨들이 길을 더욱 음침하게 만들었다. 벽에 착 달라붙은 담쟁이 덩쿨 사이사이 벽면에도 손자국들이 찍혀있었다.

    갑자기 어디쯤에선가 불길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기괴한 소리. 가깝지 않았지만, 멀지도 않은 곳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것’들임이 틀림없었다. 되돌아 뛰쳐나가고 싶은 본능을 가까스로 달래고 참아가며 무거운 발걸음을 한발 한발 떼어 나아갔다. 또다시 홀로 남겨지는 공포 역시나 이것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두렵지 않다고 내 자신에게 고함을 쳐대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건물 사이 길의 끝에 다다르자마자, 커다란 나무 뒤 수풀 속으로 들어가 벽에 몸을 바짝 붙여 낮췄다. 수풀너머의 건물의 중앙 분수대 근처에 검은 그림자가 왔다갔다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빠른 움직임이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헐떡이며 뛰어다니는 ‘그것’. ‘그것’들.

    세 마리. 네 마리...? 아니다, 다섯 마리이상 이였다. 물이 마른 중앙 분수대 주변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그것’들은 몹시 흥분상태였다. 끓어오르는 가래를 어쩌지 못한 불쾌한 소리를 내는 놈들은 고개를 홱홱 젖혀가며 사방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분명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본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허공만 쳐다보는 놈들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반응은, 희망의 확신을 가지게 해주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덜덜 떨려오는 몸을 느끼며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살폈다. 하지만 놈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우왕좌왕거리기만 했다.

    제일 좋은 시나리오는, 놈들이 잠시 후에 무언가를 발견하고 쫓아가면 그 뒤를 쫓아 기습적으로 놈들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생존자들과 조우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놈들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 해가 저물고 밤이 다가올수록 놈들의 후각과 운동신경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너무 위험했다. 지금 움직여주는 것이 가장 좋을 타이밍이긴 한데, 머리 나쁜 놈들은 자신들이 찾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수풀사이로 머리 내밀며 놈들을 살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일곱 마리였다. 성인남자 셋, 허리 굽은 늙은이 하나, 키 작은 여자 하나, 어린아이 둘이었다. 조금 거리가 있어서 확실하게 성별을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17발을 연달아 사격할 수 있는 자동권총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어딘가 숨어있는 놈들이 있다 하더라도 여분의 탄창은 넉넉히 있으니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놈들을 살폈다. 놈들 외에는 그 주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건물들 위로도 딱히 별다른 것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키 작은 여자 하나가 소리를 지를 새도 없이 뒤로 픽 나자빠졌다. 극도로 흥분한 놈들이 괴음을 내지르며 주위를 살펴대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눈을 부릅뜨고 곧바로 여자가 쓰러진 반대 방향의 아파트 건물 위를 쳐다보았다. 유리창과 이질적인 반짝거림이 나의 레이더망에 걸려들었다. 저격수!

    확신하자마자 그토록 원했던 결과를 얻어냈다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움츠렸던 몸을 펴고 탄성을 지었다.

    “!!!”

    그와 동시에 흥분한 놈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새빨간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놈들이 괴음을 지르며 내달려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맞닥뜨린 공포로 이가 딱딱 부딪혔다. 어떤 생각 따위도 떠오르지 않았다. 방해물이 되어버린 나무수풀을 본능적으로 뛰쳐나와 놈들을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탕! 탕! 탕! 팔에 강한 진동을 남기며 연발로 터져나가는 탄알에 선두로 달려들던 어린아이의 얼굴이 짓뭉개지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바람에 바로 뒤에서 쫓던 늙은이와 아이가 함께 발이 걸려 넘어졌다.

    나머지 남자 셋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넘어졌던 늙은이와 아이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줄지어 달려왔다. 탕 탕 탕 탕 탕 탕! 어깨와 심장, 복부, 중심부를 맞아도 잠시 주춤할 뿐 놈들을 막을 수 없었다. 놈들은 맹렬한 기세로 가깝게 다가왔다. 급하게 숨을 훅 들이마시고, 도망치려고 몸을 튼 상태에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앞의 놈의 머리가 뒤로 퍽 꺾이더니 풀썩 쓰러졌다.

    탕 탕 탕 탕! 오른쪽에서 달려오던 놈의 이마가 둔탁한 소음을 내며 꿰뚫렸다. 점점 정확해지는 명중률에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포와 흥분 속에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철컥철컥! 빈 탄창 올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얼른 주머니에서 새 탄창을 꺼내려는데 오른손에 든 나이프 때문에 잠시 당황하고 말았다. 그 사이, 왼쪽에서 달려들던 남자가 3미터 안으로 가깝게 뛰어왔다. 자동권총을 버리고, 나이프를 왼손으로 바꿔 들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남자의 모습은 끔찍하다 못해 소름끼쳤다. 볼 때마다 진저리쳐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출혈로 인해 시뻘게진 공막은 마치 한 맺힌 악마처럼 참담했다. 바로 코앞까지 뛰어온 놈이 괴성을 지르며 두 손을 뻗어 달려들었다. 동시에 몸을 숙여 날카로운 나이프를 상체를 향해 휘둘렀다. 놈의 왼팔이 완벽하게 잘려나가지 못해 덜렁거렸다. 반동으로 바닥에 쳐 박혀 쓰러진 놈 의 뒤를 이어 달려드는 늙은이의 복부를 힘껏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그대로 목을 날렸다. 검은 피가 솟구쳐 사방으로 튀었다. 쉴 새 없이 다시 나이프를 거머쥐고 뒤에서 듣기 거북한 쇳소리를 내며 일어서려고 버둥대는 남자의 목을 사정없이 절단했다.

    “크르륵..”

    뒤돌았다. 마지막 남은 어린 여자아이가 긴 송곳니를 드러내며 서 있었다. 끔찍한 괴음을 내며 시뻘건 눈으로 살기를 드러내는 여자아이의 몸은 너무나 작고 연약했다. 뺨 부근에 살점이 뜯겨져나간 곳은 검은 잇몸과 누런 이가 드러나 있었고, 벌건 피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아이가 작게 입술을 오므리는가 싶더니, 뱀처럼 주둥이를 찢어 벌려 괴성을 지르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믿기지 않는 점프력으로 뛰어오른 어린아이를 향해 나이프를 세게 거머쥐며 시선이 마주치려는 찰나, 그것은 공중에서 순식간에 퍽 터져 박살이 났다.

    “......”

    아이의 차가운 피가 내 몸을 비롯해 온 사방으로 튀었다.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몸이 내 발치에 툭 떨어졌다. 방어자세로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는데, 멀리서 무수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끔찍한 괴음이 건물을 울렸다. 나는 서둘러 나이프를 허리뒤춤 칼집에 찔러 넣었다. 멀리 던져놓은 자동권총을 우왕좌왕 집어 들어 얼른 탄창을 갈아 장전했다. 그리곤 얼른 저격수가 있을 것이라 판단되는 12시방향의 건물을 향해 뛰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숨었다가 이제야 나온 것인지 놈들의 수가 좀 전보다 두세 배는 많았다. 내가 왔던 길과, 2시와 4시, 6시, 8시 방향의 건물 곳곳에서도 놈들이 몰려나왔다. 중앙 분수대를 지나쳐 12시 방향의 건물 입구에 다다랐을 때 뜀박질을 멈춰 위치를 살폈다. 열려있는 커다란 투명 유리문을 통과해 상가의 복도로 들어섰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놈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이생물체답게 괴음을 지르며 뒤쫓아 달려오고 있었다.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 문이 잠겨 있는 바람에 서둘러 10시 방향의 건물과 이어진 상가 복도를 달렸다. 멀리 상가 안에서 사람 그림자가 복도로 걸어 나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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