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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fail] 소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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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많은 복잡한 놀이공원에서 애 떼놓고 도망가는 엄마들이 하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오지도 않을 거면서,버리고 가는 거면서. 엄마 다시 올 테니까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풍선하고 알량한 사탕 하나 쥐여주면서 말이죠.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거기서 하염없이 엄마를 기다릴 겁니다.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는 걸 깨달았을 쯤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가장 증오하는 사람으로 변했을 테죠. 버림받아본 적 있습니까?

    달리는 차 안은 고요했다. 승원은 와이퍼를 빠르게 작동시켰다. 빗방울이 조금 전보다 더 공격적이고 무거워졌다. 시야가 불투명한 데다 밤이라 가시거리가 백미터도 채 되지 않았다. 앞서 달리는 차량의 후미등을 멀리서 감지하며 오히려 속도를 더 높였다. 차체를 두드리는 빗줄기 소리가 귓가를 먹먹하게 채워왔다. 승원은 조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가속페달을 조금 더 힘주어 밞았다. 탄력을 받은 차가 미끄러지듯 도로 위를 달렸다.

    버림받아본 적 있습니까?

    그때 자신을 보는 정현의 눈동자는 텅 비어있었다. 눈을 뜨고는 있지만 정작 눈앞에 있는 승원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에게 그런 짓거리를 했으면서도 죄책감이 없었고 제가 벌이지 않은 짓을 관조하는 것처럼 망연하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늘어트렸다. 그때 눈치챘어야 했다. 벗어나려고 하는 정현의 얼굴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데도 승원은 제 감정에만 취해 그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보지 못했다.

    그는 시선을 바로 했다. 와이퍼가 바쁘게 움직이며 차창에 흐르는 물기를 닦아낸다.

    같이 귀국할 것을......

    한국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정리할 것도 없어 보이는데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 먼저 들어가라고 정현은 승원의 등을 떠밀었다. 일정 때문에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던 승원은 억지로 시간을 지연하다 먼저 귀국했다. 그가 비행기에 탑승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도 불안했다. 정현이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내리는 빗줄기만큼 더해졌다.

    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승원은 뛰듯이 내렸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코트자락이 다리에 휘감길 정도로 빠르게 걸었다. 도착 로비에 올라서 타임테이블을 훑었다. LAX-ICN. 이미 도착해 짐을 찾은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승원은 펜스 바깥에서 조금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게이트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겨울의 계절감에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여행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듯한 커플티를 입은 남녀, 구겨진 양복을 손에 걸치고 지친 기색으로 캐리어를 끄는 중년의 남자,여독을 느끼지 못하는지 여전히 바쁘게 뛰어다니는 아이들까지. 마중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기다리던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며 하나둘씩 돌아갔다. 쏟아져 나오던 귀국 인파가 조금씩 줄어들고 도착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이가 승원 혼자만 남았을 때였다. 아무도 나오지 않던 자동문이 한참 후에 열렸다. 승원은 탁, 하고 숨이 풀어지는 듯했다.

    짐이라고는 작은 캐리어가 달랑 하나인 정현이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가 굴리는 캐리어의 바퀴 소리가 자정이 넘은 시간대라 그런지 유난히 공허하고 크게 들려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제 발끝만 바라보며 걷던 정현은 시선을 들었다. 저를 발견하고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

    "......"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는 감회는 없었다. 승원을 만났다는 재회의 기쁨도 없었다. 그 얼굴에 있는 것은 결국에는 이 땅에 돌아오고야 만 회환이었다. 정현은 캐리어를 끌고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왜 이렇게 늦어요."

    몇 주 만에 다시 보는 얼굴, 반갑다는 말도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승원은 애간장이 녹아 들어가는 기다림에 지쳐 무뚝뚝하게 물었다.

    "짐이 다른 레일로 빠지는 바람에....."

    사실 잃어버려도 상관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간출한 짐이었다. 정현은 제 짐을 찾아주려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공항 직원을 기다리며 먼눈으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게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땅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었다. 저곳을 지나면 그토록 벗어나려고 했던 한국 땅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승원이 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현은 내심 직원이 제 캐리어를 늦게 찾아오기를 바랐다. 아니,아예잃어버려서 관문 너머의 이곳에서 하염없이 ㄱ다리며 조금이라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유예하고 싶었다. 그런 순진하고 얼토당토않은 바람이 무색하게 직원은 씨근덕거리며 그의 캐리어를 찾아왔다. 죄송하다고, 기다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직은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재촉도 없이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한참을 기다린 정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캐리어를 건네받았다. 겨우 다부지게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짐을 끌며 관문을 넘었다.

    결국 돌아왔다. 승원이 없었으면, 승원이 아니었으면 돌아오지 않았으리라.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차갑고 청량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정현은 자신을 홀로 놔두지 않은 승원을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제 인생은 물론이고 제 목숨까지 좌지우지하는 남자를,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남자를.

    이상한 일이다. 함께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의 곁에 머물고 싶은 것도 사실인데 그가 짐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하중이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짐 덩어리. 정현은 그 짐 덩어리를 어깨에 이는 버거운 감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가요"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승원은 제 손에 들린 캐리어를 빼앗듯 가져갔다. 정현은 미련없이 그에게 짐을 건넸다. 그의 뒤를 쫓았다. 회색 코트에 가려진 넓은 등을 시선에 담았다가 이내 밀어냈다가 함부로 쳐다보기도 아까워하며 공항을 벗어났다. 아, 그러고 보니 잘 있었느냐는 말도 하지 않았다. 한 번 세게 끌어안아 보지도 않았다. 건조한 표정의 승원을 그것보다 더 건조하고 메마른 표정의 정현이 쫓았다.

    차가운 물을 한 움큼 쥐어 들고 마신 것처럼 겨울 공기는 싸늘했다. 비가 내린 바닥이 축축해 한기는 더욱 심했다. 추위가 느껴질 새도 없이 도착 게이트 건너편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그의 차가 보였다. 리모트로 잠금을 푼 승원은 정현의 짐을 뒷자석에 실었다.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그가 시동을 켜고 히터를 돌렸다. 정현은 그를 쫓아 조수석에 올라탔다.

    어리도 가는 걸까. 평창동의 집으로 가는 걸까.

    그곳에 가고 싶지 않지만 그 마음을 티 낼 수 없는 갈등에 정현은 자신이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역시나 출발하지 않는 승원의 침묵 때문에 깨달았다. 그는 물끄러미 제게 눈길을 고정하고 있었다.

    "....."

    승원도 정현이 한국에 돌아오기 꺼려 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싫을 테다. 좋은 추억만 있지 않았다. 벗어나려고 그토록 버둥거린 곳이었다. 승원은 손을 뻗어 정현의 뺨을 쥐었다. 피하는 시선을 붙들어 자신을 보게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았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현은 알 것이리라. 고개를 끄덕거려주고 싶은 깊은 눈빛이었다. 같은 상황이 몇 번이 반복되든지 간에 그때마다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위험한 걸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짙은 눈동자가 자신을 함몰시킬듯 응시해온다.

    "이제부터 내가 알아서 해요. 다른 거 신경 쓰지 말아요."

    자신을 책임져주는 것이 기꺼운 말투, 정현은 고마우면서도 그가 제게 느낄 부채감을 알기에 함부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아무 의견도 더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긴 손가락이 그만 물러설 것처럼 아쉽게 뺨을 쓸어내리자 정현도 시선을 거둘어들이는데 갑자기 그의 입술이 정현의 입술을 덮었다. 열기가 몰린 말캉한 살과 뜨거운 호흡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물러설 곳 없는 곳에서 등받이에 몸이 푹 파묻혔다. 정현은 머뭇거리고 망설이다 이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입술이 열리고 남자의 뜨거운 혀가 거칠게 비집고 들어와 다정하게 안을 유린했다. 입술이 뭉개지듯 비벼지고 숨이 가빠왔다. 정현은 뜨거운 입맞춤을 날것으로 마주하며 꽤 오랫동안 그들이 떨어져 있었음을 상기한다.

    보고 싶었다. 몇 번이고 이렇게 하고 싶었다. 몇 번이고 이렇게 하고 싶었다. 숨이 막혀 호흡이 넘어갈 정도로 파헤쳐 들어오던 입술이 한참을 그렇게 지분거리다 천천히 떨어져 나갔다.

    "하아,하아...."

    가늘게 뜬 시야로 승원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보였다. 이성이 먹먹하게 가라앉았다. 마주 닿는 볼에 열이 올라 뜨겁게 느껴졌다. 정현은 그의 뒷머리와 단단한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단정하게 깎인 뒷덜미의 짧은 머리칼이 손가락에 만져졌다. 가까이 붙어있던 얼굴이 조금 더 떨어져 아뜩한 거리감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눈이 마주치며 전류와 같은 감각이 등골을 훑고 내려갔다. 정현은 승원이 보내는 미묘한 기류를 감지할 수 있었다. 막 불이 붙은 것 같은 성적인 기호들. 아아, 이대로 옷을 벗고 그와 알몸으로 스치고 싶었다. 정현의 몸이 가볍게 꿈틀하자 승원은 길게 숨을 내쉬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열이 오른 살을 부드럽게 빨아댔다. 흡착력 있게 비벼지는 얇은 표피의 간지러운 감각에 신음이 흩어졌다. 승원의 큰 손이 정현의 등허리를 감싸 안고 허술하게 입혀진 셔츠를 들추었다. 손가락이 맨살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이 거침없이 옷을 벌리고 올아와 밋밋한 가슴을 쓸어 만지며 천천히 쥐었다. 승원의 입속에 갇힌 정현의 혀가 움칠 떨려온다. 그대로 손을 움직여 유륜을 어루만지고 조금씩 팽팽해져 오는 유두를 손가락 사이에 가두자 정현은 다급하게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아, 나..... 비행기에 열두 시간도 넘게 갇혀 있었어."

    다급하게 밀어낸 힘만큼 다급한 목소리였다. 이제 막 이성의 끈을 놓고 심취하던 승원은 이유를 불문하고 맥을 끊어버린 정현을 불쾌하게 응시할 뿐이다.

    "그게 뭐."

    "......씻지도 못했고,또...., 여기서 싫어."

    "언제는 장소 봐 가면서 했어요?"

    "하지 마."

    자꾸 가슴을 만지는 손을 정현은 겨우 잡아 내렸다. 여전히 셔츠 안에 갇혀 있는 손의 열감에 배가 따끔거리고 아래가 간질거렸다. 집요하게 정현을 마주 보던 승원이 한참 후에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몸짓으로 손을 뺐다. 욕망을 가까스로 갈무리하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달아오른 분위기를 환치하듯 목청까지 가다듬는다.

    그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기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세단이 부드럽게 미꾸러지며 주차장을 벗어났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도 못하고 승원이 벌려놓은 옷을 추스르며 정현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는 핸들을 돌리며 무심하게 앞만 바라보는 옆모습으로 왜 쳐다보느냐고 보지도 않고 묻는다.

    "왜요."

    "황 선배한테 연락해뒀어."

    "황 선배가 누군데요. 아 ...., 그 사람한테 왜요."

    "집 좀 구해달라고."

    "....."

    "선배가 싸고 괜찮은 곳으로 구해놨다고 해서. 난 거기 내려줘."

    "....."

    평창동이든 승원의 한남동 맨션이든 사실은 어디든 싫었다. 정현은 황민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한국에 올 때마다 그의 도움을 받는 것은 염치없는 짓어었고, 제 얼굴이 그렇게 두꺼운 편도 아니었다. 서울에서 싸게 머물 수 있는 곳을 알아본 참이었다. 대답이 없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승원은 듣지 못한 것처럼 운전에 몰두한 얼굴이었다.

    "거기가 어디냐면...."

    정현은 주섬주섬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숙박 예약 사이틀 열었다. 하룻밤에 삼만 원쯤 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마포 어디쯤의 주소를 일러주려고 하는데 갑자기 차가 급정거해버린다. 안전벨트를 한 상체가 앞으로 확 쏠렸다. 화들짝 놀라 돌아보자 마침 신호가 붉은 색으로 바뀌어있다. 제동거리가 조금만 짧았어도 횡단보도를 지나는 행인을 치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운전이 이렇게 거칠어."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너무 차갑게 돌아보는 바람에 승원의 거친 운전을 나무라던 정현의 어조는 금세 작아졌다.

    ".....어?"

    "지금 뭐라고 했냐구요."

    "......무슨 운전을 그렇게 거칠게."

    "그 전에요."

    "그 전에?"

    "그 전에 뭐라고 했잖습니까. 집을 구해요? 내가 있는데?"

    돌아보는 눈빛이 형형했다. 최대한 정중해지는 말투에 정현은 그렇다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와 함께 있으려고 돌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거처와 생활의 모든 것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었고, 여태 살면서 누구에게 기대본 적이 없는 정현이라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의 생활을 미리 걱정하고 준비하는 것이 저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며칠은 게스트하우스에 있을 예정이고 미국의 것들은 대충 정리해 현금화해둔 것으로 집을 알아볼 계획이었다. 가능하면 승원이 머무는 곳에서 가까운 곳으로.

    "따로 구해야지, 그럼. 아무튼 네가 신경 쓸 문제는......"

    정현은 무어라고 대답하다 전혀 듣고 있지 않은 승원의 반응에 입을 다물어 버렸다. 신호가 바뀌고 출발하라는 뒤차의 클랙슨 소리에 승원은 다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쏠리듯 움직였다.

    "따로 살 생각 같은 거 안 해봤습니다."

    "너한테 의지하려고 한국 들어온 거 아니야."

    "무슨 뜻인지 아는데 가만히 있어요. 내가 전부 알아서 할 거니까."

    "나는 내가 알아서 해. 네가 알아서 안 해줘도."

    "사람 병신 만드는 거 한 번으로 끝내요."

    "......"

    "난 아직도....,미치겠으니까."

    핸들을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손등의 뼈가 하얗게 도드라지고 푸른 핏줄이 불거졌다. 정현은 입을 다물었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치우고 반대편 차장 너머로 얼굴을 돌렸다.

    승원의 입장이었어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고 혈육이고 핏줄이었다. 정현은 아직도 제가 그 아버지와 아들을 갈라놓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계부의 제안을 거절하고 한국으로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승원과는 만나는 일 따위 없었을 것이다. 대신 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사랑도 하지 못했을 테고, 누군가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을 만한 감정도 겪어보지 못했을 테다. 지금도 정현은 제 입으로 진실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도 묻지 않았고 변명하거나 해명하지도 았았다. 저만 아픈 것이 아니라 전부 알아버린 승원이 느꼈을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는 범주에 있을 것이다.

    어쨌든 간에 그의 아버지였다.

    정현은 무거운 눈꺼풀을 꾹 닫았다가 힘들게 떴다. 비가 내리는 서울의 밤거리를 눈에 담았다. 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내 뭉그러지듯 번지는 차장의 표면이 그의 눈동자 속에서 파르를 떨렸다.

    결국 말도 한번 꺼내보지 못하고 도착한 곳은 서울 모처의 호텔이었다. 발렛을 맡기고 차에서 내린 승원은 정현의 캐리어를 꺼냈다. 정현도 그를 따라 내렸다. 평창동 그의 아버지 집이나 한남동 맨션으로 가리라 생각했던 정현에게 호텔은 의외의 장소였다. 그는 물끄러미 보는 제 시선을 무시하고 먼저 로비로 들어가 버린다. 정현도 걸음을 뗐다. 메인 로비 너머 프런트에서 카드키를 받은 그가 따라붙는 컨시어지를 거절하고 짐을 챙겼다. 고 서 있었다.

    정현이 오르자 문이 닫혔다. 꼭대기 바로 이해층의 프레지텐설 스위트룸까지 엘리베이터는 멈추지 않고 직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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