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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족의 신부 1-83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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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Part 01. 네로

    프롤로그. 어느 종주의 사정

    벽을 더듬더듬 손으로 짚어 가며 허공에 손을 휘젓는 아이. 또래에 비해 앳된 외모나 작은 체구는 연약하기 그지없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의 세계가 고작 자신들이라는 건 소녀에게 결코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애타게 찾는 소녀를 볼 때면 묘한 희열감을 느끼고 있는 스스로를 자신들은 잘 알고 있었다.

    짐승 같은 놈.

    인간인 척 스스로를 숨기고 인간인 척해 보아도 본성과 근본은 바뀌지 않는 것이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거리며 소녀의 목소리가 조금 더 안타까워졌다.

    두 손으로 더듬더듬 벽을 짚는 아이의 몸짓이 위태롭지만 다가가지 않았다. 그녀가 눈이 멀어 좋은 점은 이런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거다.

    짐승같이 소유욕 어린 붉은 눈을 보면 질겁하겠지.

    절대, 들킬 리는 없을 테지만. 들켜선 안 된다.

    다정하고 애틋하며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게.

    그리하여 자신을 선택하도록.

    다른 놈들 역시 그럴 것이다.

    본색을 꼭꼭 숨겨 억누른 채 상냥하고 한없이 착한 놈인 것처럼 담백하게 굴었겠지.

    저밖에 모르는 그, 이기적이고 간악한 놈들이.

    당장이라도 삼키고 싶은 입술에서 애써 시선을 떼며, 자꾸만 움찔거리는 손등을 꽉 쥔 주먹으로 애써 다스리며 그렇게 굴었을 테다. 지금 딱 자신이 그러하다.

    아이는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걸까.

    움직임을 멈추고 벽에 기대 제 몸을 웅크리며 무릎을 감싸 안는 아이가 보였다. 촉촉한 목소리로 제 이름을 나직하게 부르며 불안함을 숨기는 아이는 정말로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사랑스럽고도 또 사랑스러운 아이.

    조금 있으면 불안감에 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녀는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의외로 강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에 울었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의미로.

    연약한 모습과 물 내 나는 목소리와 달리 그 속에 자리한 알맹이가 얼마나 단단한지 알면서도 그런 생각은 항상 문득문득 찾아오곤 한다.

    나에게 제발, 더 의지해라.

    그래서 네 세계를 오롯이 나만이 차지할 수 있길!

    제가 해 놓고도 멈추지 않는 은밀한 욕망이 마구 질주한다. 주인공은 물론 저와 자신의 그녀.

    그러다 다른 놈들도 이럴 거란 생각에 욕지기가 끓어오른다. 이럴,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피곤한 눈매를 제 손으로 덮었다. 서늘하고 큰 손이 잠시간 얼굴을 덮었다. 손이 다시 내려간 얼굴에는 그 밑에서 울렁이던 수컷의 얼굴은 흔적조차 없었다. 놀라울 정도로 담백한 표정으로 돌아온 무표정의 사내만이 있을 뿐.

    짐승 같은 추잡한 욕망을 꾹꾹 눌러 담아 갈무리하고 더러운 소유욕을 집어삼키고 일어섰다. 아마 거울이 있다면 놀라울 정도로 담백한 눈동자인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가 원하는 눈빛에 만족해하면서도 그런 저를 보며 스스로 짐승 같은 놈이라 욕할 것도 알겠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 걸 어쩌겠어. 짐승 같은 놈이 아니라, 짐승인 것을.

    자조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자신의 인기척에 놀라울 정도로 밝아지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미안해. 잠시 나갔다 오느라.”

    말없이 제 손을 꼭 잡아 쥐는 온기에 만족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동시에 갈증을 느낀다. 마치 깨질라 연신 애지중지하는 손길로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들고 창가로 나갔다.

    “잠시만 눈 감고 있어. 돌아가자.”

    “네.”

    외투로 그녀를 감싸 안고 날개를 펼쳤다. 등에서 뻗어 나오는 날개.

    그녀가 눈이 멀어 더없이 좋은 점은, 이런 제 본모습을 볼 수 없어 좋다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나머지 형제들을 떠올리면 뱃속이 울렁거린다.

    다섯,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숫자.

    이제 자정이 되면 그는 자신의 또 다른 형제들에게 그녀를 넘겨야 한다.

    이 사랑스런 여자를 한 달에 한 번 꼴로 본다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제 형제들을 거쳐 다시금 돌아오는 여인이라 더더욱 속이 울렁거린다. 모두들 선택받기 위해 안달이 났을 테지.

    부디 바란다. 그녀가 날 선택하길.

    그리하여 오로지 자신만이 그녀를 소유할 수 있길.

    01. 장님 소녀

    「이 아이, 나의 손녀이자 동시에 일족의 신부가 될 것이다.」

    근 몇십여 년간 소식이 없었던 그들의 가주가 나타난 것은 아흐레 전의 일이다. 갑작스레 나타난 가주의 존재에 질겁하기도 잠시, 둥지섬의 모든 일족들은 이후의 일에 더더욱 경악하게 되었다. 혼절한 아이를 품에 안고 있던 가주가 아이를 내려놓으며 내뱉은 말이 가관이었다.

    「일족의 신부. 종주들에게 신부맞이 기간이 시작되었음을 알려라.」

    단지 그 말 하나만 남긴 채 가타부타 설명 없이 그대로 다시 자취를 감춰 버리는 것도 당황스러웠으나, 정신을 차리고 살펴본 아이의 존재는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살다 살다 저리 지저분한 것은 또 처음 봅니다.”

    구석에서 튀어나온 누군가의 멸시의 말에 모두가 웃으며 동조했다. 힐끗 쳐다본 그들의 신부님이라는 것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한낱 인간 계집아이였다. 아니, 지저분한 인간 아이가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기어오르나. 게다가 무책임한 가주가 가장 빛나야 할 ‘신부’의 자리에 던져 놓은 것이 정작 저 따위의 초라한 계집아이에 불과하다는 것은, 모두를 술렁이게 만들기 충분한 일이었다. 경악과 멸시, 그 속에서 계집아이는 반쯤 방치된 채로 그렇게 막연히 시간이 흘렀다.

    “그 아이 말입니다, 그 왜 신부랍시고 가주가 데려온……. 조금 이상하지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차가운 방치 속에서도 날 선 관심은 끊이지 않았다. 계집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딱 그 정도만의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에 뒤에서는 정작 그치의 존재를 떠들기 바쁜 시간들이었다. 9일, 인간의 아이가 신부랍시고 끌려온 지 9일이나 흘렀다. 9일간의 관찰 기간 동안 나름의 관찰 결과가 있었다.

    우선, 가주의 손녀딸은 천치거나 아니면 머저리가 아닐까 하고 모두 생각하게 되었다. 땅만 보며 걸어가다 모퉁이에 부딪혀서 멍들기가 일쑤였고 튀어나온 돌부리 하나 피하지 못해 매일 넘어지고 자빠졌다. 길치인지 매일 가던 길만 고집하였고 그마저도 느릿느릿하게 한 발짝씩 움직이는 모습이 퍽이나 답답해 보였다. 그 모습에 저 계집은 천치거나, 뇌가 없거나. 글쎄, 잘 모르겠다. 어쨌든 굉장히 이상한 것이었다.

    “어디서 감히.”

    누군가의 콧방귀 뀌는 소리에는 잔뜩 모욕이 묻어 나온다.

    어디서 감히. 어디서 감히, 저딴 것이 신부랍시고 얼굴을 내비치나.

    대놓고 말은 안 했으되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깟 것이 신부라니.’

    일족들은 가주의 손녀딸을 아주 해괴한 무언가를 보듯 대했다. 결코 달갑게 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도 않았다. 방치와 무시. 단지 그뿐. 물론 개중에는 저 여자 입에 들어가는 밥에 모래를 집어넣는다거나 일부러 다리를 걸곤 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딴 것은 괴롭힘 축에 들지도 못했다.

    천하고 하등한 것이 감히 신부랍시고 둥지섬에 올라온 것만으로도 이미 용납하지 못할 일이였다. 가주가 다시 돌아온다면 모두가 들고일어날 것이다. 차기 가주의 부인이 될 암컷을 데려오는 것은 분명 대대로 현 가주의 업무이자 권한, 고귀한 의무 중의 하나였으나…… 이건 분명 잘못된 일이였다. 아마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런 것을 데려오나.

    거의 하루의 절반 이상을 조용히 복도 끝 다락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그녀는 이곳 사람들과의 접점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녀가 머무는 복도 끝 다락방 쪽은 아예 얼씬도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이미 식솔들 내에 조성되어 있었다. 굳이 가까이하여 인간 냄새를 묻히길 원하는 자들도 없었기에 비교적 그녀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 버려질 수 있었다. 여자는 그것까지는 몰랐으나 적어도 제가 이곳에서 환영받기보다는 배척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로 보였다.

    그래도 일단은 가주가 신부랍시고 데려온 계집이니 그네들은 그녀에게 부림당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에 대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았고 여자는 자신의 고요함을 침범당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보였기에 자연스레 그리 되었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고, 그녀도 다가가지 않는 거리감. 정작 당사자 본인이 개의치 않아 했고 오히려 그것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기에 아귀가 맞아떨어진 암묵적인 동의였다.

    ‘복도 끝 다락방에는 얼씬도 하지 말 것.’

    [다음 편에 계속....]

    2화.

    그럼에도 서로 간에 결코 피할 수 없는 접점이라는 것이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식사 시간이었다. 가주궁의 식사는 거대한 방에서 함께 자리를 가짐으로써 이뤄진다. 제일 위의 가장 높은 상석에 가주가 앉고 나면 그 앞에 시중인들이나 신하들이 좌우 일렬로 계품의 순서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올리는 밥상 역시 품계에 따라 나눠지는데 가주가 평소 칠첩반상을 받는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차례차례 자신에게 맞는 밥상을 받아먹는 형식이었다. 정작 가주가 있을 때는 형식적이라며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을, 가주가 없는 이 시점에서 더욱 철저히 지키고 있는 것은 꽤나 모순적인 일이었다. 그것은 시중인들 사이의 암묵적인 신호였다.

    ‘주제 파악이나 하렴, 이 빌어먹을 것아.’

    신부, 그 계집아이의 자리는 바로 저기였다. 까마득히 멀어 차디찬 방바닥 구석의 어디쯤. 보란 듯이 맨 끝자리, 앉는 게 괴로울 정도로 딱딱한 나무 방석을 깔아 놓은 초라한 밥상을 내놓는다. 그게 네 위치다, 그렇게 계집의 주제 파악을 시키려는 목적인 것이다.

    네깟 년, 가주의 손녀딸이랍시고 신부 자리를 꿰차 앉아 봤자다. 제일 구석 초라한 자리에 앉혀 무관심 속에서 혼자 밥을 꾸역꾸역 삼켜 보라지. 풀떼기마저도 말라비틀어진 것을 올리고 고기 대신 살점 없는 뼈들만 올려 내라.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으나 그녀의 초라한 밥상을 분명 봤을 진데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는 걸 보면 모두 다 입을 맞춘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일족들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일족들은 기가 찬 눈빛으로 맨 끝 구석 자리를 힐끔거렸다. 떠듬거리는 숟가락질은 형편없었고 칠칠맞게 흘려 대는 모습이 경악스러웠다.

    저것이 정녕, 그, 가주의 손녀인 것인가.

    오늘은 생선인가요? 하고 조심스레 물어 오는 그녀의 말을 받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무시당해도 꿋꿋하게 말을 붙이던 아이도 이제는 되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더 이상 묻지도 않았다. 알게 된 것이다. 이곳의 모두가 그녀를 멸시하고 있음을.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무릎 밖에 흘리는 것이 더 많으니 체구가 저리 작은 것도 이해가 갔다. 인간의 범위에서는 열아홉, 스무 살쯤 되었을까? 인간들 축에서도 더욱 어린 티 많이 나는 얼굴에 연약한 체구이긴 했으나, 그 또래로 보이기엔 이상할 것 없을 아이였다. 그러나 일족의 입장에서는 그저 한참은 더 커야 할 듯 볼품없어 보일 뿐이었다. 애초에 그들에게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 싶은 정도인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나마 제대로 먹는 것은 국 종류뿐일까. 그러나 그마저도 숟가락으로 겨우 떠듬떠듬 먹는 수준이라 저걸로 생활이 될까 의아하다가도 어련히 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내버려 뒀다. 그녀의 멍청함을 보여 주는 것은 비단 식사 시간만이 아니기도 했다.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다녀 비웃음을 샀다든가 등의 일은 예사였으니 다들 그러려니 한 것이다.

    일족의 수군거림에도 조용히 제 밥을 먹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 봤자 절반의 밥도 입에 넣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선연히 일어섰다. 식사를 마친 듯 보였다. 터덜터덜 뒤돌아 나가다 또 문지방에 걸려 넘어지는 꼴이 보였다. 와당탕하고 소란스럽게 넘어진 것에 비해 가뿐하게 일어난 계집은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예민한 그들의 코에 스치는 혈 향. 보아하니 코피가 터진 듯했다. 얼굴을 적시는 코피를 인지한 듯 소맷자락으로 대충 피를 닦고 나가는 여자의 꼴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으나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졌다. 애초에 저는 마치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양.

    * * *

    “저 꼴 좀 보라지.”

    그녀가 사라진 뒤로 다시금 키득거리는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금방 죽어 나갈 것이다.

    모두가 키득거리다 이내 신경을 끄고 제 할 일로 돌아갔다. 그 속에서 묵묵히 몸을 일으킨 어린 계집아이는 몇 번 비틀대다, 문지방에 다시 한번 머리를 찍고 나서 사라졌다.

    “……윽.”

    머리가 부었다. 문지방 앞에서 발이 꼬여 넘어진 탓에 정통으로 부딪쳤다. 아픈 머리를 감싸 쥐고 잠시 몸을 웅크렸던 아이가 조심스레 벽을 잡고 기대섰다.

    “……하.”

    주변에 아무도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고 나서야 겨우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얼얼한 머리보다 방금까지 참고 있던 멸시감에 가슴이 더 옥조여 왔다.

    ‘다섯 번.’

    식사를 마치고 제 방으로 돌아오기까지 그녀가 넘어진 숫자이다. 손가락을 꼽아 세던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번. 다섯 번인 건가.’

    원래 그녀가 살던 아파트는 비교적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많이 있어 그녀가 살기 편했었다. 점자로 된 안내판도 있었고 화장실이나 부엌까지 가는 길도 간단히 직진만 하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자신이 거주하게 된 이 빌어먹은 곳은 그게 아니었다.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매끈하고 서늘한 바닥의 감촉을 느껴 보면 고택의 대청 같았다. 마치 기와를 얹은 거대한 궁 같은. 더듬거리다 만져진 기둥의 나뭇결과 그 폭으로 보았을 때 규모가 어마어마한 것 같았다. 볼 수가 없으니 정확히는 알지 못하나, 아무래도 건물이 현대식은 아닌 것 같았다. 산책을 위해 신발을 벗고 신는 과정에서 디딤돌에 정강이를 다섯 번쯤 찍혔을 때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나무 기둥 밑을 따라 주춧돌로 추정되는 것도 만져졌었다. 아마 그녀의 생각이 맞다면 이곳은 전통식 가옥에 가까운 형태이리라.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던가? 언젠가 한번 가 보았던 경복궁을 제외하면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집에…… 가고 싶어.’

    그녀가 구석에 틀어박혀 제 무릎을 감싸 안았다. 더럽게 크고 복잡한 이 집의 복도는 여간 넓은 게 아니다. 자신의 방을 찾기 위해 더듬거리고 넘어지고. 첫날에는 제 방을 찾지 못해 복도에 앉아 잠을 자 버렸다. 주변에서의 인기척은 분명 느껴지는데 아무리 불러도 자신을 못 본 척하는 걸 보면 분명 그녀와 연관되기 싫은 것이겠지.

    보아하니 이 넓은 집의 사용인쯤 되는 것 같았으나 그들은 모두 그녀를 본체만체했다. 3일째 되던 날 자신이 닦을 복도에 널브러져 잠을 자는 그녀를 견디다 못한 누군가가 자신을 이 방에 넣어 주어 다행인 걸까. 그녀는 눈을 감고 그날의 기억을 되살려 봤다. 정신없지만, 분명 현실일 그 기억.

    그날은 포주에게 잡힌 날이었다. 요즘 세상은, 눈이 안 보이는 젊은 여자가 혼자 다니면 봉변을 당할 세상이다. 그것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섰다. 엄마를 만날지도 몰라서.

    그녀의 세상에는 오로지 단둘만이 존재했다. 초라하고 부끄러운 제 자신과 아름답고 향기로운 자신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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