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어]울새 - 1

195일전 | 1,421읽음


입술을 적시고 바닥을 흥건히 물들인 피는 망막이 아프리만큼 지독하게 붉었다.



창틀에 몇 개째인지 모를 작은 상처가 생겼다. 평소에는 언제나 작은 몸집의 새가 드나들 수 있도록 살짝 열려 있었는데, 왜 오늘은 무정히도 닫혀 있는 것일까. 이유를 생각 할 틈도 없이 울새는 미친 듯이 닫힌 창을 쪼아대었다. 작고 둥그스름한 날개가 힘을 더하기 위해 세차게 파닥인다. 그 통에 솜털 깃이 날리고 까만 부리 끝에 발갛게 피가 맺혔지만 울새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죽을힘을 다하여 창문을 열려고 애썼다.



“……로빈.”



부드러운 울림의 목소리에 울새가 삐릭, 대답하듯 소리 높여 한차례 울었다. 그러곤 다시금 창문을 두드렸다. 차가운 바닥에 쓰러졌던 공작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눈가를 펴며 미소를 띠었다.



“어쩔 수 없구나.”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른 육신을 정신력만으로 일으켜 세운 그가 창가로 다가갔다. 기쁨에 겨워 폴짝이는 울새에게 다정한 시선을 보내며 공작이 창문을 열었다. 유리로 인해 반으로 갈라져 있던 창틀의 안쪽으로 또다시 창이 닫힐 새라 파다닥 뛰어 들어 온 울새가 커다란 손에 뺨을 부빗거렸다.



“로빈.”



삐, 하고 울새가 다시금 대답했다.



“이해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곧 죽는다.”



공작은 곧 죽는다는 말이 거짓으로 느껴질 만큼 또렷하게 울새를 향해 말했다. 생명이 빠져나가는 피로함은커녕 슬픈 기색조차 그에겐 없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각오 한 일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미련 둘 것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우연히 만난 이 작은 친구를 제외 한다면.



목소리와는 다르게 떨리는 손끝으로 울새를 매만지며 공작이 말을 이었다.



“나를 묶고 있는 봉인은 내가 죽는 순간 풀린다. 아주 짧은 순간이긴 해도 무엇이든 한 가지 일 정도는 이룰 시간이 있지.”



말을 하다 말고 공작이 짧게 기침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들도 알 수 없었을 거다. 내가 죽는 순간에 이 나라, 대륙 전체를 파괴 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아마 알았다면 이런 짓은 못 했을 테지. 물론 나는 복수 따위 조금도 생각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의 잣대로 나를 판단하니 말이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울새가 무어라 빠르게 지저귀었다. 잔뜩 흥분했는지 머리와 가슴의 붉은 깃털이 빳빳이 세워져 있었다. 공작이 다시금 웃으며 잔뜩 선 깃털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가라 앉혔다.



“넌 정말로 내 말을 다 알아 듣는 것 같구나. 좋아, 어차피 죽으면 흩어 질 힘. 네 바람을 들어 주마. 예쁘고 귀여운 짝? 맛있는 먹이? 아니면 전처럼 거미줄에 걸려 위험해 지지 않을 정도로 강해지고 싶어? 죽은 생명을 살리는 것만 제외하면 뭐든지 다 가능하단다. 신이 되고 싶어요- 같은 터무니없는 건 무리지만, 천사 정도는 가능 할 거다. 그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네가 내 영혼을 인도 해 준다면 기분 좋은 일일 거다.”



점차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줄어들었다. 울새를 쓰다듬던 손길이 힘없이 아래로 늘어졌다. 공작의 몸이 진득한 늪 속으로 가라앉듯 천천히 바닥으로 쓰러져갔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울새가 황급히 쓰러진 공작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슬픔에 겨워 소리 높여 우는 작은 새에게 공작이 겨우 입술을 달싹여 말했다.



“원하는 것을 이뤄주마. 내 작은 친구.”







제국의 수도 라세하에서는 3년에 한 번 황실 주최 무투대회가 열린다. 황실 주최라고 해도 화려한 기사들의 대전이 아닌 단순히 실력만 보는 참가자격 불문의 땀내 나는 대회다. 그러다보니 귀족의 참가는 거의 없고 실력엔 자신 있지만 신분에 막혀 잡병이나 하고 있는 평민 무사들이 몰려들곤 했다.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시 황실까진 아니어도 세력 있는 귀족가의 기사로 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3년에 단 한 번 있는 출세의 기회. 그것을 노리고 제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참가자가 몰려들었기 때문에 라세하는 인파로 터져나갈 듯이 복잡했다. 여관은 물론이요, 민박이며 임시로 세운 천막도 꽉 차버려 비만 피할 수 있겠다 싶은 곳이면 침낭이며 돗자리가 깔려있을 정도였다. 귀하디귀한 잠자리를 놓고 싸우는 사람들 위로 한 마리 작은 새가 날아 지나쳤다. 가슴이 장미처럼 붉은 울새였다.



평민들이 주역이라곤 해도 우승자는 황실 기사로 임명되는 만큼 황제까진 아니지만 직계 황족이 대회장에 참관하는 것이 전례였다.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교육 받은 귀족 기사를 두고 평민을 기사로 두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게 보통이었기에 기껏해야 황위 계승권에서 몇 계단 아래인 황자나 황녀가 어쩔 수 없이 참석하곤 했다.



이번 무투대회에 상석을 차지한 류데인 황자 역시 넷째에 황비가 아닌 첩인 세델 비의 소생으로서 황제의 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키지 않는 자리에 세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끌려나온지라 그의 표정은 과히 편치 못했다. 세도가의 파티장 같은 곳에서라면 속은 뒤집어져도 웃고 있어야겠지만 평민의 축제에서 눈치 볼 필요는 없었기에 그는 대놓고 지겹다는 속내를 드러내놓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참석 한 근처의 귀족들 또한 쓸데없는 시간 낭비가 아까워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중앙을 제외한 다섯 개의 대회장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을 건성으로 쳐다보던 류데인은 자신의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옆이라고 해도 높이 차이가 꽤 나 들어가는 입구부터 다른 그곳엔 긴 흑발을 베일처럼 늘어뜨린 미남자가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용공작 위러트 라에이반. 겉보기엔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인간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정체가 인간이 아닌 용이라는 것은 퍼질 대로 퍼진 사실이었다. 그것은 황실이 주도해 퍼뜨린 것으로 황실은 위러트에게 공작이라는 높은 지위를 주면서 동시에 그가 인간이 아닌 용, 괴물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그 지위가 형식으로 그치게 만들었다. 호화롭게 꾸며놓은 우리. 위험, 접근금지 표시를 커다랗게 붙여 놓은 금장이다. 그렇다 해도 용의 힘이란 건 매력적인지라 접근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 헛물만 켜고 말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있는 류데인은 쓰게 웃고는 경기장을 보고 있는 건지, 그저 시선만 두고 있는 건지 구별가지 않는 용공작에게서 눈을 뗐다. 오른쪽 끝의 관중석에서 함성이 들려오는 것이 승패가 결정 난 모양이다. 힐끗 쳐다보니 붉은 머리칼의 검사가 쓰러진 상대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었다. 젊다 못해 어리군. 류데인은 이내 관심을 끊으며 뒤에 서 있는 시종을 손짓해 불렀다.





대회 3일째. 수많던 사람들도 늦가을 낙엽마냥 우수수 떨어져 나가고 남은 참가자들의 수는 쉰으로 줄어들었다. 처음엔 숙소는 셀프요, 대기실도 우- 몰려 사용했지만 수가 줄자 각자에게 경기장 내의 숙소와 개인 대기실이 주어졌다. 주로 귀족 기사들의 대전 때 사용되는 것이라 숙소와 대기실은 상당히 호화로웠다. 지급된 숙소의 넓은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푸른 머리칼의 소녀가 창가에 서 있는 청년을 바라보며 웃었다. 웃을 때 볼우물이 살짝 패는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깊은 바다의 눈동자는 그녀가 겉보기 이상으로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법이네, 꼬마.”



꼬마라 불린 청년, 로빈이 그녀를 향해 난처한 듯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저기, 카시아. 솔직히 사기 치는 거나 다름없어서 하기 싫….”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니?”



카시아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올라갔다가 다시 상냥하게 낮아졌다. 그녀가 달래듯 말했다.



“평민으로서 윌에게 접근할 방법은 많지 않아. 너도 배웠으니 알고 있잖아? 그를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빼내려면 이 정도쯤은 참아내야지. 앞으론 더 힘든 일도 많을 거라고.”


“네, 알고 있어요. 그냥 좀 미안해서요.”



로빈이 승승장구 하고 있는 것에는 그의 노력도 포함되어 있지만 절반 정도는 카시아의 도움 덕분이었다. 그녀가 직접 나설 수 있다면 금방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텐데. 종종 떠올리는 아쉬움을 접으며 로빈은 창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첫날과 둘째 날. 용공작을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나와 만나기 일 년 전이랬지. 멀어서 자세히 살필 순 없었지만 살아있는 그를 보자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잠시 뒤 있을 경기에서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무사히 일이 잘 풀리게 된다면 앞으론 전처럼 같이 있을 수 있게 되겠지. 그럼 반드시…….



“꼬마야.”



로빈의 생각을 카시아의 목소리가 끊었다. 로빈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곧 시작하겠네. 절대 우승은 하면 안 돼. 우승자는 황실 기사가 되어야만 하니까. 그냥 적당히 지거나 기권 해 버려. 준우승 정도면 원하는 대귀족의 기사가 될 수 있다 하거든.”


“걱정 마세요.”



경쾌히 대답한 로빈은 다시금 친애하는 공작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다브리트는 용병으로 잔뼈 굵은 사내였다. 평민으로선 드물게 제대로 된 검술을 짧게나마 배웠던 그는 충분하고도 넘칠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덕에 수많은 실전을 통해 어지간한 기사와 대결을 벌여도 지지 않을 정도로, 약간의 운이 따라준다면 이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런 그가 오래 가 봐야 서른 중후반에 수명이 끝나는 용병에서 만족치 못하고 기사의 작위를 노리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스로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던 다브리트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승을 자신했었고 두어 명의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긴 했지만 예상대로 수월하게 결승까지 올라 올 수 있었다. 이제 겨우 한 발짝이면 된다. 고지가 눈앞에 보였으나 그는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대기실에서 준결승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행자가 승자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상대로군.’



그는 약간 굳어 당겨졌지만 기대감 섞인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큼이나 쉽게 준결승까지 올라 온 남자, 역시 그가 결승 상대자였다. 다브리트는 방금 호명된 로빈이라는 청년의 경기를 서너 번 쯤 본 적이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그가 질 거라고 생각했다. 로빈은 스물이 채 못 되어 보이는 어린 나이에 두문불출 책만 파고드는 대학의 학생처럼 하얀 피부와 가는 몸의 애송이였다. 게다가 관중의 시선을 어색해하는 게 역력한 의기소침하게 쳐진 커다란 눈동자라니. 동료와 헤어지고 낯선 땅에 떨어진 작은 철새 같은 그 눈은 절대 노련한 검사의 눈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경기 시작 후 펼쳐진 그의 검은 재빠르고 교묘했으며 가는 팔에서 나오는 거라곤 믿을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껏 시시한 상대들과 겨뤄온 다브리트로는 그와 맞붙는 것이 솔직히 기대가 될 정도였다. 로빈의 경기는 몇 번 보지 못했지만 매번 그는 전력으로 싸우지도 않았다. 그것을 고려하면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비록 황실 기사는 못 되겠지만 백작 이상의 귀족 휘하의 기사는 충분히 될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흥미 없이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귀족들에게 제대로 된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멋지게 싸워서 우승까지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점심시간을 겸한 두 시간 가량의 휴식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결승전이 시작되었다. 정중앙의 경기장으로 나간 다브리트는 일반석의 관중들과 달리 지루한 기색이 역력한 귀족들을 힐끔 살펴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상석에 앉아 있는 류데인 황자의 모습이 그의 시선을 짧게나마 사로잡았다. 여기서 우승하게 되면 저 남자를 모시게 되는 것이다. 황실 기사라, 가슴 뛰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곧 시작 될 대결이 더욱 기대되었다. 이제껏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표정이었던 붉은 머리 청년도 결승전에는 두근거리는지 뺨이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두 선수 모두 준비 되었습니까?”



심판이 말했다. 다브리트는 곧장 대답했으나 로빈은 상석 쪽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심판에게로 다가갔다. 그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권하겠습니다.”



심판도, 다브리트도, 관중도 곧장 그 말을 인식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답이 없자 로빈은 당황한 듯 눈동자를 굴리더니 재차 말했다.



“저기, 기권 안 되나요?”


“되, 됩니다만…….”



다행이다. 로빈이 생긋 웃었다.



“그럼 기권시켜주세요.”



결승전은 그렇게 어이없이 끝났고 다브리트는 승리가 아닌 패배를 짊어 진 심정으로 류데인 황자의 기사가 되었다. 더욱 불행한 일은 준우승자인 로빈이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용공작의 기사가 되겠다 청하는 바람에 그 여파로 우승자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차라리 혈투 끝에 패하는 것이 나았으리라.





“내일 곧장 공작님의 저택으로 가래요!”



자신의 불운한 결승 상대를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로빈은 성공적으로 용공작의 기사가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 활짝 미소 지었다. 폴짝폴짝 뛰다 못해 날아 가 버릴 듯한 청년을 바라보던 카시아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너무 그렇게 좋아하지 말라고.”


“하지만 공작님 곁에 있을 수 있게 되면 반은 성공한 게 아니에요? 봉인에 대해 조사해서 알아 낸 다음 풀면 되니까요.”


“그렇게 쉬우면 내가 벌써 처리했지.”



그녀는 로빈의 들뜬 기분에 가차 없이 찬물을 끼얹었다. 냉담한 목소리에 금세 풀이 죽은 로빈이 그러면요? 하고 반문했다.



“일단 나는 윌에게 접근할 수 없어. 공작저는 위러트의 영지, 솔직히 감옥이나 다름없지만 아무튼 영지라 할 수 있고 용은 다른 용의 영지에 멋대로 침입해선 안 돼.”


“그럼 같이 못 가는 거예요?”



당연히 카시아가 함께 공작저로 들어 갈 줄 알았던 로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허락을 받으면 되긴 되는데, 윌이 밖에 나올 땐 항상 귀찮은 인간들이 줄줄이 따라붙잖니. 용이 인간을 상대로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하면 별로 좋지 않다고. 타락해 버릴 수도 있으니까. 뭐어, 용이 타락하는 조건은 확실치 않지만 삼백년 전 레브라트라는 백룡은 인간 도시 하나를 뒤엎고는 타락했으니까 인간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위험해. 게다가 윌은, 자기 일에 적극적이지도 않아서 말 해봐야 허락 안 해 줄걸.”


“적극적이지 않다고요?”


“흑룡이 좀 그렇지. 너도 미래에서 봤잖아. 자길 죽이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러니 막을 방법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도 맥없이 죽어버린 거.”



미래이자 과거인 일이 나오자 로빈의 표정이 목 메여 죽을 듯이 우울해졌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 가득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눈물이 잔뜩 고였다. 시간이 꽤 지났고, 지금은 공작이 살아 있지만 그때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심장이 조여들고 묵직하게 아팠다. 그대로 두면 틀림없이 울어버릴 로빈의 모습에 카시아가 귀찮다는 기색을 내비치며 말을 돌렸다.



“내가 들어 갈 순 없지만 삼일에 한 번 씩 저택을 나와서 만나면 돼. 연락할 방법도 마련 해 놨으니까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고.”



여전히 눈물이 그렁거렸지만 조금 안심한 얼굴로 로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용공작의 저택은 그 지위에 비해 아담했다. 물론 상대적인 비교였기에 여느 귀족들의 저택 못지않은 크기와 화려함 정도는 지니고 있었다. 옛날, 아니 미래인가? 아무튼 공작을 처음 만났을 때 헤매던 정원은 숲에 비할 만큼 넓었지. 로빈은 추억을 떠올리며 그리움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공작과 만나게 된 건 즐거운 기억이지만 그 이유는 절대 유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생사의 고비를 넘겨야만 했으니까.



저택의 입구와 그 주위의 경비는 황궁 못지않게 철저했다. 하지만 병사들의 태도 한구석에 내키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순히 감시하고 저택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것이 지겨워서 저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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