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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 1-683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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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01 버려지다 =========================================================================

    * 버려지다

    똑똑똑.

    가볍게 노크를 한 뒤 혁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영업 1부 부장인 이동철이 책상 앞에 앉아 고개를 들어 그를 봤다.

    “왔나. 거기에 앉게.”

    “네.”

    혁권은 이동철 부장이 가리킨 소파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은 이동철 부장이 책상 앞에서 일어나 소파로 왔다.

    올해로 마흔다섯 살이 되는 이동철 부장은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사장과 이사로 이어지는 실세 라인을 타고 미래의 영업 본부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그에 비해 혁권은 별 볼 일 없는 삼류 대학 출신으로 뛰어난 영업 실적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런 스펙을 가졌다.

    “커피 한잔하겠나?”

    “아닙니다.”

    두 손을 모으고 바짝 긴장한 채 앉아 있는 혁권을 잠시 쳐다보던 이동철이 입을 열었다.

    “징계 결과가 나왔네.”

    앞으로 그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순간이었기에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2개월 감봉과 함께 트리폴리 지사로 발령이 났네.”

    어느 정도 문책을 각오하고 있었지만 너무나도 뜻밖의 말에 혁권은 눈을 크게 떴다.

    “거긴 내전으로 인해 철수한 곳이지 않습니까?”

    “그러려고 했는데 북아프리카를 커버하는 중요한 거점 지역이라 연락소 수준에서 계속 지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네.”

    “…….”

    “이사님이 최대한 손을 쓰려고 하셨지만 사고 액수가 워낙 커서 어쩔 수 없었네.”

    자신이 뭔가 이상하다고 그렇게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장의 셋째 아들인 김인철 이사와 지금 눈앞에 있는 이동철 부장이 우겨서 무리하게 거래를 추진하는 바람에 입은 손해 아니냐고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잠시 머리를 식힌다는 생각으로 얼마 동안 나가 있게. 그럼 이사님께서 적당한 때에 다시 불러들이실 거야. 그리고 혹시 아나, 거기서 큰 계약을 성사시켜서 금의환향이라도 하게 될지.”

    하루에도 몇 번씩 테러가 발생할 정도로 정국이 어지러워 기존에 있던 지사들도 전부 짐을 챙겨 철수하는 판에 큰 계약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전 이사님과 부장님이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한 죄밖에 없는데 그런 오지로 가라니, 너무하십니다.”

    혁권의 말에 이동철은 손바닥으로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려치며 정색을 했다.

    탕!

    “어허. 이 친구 큰일 날 사람이군. 그 건은 자네가 책임을 지기로 다 이야기가 됐지 않나?”

    “하지만…….”

    “지금 와서 사실을 밝힌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을 거 같나! 괜히 자네만 다칠 뿐이야. 그나마 회사에 계속 붙어 있고 싶으면 그냥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해.”

    이동철의 협박에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막말로 김인철 이사의 잘못인 것이 밝혀지더라도 오너 가족인 그가 다칠 일은 전혀 없었다.

    그건 김인철 이사의 충실한 개 노릇을 하는 이동철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자신만 더 다칠 뿐이었다.

    억울하고 분했으나 그나마 이 지랄 같은 자리라도 보존하고 싶으면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눈에서 반발심이 사라지고 체념이 떠오르자 이동철 부장은 채찍 대신 당근을 꺼내 들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이번 일만 잘 견디면 이사님께서 자네 뒤를 확실히 봐주실 거야.”

    “……예.”

    혁권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댄 이동철 부장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상의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받게.”

    “이게 뭡니까?”

    “이사님이 주시는 거니까 필요한 데 쓰도록 해.”

    이거나 먹고 입 닥치고 조용히 있으라는 거였다.

    속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혁권은 말없이 봉투를 챙겼다.

    “정식 발령은 며칠 뒤에 나겠지만 그동안 준비할 것이 많을 테니 내일부터는 회사에 안 나와도 되네.”

    생각해 주는 것 같았지만 혹시라도 그가 마음이 변해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아예 막아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따로 인사를 하러 올 필요 없으니 그렇게 알고 그만 나가 봐.”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혁권은 머리를 숙이고는 몸을 돌렸다.

    한때나마 자신도 단단한 동아줄을 잡고 승승장구할 거라는 꿈에 부풀었던 그의 생각은, 이렇게 하룻밤 일장춘몽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내려오자 어느새 소문이 다 퍼졌는지 직원들이 그를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작게 수군거렸다.

    “트리폴리 지사로 발령이 났다면서?”

    “그만두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 몰라.”

    “그러니까 송충이는 솔잎만 먹어야지, 괜히 높은 곳을 쳐다보면 저 꼴이 나는 거야.”

    “쯧쯧. 아무튼 안됐네.”

    “그러게 말이야.”

    조용히 한다고 했지만 그의 귀에 다 들렸다.

    그래도 몇 년 동안 한 사무실에서 일한 사이인데 위로 한마디 없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못내 서운했지만, 다 그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자리로 가서 허탈하게 앉아 있을 때 과장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옆으로 다가왔다.

    “흐음. 김 대리.”

    “예.”

    “이야기는 들었네. 너무 실망하지 말고 자네는 젊으니까 이번 일을 만회할 기회가 있을 거야.”

    “감사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위로에 고맙다는 생각보다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이렇게 보내기 아쉬우니까 떠나기 전에 다 모여서 송별회라도 해야지.”

    “죄송합니다.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아서 시간을 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지.”

    말과 달리 별로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과장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찌 보면 양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보다 더 비정하고 잔인한 것이 직장 생활이었기에 새삼스레 서운해할 것도 없었다.

    쓰게 웃은 혁권은 조용히 책상에 있는 물건을 정리했다.

    “크으. 좋다.”

    혁권이 빈 잔을 내려놓자 동기이자 유일하게 회사에서 마음을 터놓는 사이인 유기백 대리가 소주를 채우며 말했다.

    “정말 이렇게 끝낼 거야?”

    다시 잔을 들어 한 모금 소주를 삼킨 혁권은 심드렁하게 그를 봤다.

    “그럼 어쩌라고?”

    “차라리 다른 곳으로 보내 달라고 사정이라도 해야지. 말이 좋아 해외 파견 근무지, 거긴 전쟁터나 다름없어.”

    “나도 알아.”

    “그런데도 거길 가겠다고?”

    기도 안 찬다는 듯이 유기백이 쳐다보자 혁권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벌써 이야기를 해 봤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걸 어떡해?”

    “야, 차라리 다 때려치워.”

    “내 사정 알잖아. 갚아야 될 빚도 있고 마음대로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입장이 아니야.”

    “젠장.”

    유기백은 술잔을 들어 한입에 다 털어 넣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단물만 쏙 빼먹고 문제가 생기니까 이렇게 내팽개치다니. 개자식들!”

    “당한 내가 바보지. 넌 나처럼 되지 마라.”

    “씨팔. 네 걱정이나 해.”

    거칠게 말을 내뱉은 유기백은 소주병을 들어 비어 있는 혁권의 잔을 채워 줬다.

    “유 대리, 아니, 기백아.”

    “왜, 인마?”

    “미안하다. 그리고 오늘 옆에 있어 줘서 고맙다.”

    진심이 담긴 말에 유기백은 복잡한 시선을 그를 쳐다보다가 술잔을 들었다.

    “헛소리 집어치우고 술이나 마셔.”

    “그래. 어차피 내일 회사 안 나가니까 꼭지가 돌 때까지 한번 취해 보지, 뭐.”

    잔을 부딪친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셨다.

    “소리쳐 부르지만 저 대답 없는 노을은 붉게 타오르는데…… 씨팔! 3차 가자, 3차!”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기백을 부축한 채 걸어가던 혁권은 한쪽에 있는 벤치로 가서 쓰러지듯 앉았다.

    “3차는 무슨 내일 출근해야 되잖아.”

    “까짓것 그냥 안 가고 말지.”

    “인마. 그러다가 잘리면 어쩌려고.”

    “흥. 마음대로 하라고 해!”

    술에 취해 호기롭게 이야기하지만 내일 눈을 뜨면 허겁지겁 제대로 밥도 못 챙겨 먹고 회사로 달려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혁권은 몸을 일으켰다.

    “야, 어디 가?”

    “거기 가만히 있어.”

    도로 옆으로 나간 혁권은 한쪽 손을 흔들어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일어나.”

    “으음.”

    “자식 더럽게 무겁네.”

    뒷자리에 힘들게 태우자 살짝 정신을 차린 유기백이 그를 붙잡으며 말했다.

    “어디 가는 거야?”

    “집이지, 어디겠냐?”

    “3차 가자니까!”

    “그래. 알았으니까. 앉아 있어.”

    자꾸만 엉겨 붙는 유기백을 떼어 놓고 차 문을 닫은 그는 택시 기사한테 5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창동 현대 아파트 113동으로 좀 부탁드립니다.”

    “예.”

    부우우웅.

    엔진 소리를 내며 유기백이 탄 택시가 차량 행렬 속으로 사라지자 혁권은 습관적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러고는 약간 어깨가 처진 모습으로 어두운 밤거리를 천천히 걸어갔다.

    세 들어 살던 오피스텔을 정리하고 부모님을 찾아가 외국으로 발령이 났다는 걸 알려 드리며 주변 정리를 하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금방 지나갔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짐을 먼저 부치고 티켓을 발권 받아 나오자 누가 그의 등을 가볍게 쳤다.

    “어?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뒤를 돌아보다 유기백이 웃으며 서 있었다.

    “친구가 먼 길 간다는데 배웅은 해 줘야지.”

    “회사는 어쩌고? 지금 근무 시간이잖아.”

    그의 물음에 유기백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외근 나간다고 구라를 쳤지.”

    “아무튼 이렇게 보니까 반갑다.”

    “아직 시간이 좀 남았지?”

    혁권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잘됐네. 저기 보니까 카페가 있던데 그리로 가서 좀 앉자.”

    “그래.”

    유명한 프랜차이즈 커피점에 들어간 두 사람은 음료를 사서 빈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앉았다.

    “정리는 다 끝냈어?”

    “다행히 집주인이 다음 달 월세까지 내는 걸로 하고 보증금을 바로 빼 주더라고.”

    “부모님은?”

    “적당히 둘러댔지.”

    그의 말에 유기백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꺼내 들었다가 이내 다시 집어넣었다.

    “하긴 동네방네 떠들어 댈 만큼 좋은 일도 아니지. 커피값은 더럽게 비싸게 받으면서 담배 하나 마음대로 못 피우고 정말 지랄 같네.”

    “몸에 좋지도 않은 거 그만 끊어.”

    “그러는 지는.”

    퉁명스럽게 말한 유기백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은행 마크가 찍힌 봉투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뭐야?”

    “지랄 같은 곳에 가는데 줄 건 없고 동기들끼리 좀 모았다.”

    “필요 없어.”

    “받아. 이미 환전까지 다 했어.”

    그러자 혁권은 마지못해 봉투를 받아 들었다.

    “미안해서 어쩌냐?”

    “그럼 나중에 돌아와서 술 한잔 찐하게 사든가.”

    “그래. 알았다.”

    “괜히 실적을 올리겠다고 엉뚱한 짓하지 말고 그냥 근무 기간 채울 때까지 얌전히 있다가 와.”

    “염려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2년이나 리비아에 처박혀 있을 생각이 없었던 혁권은 현지에 가서 최대한 방법을 생각해 볼 작정이었다.

    “정 힘들면 다 때려치우고 돌아와. 여기에 네 밥벌이 할 곳 하나 없겠냐.”

    “너한테 그런 말 듣기 싫어서라도 악착같이 버텨야겠다.”

    “제발 좀 그래라.”

    쓰게 웃던 혁권은 방송에서 자신이 탈 비행기의 탑승 수속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 봐야 되겠다.”

    함께 출국 심사대까지 온 혁권은 유기백에게 손을 내밀었다.

    00002 버려지다 =========================================================================

    “오늘 고마웠다.”

    “됐어.”

    그러면서도 손을 맞잡고 악수를 나눈 유기백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몸조심하고.”

    미소로 마지막 말을 대신한 혁권은 몸을 돌려 출국 심사대로 걸어갔다.

    트리폴리Tripoli는 아프리카의 석유 부국인 리비아의 수도로 한국과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석유를 통해 쌓아올린 부富를 기반으로 화려한 쇼핑센터와 호텔 등 현대적인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고 에너지를 비롯한 여러 사업 분야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들로 활기가 넘쳤다.

    하지만 몇 년 전 벌어진 내전으로 인해 그 모든 것들이 다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지난 수십 년간 독재를 펼친 카다피 대통령을 권좌에서 몰아내면서 혁명이 성공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내전 과정에서 생겨난 수십 개의 무장 단체들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자기들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싸움을 벌이면서 다시 끝없는 분쟁의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 중심가에서 34킬로미터 남쪽에 위치한 트리폴리 국제공항은 곳곳에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탈리아 항공 여객기에서 내린 혁권의 눈에 제일 처음 들어온 것은 포격에 반쯤 무너져 내린 터미널 건물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혁권은 자신이 내전 중인 나라 한가운데 도착했다는 걸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바짝 긴장한 얼굴로 짐을 챙겨 들고 트랩Trap을 내려간 그는 다른 승객들과 섞여 24인승 미니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는 활주로를 벗어났다.

    그나마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공항 청사로 들어가자 권총과 AK 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곳곳에 서서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방금 전까지 문명 세계에 있다가 한순간 황량한 무법 지대 한가운데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종일은 사람들을 따라 입국 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위험한 리비아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금방 그의 차례가 됐다.

    심사대 앞으로 간 혁권은 군복을 입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사내에게 여권을 내밀었다.

    여권을 받아 들고는 건성으로 내용을 살핀 사내는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투박한 영어로 질문을 던졌다.

    “방문 목적이 뭐요?”

    “사업차 왔습니다.”

    비즈니스라는 단어에 사내는 관심을 보이며 그를 자세히 쳐다봤다.

    “무슨 사업을 하고 있소?”

    혁권은 지갑에서 영어로 된 명함을 꺼내 건네줬다.

    그러자 카다피 시절부터 한국 기업들이 진출해 활약한 나라답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상사원이었구먼. 전쟁으로 부족한 것이 많으니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트리폴리에 온 걸 환영하오.”

    누런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은 사내는 그의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었다.

    쿵.

    2개나 되는 여행용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오자 노타이 차림에 동양인이 가까이 다가왔다.

    “혹시 서울에서 온 김혁권 씨 아니오?”

    “맞습니다.”

    “반갑소. 한상주 과장이오.”

    “아, 지사장님.”

    혁권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앞에 선 한상주 과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혼자뿐인 지사에 지사장은 무슨…… 짐은 그거뿐인가?”

    “예.”

    힐끔 그가 가지고 있는 짐들을 쳐다본 한상주 과장은 바퀴가 달린 여행용 가방을 하나 집어 들며 말했다.

    “어두워지면 더 위험해지니까 남은 이야기는 숙소에 들어가서 하지.”

    “네.”

    앞선 말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혁권은 벌써 저만치 걸어간 한상주 과장을 허겁지겁 쫓아갔다.

    공항 청사를 나서자 뜨겁게 내려쬐는 햇볕 아래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로 후끈한 공기가 그를 사정없이 덮쳐 왔다.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흘러내린 땀으로 옷이 축축하게 젖은 가운데 주차장 한쪽에 서 있는 사륜구동 차량 앞에 멈춰 섰다.

    “인사해. 이쪽은 경호원인 자말이야.”

    옆을 보자 건장한 덩치에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은 사내가 그를 보고 먼저 약간 어색한 영어로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말입니다.”

    “김혁권이라고 합니다.”

    “짐은 저한테 주시죠.”

    “아. 네.”

    짐을 받아 트렁크에 실는 자말의 허리에 달린 진짜 권총을 보고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걸 본 한상주 과장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치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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