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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001-289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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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1 / 0285 ----------------------------------------------

    서장

    아도니스 始

    서장 始

    나는 비로소 네게 졌음을 인정한다!

    이아나는 여태 가슴 속에서 내내 역린으로 잔류하던 말을 그대로 고함으로 내질렀다. 이아나의 얼굴이 고통으로 인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맹수의 발치에 피가래를 뱉으며 이아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엄하다, 저런 건방진 년 같으니! 황금빛 눈의 맹수 주변에 널린 벌레가 왱왱대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져도, 비명 같은 쇳소리가 그녀를 향해도 이아나는 벌어진 입에서 붉은 핏덩이를 왈칵왈칵 쏟아내면서 그저 미친 듯이 깔깔 웃었다.

    침묵하던 맹수가 굳은 입을 벌렸다.

    “그 고집이 이렇게 너의 죽음으로 이어졌다하여도?”

    “그래. 내 삶은 모두 내 스스로가 개척한 것!”

    이아나는 자꾸 바닥으로 널브러지려는 몸을 겨우 똑바로 폈다. 팔을 벌려 가슴을 쫙 펴려 노력했다. 한 자루가 그녀의 왼쪽 가슴, 정확하게는 그녀의 심장을 꿰뚫은 상태였다. 항상 뜨겁게 요동치던 그녀의 심장은 날이 굵은 검에 관통당해 온 몸의 피를 있는 대로 쏟아낸 후였다. 등가죽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검극이 멀리서 불어오는 북부의 찬바람을 맞았다.

    벌컥······.

    단말마의 비명은 이아나의 입이 아닌 심장이 이미 붉게 내뱉었고,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할 깊디깊은 죽음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박동은 느릿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죽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죽겠다는 이아나의 강력한 의지를 받들어 겨우 꿈틀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심장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아나는 눈앞의 남자만을 직시하며 퍼렇게 체온이 식어가는 사람답지 않게 몹시 선명한 어투로 남자에게 새겨 넣듯 말했다.

    “후회는 없다. 이 모든 결과가 내 선택에 의한 것일지니······!”

    “······.”

    “이 내가······쿨럭, 후회하리라 보나?”

    붉은 선혈이 바닥에 또다시 한 움큼 떨어져 내렸다. 잠시나마 이아나가 쏟아낸 핏덩이에 쏠렸던 남자의 시선은 죽어가는 그녀의 얼굴에 도로 꽂혔다. 이아나의 얼굴을 빤히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어딘가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이아나는 그 시선이 익숙했다.

    “그럴 리가 없지. 너는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이니까.”

    “그래. 후회하는 건 나를 네 휘하로 이끌지 못한 네 놈이다! 아하하하!”

    그러니 너도 내게 졌다! 내게 졌단 말이다! 끝까지 신경 거슬리는 말을 지껄여대며 마지막 생기를 뽐내는 이아나의 당당한 웃음소리가 신경이 곤두서서 온통 이글거리는 맹수, 아르하드의 심기를 어지럽혔다.

    “거슬린다. 죽어라.”

    아르하드의 북풍의 바람보다 서늘한 음성은 이아나의 입가에 웃음을 선사했다.

    “풋, 쿨럭.”

    웃음의 자욱에 피가 묻어난다. 붉은 머리카락, 붉은 입술. 온통 붉은 이아나는 맹수의 것처럼 번뜩이는 아르하드의 호박빛 눈에 붉음을 주었다. 아르하드는 어쩐지 눈가가 시려서 인상을 찌푸렸다. 마침내 흐릿해지기 시작한 시야 속에서 미간을 좁히는 아르하드를 발견한 이아나가 피를 퉤, 하고 뱉어냈다.

    “······아르하드 로이긴, 나보다는 네가 더 불······쌍하구나. 대체 어쩌다······ 쿡, 쿡.”

    “······너는 정말 앞뒤가 꽉 막혀서 사람을 환장하게 만드는 망할 계집이다.”

    이아나의 웃음 섞인 유언을 잠잠히 듣고 있던 아르하드의 눈동자가 기어코 흔들리고 말았다.

    “너만치 미치도록 탐이 났던 이는 없었다. 너를 원했던 날들을 후회하지 않아. 하지만 널 원했기에 생겨버린 내 갈증도, 네 그 빌어먹을 고집도 이제 끝이다! 이제 두 번 다시는 널 볼일도, 너를 바랄 일도 없겠지!”

    “후후······.”

    “그러니 잔말 말고 죽어라! 네 시신은 네가 내 눈에 두 번 다시 띄지 않도록 아예 불태워주마!”

    체념뿐만이 아니라 분노까지 튀어나왔다. 숨을 제대로 고르지 못하는 아르하드를 보며 이아나는 힘없이 차가운 흙에 꼬꾸라졌다. 그녀의 악명과 화려한 공적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말로였다. 하지만 이아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슬퍼하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그를 죽도록 꺾고 싶었던 그녀의 신념과, 패망한 자신의 왕에 대한 마지막 의리에 의한 결과였다.

    다만 패배를 인정하게 된 이아나는 자신의 죽음을 내려다보는 아르하드 로이긴, 아니 아르하드 로 라르소 바하무트, 바하무트 제국의 황제의 빛 꺼진 눈동자를 흐릿한 눈으로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붉은 머리카락을 흙더미에 이리저리 흐트러트린 이아나는 드디어 피할 수 없는 진실을 인정하며 피 묻어 축축한 입술을 달싹였다.

    “너는 나를 언제나 패배시키는 적이었으나······ 꽤나 좋은 동반자였다······. 그래······ 그러했구나······.”

    그랬다. 아르하드 로이긴, 이아나 자신과 누구보다 닮았던 자. 그래서 누구보다 서로를 이해했고, 누구보다 서로에게 집중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한쪽은 상대방을 온전히 얻기를 원했고 한쪽은 상대방을 온전히 꺾기를 원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동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파국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아나는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써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죽음 직전 처음으로 상대에게 자격지심으로 얼룩진 웃음이 아닌, 진실한 웃음을 보였다.

    ‘아하하, 패배를 인정하고 나니 어찌 이리도 속이 시원한지.’

    이아나가 움직이지 않는 얼굴 근육대신 속으로 낄낄대며 웃었다. 하지만 그런 이아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르하드의 황금빛 눈동자는 이아나가 입 밖으로 꺼낸 동반자, 그 짧은 말에 누렇게 죽어갔다.

    “······닥쳐라. 이 답답한 계집! 늘 죽자 살자 덤벼들다가 이제 와서 그 말하여 무엇이 달라질 것 같나!”

    답지 않게 격양된 어조로 말을 잇는 황제를 꿈뻑이며 쳐다 본 이아나가 살풋 웃었다. 둘의 시선이 맞닿고, 이아나는 말했다.

    “이번······ 생은 끝났다. 그러나······ 다음 생에는 너의 적······이 아닌 너의 기사가 되······리······.”

    그러나, 그렇다한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나의 생에 한 점의 후회조차 없다. 이아나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뜨거웠던 불꽃이 초라하게 꺼졌다. 그렇게 로안느 왕실 최초의 여공작이자, 대륙 최강자의 수좌를 다투던 여검사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은 바하무트 제국의 황제, 정복왕 아르하드 로 라르소 바하무트가 빼어든 검에 죽었다.

    서장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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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니스 편

    01 아도니스 편 始

    “이아나!”

    그런데 어째서 자신은 이리 살아있는 건지. 흔들 그네에 앉아 다리를 덤벙거리던 이아나는 거추장스러운 핑크빛 드레스자락을 모으며 귀를 쫑긋거렸다. 과거처럼 예민한 오감은 바람을 통해 얼핏 들려오는 목소리를 잡아챘다. 이아나는 저를 찾는 중년 남자의 성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이를 갈며 대답했다.

    “예, 백작님.”

    “여기 있었구나! 수업을 빠졌다고 프랄소느 부인이 화를 무척 많이 내셨다. 지금 네 방으로 당장 올라가라!”

    이아나는 루비처럼 영롱하나 거무죽죽하게 죽은 붉은 눈으로 제 앞에 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저와는 다르게 형형하게 빛나는 푸른 눈동자에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

    “무얼 잘했다고 그런 눈으로 쳐다보느냐. 네가 이러고도 우리 명망 있는 로베르슈타인 백작가의 영애라 할 수 있겠느냐?”

    이아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왕국의 존폐를 앞둔 전쟁에서 심장에 검을 맞고 죽은 저가 왜 다시 태어나 또다시 이아나 로베르슈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또 제 손으로 죽인 아비 체르노 로베르슈타인이 어째서 자신의 앞에 있는 건지,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했던 자신에게 언제나 무심했던 이 남자가 왜 자신에게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건지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걸 넘어서서 짜증이 날 정도였다. 이아나는 언제나 그랬듯 미간을 좁힌 채 중얼거렸다.

    “고귀한 집안의 영애는 얼어 죽을.”

    “너, 그 말투!”

    “아.”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이아나는 앞에서 얼음장처럼 싸늘한 얼굴로 조용히 화를 내는 남자를 곁눈질 했다. 남자는 언제나 냉정했고, 사무적이었다. 뼛속까지 귀족인 이 남자는 귀족의 예와 품위, 체면과 명예를 몹시 중요시 하였고 이는 예전에도 지금에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아나는 한숨을 후-하고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그 필요 없는 수업, 지금 받으러 갈 터이니 백작님은 바쁘실 텐데 저를 쫓아다니지 마시고 볼 일이나 보시지요.”

    이아나는 나에게 예의범절 수업은 필요 없다-라고 항의하기라도 하듯 우아하게 치맛자락을 톡톡 털어냈다. 그리고 누구보다 고아한 걸음걸이로 사뿐사뿐 정원에서 걸어 나갔다.

    「백작님, 본연의 재능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이아나 양은 거의 모든 예의범절에서 완벽합니다. 어미를 생각한다면 몹시 놀라운 일이에요.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였다면, 저도 그 아이를 가르치는 것에 보람을 느꼈을 터이고, 그 아이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아나의 예의범절 수업을 담당하는 프랄소느 부인의 분기 어린 말을 떠올린 체르노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든 것에 열의가 없어, 대충대충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가르치는 보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거무죽죽하게 죽은 아이답지 않은 눈빛, 보는 사람을 무척이나 섬뜩하게 해서 정이 가지 않습니다.」

    체르노는 방금 전 마주했던 이아나의 죽은 눈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런 체르노를 뒤로하고 정원을 빠져나오는 이아나의 어여쁜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웃기지 마라.’

    이제 이아나가 다시 태어난 지 9년이 지났다. 그러나 이아나는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전혀 후회치 않은 삶이었다. 붉은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삶을 이아나는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냉혈한, 권력에 미친 여자, 천륜을 끊은 짐승, 패륜아, 괴물, 살인마, 악귀····· 등등 악랄한 호칭을 붙이며 저를 손가락질해도 이아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실이었고 이아나는 그러한 삶에 한 점의 부끄럼도 없었다. 그녀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모두 스스로 선택하여 모든 것을 쟁취했다. 부끄러움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는, 자신과 닮은 남자를 만남으로써 이아나의 삶은 완성되었고 그 남자에 대한 완벽한 패배를 인정함으로써 그녀의 삶은 완벽하게 끝났다.

    그러했기에 지금 그 완벽하고 만족스러웠던 삶이 산산조각이 나서 다시 쌓아야 할 지경에 이르니 이아나는 미쳐서 팔짝 뛰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아비란 작자의 알 수 없는 변화는 이아나의 신경에 아주 거슬렸다. 과거에는 이아나에게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던 사내였다. 내비치기는커녕 우연이라도 마주치면 짜증나고 역겹다는 얼굴로 보던 냉혹한 아비였다.

    그 때 무서운 얼굴로 정원을 가로지르는 이아나의 앞을 막아서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의 주인은 푸른 소년이었다. 이아나는 소년을 보자마자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아나, 괜찮아? 아버님께 많이 혼났어?”

    소년이 조심스레 물어오는 말에 이아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내리떴다.

    ‘이 무슨 신의 장난이란 말인가.’

    하르첸 로베르슈타인. 이 집안의 장자이며 이 집안의 본부인이신 사라체 로베르슈타인의 외동아들이시다. 그리고 여덟 살 먹은 이아나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찻잔에 털어놓은 독에 상냥한 어미를 잃고, 스물넷이 된 이아나가 이 집안의 실권을 잡기 위해 목을 베어 죽인 불쌍한 네 살 위의 이복 오라버니시다.

    소년은 과거에 이아나를 증오어린 눈으로 쳐다보기 바빴고, 어미가 소년을 매일 욕하는 것을 들으며 자라온 이아나도 소년을 증오하는 데에 바빴다. 그리고 조금 머리가 큰 이후에는 서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하르첸과 이아나의 사이였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진 않았지만 제 손에 죽었던 하르첸이 살아 움직이면서 과거와는 달리 자신에게 끈질긴 관심을 가질 때마다 이아나는 심기가 불편했다.

    이아나의 혼은 언제나 과거를 맴돌고 있으며 그녀는 기억하고 있던 과거에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아나는 여덟 살이 되어 과거처럼 어미가 자신에게 독주머니를 건넨다면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다. 그것이 자신의 과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이아나의 손에는 과거처럼 처음으로 따뜻하게 끌어 안아주며 애정 어린 손길로 어미가 건네주었던 독주머니가 없었다. 그랬기에 향이 좋은 찻가루라며 티타임 때 본부인의 찻잔에 그것을 몰래 넣으라고 아름답게 속삭이던 어미의 말에 행복에 겨워 끄덕인 이아나도 없었다. 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상냥히 대해준 부인의 차에 몰래 그 주머니를 털어 넣은 이아나도 없었다.

    과거는 반복되지 않았다. 본부인은 이아나의 손이 아닌 다른 이의 손에 중독 당했으나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이아나가 아홉 살이 된 현재에도 건강하게 잘 살아있었다. 본부인이 깨어나셨다고 하인들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를 때 이아나는 과거의 비틀림을 느꼈다. 그저 자신이 손을 쓰지 않고 방관했을 뿐인데 비틀려버린 과거에 이아나는 자신의 비틀린 과거처럼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비틀림이 끔찍하게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눈앞의 훤칠한 소년도 거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아나는 입을 다물었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 이아나를 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고, 불편한 침묵이 그들의 주변을 감돌았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이아나!”

    이아나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오늘 따라 왜 이리 찾아대는 이들이 많은가. 이미 몸에 익은 예절수업이 지겨워서 깐깐한 프랄소느 남작부인이 오기 전에 빠져나온 게 죄인가.

    온통 사치를 부린 어미가 멀리서 빠르게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자 이아나는 고집스레 입매를 일자로 굳혔다. 하르첸은 여자 특유의 독한 향수냄새에 말끔하던 얼굴을 확 찌푸렸다. 여자는 노골적으로 드러낸 가슴을 한 손으로 감싸며 누구보다 도도하게 고개를 숙였다.

    “도련님을 뵈어요.”

    하르첸은 대답 없이 여자에게서 눈을 떼고 이아나를 흘끔 쳐다본 후 자리를 떴다. 여자가 자존심이 상해 몸을 푸르르 떠는 걸 보며 이아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고개를 팩 들어 누구보다 불쌍한 여자의 탈을 뒤집어쓰고 자신의 어깨를 잡아채는 모습을 보며 그 웃음을 지웠다.

    “이아나, 이 어미를 봐라, 응?”

    이 삶은 대체 누구의 삶이란 말인가. 나의 과거가 맞기는 한가? 이아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어미가 이리 무시를 당하고 있는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니?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은 너 밖에 없는데!”

    이아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여자의 얼굴이 벌겋게 물들고, 이내 울듯이 일그러졌다. 입술에서 튀어나오는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짜아악!

    이아나의 얼굴이 옆으로 세게 젖혀졌다. 여자는 이아나의 뺨을 때린 제 손을 흔들리는 눈으로 내려다보더니, 그도 잠시 이아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너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죽은 눈깔을 하고 이 나를 한심하다는, 이 나를 어미가 아닌 창녀 보듯 쳐다봐! 이 못된 년! 쓸모없는 계집애 같으니!”

    아홉 살의 어린 꼬마 앞에서 성인 여자가 악담을 해대는 광경은 모순이었다. 이아나는 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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