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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신의 공주 [ 이도화(道華)]

    ────────────────────────────────────

    1화. 나 같은 남자는 어때?2016.05.02.

    조선(早先) 개국 315년.

    천왕신전에 어둑발이 내려왔다. 그 고요한 공간에서, 단 앞에 모인 신관들이 기도하듯 손을 모았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녀 탄생의 순간이었다.

    “5대 왕검 자민을 도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소서!”

    “조선을 도와주소서!”

    합창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어서 제사장 노릇을 할 신녀가 태어나 왕검 자민을 도와야 했다.

    조선에선 신녀가 스무 살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게 관행이었다. 성인이 된 후 신녀의 능력이 발휘되며 신의 지혜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대 신녀가 하늘의 부름을 받은 뒤부터 지금까지 새로운 신녀가 탄생하지 않아 그 자리는 공석이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한 번 더 합창하자 제를 올리던 신관들의 머리 위로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오색영롱한 다섯 개의 별들이 달 아래 일렬로 늘어섰다. 그 별들은 차례대로 깜빡이며 아름답게 빛났다.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난 적 없던 진귀한 현상에 모두가 입을 벌리고 경탄했다.

    그사이 빛무리를 머금고 날아든 황금색의 학이 신전 뜰의 소나무에 내려앉았다.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시, 신녀님을 경배하라!”

    대신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단 위에는 우아한 빛에 휩싸인 아이의 형체가 어렴풋이 나타났다. 동시에 제를 주관하던 그의 귀에 ‘서요’라는 이름이 아로새겨졌다.

    조선을 구원할 4대 신녀의 탄생이었다.

    “잠깐!”

    아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빛이 사라질 때, 경이로운 순간을 부수는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곧 단을 밝히던 촛불이 꺼지고 검은 복면을 쓴 사내들이 신전으로 침입했다. 잘 훈련된 무사들인 듯,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대형으로 신전을 유린했다.

    ‘설마…… 왕검 자민이?’

    대신관은 왕검 자민을 떠올렸다. 철권통치를 꿈꾸는 그에게 신전은 분명 눈엣가시일 터였다.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하늘의 뜻을 전하는 신전을 감히 엄습할 수 있는 자는 이 나라의 왕밖에 없었다.

    대신관은 이 습격의 배후가 왕이라는 판단을 하자마자 단에서 아이를 내려 재빨리 몸을 숨겼다. 자객의 목표는 당연히 신녀 서요일 터였다.

    ‘이 나라 조선을 위해서…… 절대로 이 아이를 잃을 순 없어…….’

    아이는 천왕 환웅이 내려준 신녀였다. 대신관은 서요가 이 땅을 풍요롭게 하고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여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를 찾아내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그러나 신전은 무릇 신을 모시는 곳으로, 무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신관들의 비명이 이어졌다. 그의 예상대로 신을 모시던 신관들이 자객들을 막아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대신관은 아이를 더 깊이 그러안았다. 어떠한 희생을 치러서라도, 설령 자신의 목숨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만은 지켜내야 했다.

    사방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들리는 지옥도 잠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대신관은 이를 악물었다. 신관들 모두 유명을 달리했을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이 땅을 있게 해준 신과 신녀를 모시는 신관들을 어찌 저리 무자비하게 죽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속으로 탄식하며 비참함을 곱씹었다.

    그때였다.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봐, 봤습니다. 대신관이 신녀를 데리고 도망치는 걸 봤습니다!”

    젊은 신관 한 명이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데 그 어떤 자인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대신관은 한편으론 이해하면서도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객들은 젊은 신관이 가리킨 방향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뗐다.

    마치 몰이사냥을 하는 들개처럼, 최대한 발톱을 감추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들은 숨겨뒀던 이빨을 드러냈다.

    챙!

    검을 빼든 자객들의 눈썹이 순간 뒤틀렸다. 젊은 신관이 가리킨 곳엔 빈 공간만이 자객들을 맞이했을 뿐, 대신관과 신녀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감히 거짓말을 한 것이냐! 그 죄는 목숨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자객의 일격에 젊은 신관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대신관에게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다.

    그 틈을 타서 신전을 빠져나온 대신관은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미안하다.”

    신전을 빠져나와 산비탈을 내달리는 와중에도 죄책감은 계속 그를 괴롭혔다. 대신관은 품속에 안은 신녀, 서요를 보며 속삭였다.

    “서요님. 부디 저 젊은 목숨들의 안타까운 희생을 잊지 마십시오.”

    날이 밝기가 무섭게 전국 곳곳에 대신관의 용모파기가 그려진 방이 붙었다. 왕검 자민의 명이었다.

    그러나 대신관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포착되지 않았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산속 깊이, 더 깊이 숨어들었다.

    참고 인내하리라. 언젠가, 신녀 서요가 하늘의 힘을 얻게 될 때까지.

    대신관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이햐, 이 누님은 사람이야, 옷걸이야?”

    아랫배에서 올라오는 우렁찬 목소리가 시장 바닥을 지배했다. 그 성량은 복작거리는 저잣거리에서 단연 돋보였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인 옷 장수는 지나가던 여자 한 명을 붙잡고 직접 지은 옷을 가져다 댔다.

    “가만있어 봐. 캬, 내 낭자님이 어디 계셨나 했더니만. 바로 여기 있었네.”

    “어머!”

    사내치곤 곱상하게 생긴 옷 장수가 한쪽 눈까지 찡긋거리자 여자는 금세 얼굴을 붉혔다.

    옷 장수는 여자가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그녀의 차림과 어울리는 옷을 이것저것 대보며 칭찬을 이어갔다. 입에 침이 마를 시간이 없었다.

    “호호호. 정말요? 그럼 어디 한 번 걸쳐나 볼까?”

    “옳지! 내 다음에 그 옷 입고 오면, 원하는 거 하나 공짜로 줄게.”

    옷 장수가 은밀한 얘기를 하듯 손님의 귀에 바짝 대고 속삭였다. 장사란 언제나 손님과의 특별한 약속이 중요한 법이었다.

    여자 손님이 양손 가득 무거운 옷 짐을 가지고 사라지자, 옷 장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굳혔다. 그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자니 온몸이 다 흐늘거릴 지경이었다.

    “한점이 저놈 저거, 어수룩해 봬도 장사의 귀재여, 귀재.”

    옆 좌판대 옷 장수들이 입을 삐죽였다.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시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게 말여. 아, 반말은 무슨? 마을 초동한테도 높임말 꼬박꼬박 쓰는 놈이…… 암튼 담번에 저 아낙이 옷 입고 오면 진짜 옷걸이 될 거 아녀?”

    “아, 한두 번이여? 말해 뭐혀. 손님이 호구가 되선 호객을 하니 말 다했지 뭐.”

    그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자 옷 장수 한점이 머쓱한 얼굴로 쉿! 하며 손가락에 입을 가져다 댔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거예요.”

    한점이 배시시 웃었다.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기까지 하니, 장사할 때완 다르게 순박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때마침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한점을 향해 내리쬐자 흰 피부가 더욱 매끄럽게 빛났다.

    흉을 보던 장사치들이 어깨를 으쓱하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니께 우리도 좀 도와 달란 말여.”

    “서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것어?”

    옆 점포 주인들이 친근하게 한점의 손목을 잡자 유난히 작고 보드라운 손이 드러났다. 우악스러운 남자들의 힘에 의해 화들짝 놀란 그녀의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때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해지더니 온 세상이 깜깜해졌다. 난데없는 이변에 놀란 탓에 한점을 잡고 있던 손의 힘이 살짝 풀렸다.

    그 순간, 한점은 재빨리 그들의 손을 뿌리쳤다.

    “왜 이런댜? 누가 보면 겁탈이라도 하는 줄 알겄네!”

    남자는 황당했는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평소 곤란한 부탁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던 순한 한점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몸까지 떠니, 그는 자신이 못된 짓이라도 한 것만 같았다.

    “죄송해요. 갑자기 놀라서. 이, 이따가 저녁 장사하러 나오면 도와드릴게요. 그럼 이만, 수고하세요!”

    한점은 옷가지를 마구잡이로 보자기에 싸서 시장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나오는 한점의 귓가에 누군가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하늘은 언제 먹구름이 끼였냐는 듯 환하게 바뀌어 있었다.

    허둥지둥하며 사라지는 한점의 모습에 장사치들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한점은 가끔 저렇게 이상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었다.

    급히 초가집에 돌아온 한점이 제 머리를 아프게 쥐어박았다.

    “하아……. 왜 난리를 떨었지? 뭐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자연스럽게 넘겼어야 했는데.”

    아담한 신체와 가녀린 몸이야 왜소하다 치고 넘어가면 그뿐이지만, 섬섬옥수처럼 곱고 작은 손은 오해를 사기에 충분했다. 한점은 그 부분이 항상 신경 쓰였다.

    “아휴…….”

    그는 한숨을 내쉬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니!”

    한점이 길쌈하는 무당 어머니의 어깨에 개구쟁이처럼 매달렸다. 어머니에게서 익숙하고 편안한 냄새가 났다.

    “오늘은 웬일로 집에 일찍 왔구나. 서요야.”

    어머니가 다정스레 한점의 진짜 이름을 불렀다. 그건 오직 집 안에서만 허락된 일이었다.

    얼굴에 커다란 점을 붙이고 있던 한점은 점을 떼고 평소의 서요로 돌아왔다.

    “배고파서요. 어머니, 밥 좀 주세요. 헤헤.”

    서요가 싱그럽게 웃었다. 시장에서 있었던 일은 숨기는 편이 나을 듯했다. 괜한 걱정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 근래 왠지 뒤통수가 근지럽기는 했다. 누군가의 묘한 시선이 자꾸만 느껴졌다.

    ‘분명 돌아보면 없는데…….’

    그래도 섬뜩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래그래. 준비하마.”

    서요는 조촐한 밥상 앞에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식사하기 전 하늘을 향한 감사 인사였으며, 대신관과 무당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서요는 집에만 있어 답답할 어머니에게 바깥세상 얘기를 쉬지 않고 조잘거렸다.

    ‘신녀 서요’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장 생활을 지속해 온 만큼, 그녀는 말할 때나 몸을 움직일 때도 남성스러운 느낌이 많이 묻어있었다.

    오랜 도피 생활 끝에 대신관이 이승을 등진 뒤부터 무당은 줄곧 서요를 홀로 키워왔다.

    무당은 그녀 자신도 가혹한 운명을 견뎌야만 하는 입장이었지만, 마음 놓고 평안히 살 수 없는 서요가 늘 안쓰러웠다.

    “아, 맞다! 오늘 갖다 준다고 했지.”

    그때 서요의 머릿속에 잊고 있었던 약속이 문득 떠올랐다. 이레 전, 화루의 기녀 홍화에게 잇꽃이 그려진 저고리와 치마를 가져다주기로 했던 약속이었다.

    “내 정신 좀 봐. 그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그래도 참…… 직접 가지러 올 것이지. 매번 종처럼 부리기나 하고.”

    서요가 입술을 삐죽였다. 불만이야 많았지만 단골손님인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순 없었다.

    서요는 대충 식사를 끝내고 보자기에 옷가지들을 쑤셔 넣으며 일어났다.

    “한술 더 들지 않고?”

    “급해서요, 어머니! 다녀올게요!”

    ***

    용미촌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기루 ‘화’. 서요는 그곳의 대문 앞에 섰지만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꽃처럼 아리따운 여인들이 분내를 풍기는 탓일까,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들었다.

    “이젠 기루 일은 받지 말아야지…….”

    서요는 작은 다짐을 하며 대문을 가볍게 밀었다. 화려한 색감의 대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기루엔 얼큰하게 취한 사내들이 마당을 휘젓고 있었다. 필시 밤새 내리 마신 작자들임이 분명했다. 심지어 먹었던 걸 확인하는(?) 자들도 더러 보였다.

    ‘하이고…….’

    서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 난잡한 상황에서도 기녀들의 몸짓은 나비처럼 사뿐사뿐 가벼웠다. 걸을 때마다 양쪽으로 볼기짝이 실룩였고, 고운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며 매혹적인 미소를 내비쳤다.

    ‘여인들이란 저런 모습인 건가…….’

    서요의 시선이 뭔가에 홀린 듯 기녀들을 좇았다. 사내들만 가득한 시장통이 그녀의 주된 생활 터전이니 그럴 만도 했다.

    ‘이렇게 하는 건가?’

    호호호. 서요는 은연중 기녀의 웃음소리를 따라 해 보다 저 혼자 낯부끄러워져서 괜스레 헛기침만 두어 번 했다.

    “큼! 큼!”

    서요는 그 한 번의 흉내로 온몸에 닭살이 돋고,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어울리지도 않은 여자 흉내, 이제 와 내 봤자 될 일도 아니었다. 돼서도 곤란했다.

    “홍화 님 어디 계십니까?”

    서요는 지나가던 기녀를 붙잡고 기녀 ‘홍화’의 행방을 물었다.

    기녀는 이리 왜소한 남자는 처음 본다는 듯 피식 웃으며 홍화가 들어간 방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덧붙였다.

    “절대! 안으로 들어가지 마세요. 그 방 손님이 아주 유별나거든요.”

    “예? 어쩌지. 아! 그럼 대신 전해주시겠습니까?”

    서요가 홍화의 옷가지를 내밀었다. 그러자 기녀가 기겁하며 물러섰다.

    “아니요! 홍화 님 성격 모르세요? 남 손 닿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데. 그 앞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하곤 기녀는 줄행랑을 쳐버렸다. 늘 이렇게 옷을 가지고 올 때면, 다른 기녀들의 옷은 잘 받아 전해주면서 유독 홍화의 것은 아무도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마을에서 기녀 홍화는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외모가 아름다운 것은 물론, 지성과 기예 또한 출중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물론 가장 유명한 건, 바로 그 예민한 성격이지.”

    서요가 숨을 크게 내쉬며 창호지 문 앞에 섰다.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하릴없이 시간이 흘렀다. 저녁 장사를 시작하려면 지금쯤 다시 시장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대낮부터 술판을 벌이기라도 한 건지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늘 웃는 상이던 서요도 지금만큼은 입술을 쌜쭉거렸다.

    “에라 모르겠다. 홍화 님, 홍화 님!”

    참다못한 서요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홍화 때문에 서요도 저녁 장사에 차질이 생겼으니 혹여나 그녀가 심통을 부려도 꿀릴 건 없었다.

    “기다려!”

    예상과 달리 방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어 뭔가 우당탕 쏟아지는 소리도 들렸다.

    대체 뭐지? 뭔 작당이지?

    서요의 얼굴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홍화 님?”

    서요는 뜻밖의 소음에 의아함을 안고 방문을 열어젖혔다. 혹시 방 안에서 무슨 큰 사달이라도 난 것인가 싶어서였다.

    그 순간, 난데없이 마른하늘에 벼락이 번쩍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녀는 슬쩍 눈을 떠 방안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반쯤 풀어진 저고리, 그윽하게 바라보는 눈빛.

    눈앞에 들어오는 광경에 멍하니 서있던 서요는 그의 눈빛에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그는 재밌는 일을 방해받기라도 한 듯 매서운 눈빛으로 서요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름다웠다. 아니, 그런 표현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태생부터 고귀한 존재인 듯 검은 눈은 별처럼 빛났고, 그림 장인의 솜씨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뻗어 나간 얼굴선은 굵고 섬세했다. 거기다 살짝 올라간 입매는 여자보다 더 매혹적이었다.

    서요는 선인이라도 본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풍상을 겪어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촌사람과는 너무도 달랐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가슴팍은 매혹적인 얼굴과 달리 남성적인 매력을 부각시켰다.

    서요는 한참 동안이나 그의 자태를 바라봤다. 아니, 넋을 놓고 있었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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