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과실]라스넬 - 3

127일전 | 175읽음

니 동생이냐! 니가 내 동생이지!




결국 우리는 누가 조금이라도 빨리 태어났는지 달수, 시간까지 계산해 보았다. 아슬아슬하게 2시간 앞서 녀석이 태어났음이 판명나자 아주 좋아죽으려고 한다. 쳇. 그래봤자 내가 정신연령이 더 위라고.




- ...어머니의 시신은 지하 얼음 창고에 있다. ....너라면, 이 몸의 원주인이라면 어떻게 운반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나는 이제 녀석이 정말로 가야 할 땜임을 알았다. 막상 간다고 하니 생각보다 많이 섭섭하다. 만난 지 하루 밖에 안 됐는데....이상할 정도로.




“ .......보고 싶을 거야.”



- 흥... 난 니 생각 조금도 안 할 거다! 이 지긋지긋한 육체를 떠나자마자 너를 잊을 거야!



“ 그래. 알아. 너도 내가 무척 보고 싶을 거라고? 자자, 울지 말고. 토닥토닥.



- 이잇, 누..누가 그렇다는 거냐!




어쩐지 이 성격 조금 맘에 들었는데. 투덜거리는 소리에 왠지 콧잔등이 시큰해진 내가 우울해진 표정을 지었는지 아까도 찔찔 짰을 때 진짜 추했다며 울지 말라고 한다.



울컥했지만 이내 나는 우유팩을 잡고 천천히 목으로 넘겼다. 녀석은 우유를 다 먹을 때까지 내내 말이 없다가 거의 다 먹을 때쯤 왠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 너와...같은....공간에서...형제로 태어났다면...좋았을 텐데......




녀석의 중얼거림은 잘 들려오지 않았다. 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기에.



아! 이게 도대체 몇 번째 기절인 거냐고! 유사품 구매 주의가 아니라 부작용이 있다는 것을 적어 놨어야지. 이 사기꾼들!!



...소비자를...우롱하는......악덕...업계.....같으니....라구.....




풀썩.



두 번 다시 차원계 제품은 물론이고 사람도 믿지 않으리라 결심하며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 ..련님 ....라스...!”




얼굴에 뜨거운 숨결이 느껴진다. 답답해진 느낌에 손을 들어 치우자 다시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그 느낌에 만족하며 돌아누으려는 순간 가슴에 무언가 턱- 하고 얹혀졌다. 그리 무겁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런 무게감에 깜짝 놀라 눈을 뜨자 눈앞에 내 입술에 닿을 듯이 당도한 푸르딩딩한 생물체(?)가 보였다.




“ 도련님~♡ 아침 키스~”




괴..괴물이닷!!



당연하게 온 힘을 다해 그 괴생물을 갈겼다.



퍽!




“ --꺄악!”




쿵!


-주르륵.


털썩.



...어쩐지 익숙한 광경. 아침부터 데자뷰라니 감지할 수 없다던 평행우주 이론이 실제화 되어 빛을 발했음을 암울하게 중얼거리는데... 언제 왔는지 수다 삼형제가 들어와 날아간 물체를 보며 꺅, 꺅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아. 정상적인 아침이 무척이나 그립구나.







“ 으허어엉....정말 너무...해요...”



“ .......그래.”



“ 으허어엉...전 라스넬님이 부탁하신 대로...어으흥....키스로 깨어드릴 려던 거뿐인데...흑흑..”




사실 그게 제일 큰 문제였거든. 나는 하고픈 말을 참으며 입술이 푸르다 못해 시꺼멓게 변한 소년을 위로했다.




“ 미안. 내가....꿈속에서 건방진 동생이 하나 생겨 놀아주느라고...좀 화가 났었거든. 그랬더니 아침에 나도 모르게...그 화가 분출됐나봐.”




어디 먼 차원에서 ‘야, 인마! 너 죽을래?’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지만 신경 쇠약이라 무시하며 다시 소년을 바라봤다.



자신을 라스넬의 첫째가는 귀염둥이 라쳇(이 대목에서 온 몸에 닭살이 돋았다.)이라고 밝힌 그는(누군지 알아서 말해주니 참 편했다) 라스넬이, 즉 내가 직접 데려온 인근 마을의 소년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내 침대 옆에서 올망졸망한 눈으로 쳐다보는 평균 나이 14세 아이들을 보며 나는 머리를 감쌌다.



동성애는 둘째 치고 이 어린 것들을 데려다가 너 진짜 뭐한 거야!!! 당장이라도 라스넬을 끄집어 와서 십년정도 밟아주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솟았지만! 우선은 당장 사태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 ......그러니까 너희들 전부 다 내가 데려왔다는 거지?”



“ 네, 네! 저희는 그때가 아직도 어제 같은 설마 라스넬님은 잊으신 것은...!!”



“ 너무해요! 라스넬님. 저흰 아직도 그날의 밤이 잊혀지지 않는...”



“ 캭! 그..그만! 그래! 기...기억나는 거 같아! 그러니까 더 말하지 않아도 돼!”




황급하게 말을 끊은 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 소년들일까. 그들의 성별을 확실하게 안 뒤였지만 도무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별 안 가는 얼굴들을 보며 나는 또 다시 한숨을 길게 쉬었다. 이런 얼굴이 니 취향이었냐. 지도 어린 주제에! 이 변태애로소년!



벽에 부딪혀 부풀어 오른 입술로 한참을 울먹이던 소년은 나의 한숨에 더 서러운지 눈물을 크게 터트렸다. 아아..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집에 가라고 하면 되나? 돈을 줘서 보내야 하나? 내가 가진 돈이 있을까? 끙끙 -거리며 고민하는데 갑자기 문이 열렸다.




“ 라스넬님.”




정말 완벽한 데자뷰인 거냐. 어제와 한 치도 다름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그를 보며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의 등장에 독수리 앞에 간장 소스 발라진 쥐새끼마냥 떨기 시작하는 사총사를 보았다. 훼이른은 그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꾸짖고는 돌아가면 벌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사총사가 나를 살려달라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쳐다본다.



윽. 그 부담스러운 눈길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 ....벌을 주지 말고 차라리 집에 돌려보내..세....”



“ 네?”




앗, 잊을 뻔 했다. 반말! 건방지게! 싸가지 없는 전(前) 라스넬을 본받자! 나는 스스로에게 암시를 걸듯 다짐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 벌 대신 그냥 집에 돌려보내.”




그러자 잘못했다며 대성통곡하기 시작한다. 제발 버리지 말라며 바지를 잡는 가냘픈 손들에 깜짝 놀라 다리를 뒤로 뺐지만 그대로 안 떨어지고 흡사 거머리처럼 딸려온다. 도리어 겁에 질린 내가 ‘ 엄마! 얘네 뭐야, 무서워!’ 라는 기괴한 비명을 지르기 전에 다행이도 훼이른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떨어져 찍 소리도 내지 않고 빠르게 방을 빠져나간다.




“ ...죄송합니다. 아랫것들 교육이 제대로 되지 못해서.”



“ ...아니. 미안할 거 없어. 내가 데려온 애들이니까..요...지는! 그래, 요지는 돌려보내란 거야! 자기가 살 던 곳에. 그 동안의 노고가 있으니 적당히 돈 좀 주고 보내..에... 끄응.”



“ .....알겠습니다.”




거의 할아버지뻘 되는 분에게 반말을 하려니 적응이 안 된다. 그렇겠다고 대답하면서도 내 말투가 뭔가 이상했는지 훼이른이 나를 쳐다본다. 콩닥거리는 가슴을 숨기며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땐 역시 화제전환!




“ ...날씨가 맑군.”



“ 네. 도련님의 성인식을 치르기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 확실히 성인식을 치르기 좋은......뭐!?”




번개처럼 획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부담스런 눈에 당황했는지 딱딱한 표정이 조금 풀렸지만 이내 본 얼굴로 돌아와 머리 나쁜(?) 도련님을 위해 차분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오늘이 바로 라스넬님의 17번째 생일이 아니십니까. 성인식을 하는 날이지요.”




왠지 감개무량해 보이는 표정에 무언가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 17살, 성인식 때....평생의 무기.....무기고에 가서 무기를 고른다.]




“ ...첫 번째 선택..”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데 훼이른이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들고 온 옷을 내려놓고 내 잠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아저씨 앞에서 벗겨지는(?)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그의 손길은 매우 익숙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고 또 정중해서 생각보다 쑥스러움이 덜했다.



[꼬르륵]



정적을 깨는 엄청난 괴음에 그 소리를 낸 당자자인 나도 어리둥절했다.



...뭐...뭐지? 이 공룡이 개미핥기가 되기 위해 백일 간 단식 했을 때나 날 법한 소리는?




“ ...바로 조식을 준비하겠습니다.”




...윽.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보니 나 기절해 있느라 만 2일 가량을 굶었단 말이야!! 빨개진 얼굴을 가리며 애써 속으로 변명해보지만....이 쑥스러움과 민망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옷을 다 입혀주고 돌아서는 훼이른의 몸이 약간 떨리는 거...지구가 돌고 있어서 아니, 이 행성이 돌고 있어서 그런 거겠지? 그렇지?



꾸르륵 거리는 배를 쓰다듬었지만 소리는 줄어들지 않았다. 미안. 담부터 너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할게. 훼이른이 돌아오기까지 뿔난 내 위장을 위해 맹세를 했다.




아침식사라고 하기엔 거한 한 상을 허겁지겁(나름 티비에서 봤던 대로 했음에도) 평민처럼 먹는 나를 보며 훼이른이 엄청 심각해진 얼굴로 그 사총사를 엄하게 꾸짖겠다고(주인님 밥도 못 챙긴다고)했지만 나는 그것이 차원계 부작용에 의한 기절 탓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그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식사를 다 마치고는 훼이른을 따라나섰다. 확실히 라스넬이 멀리 떨어진 별관에 거주했는지 본궁에 가는 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걸어야 했다. 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버려진 둘째 도련님이었구나. 버려졌다고 해도 과거의 내 방보다는 몇 배나 화려해서 잘 몰랐는데, 가면 갈수록 나타나는 화려한 건물에 그제야 납득이 갔다.



삼면이 유리에 덮여 금으로 세공된 사치스런 통로와 장미 넝쿨이 얽어진, 새하얀 외벽. 무가(武家)라고 해서 칙칙한 분위기를 상상했던 나는 화려하면서도 결코 경박하지 않은 장엄한 분위기의 건물들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 했......으면 좋겠지만 주위에 보는 눈들이 워낙 많아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사람 구경을 하는 건지 건물 구경을 하는 건지. 더군다나 훼이른을 보고 고개를 숙이던 사람들이 내가 보이면 성급히 무릎을 꿇기까지 한다.




' 흠. 뭔가 차이가 있는 건가? 단순히 내가 더 높은 신분이라서 그런 건가? '




정확한 예절이 궁금했지만 일단은 뻔뻔하게 무시하라는, 녀석의 말을 상기하며 나는 무심하게 걸으려고 노력했다.



본궁에 도착하자 입구에 대기하던 기사들이 나를 발견하고는 성급히 허리를 굽혔다. 내가 나타난 것이 되게 의외다란 표정이었다가 곧 내가 입고 있는 옷을 보더니 알아서 이해한 표정이다.



어디선가 구해온 횃불로 앞장서 걸으며 훼이른은 본궁의 으슥한 지하로 나를 안내했다. 가는 도중에 상당히 수의 무인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내가 올 줄 알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허리를 굽히며 더 음습하고 어두운 지하로 나를 이끌었다.




‘ ...뭐지? 뭔가 째릿-하는 느낌이..’




가는 중간 중간에 신경을 거슬리는 이상한 기운을 받았다. 훼이른이나 다른 기사들은 느끼지 못했는지 말이 없었지만 천장이며 벽에 뭔가가 숨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쌀쌀한 것도 아닌데 팔에 오도독- 돋는 소름을 어루만지며 나는 이 성이 귀신에 들렸다고 확신했다.




‘ ...외관은 이렇게 멋진데 귀신이 붙었다니, 하루 빨리 돈을 모아 이 곳을 나가야겠구나!’




현실성 있는 각오에 불타올라 주먹을 쥐어 올리는데 훼이른이 그걸 보더니 기특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성인식 파이팅! 나 잘 할 거야!’ 라고 각오를 곡해해 받아들인 듯 하지만 굳이 정정할 필요는....없겠지. 그래.




“ 와아...”




어떤 상황에서 태연하리라 각오했지만 내 키(170정도 된다)의 5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철문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야 말았다. 그러나 얼른 이 촌뜨기 같은 탄성을 누군가 들었을 까봐 입을 다물며 주위를 살피는데 훼이른과 눈이 딱 마주쳤다. 윽!




“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는 정말 놀라운 광경이죠. 저도 여러 번 보았지만 볼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나 여기 처음이구나. 성인식이 아니면 이곳에 내려올 수 없는 건가? ...그래서 경계가 그렇게 삼엄한 거였나? ...무기고가 중요하다는 의미겠지?



이 문을 어떻게 열까 궁금해 하며 훼이른과 뒤따라온 기사들을 봐주는데 그들은 오히려 내 얼굴을 보고 있다. 뭔가 민망한 기분에 헛기침을 하니 잠시 황당해 하던 그들 사이에서 얼른 훼이른이 정신을 차려 설명한다.




“ 잘 알고 계시겠지만 문은 성인식을 맞이한 보르크 가문의 사람만이 열 수 있습니다. 간단히 손만 갖다 대면 열리니 제 걱정은 마시고 시작하세요.”




성인식 절차를 까먹은 무식한 도련님이란 오명이 안 남게 노력하는 훼이른이 고마워 애정 어린 눈길을 보낸 뒤, 나는 천천히 철문 앞으로 걸어갔다.




‘...만약 안 열리면? 그러면 어떡하지?....정말 쪽팔릴 텐데.’




영혼이 바뀐 탓에 혹시 안 되면 어떡하나 걱정과는 다르게 망설임 없이 한 번에 문 앞에 손을 갖다 대버렸다.



차가운 금속을 느낌과 동시에 손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다. 나직이 감탄하면 한 걸음 물러서자 맞닿은 부분에서 시작한 붉은 빛이 철문의 구석구석 감싸더니 크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정말 판타지 세계구나. 문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어쩐지 조금 감동한 기분이 되었다. 얼른 들어오라고 뒤를 돌아보는데 모두 멀찍이 서 있다.



음? 뭐지? 이 견우와 직녀를 연상케 하는 간격은.




“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설마 이 귀신 붙은 성 지하 무기고에 나 혼자 남겨두는 건 아니겠죠? 아닐 거야...하며 어색하게 웃었지만 문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 잠..”




..깐! 이라는 나의 금싸라기 같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철문이 쿵- 소리를 내며 완벽하게 닫쳤다. 곧 주위에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잠시 나는 두 눈을 깜박 깜박 거렸다.




‘ 그러니까 나 혼자 이 어둠속에서 무기를 골라야 한다는 거야?’




.........절대 싫어!




“ 캭! 싫어어어엇--! 내보내줘!! 난 어둠이 싫다고!”




순간 겁에 질려 손에 문을 대보기도 하고 두드려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 열란 말이야! 나 무기 필요 없어!! 없다고!! 그러니까 내보내줘어엇! 성인식 안 할 거야!!”




쾅쾅-!




“ 그냥 피터팬 할래!! 성인 안 된다니까아앗!! 엄마아아앗---!! 열어줘요!! 훼이른!!”




목이 떠나가라 소리쳤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다. ....철문의 두께가 50Cm 는 넘어보였으니 내 비명은 들리지 않겠지...



하도 고래고래 비명을 지른 탓에 호흡이 벅차 나는 잠시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골랐다.




‘ ...허억..헉... 그..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여긴 무기고니까 유령이 나타나면 무기로 없애면 되지. ...아니, 잠깐!! 내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거지? 무기를 선택하면 저절로 문이 열릴 텐데! 이건 무기를 고르는 성인식이니까!’




너무 당황해서 머리가 굳었었나 보다. 나는 얼른 새까만 어둠을 향해 눈에 힘을 주어 살폈다. 어둠에 익숙해져야 사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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