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과실]라스넬 - 7

128일전 | 126읽음

가시는 분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죠! 씁쓸한 밤, 불타오르는 그곳을 달래주는 데는 역시 ‘파예’만한 것이 없죠!”




역시 직접 확인하시는 게 좋겠죠? 하면 금발 ‘파예’의 바지를 내리기 위해 척 손을 올린다. 당연하게 내 주먹이 더 빨랐다.



퍽!




“ 꾸아아아악--!”




쿵!



붕- 소리와 함께 날아가 바닥의 먼지와 뒹구는 노예 상인, 아니 탐관오리를 보며 ‘난 암행어사다!’를 자기 최면을 거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사태가 수습되기까지 나는 약간의 자유 시간을 얻었다. 처음 상회측은 나의 이유 없는 폭력에 항의하려 했지만 란위가 건네는 보상금에 실실 웃음을 뿌리고는 곧 새로운 안내인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솔직히 ‘파예’를 사고 싶은 마음이 없어 집으로 갈까하는 내게 란위는 설명을 덧붙였다. 제국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학생은 딱 한 명의 노예만을 데려갈 수 있는데 대부분 남녀가 엄격히 분리된 기숙사에서 들끓는 청춘을 해결하기 위해 다재다능한 ‘파예’를 데려가는 것이 거의 관례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파예’는 다방면에서 뛰어났고 그건 밤 시중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낮에는 시종으로서 주인님을 보필하고 밤에는 다른...의미로서 주인님을 모신다고 할까나.



그 황당함과 생소함, 민망함에 입을 벌린 채 문화충격을 겪고 있는 내게 란위는 아까 탐관오리가 추천해준 ‘파예’를 사는 게 어떠냐고 담담히 덧붙임으로써 일차 공격으로 분쇄된 내 정신을 하얗게 가루로 만들어 날려주는데 큰 공로를 세웠다.




“ ....나...잠깐...머리 좀 식히다 올게..”




컬쳐 쇼크로 인해 비틀거리는 나를 따라오려는 란위를 거부하고는 ‘파예’가 전시된 방안 깊숙이 들어갔다. 이 건물을 벗어나는 것은 초행길인 내게 위험했으니 내가 갈 데라곤 이 방안 밖에 없었다.



마네킹 같이 서 있는 그들이 좀 무서웠지만 이미 귀신 붙은 집에 살고 있는 마당에 뭐가 대수냐란 생각에 조금 더 들어가자 방을 구분 짓는 벽이 보인다. 슬쩍 안을 들여다보자 역시 그 안에도 ‘파예’들이 있었다.



....근데 묘하게 방금 지나치면서 본 얘들과 뭔가 다른 거 같은데. ..그게 뭘까 고민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 그쪽은 중급 ‘파예’입니다.”




돌아보자 인상 좋게 생긴 웬 40대 아저씨가 보인다. 나의 누구냐는 눈빛에 그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날아간 탐관오리를 대신해 여기를 안내할 노예상인이라고 했다.




“ 제인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연륜 있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 아까와는 너무 다른, 차분하면서도 진중한 노예상인에 조금 얼떨떨해져 있는데 그는 내게 어떤 취향을 원하냐고 물어왔다.




“ 아니...솔직히 말하면 별로...”




사람을 노예로 부린다는 것도 어색했고 기분도 썩 좋지 못하다. 반드시 데려가야 하는 것도 아닌 거 같으니 그냥 돌아가는 게....




“ 저쪽의 갈색 머리의 아름다운 파예와 이야기하니 도련님께서 밤 시중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으신 거 같다고 하더군요.”



“ ...아...뭐. 그렇죠. 하하...”




캭! 내 나이에 밤 시중이라니! 민망함에 나는 고개를 돌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 잠시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역시 그냥 돌아갈게요, 라고 말하려는 순간 기막힌 타이밍으로 그가 앞장서서 안으로 들어간다. 그의 상인 같지 않은 친절함과 분위기에 차마 매정히 거절 못하고 일단 그를 따라 들어갔다.




“ 보통 ‘파예’는 최상급, 중급, 하급으로 나뉩니다. 각자가 가진 외모와 능력에 따라 구분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외모와 밤일, 그 중에서도 밤일이 가장 큰 결정조건이지요.”




그는 내가 세상 물정에 어둡다는 것을 느낀 건지, 원래 주절거리는 성격인지 걸어가면서 입을 멈추지 않았다.




“ 무력이야 파예가 일반 노예들보다 뛰어나기는 합니다만 주인을 지키는 위한 목적이라면 잘 훈련된 기사 하나를 부리는 게 차라리 나으니까요. 요리나 세탁, 청소에 능하지만 일반 하녀들로 대체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글과 교양을 배웠습니다만 그 역시 주인들의 학식에 비할 바는 아니죠.”



‘ 다재다능하다는 말은 어떻게 보면 특별히 어떤 한 분야에선 그리 뛰어나다는 건 아니란 의민가?’




아까 란위가 말하기론 파예는 일반 고급 노예보다 최소 10배 이상 비싸다고 한다. 그런 거 보면 귀족들의 파예 선호도가 높다는 거겠지? 아니면 파예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의미거나.



그는 천막이 드리워진 곳에 가서야 발을 멈췄다.




“ 지금부터 보실 파예는 ‘하급’입니다. 대부분 밤일에 문제가 있는 노예들이죠. 대신 다른 능력이 뛰어납니다. 때문에...”




..때문에? 뭐요? 갑자기 말을 망설이는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자 어딘지 씁쓸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 ‘특정’ 용도로 팔려나가곤 합니다. 그래서...”




천막을 젖히자 한 무리의 파예들이 보였다. 그들은 맨 처음 봤던 ‘파예’와는 확연히 달랐다. 대부분 안색이 좋지 못했고 몸에 상처가 난 사람도 많았다. 안대를 한 파예도 있었고, 팔이 하나 없는 파예도 있었다.




“ 상태가 보통 좋은 편은 아니죠.”




그들을 대충 둘러보고는 나는 노예상인을 쳐다보았다.




“ 저한테...무슨 불만 있으세요?”




...도대체 나한테 이걸 보여주는 의도가 뭐야! 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말투가 싸늘해진 것을 느꼈는지 제인은 사과하듯 가볍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 불만이라니요. 그저 취향에 맞는 ‘파예’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드리는 거뿐입니다. 저 앞쪽만 보고 가시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요.”



“ .....전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혹시 뭔가를 기대했다면 크게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 ...저 역시 귀족 분들에게 이곳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설사 도련님 같은 높은 신분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 내...내가 누군지 아는 건가?’




당황의 눈길로 쏘아보자 그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 입고 계신 옷이 브레난 왕국에서 한 해 100필만 생산된다는 최상품 비단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요. 웬만한 귀족이나 대상인이 아니고서야 엄두도 못 내는 가격이지요.”




갈아입을 때 감촉이 지나치게 좋다싶었지만 설마 그 정도로 비싼 걸 줄이야! 되팔면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데 다시 제인이 말했다.




“ 편하게 보십시오. 저도 왜 하필 도련님께 이곳을 보여드렸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편히 봐주셨으면 좋겠군요.”



“ ....안 살 건데요.”



“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잔잔한 미소를 띠운 그를 보며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는 다시 안을 둘러봤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대기상태’라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듯 부동자세 그대로였다. 왠지 저 넉살좋은 상인에게 휘둘리는 느낌에 그냥 대충 보고 지나가려다 구석에 있는 검은 덩어리(?)가 눈에 띠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온 몸에 아물지 않는 상처가 가득한 검은 머리의 파예가 보였다.




“ ....학대하는 취미라도 있어요? 왜 치료를 안 했죠?”



“ 그건 마법으로 생긴 상처입니다. 일반 상처보다 훨씬 회복이 더디죠.”



“ 마법?”



“ ..네. 그 파예의 전주인은 마법사였습니다.”




거짓말! 마법사가 아니라 고문관이었던 거 같은데!? 그의 몸에 보이는 크고 작은 상처를 보니 입안이 매우 쓰다. 붉으죽죽한 화상자국과 멍 자국, 거기다 일부러 굶겼는지, 못 먹은 건지 하얀 갈비뼈가 앙상히 들어나 있다.




“ 그는 사실 최상급 ‘파예’로 태어났습니다. 외모와 능력 그 어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죠. 단 하나. 그가 발기부전이라는 것만 빼면 말입니다.”




....아. 정말 싫어진다. 이곳.




“ 파예에게 있어 발기부전은 최악의 재앙이죠. 그는 순식간에 하급으로 낮아졌고 그 뒤로는 험하게 몸을 굴리는 것을 요구하는 주인들만 만났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상처투성이로 돌아오곤 했습니다만....이번엔 마법사들의 실험체가 된 건 정말.... 살아남은 것만도 기적이죠. .....아마 다음번에는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지금도 간신히 살아있는 상태니까요. 라고 말을 덧붙인다. 처음 봤던 금발 파예와 키만 비슷하고 상태는 극과 극이다. 나는 피와 먼지가 지저분한 엉긴 검은 머리를 잠시 바라본 뒤, 노예상인에게 고개를 돌렸다.




“ 이제 그만 가도 되죠?”



“ ...네, 물론.., 음? ....예에?”




내가 그 파예를 살 줄 알았는지 노예 상인의 느긋한 얼굴이 무너지고 당황으로 가득 찬다. 그 모습에 통쾌함을 느끼며 태연하게 걸음을 옮겼다.




“ 아니....그럼 왜....굳이 그 파예에 가까이 가셨나요?”




황급히 나를 뒤따르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 ....머리색깔이.....”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누군가들을 닮아서.




“ ..예?”



“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상처가 눈에 띠어서요.”




대충 대답하고는 란위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를 돌아갔다. 상인들의 온몸을 던진, 필사적인 판촉 전략에도 불구 나는 대형 마차에 몸을 싣고 저택으로 향했다. 란위는 가는 도중 다시 한 번 내게 권유 했지만 나의 단호한 대답에 그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는 묻지 않았다.



집에 가서 라이작에게 ‘파예’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하자, 잠시 나를 그 무표정한 얼굴로 주시하더니 알아서 하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 기초 교양을 배우기 위해 특별 과외를 받을 거라고 한다. 문제없다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다음 날부터 시작되는 빡빡한 일정에 저녁에는 항상 침대에 고꾸라져서 자야 했다. 덕택에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인페르노가 베개 몇 개를 태워먹었지만.




눈 뜨자마자 연병장을 도는 거부터 시작해서 검술, 정치, 경제, 역사, 지리, 교양, 춤 등등. 일주일 동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렇게 하고도 다음날까지 공부를 시키려는 비효율적인 학습에 나는 강하게 반발하며 선생님들에게 따지지...않고 그냥 땡땡이를 쳤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땡땡이도 아니다. 오전, 오후 공부를 다 끝내고 저녁 식사 전엔 복습 겸 치러지는 시험을 안 친 거뿐이니까.




‘ 그래, 땡땡이는 아니지.’




변명에 대한 자기합리화의 마지막 과정을 밟으며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훼이른이 갑자기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보고 갸웃했지만 나는 그저 빙긋 웃고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저번에 란위와 나왔을 때보다 마차 속도가 빠른 탓에 풍경을 감상하기가 힘들었다. 저녁이라 어두운 탓도 있었고.




나에 관한 사항은 가문 안에서도 극비(?)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년 동안 내가 별궁에서 누워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총집사인 훼이른은 그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그는 내가 제국 아카데미에 간다는 말에 큰 아쉬움을 보이며 뭔가 선물을 주고 싶어 했다. 이 저택에서 유일하게 날 신경 써줬다는 그 자체만으로 너무 고마웠지만 자꾸 뭔가를 바라는 게 없냐고 묻는 통에 외출이 하고 싶었던 나는 서점에 가서 책을 사달라고 했다.





“ 라스넬님.”




오랜만에 맡아보는 책 냄새에 흠뻑 취해 멍하게 구경하던 나에게 훼이른이 불쑥 말을 꺼냈다.




“ 이 근처에 온 김에 잠깐 무기점에 들리고 싶은데..”



“ 그래?”



“ 잠시만 여기 혼자 계셔도 괜찮겠습니까?”



“ 응. 걱정 말고 다녀와.”



“ 금방 다녀올 테니 어디 가지마시고 여기에서 책을 고르고 계십시오.”




걱정 말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별궁의 병약한(?) 도련님을 두고 가기 안심이 안 되는지 훼이른의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 성인식도 무사히 잘 끝낸 나라고. 아직도 어린애라 생각하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어제 교양 시간에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강하게 나가자 굳은 얼굴이 잠시 묘한 표정이 되었다가 ‘ 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며 미소 짓는다. 근데 그 미소가 마치 5살짜리 꼬마가 ‘난 꼬마가 아니야!’ 라고 투정부리는 것이 귀여워 죽겠다는 느낌이었다.




‘ ....어제 배웠던 ‘사람들이 저절로 복종하게 되는 귀족의 카리스마’.....이..이게 아닌가?’




왠지 모를 실망감에 휩싸여 훼이른을 서점 문 앞까지 배웅(?)해주고는 다시 돌아와 서적을 뒤적거렸다. 3년이나 남았지만 미리미리 다른 나라에 대해 잘 알아둘 요량으로 모험 관련 책을 훑어보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뭐지? 이 오싹한 기운은?’




허리춤에 달려있는 인페르노도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징- 하고 반응해왔다. 온 몸을 소름끼치게 하는 이상한 기운은 서점 뒤편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호기심이 일어 보던 책을 내려놓고 서점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손잡이를 잡았다.




“ ....도련님! 어디 가십니까!"




훼이른이 미리 말해 놓은 건지 판매대를 지키던 주인이 다급하게 물었다. 나는 잠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는 문을 열었다.




“ 화장실 좀.”



“ ...네? ..화장실이라면 이 안에 있는...!”




못 들은 척 나가며 문을 닫는데 그가 서둘러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 ...그..그런...도련님! 노상방뇨는 제국에서 불법인....!!”




캭! 노상방뇨라니! 날 어떻게 보고! 울컥해서 다시 들어가 한마디 해줄까 하는데 갑자기 그 파동이 더 강해진다. 나는 서둘러 파동이 느껴지는 서점 뒤편으로 달려갔다.



사람들이 왕래하지 않는 으슥한 골목에 네다섯 명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기에 발소리를 조심하며 나는 벽에 기대 최대한 바짝 그들에게 다가갔다.




“ ....죽여도.....상관....”



“ ......그렇지만...이렇게....잘 견디......실험....구하...쉽지 않....”



“ .......이미...죽은 거 같은....”




그러면서 자신들 앞쪽에 있는 검은 물체를 발로 툭툭, 찼다. 물체는 잠깐 꿈틀거리기는 했지만 더 이상 반응하지 않았다.




“ ...마지막.....한 번...더..”



“ .....소멸 마법....하면.....흔적은...남기지...않....”




몇 차례 말을 더 주고받더니 결론이 났는지 그들은 그 물체와 거리를 벌렸다. 한 남자가 작게 뭐라고 중얼거리자 잠시 후 지지직- 거리며 전기성을 띤 푸른 구체가 그의 손 위에 만들어졌다. 처음 보는 전격 마법에 감탄할 틈도 없이 나는 아까부터 오감을 자극하던 음산한 기운이 폭발하듯이 팽창하는 걸 느꼈다.




“ 피해요-!!!”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그들은 모두 놀라서 나를 돌아보았다.




“ 넌 뭐....커헉!”




가장 가까이에서 전격 마법구체를 들고 있던 남자의 가슴을 검은 색 기류가 뚫고 나왔다. 더운 피가 확 사방으로 뿜어지자 소년의 난입으로 어리둥절해 있던 사람들이 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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