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판타지   무협   BL   기타

작품 검색

요지 상사몽 달빛조각사 지니스 기란 프리미엄 임페라 g [ 계자 필로우토크 고양이 기척 삼촌 체리만쥬 호랑이 유칼리 나라얀 호야

[에리훤]금성의운명 - 1

  • [에리훤]금성의운명.txt (437kb) 직접다운로드

    -기억이 없는 청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필립은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잠이 바삐 달아났다. 필립은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모포가 부드럽게 몸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밤의 참 기운을 품고 있는 마룻바닥에 맨발이 닿자 발부터 잠에서 깨는 기분이었다.

    덧문 사이에서 햇살 줄기가 문을 열어달라며 어른거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자 넓은 창가에서 들어온 햇빛이 은은한 빛깔의 회반죽 벽을 따스하게 비췄다. 방에 들어온 햇살은 까부는 아이처럼 오랜 세월의 윤기가 흐르는 대들보와 까끌까끌한 질감의 벽, 아치를 그리고 있는 벽돌 천장 위로 미끄러졌다.

    필립은 부엌에 들어가 작은 소리를 내며 뭔가를 열심히 하더니 짬이 났는지 일층과 이층을 오가며 집안의 덧문들을 활짝 열어 놓았다. 그리고는 집안에 퍼지는 냄새에 급하게 부엌으로 다시 돌아갔다. 화덕 위에선 아까 올려놓은 죽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맛을 보고 입맛을 다신 필립은 냄비를 화덕의 한켠에 내려놓았다.

    쟁반 위에 듬뿍 담겨진 죽 그릇과 빵, 치즈, 우유를 얹고 조심그럽게 걸어갔다. 필립은 집안 제일 안 쪽에 있는 문 앞에서 멈춰 쟁반을 능숙하게 한 팔 위에 얹더니 다른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방 안에선 아무 소리도 없었다. 필립은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안은 집안과 달리 어둑어둑 했다. 필립은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침대에선 끄응하는 분만에 찬 신음이 들려왔다.

    [일어나, 게으름뱅이. 맛있는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잠이 더 맛있어.]

    이불 속에서 웅얼대는 소리가 들린다.

    [늦게 일어나 또 밤샐려고 그래? 괜히 남들 다 자는 밤중에 깨어 초를 낭비하지 말아. 안색도 나빠지잖아.]

    [안색에 일일이 영향 받을는데?]

    필립은 매정하게 이불을 빼앗어 버렸다.

    [충분히 늙었어, 충분히 늙었다고!]

    바렌은 애통해하며 시크를 손톰으로 긁었다. 늙었다고 주장하는 인물은 엿여섯에서 열일곱쯤으로 보이는 홍안의 미소년이었다. 눈도 못 뜨고 바둥거리는 모습이 잠을 더 자지 못하 미치려고 하고 있었다. 딱하지만 봐줬다가는 한이 없었다.

    [헛소리는 꿈에서나 마저 하라고.]

    [마저 꾸게 해줘!]

    [밤에 꿔.]

    [잔인한 놈!]

    [네,네.]

    필립은 이불을 헤치고 흐트러진 머리의 소년을 억지로 일으켜 앉혔다. 소년은 눈을 찌푸리고 입을 툭 내민 채 꼬마처럼 앉아 있었다. 필립은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바렌의 무릎에 쟁반을 얹어 놓았다. 바렌은 코끝을 간질이는 맛있는 냄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먹어.]

    [강요하지 마. 먹고 싶을 때 먹을 거야.]

    [먹기 전에 안나가.]

    필립이 팔짱을 끼고 고압적으로 내려보자 바렌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질 싸움이니 일치감치 항복을 선언하는 모양새였다. 바렌은 죽을 한술 뜨더니 눈을 꿈벅거리며 손을 빨리 움직였다. 일단 한 입만 먹으면 이긴 싸움이었다.

    필립은 웃으며 방에서 나왔다. 창 밖의 우거진 수풀 속에서 산새 소리가 들려왔고 그 위로 작은 시냇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필립은 나무 천장에서 그릇은 꺼내 자기도 아침을 먹을 준비를 했다. 식사를 하다가 탁자 귀퉁이에 흠집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외출 전에 안뜰을 잠시 살펴볼 생각이었다. 꽃과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허브를 살피고 어제 확인한 탐스러운 토마토 열매가 밤새 잘 있었는지 보고 장미와 수국이 심긴 단지를 분류해서 두기로 했다. 생각만 해도 땅에서 풍기는 따뜻하고 습기 찬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듯 했다. 일단 거기까지만 하고 나머지는 내일 할 작정이었다. 오늘은 루페에 다녀와야 했으니까.

    내일은 눈 뜨자마자 화분들을 닦고 등나무 정자도 닦아야지. 게으른 바렌을 대신해서 약재도 잘라놔야 했고 할 일이 많았다. 필립의 정성을 듬뿍 받은 집은 잘 키워진 아이 같았다.

    나무 바닥은 세월과 사람의 손길의 합작품인 반들반들한 윤기를 뽐내고 있었고 수수하지만 단단하게 만들어진 짙은 나무탁자와 의자가 그 위에 놓여 있었다.

    탁자 중앙에는 달처럼 환한 하얀 봉선화 화분이 예쁘게 올라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필립의 솜씨였는데 투박한 손끝이 만들어 내는 마법 같은 손길의 집은 이년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해 있었다.

    바렌은 신이 자신을 가련히 여기고 필립을 내려줬다고 말할 정도였고 이젠 필립도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없었을 때 바렌이 도대체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히 가지 않았다. 바렌은 지금처럼 안락한 삶은 아니었다고 간단히 언급하는 걸로 끝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필립은 외출 준비를 했다. 고급은 아니었지만 깨끗하게 세탁된 갈색 옷을 입고 손질을 끝낸 신발을 신었다. 적당한 길이로 자른 연갈색 머리카락이 햇살을 받고 꿀처럼 반짝였다.

    흔한 말총 허리띠 하나 두르지 않았지만 큰 키와 탄탄한 근육이 어떤 보석보다 옷을 돋보이게 한다. 전사와 같이 훤칠한 신체였지만 은은하게 빛나는 연갈색 눈에 서린 지혜와 부드러운 표정이 몸의 호전적인 기운을 무마시켜 주고 있었다.

    필립은 미남은 아니었지만 이목구비가 균형있게 자리하고 있었고 끝이 살짝 곰슬한 머리카락은 봄에 잠을 깬 포근한 곰처럼 따뜻한 활달함이 있었다.

    필림의 머리카락은 협동을 중시하는 주인의 기질에 반항을 하는지 매일 아침잠에서 깨면 보푸라기처럼 부풀어올라 제멋대로 삐져 있었다. 세수를 하며 머리카락을 물에 적셔 조금이라도 단정하게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바렌은 정리하기 전에 필립의 커리카락을 아기새의 보푸라기 털처럼 폭신해 보여서 좋다고 말하지만 그런 머리가 어울리는 건 다섯살까지의 일이다. 삼십 전후로 보이는 남자다운 얼굴에 아기 천사 같이 굽슬거리는 연갈색 머리카락이라니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마음 같아서는 짧게 자르고 싶었지만 머리에 상처자국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 기르고 있는 중이었다.

    이년 전, 필립은 큰 상처를 입고 이 곳 투르프 마을의 강기슭에 떠내려 왔다. 바렌의 단순한 동거인이 아니라 필립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다행이 필립은 목숨은 건졌지만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잊은 상태였다.

    바렌은 조금 신경질적인 면이 있었지만 십대 소년치고는 기이할 정도로 의술이 뛰어났다. 바렌의 말로는 자신의 할아버지는 유명한 의사이고 자신은 그의 하나뿐인 수제자라는 것이었다.

    할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확인할 바 없지만 바렌이 열일곱의 나이에 천재적인 의술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몸소 체험해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거머리로 환자의 피를 빼고 설사를 건강을 위한 필수지침으로 권하고 사람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의사들이 즐비한 세상을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덕택에 필립의 머리 상처는 왼쪽 정수리에서 오른쪽 귀 아래까지의 길지만 얇게 긁힌 흔적으로밖엔 남아 있지 않았다. 머르를 짧게 잘라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띄는 상처가 아니었지만 본인에게는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멀쩡해 보니는 얼굴도 못생겼다며 자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열등감은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가.

    필립은 기억과 함께 모든 것을 읽은 상태였기에 자신의 약점을 숨기듯이 다른 일에 더 열심히었다. 머리의 상처를 가리고 일을 열심히 하며 다른 사람의 배로 노력하고 살고 있었다. 바렌은 긴장을 풀고 쉬라고 말했지만 쉬면 오히려 더 불안할 것이다.

    [조금만 날 믿어도 좋을텐데.]

    필립은 바렌이 가끔 그렇게 투덜거려 주는 것이 좋았다. 그만큼 자신이 열심히 일허고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필림은 어젯반에 미리 싸둔 가방을 들고 문밖으로 나섰다. 숲에서 밀려온 짙은 녹색의 향기가 전신으로 부딪혀 왔다.

    오늘은 마을 사람 몇과 함께 성으로 필수품을 사러 가는 날이었다. 필립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필립은 서둘렀다. 사람들이 모이기로 약속한 시간보다 반시간이나 더 일찍 갔다. 약속장소가 가까워 오자 발걸음이 빨라진다.

    바람을 밟는 듯 빠른 걸을이 맞은편에서 오는 이들을 발견하고 딱 멈춰졌다. 맞은편에서 오던 이들도 발을 멈추긴 마찬가지였다. 그곳에는 같이 가기로 한 네 명이 짐을 든 채로 멈춰 서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무안한 기색이 스쳤다. 같이 가기 싫어 먼저 떠나던 참에 들켰으니 당연하다.

    [사람을 봤으면 인사도 못 하는가.]

    제일 연장자인 쿠아즈가 나서서 점잖게 한마디한다. 그 기세에 다들 미안한 빛을 떨쳐버리고 필립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아침을 늦게 들어 제가 조금 늦었습니다.]

    [알면 됐네. 따라오게.]

    쿠아즈가 거드름을 피우며 앞서 걷는다. 필립은 네 명이 다 자기 앞을 지나가는 걸 기다렸다가 제일 뒤에 따라붙었다. 정해진 시간에 나왔으면 바람을 맞았다 생각하니 분한 마음에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마음을 풀려고 지나는 길의 작을 들꽃을 눈에 담지만 화난 눈에 예뻐 보일 리가 없다. 길 중간에 눈이 없이 핀 꽃을 밟아 뭉개려다가 발을 피한다.

    네가 무슨 죄냐. 본성이 아둔하게 태어난 걸. 길 중앙에 피었다하여 너한테 걸려 넘어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죄가 있겠나. 기억이 없어도 누구한테 해꼬지를 한 적도 없도 마을일고 열심히 했는데 이년간 계속 꺼려하는 건 왜냐.

    사람들은 낯설고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공격적인 태도를 보인다. 머리를 조금 다쳤다 해서 평생의 기억을 잃었다는 건 처음 듣는 말이고 이해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니 저 자는 거짓말을 한다. 큰 죄를 짓고 도망 중이라 깊은 산중 마음에 순어 있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필시 사람을 죽이고 몰래 숨어든 거요. 다른 마을 사람도 죽였는데 우리 마을 사람이라도 못 죽일 것은 뭐요' 점잖은 얼굴로 사람 타이르기 좋아하는 쿠아즈보가 마을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사람들에게 상십분 더 일찍 나와 필립이 오기 전에 떠나자고 꼬드긴 것은 쿠아즈보 이리라. 다른 사람들도 그에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음은 볼 것도 없고.

    바렌이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드러내놓고 따돌리지는 못한다. 바렌이 아무리 기억상실에 대해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그런 경우는 들을 적이 없단다.

    그래도 바렌이 야단치면 자기들은 의사 선생이랑 달리 무식해서 그런 건 이해 못하겠다며 배짱을 부린다. 그들에게는 바렌도 타지인이었다. 겨우 일 이년 전에 마을에 나타나 터를 잡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솜씨가 하도 기가 막혀 의지하며 살고는 있었지만 아직 어린 나이에 의사입네 하는 바렌을 속으로 고까워 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산 속 마을에 하나뿐인 의사의 미움을 사기는 두려워 대놓고 거슬릴 수는 없어 마지못해 필립을 끼어주고 있는 형편이었다.

    필립은 바렌의 얼굴을 봐서라도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필립이 아무리 일을 도와줘도 그 속에 시커먼 구렁이를 담고 다니는 것처럼 몸서리친다.

    용기를 내서 다가가도 상처받기만 하자 필립은 자신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상처받는 게 무서웠다. 사람들 앞에서 웃는 게 힘들어졌다.

    감정을 감추기 위해 필립의 얼굴은 점점 무표정해졌고 사람들은 가면 같은 얼굴을 보며 음침한 낯짝 속에 꿍꿍이속을 숨겨 놓았다며 소근거렸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범인이 누군지 모르면 무조건 필립의 것이라 단정지었다. 바렌이 증거를 대라며 따지만 한마디도 못했지만 이미 그들의 마승 속에선 필립이 범인이었다.

    필립은 바렌 앞에서 한탄 한마디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바렌이 마을 사람들에게 난리를 치기에. 민망한 마음에 이젠 마을 사람들보다 필립이 바렌의 눈치를 봤다.

    필립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지만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바렌이 타이르는 통에 할 수 없이 나선 참이었다. 사실 바렌보다 필립이 장을 더 잘 봤고.

    바렌이 귀티나게 잘생긴데다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의술과 그 나이에 고아치고는 꽤 잘살아서 어딘가의 왕족이 사연를 안고 시골에 굴러다니는 듯한 모습이었지만 어린 천재들은 원래 그런지 거래에 있어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부르는 데로 다 주거니 동전 한푼이라도 모자라면 사정을 말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아예 안 사고 집에 오니 차라리 애를 시키는 게 더 나았다.

    요령부득이라고 해야할지 굶어죽기로 작정을 하고 배짱을 부리는 건지 헷갈리 정도였으니 말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었다.

    바렌은 비가 돋을 것처럼 뭉쳐진 구름을 미덥지 못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아쳄에 길을 떠난 필립 때문에 속이 안 좋은 것처럼 그르렁거리는 하늘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가지 않으려 하는 필립을 말 몇마디로 교묘히 나서게 했으면서 바렌은 자신이 더 안절부절못했다. 책을 잡고 있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한숨을 쉬며 덮었다. 뻐근한 목을 문지르며 창 밖을 다시 내다본다.

    '필립이라고 합니다.'

    얼굴의 반이나 피맺힌 붕대를 두른 처참한 모습인데도 반듯하게 허리를 곧추 세웠던 남자.

    정갈한 목소리. 그 눈에 맺힌 지성과 부드러운 불빛에 끌렸다.

    하지만 정신이 말짱했던 것은 그때 뿐으로 잠자듯 누웠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땐 과거의 기억을 깡그리 잊고 있었다.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지만 아쉬운 것만 있냐면 그건 아니다.

    불안에 가득 찬 눈이 자신을 볼 때마다 안심하는 것을 알아차리자 부끄럽게도 목숨읗 살려놓았을 때보다 더 뿌듯해진다. 조금만 멀리 떨어져고 매달리듯 바라보는 그 눈길이 좋았다.

    자신도 필요이상으로 바렌에게 매달리는 걸 알기에 괜히 무뚝뚝하게 구는 커다랗고 믿음직한 친구.

    벗이라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애완동물을 기르는 기분이었다. 그의 몸에 난 갖가지 흉터와 실전에 어울리는 근육으로 덮힌 몸은 주운 것이 강아지가 아니라 늑대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그 점도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하루종일 자신을 싫어하는 마음 사람들과 같이 있어야 했으니 돌아오면 평소보다 더 옆에 붙어 있으려 할 것이다. 며칠동안 계속 불안한 눈을 할 것까지 알면서 보냈다. 언제까지 싸고 돌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

    필립을 사회로 내 보내는 법이 닦달하는 게 아니라 약한 척 하는데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도 그 성품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실생활에서 무능한 척 하지 않으면 안됐지만 집안살림이 귀찮은 참이었으니 양쪽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바렌은 생활이 편해져서 좋고, 필립은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서 좋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이 설자리 하나는 있어야 비로소 숨을 쉬는 법이다.

    마을 사람들은 바렌이 다 나은 필립을 떠나보내는 대신 집에 두고 같이 살기를 시작하자 정체도 모르는 이에게 너무 무르게 군다 불평이 많았다.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없는 위험한 청년을 마을에 두게 되었으니 불평하는 마음도 이해가 간다. 그래도 자신들이 경우도 모르는 사람들이라 생각되는 건 싫은지 필립을 꺼려하는 만큼 바렌에 대해서는 칭송이 자자하다. 좋은 일에는 칭찬할 줄 알고 나쁜 일은 싫어할 줄 안다. 그러니 피립을 싫어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서라는 무언의 항변.

    바렌으로서는 그들이 어떻게 지껄이건 상관없었다. 의사로서의 책임감이라면 살려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 나은 후에도 끼고 있는건 책임감이 아니라 자선이다. 바렌은 자신이 자선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죽을 자는 살려놓은 과정은 그 자체로 의사로서의 도전욕을 자극하는 일이었지만 다 나은 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 청년은 살려놓으니 더 관심이 간다.

    옆에서 숨쉬는 게 전혀 거슬리지 않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일행은 반나절을 걸어 루페에 도착했다. 거기서 사람들은 목을 축이고 바로 출발했다.

    도시로 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마지막 다리.

작품 리스트

요청게시판

옵션



Business Adress : Hannam-dong, Yongsan-gu, Seoul (Daesagwan-ro 961gil)

Headquarter Adress : 97 Lillie Rd, Earls Court, London SW71 1UD UK

CEO : Edward Choi

Business Number : 211-17-34675 (KR)

Company Name : LL Company

CS center : 21:00~05:00 (GMT+9)

CS number +44) 20 7610 0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