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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니] 애정주파수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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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코딩 UTF-8

    [임유니] 애정 주파수

    <-- 0. 프롤로그 -->

    타인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당연한 관계가 있다. 최재원과 이연준이 그러하다. 그들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삼십여 년 전 한 산부인과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둘은 두 시간 차이로 같은 병원에서 태어났다. 신생아실 동기로 시작된 인연은 그 후로도 끈질기게 이어졌다.

    그들은 부자들이 모여 사는 골목에서 함께 자라났다. 재원은 항상 연준 옆을 맴돌았다. 자신과 다르게 뽀얗고 예쁘장한 얼굴을 조물조물하기도 하면서, 연준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했다. 연준은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재원만은 받아주었다. 그들은 형제처럼 친구처럼 자라났다.

    그러다가 1998년. 수많은 가장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 해가 찾아왔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재원의 아버지는 쫄딱 망하고 말았다. 꽤 크게 하던 사업은 눈 깜짝할 새에 거대한 빚만 남기고 분해되어버렸다. 당시 뉴스에 끊임없이 나오던 IMF의 희생양 중 하나가 재원 네였다.

    그들은 부촌에서 떠나와야 했다. 재원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재개발이 된다 만다 하는 지역에서 자그마한 셋방을 얻어 살았다. 결로 현상이 심한 집은 항상 창문에 물기가 맺혀 있었으며 벽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곰팡이 포자가 재원의 여린 콧속을 침입했고 재원은 밤마다 코를 훌쩍거렸다.

    재원은 연준의 생각이 났다. 이사 온 곳은 모든 게 예전 동네보다 후졌다. 거리상으로는 그곳과 멀지 않았지만 모든 게 달랐다. 여기는 쥐새끼 한 마리도 그곳에 사는 놈보다 초라하고 음험하리라. 재원은 사춘기와 함께 맞이한 집안의 비극에 우울하고 반항적인 중학생이 되었다. 방황하고 담배도 배우고 질 나쁜 애들과 어울려 다녔다. 가끔씩 찾아오는 연준을 만나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다.

    “이연준!”

    열네 살의 어느 날, 재원의 동네에 연준이 놀러왔다. 재원은 연준을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뛰어갔다. 연준은 부드럽게 웃으며 재원을 맞이했다.

    “왔어?”

    연준은 와이셔츠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빳빳한 교복 조끼를 입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연준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튀었다. 연준은 키가 또래에 비해 훨씬 크고 늘씬했다. 이목구비가 무척 섬세하여 잘생겼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그만의 독특한 분위기였다. 얼핏 보면 연준은 귀티 나는 상류층 도련님 같다. 온화한 눈매, 항상 옅게 미소 짓고 있는 입가, 꼿꼿한 자세 등등. 그러나 자세히 보면 인상이 확 달라지곤 했다. 웃고 있는 입매와 다르게 눈동자는 서늘했다. 도발적으로 보이다가도 냉소로 가득 차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것들이 어우러져, 사람들은 연준이 상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재원만은 예외였다. 재원은 어릴 때나 커서나 항상 서슴없이 연준에게 다가갔다.

    “재원아. 어디 갈까?”

    “피씨방?”

    “으음. 너랑 이야기하고 싶은데. 거긴 시끄럽잖아.”

    “어, 그러면…….”

    “캐치볼 할 겸 공원 갈래? 혹시 몰라서 글러브랑 공 가져왔는데.”

    “좋아.”

    연준이 재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늘 연준은 재원보다 반 뼘이 컸다. 연준은 재원을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잘 지냈어?”

    “뭐 그냥.”

    별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재원은 연준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항상 온화하고 다정하며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였다. 재원은 자신이 중학교에서 삐뚤어진 건 연준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연준이 곁에 있다면 달동네에서도 잘 살아갔을 것이다. 두 사람은 공원에 도착하여 캐치볼을 했다. 몸을 움직이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야, 최재원!”

    불쑥 소년 두 명이 재원에게로 다가왔다. 연준은 캐치볼을 멈추고 못 박힌 듯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 뭐야. 너희 왜 여기 있냐.”

    재원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었다. 친구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뭐하지만. 재원은 그들에게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 다만 어쩌다 보니 친하게 지낼 뿐이었다. 그들에게 담배를 배우고 나이 많은 형들을 소개 받았다.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빨리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으니까.

    연준은 고요한 시선으로 그들을 응시하다가, 저벅저벅 걸어와 재원의 옆에 붙었다.

    “누구야?”

    “아. 학교 친구야.”

    친구들 중 한 명이 연준을 외계인 보듯이 바라보았다.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생김새와 몸짓이었다. 마치 그 혼자만 붕 떠있는 듯했다. 최재원이 저런 애랑 친하게 지내나? 소년은 잠시 의문을 품다가 바지 주머니에 넣어놓았던 게 문득 떠올랐다.

    “맞다, 야. 최재원. 네가 구해달라던 거. 씨발. 내가 이거 구하느라고 좆 빠지는 줄 알았어.”

    소년이 재원에게 건넨 건 비밀 봉지에 초라하게 담겨 있는 담배 몇 개비였다. 재원은 잠시 당황하며 연준의 눈치를 보았다.

    “뭐야. 반응이 왜 이래. 네가 하도 구해달라고 지랄해서 형들한테 간신히 받아왔더니.”

    친구들이 미적지근한 재원의 반응에 주먹으로 그의 등을 퍽퍽 때렸다. 재원은 몸을 휙 피하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씨발. 때리지 마. 아, 존나 아파.”

    재원이 짜증내며 친구들과 말을 주고받았다. 연준은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잠시 후 친구들이 사라지고 다시 둘이 남게 되어서야 연준이 입을 열었다.

    “재원아. 너 담배 펴?”

    “어쩌다 보니까…….”

    “아까 쟤네들이랑 친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연준의 몸이 재원 쪽으로 기울었다. 갑자기 연준이 재원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손가락이 마치 거미줄처럼 재원의 피부를 단단히 옥죄어왔다. 재원이 당황해서 눈을 끔뻑거렸다. 연준과 콧잔등이 부딪힐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붙잡힌 손목은 악 소리가 날 만큼 아팠다. 이연준이 힘이 이렇게 셌나? 몇 주 못 본 사이에 연준은 훌쩍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손가락도 길어지고 관절도 굵어졌다. 재원은 어른에게 혼나는 아이 같은 모양새로 연준을 올려다보았다.

    “어, 미안…….”

    “나한테 숨긴 거야?”

    “그런 거 아니야. 말할 기회가 없어서…….”

    연준의 밤색 눈동자가 재원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연준의 속눈썹이 바르르 떨렸다.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었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나한테 비밀 만들지 마.”

    연준은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시무룩해하는 모습에 재원이 깜짝 놀랐다.

    “최재원 답지 않게 굴지도 말고. 너 그러는 거 싫어…….”

    피부가 시뻘겋게 변하고 나서야 연준이 손목을 놓아주었지만 재원은 손목이 아픈 줄도 몰랐다. 연준은 가장 소중한 친구였고 연준을 상처 입힌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후 재원은 연준의 앞에서는 양아치처럼 굴지 않으려 노력했다.

    고등학교는 같은 곳으로 진학했다. 학군이 아슬아슬하게 겹쳐 가능한 일이었다. 재원은 특목고에 가기로 했던 연준이 인문계에 온 것이 의아스러웠지만 어쨌든 매우 기뻤다.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재원은 연준의 곁에 찰싹 붙어 다녔다. 비행생활은 이제 안녕이다. 친구야 연준만 있으면 되었다. 연준은 그런 재원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기만 했다.

    이후로 쭉 함께였다. 재원은 연준이 자신을 다 받아준다는 것만 해도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 내가 말이야……. 이연준, 들어 봐…….”

    지금만 해도 그렇다.

    “응. 재원아. 듣고 있어.”

    연준이 재원의 어깨를 다정하게 토닥였다. 재원은 가물가물한 정신으로 셈을 해본다. 내가 지금 스물다섯인가, 여섯인가. 정초가 되었으니 이제 여섯이군. 그는 새해를 맞아 실연을 당했고 그 분풀이를 유일한 친구인 연준의 집에서 하고 있다. 연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며칠이나 됐지?”

    “45일……. 야.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냐? 왜 나는 길게 못 사귀지.”

    “저번보다 7일이나 더 사귀었네. 차차 나아질 거야.”

    연준은 빈 잔에 술을 따라주며 옅게 웃었다. 재원은 중얼대며 연준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 첫눈에 보고 반했는데, 이번에는 진짜일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나의 진심이 안 느껴진다며 차여버렸다고.

    “아씨. 내가, 그, 뭐냐. 전에…… 너랑 갔었는데, 거기 레스토랑, 맛있었던…….”

    “푸에쥬.”

    “그래. 알바비 벌어서 거기도 데려갔는데…….”

    “재원아. 너 졸려 보여.”

    연준이 재원에게로 다가와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재원은 비틀거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연준이 옆에 딱 붙어 서서 씻는 걸 도와주었다. 재원은 반쯤 눈을 감은 채 양치질을 했다. 다 씻고 나서는 연준의 침대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재원이 아이보리색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이연준.”

    “응?”

    “나 이제 연애 안 할 거야.”

    그는 술에 취해서 되는대로 지껄였다.

    “재원아. 너 여친이랑 헤어질 때마다 그 소리 해.”

    “기억 안 나는데…….”

    “난 너랑 있었던 일 다 기억해.”

    “일곱 살 때도 기억하잖아.”

    “너 산타 할아버지 보고 유치원에서 오줌 쌌던 거.”

    “잊어, 좀.”

    연준이 낮게 웃으며 재원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재원은 눈을 감았다. 시야가 캄캄해진 채로도 머리가 핑글핑글 도는 게 느껴진다. 재원이 알코올 섞인 숨을 푸우 크게 내쉬며 말했다.

    “몰라……. 연애 꼭 해야 되나? 그런 생각이 든다. 사귀어봤자 오래 못 가고.”

    “그 사람들이랑 잘 안 맞았던 거지.”

    “으음, 너랑은 잘 맞는데. 연애 안 하고 차라리 너랑 살까 봐.”

    재원이 몸을 돌려 연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연준은 간지럽다고 밀쳐냈지만 밀어내는 힘이 미약했다. 재원은 무리 없이 연준의 가슴팍에 안착할 수 있었다. 연준은 물끄러미 둥그렇고 까만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짧은 속눈썹은 바르르 떨리고 있다. 기절하듯 잠에 빠져 들어가는 재원의 귓가에 연준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그럴까? 나랑 같이 살까?”

    “…….”

    “그럴래, 재원아?”

    무의식에 빠진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재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최재원은 학습능력이 없는 인간이었다. 이때의 대화가 무색하게 그는 가끔씩 외로움에 사무칠 때면 부나방처럼 몇 번이고 연애전선에 뛰어 들었고 매번 장렬히 실패했다. 삼 개월 이상 가는 법이 없었다. 라디오국에 PD로 취직하고 나름 착실하게 밥벌이를 하며 살아갔지만 연애는 꼬이기만 했다.

    그렇게 삼십 대가 되었다. 남들은 안정을 찾아갈 때 그의 삶은 격변하기 시작했다. 연준에게도 말할 수 없는 커다란 비밀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모든 건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누군가가 세밀하게 짜놓은 판을 어그러뜨리는 그 비밀로부터. 서른둘의 첫째 달이었다.

    ========== 작품 후기 ==========

    소야의 늪, 키스톤 로맨틱 콤비를 썼던 임유니입니다 ^ㅅ^)/

    새로운 이야기를 들고 왔어요. 취향을 좀 탈 것 같은 이야기지만, 취향에 맞으신다면 함께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 1. Coastal Love -->

    ♪ Coastal Love – Honne

    재원은 눈가를 문지르며 안경을 꺼내 썼다. 오늘은 한꺼번에 라디오 3회 차를 녹음하는 날이었다. 재원이 맡고 있는 프로그램은 새벽 2시부터 3시까지 진행되는 심야 라디오. 그가 낮밤이 바뀐 삶을 살게 된지도 벌써 2년째다.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생방송으로 진행되기에, 적막이 내려앉은 새벽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다. 재원은 대본을 빠르게 훑어보며 DJ가 오기를 기다렸다. 옆에 앉아있던 작가, 선아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최피디님. 안 좋은 일 있으세요?”

    “아니요. 그래 보입니까?”

    “네. 엄청.”

    “잠을 못 자서.”

    재원은 들고 온 커피를 홀짝였다. 얼른 퇴근하고 싶었다. 재원의 날카로운 눈매가 힘없이 늘어졌다.

    “선아 씨.”

    “네?”

    “오프닝 멘트가 너무 별롭니다.”

    “고치라고 하셔서 고친 건데.”

    “차라리 고치기 전이 나은데요. 그러라고 전으로 돌리란 말은 아니고. 날씨 이야기 빼죠. 이틀 전에도 비슷하게 썼잖아요.”

    “네, 네. 다시 쓸게요.”

    선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본을 노려보았다.

    “선아 씨. 새 코너명은 생각해 뒀습니까?”

    “아우, 피디님. 한 번에 하나씩 물어보시면 안 돼요? 하아, 코너명……. 딱히 색다른 게 안 떠오르네요. 게스트 섭외도 아직 난항이고.”

    매주 화요일, DJ가 고정 게스트 한 명과 함께 연애 상담을 해주는 코너를 신설하기로 했다. 청취율이 동시간대 꼴찌였다. 뭐라도 새로운 걸 해야만 한다. 생방송 횟수를 늘려보기도 했으나, 최근에 DJ가 스케줄이 많아져 그도 만만치 않아졌다. 재원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며칠 전에 부장님한테 한 소리 들었는데. 청취율 계속 답보 상태면 봄 개편 때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다음 주부턴 생방송도 자주 하는데……. 너무 하시네.”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하자는 이야깁니다. 코너명 생각해 봐요.”

    선아가 두 손으로 머리통을 움켜잡으며 앓는 소리를 냈다.

    “최피디님. 제가 요즘 연애 쪽으로는 생각하기도 싫은 상태라서 그런가. 머리가 꽉 막힌 것 같아요.”

    선아가 삼 년간 연애해온 라디오국 엔지니어에게 대차게 차였다는 소문은 이미 사내에 쫙 퍼졌다.

    “그런 남자 못 잊어서 안 괜찮으면 선아 씨만 손해입니다.”

    선아가 재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재원은 안경을 다시 벗어서 와이셔츠 주머니에 꽂으며 이리저리 어깨 스트레칭을 했다. 선아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피디님은 연애도 엄청 쿨하게 할 것 같아요.”

    “제가요?”

    “그냥. 성격이 그러시잖아요. 워낙 마이웨이시고. 아, 욕하는 거 아니에요. 아시죠? 저 최피디님 좋아하는 거.”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에이. 여하튼 얼굴도 잘생기셨고 인기도 많으시니까. 금방 잊고 언제든 새 연애를 하실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재원은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맞는 소리였다. 이별한 날 연준에게 찾아가서 진탕 술 마시고 나면 그 다음 날부터는 말짱했다. 감정이 얕았던 건지, 원래 성격이 그 모양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이번 연애도 그럴까? 이번은 뭔가 좀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재원의 눈동자가 비어있는 스튜디오 안을 느리게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벽시계를 힐끔 돌아본다. 얘는 언제 오냐. 재원이 미간을 좁히며 10분이 지났음에도 오지 않는 DJ를 속으로 타박했다.

    “인기 많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보는데요. 그러면 지금까지 혼자겠습니까.”

    “왜요. 서른둘이 어때서. 완전 젊은데.”

    “진지하게 만나는 여자가 아직 없잖아요. 언제 연애해서 언제 결혼합니까.”

    “요즘엔 다 늦게들 하는데요, 뭐. 그냥 연애하시기가 귀찮은 거 아니고요? 라디오국에 최피디님 좋다는 사람 되게 많은데…….”

    “누구? 좋으면 나와서 얘기를 하지.”

    “피디님이 쌀쌀 맞게 구니까 겁먹어서 말 못하는 거예요.”

    꼭 쌀쌀 맞게 대하려던 건 아닌데. 재원이 딱히 변명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재원은 잘생겼고 키도 170 후반대로 평균이상이었지만 여자들이 먼저 다가오는 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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