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엘디아룬 - 4

167일전 | 78읽음

역시 필론 왕의 딸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것. 아니, 날 때부터 사내애가 아닌가 의심스러웠던 만큼, 본래 아들이었는데 신이 왕의 잔혹한 성품에 노해 여자애로 잘못 태어났다라는, 출처가 의심스런 소문이 조심스럽게 돌았었다. 왕 자신도 이 소문을 들었지만, 냉소 한 번 지어 줄 가치도 못 느낀지라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유모는 공주를 품에 안고 토닥이면서 슬며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왕은 본래 무심한 사람이라 이틀에 한두 번 오는 것도 많이 오는 것이었고, 왕비도 징그럽다며 거의 찾지 않았다. 시녀장이나 어의의 말에도 왕비는 공주라면 질색을 하며 첫 사흘이 지난 후로 공주를 자신의 방에 두는 일이 없었다. 왕비는 오직 왕을 보기 위해서만 공주를 찾아올 뿐이었다.



주위에서 이만큼 냉대를 하는데도 아이는 신경질적이거나 사람에게 매달리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방글거리고, 말이라도 붙이면 어김없이 뭐라고 옹알거린다. 낯을 가리지도 않고, 잠잘 때 칭얼거리는 일도 없으니 이만한 순둥이가 없었다. 그래서 요번에 새로 생긴 별명이 '순둥이'였다.(하지만 가은은 주위에 잘 보여 두는 것이 살기 편하다는 철칙에 따른 것뿐이었다. 미운 털 박혀 좋을 일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도 갈수록 이뻐지셔서 왕비마마도 예전만큼 질색하시진 않으니 다행이에요."



유모가 눈을 보며 웃어주자 아이도 따라서 방긋 웃었다. 연신 옹알옹알 하는 것이 유모의 눈엔 귀엽기만 했다. 두고 온 자신의 아이도 이 정도로 살갑게 굴진 않았을 것이다.



"여전히 그 애는 잘 웃나 보군."



등뒤에서 홀연 들려온 목소리에 유모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녀는 아이를 요람에 내려놓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조심스러운 인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폐하를 뵈옵니다."



왕은 고개만 까닥하고 요람으로 다가갔다. 그에게선 더 이상 강렬한 산시메르 향이 풍기지 않았다. 어의가 그렇게 강한 향은 아기에게 좋지 않다고 충고한 탓이다. 대신 은은한 델 아스 향수를 쓰고 있었다.



"물러가라."



유모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산들바람에 모빌에서 종소리가 났다. 필론은 의자에 앉아 요람 난간에 턱을 고였다. 아이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까르륵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문득 그의 입가에 놀랄 만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간 많이 못 와서 미안하구나."



나지막하고 정감 있는 목소리가 허공 중에 흩어졌다. 누구라도 이것을 보면 경악할 것이다. 심지어 발렌트 백작이라 해도. 지금껏 남에게 비뚤어진 심성과 냉혹한 처사밖에 보여준 일이 없는 그였다. 무심코 백작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실소했다.



"대체가 모르겠군. 내 어디가 그렇게 좋다고 어릴 적부터 날 따르는 건지..."



백작은 특별히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시도조차 않았다. 오히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만큼, 그가 정계에 발을 들이지 말고 조용히 살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도 '그 일' 이후로 백작은 다소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필론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 무모함엔 운도 따라주었던지 그는 무사히 살아남아 지금 자신의 곁에 있다.



"그래, 예레미엘. 그는 좋은 사람이지. 내게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조금 멍하니 모빌들을 바라보던 그는 끙끙거리는 소리에 요람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어떻게 뒤집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아직은 머리가 무거운지 그리 쉽게 뒤집진 못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정신 없이 기어다니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필론은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처음에 볼 때도 그랬지만 어지간히 자신을 웃기는 녀석이다. 그 조그마한 쭈글쭈글하고 빨간 얼굴이 저 하얗고 토실토실한 얼굴로 바뀌다니.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웃기는 구석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지금도 오만 인상을 다 써가며 아등바등 거리지 않는가. 그 표정 하나가 정말 볼 만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부터 생각한 거지만, 넌 정말 이상한 애다, 네르."



그로서도 이 조그만 계집아이가 이렇게 좋아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처음엔 그냥 우습다는 생각뿐이었다. 궁정 어릿광대들의 짓거리에 웃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이었다. 그것이 미약하게나마 호감으로 바뀐 것은 아이가 그 어느 날, 눈을 마주치고 방긋 웃었을 때였다. 제법 초점이 뚜렷이 잡힌 눈으로 순수한 웃음을 보내오는 바람에 그는 잠시 당황했다. 아이는 뒤이어 작은 손으로 자신의 손가락을 꼭 쥐었었다. 그 아무 사심 없는 신뢰의 표시의 그도 엉겁결에 살짝 웃어 보이고 말았다. 그리고 아이는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냉정한 그 성격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그는 아이가 힘겨워 하는데도 전혀 도와주지 않고 웃음 띤 얼굴로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의 성장 발달을 위해서 도와주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것을 알건 모르곤 도와줄 마음 따윈 없었다. 자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제 앞가림은 알아서 하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단지 보고 재미있으면 그 뿐, 마음이 내키면 몰라도 내키지도 않는데 이런 종류의 '당연한' 도움을 베푸는 일이란 없었다. 이기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적이 많았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지만 태도를 바꿀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는 오만하고 제멋 대로인 '왕'이었다.



"네 어미가 요즘은 네게 자주 들르는 모양이더구나."



아이는 어찌어찌 뒤집어 고개를 가누다 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만큼 필론에게서 뻗치는 한기는 강렬했다. 사람을 짓누르는 그 느낌을 아이가 견뎌낼 수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이제껏 그런 일을 수없이 당하고도 용케 졸도 한 번 없이 지내왔다는 것이 더 희한한 일이었다. 어린 아이가 심한 일을 겪으면, 또는 별다른 일 없이도 스르르 뒤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것을 필론이 알 리가 없었다. 네르가 보통 아이였다면 벌써 수십 번은 황천길에 한 발을 들였다 내었다 했을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네르는 보통 아이가 아니었고, 덕분에 필론의 살인미수는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셈이었다.



"필로나... 라고? 웃기지도 않아. 외모 따위에 연연해하고, 나만 보면 벌벌 떠는 그런 여자 따위! 역겨워! 게다가 이건 눈이 삐기라도 했는지 아무리 상처 입고 밟혀도 알아서 내 앞에 나타나려고 발악을 하니 말야!"



필론은 이상한 웃음을 띤 채 차가운 청회색 눈으로 네르를 노려보았다. 아직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를 보자 불현듯 미리엠에 대한 경멸의 감정이 더욱 심해졌다. 그만 보면 필요 이상으로 주눅이 드는, 그래도 명색이 아내라는 여자가 죄인 마냥 그를 두려워하는 걸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청회색 눈은 거의 초점을 잃은 채 허공을 직시하고 있었고, 하얀 손에 힘줄이 돋아 꽉 쥔 난간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 그냥 내버려두면 무슨 일이 곧 터질 것처럼 아슬아슬한 상황이었다.



짤랑!



모빌의 종소리에 왕은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는 힘없이 손을 놓았다. 나무로 된 요람이 엉망으로 금이 가 있었다. 비틀리고 짜부라진 부분이 처참했다. 필론은 머리를 요람 난간에 기대어 깊이 숙였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참을 숨을 몰아쉬던 그는 휘청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비틀비틀하며 침대까지 걸어가 쓰러지듯 눕는 그의 모습에서 냉혹한 위엄에 가득 찬 필론 왕을 떠올릴 순 없었다. 모두들 잊고 있지만 그는 이제 갓 스물을 넘긴 젊은이였다. 무거운 중책에 눌려 버린, 청년 왕의 초췌한 얼굴이 애처롭다.



'... 심해지고 있다.'



그는 한기를 느끼고 팔로 어깨를 감쌌다. 어금니를 사려 물고 떨리는 몸을 주체하려 애썼다. 창백한 안색에 움푹 파인 눈이 병색이 완연했다. 도도하던 왕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는 방금 전 정말로 살의를 느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를 상대로!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한참 후에야 쉬어 버린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필론은 지친 눈으로 요람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이 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밝은 에메랄드 그린의 눈동자는 티 없이 맑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결코 그럴 생각은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굵은 눈물 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울음은 격렬한 흐느낌으로 바뀌어 그는 침대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울었다. 이를 악문 사이로 희미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지지 않아, 이런 것 따위에...!"



왕이 공주의 방에서 나온 것은 세 시간이 지나서였다. 그의 팔에는 잠들어버린 공주가 안겨 있었다. 아이를 받아 안으려고 앞으로 나선 유모에게 왕은 낭랑하지만 무심한 어조로 명령했다.



"공주의 방을 '거울의 방'으로 옮기도록 해라. 지금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



현재 필론의 처소는 백조궁이 아니라 태양궁 한가운데 위치한 '백은의 방'이다. 거울의 방은 회랑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은의 방에 정확히 대칭 되는 곳에 있다. 지금 왕은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태양궁의 중심부로 아이를 옮기라고 한 것이다.



"하오나... 이제 곧 깨시면 배고파하실 텐데요..."



주저하며 꺼내 놓은 유모의 말에 왕은 잠시 미간을 찌푸렸다. 그걸 지켜보던 유모는 가슴이 마구 뛰었다. 궁에 들어오기 전에 들은 왕의 소문이 머릿속에 삽시간에 떠올랐다 사라져간다. 그러나 왕의 입에서 나온 것은 호통이 아니었다.



"그럼 너만이라도 일단 태양궁으로 옮기도록."



다른 이들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왕은 그대로 공주를 데리고 사라졌다. 붉은 망토가 펄럭이며 멀어져 가는 것을 멍청하게 지켜보던 이들은 그제야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주의 방이 갑자기 바뀐 것에 당혹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제일 격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왕비였다.



"태양궁으로 옮겨가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놀란 왕비의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자줏빛 도자기 파편이 벨벳 카펫 위에 흩어졌다. 새장 속에 들어 있던 구관조가 '아이고머니!'라고 재재거린다.



마침 백조궁에서 열린 다과회에 초대받아 와 있던 드 모어 후작부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는 시녀를 불러 그것을 치우게 하며 혀를 찼다.



'곱게 자란 것들은 대체가 물건 아까운 줄 모른다니까.'



셰리엠은 자신도 그 '곱게 자란' 축에 든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왕비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사람은 그 자리에 있던 라네 백작부인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는 다른 이들이 찬탄해 마지않는 우아한 동작으로 입을 가렸다. 금방이라도 왕에 대한 비난의 말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정작 말을 꺼낸 이는 다른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아직 한 살도 되지 않은 아이를 말인가요?"



드 모어 후작부인은 흘깃 자신의 오른편을 쳐다보았다. 검은머리를 꼿꼿이 틀어 올리고 창백한 얼굴에 나타난 떨림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여인. 날씬한 몸에 감은 검은 드레스는 목 위까지 단단히 채워져 있었고 하얀 레이스 밑으로 보이는 가는 손가락은 검은 장갑에 싸여 있었다. 이 청초하고 가련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의 이름은 에리셰 노르 지엠. 이미 지엠 남작이 세상을 떠난 지 오래 되었지만 밀려드는 재혼 요청을 모두 거절하고 아직까지도 그녀는 상복을 입고 있었다.



'... 흥.'



셰리엠은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차를 휘저었다. 그녀의 차는 남작부인이 탄 것이었다. 남이 저어 준 찻잔을 다시 휘젓는 것은 분명 무례한 일이었지만 그 결례를 알아차릴 만큼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셰리엠은 에리셰에 대한 경멸을 그런 식으로 표시하곤 식을 차를 한 모금 넘겼다.



'저 순진한 척 하는 얼굴에 넘어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하긴 그러니 남작 부인 주제에 여길 휘젓고 다니는 거겠지만.'



셰리엠은 남작부인이 궁핍해 보이는 살림에도 실상 숨겨둔 재산이 꽤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련한 외모를 이용해 여기저기서 원조를 받은 결과였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원조자 명단에 이름만 대도 누구라고 알 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단 것이다. 단적인 예로 서로 사이가 나쁜 세느웰과 예니엘스가 그 명단에 동시에 들어 있다는 걸 들 수 있다. 두 사람 다 남작부인이 상대의 궁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이것저것 대준 일이 많았다. 그 둘 사이의 경쟁심리를 이용한 결과였다. 가히 한 마리 능구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니, 여자는 다 여우랬던가. 그럼 저건 천 년 묵은 여우겠다.'



"젖도 안 뗀 아이를 어미의 품에서 떼어놓으시다니..."



백작부인의 말에 미리엠은 기다렸단 듯 눈물을 쏟았다. 수정처럼 맑은 눈물이 두 줄기, 백옥처럼 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런 왕비의 모습을 두 여인은 안타까운 듯 바라보았지만 셰리엠은 그저 지겨울 뿐이었다.



'꼭 쟤가 직접 젖을 먹여 기른 것 같은 소리를 다 하네. 뻔뻔스럽기도 하지.'



"... 안 되겠네. 지금 가서 말씀드리고 필로나를 데려오겠어. 아니, 차라리 내가 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


"안 됩니다."



미리엠은 당장 벌떡 일어나 동생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눈물이 맺힌 보라색 눈동자가 독기를 품고 쏘아보는 모습이 처절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셰리엠은 조용히 차를 다 마시고 말했다.



"폐하께 애원해서 될 일 같습니까. 보나마나 화만 내실 것이 뻔합니다."


"그럼 이대로 애를 뺏기고도 가만히 있어야 한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다음 순간 셰리엠은 찻물을 뒤집어썼다. 다행히 다 식은 차는 그저 따끈할 정도의 온기만 남기고 있어 화상을 입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백작부인은 왕비의 거친 행동에 충격을 받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숨만 할딱거리는 것이 금세 기절할 것 같았고, 남작부인은 비명이라도 지를 것 같은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셰리엠은 묵묵히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았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얼굴이라 손수건에 색이 묻어난다든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나마 찻잔을 통째로 집어던지지 않은 게 다행이야.'



"... 차라리 태양궁에 드나들 구실이 생긴 걸 고맙게 여기십시오. 어미가 자식 찾아간다는데 막을 수 있는 이가 뉘 있을 것이며, 감히 한 나라의 국모를 막아설 어리석은 자들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요."



셰리엠의 말속에 숨겨진 뜻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아차렸을 것이다. '이로써 폐하와 더 자주 만나실 수 있을 테지요.'라고. 왕비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심기를 불편케 한 점, 넓으신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바랍니다."



후작부인은 고상함이 뚝뚝 떨어지는 동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했다. 찻물에 앞섶이 다 젖은 채로 그곳을 떠나는 그녀를 누구도 붙잡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네르-순둥이 공주가 거울의 방으로 옮겨간 이후 왕은 자주 그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다. 갈 때마다 몇 시간씩 사람을 물리치고 어린 공주와 있었으니 그 총애가 어떠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연 다른 자식들에겐 무심했으며, 왕자나 공주들은 아버지의 얼굴조차 볼 기회가 없었다. 왕의 허가 없인 아무나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태양궁, 그곳으로 옮겨간 공주는 어느새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 내던져지게 된 셈이었다. 냉대와 '못난이 공주'란 비웃음 속에서 태어난 아기는 이미 누구도 넘보지 못할 확고부동한 지위를 굳혀가고 있었다.



***



음, 길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자를 수가 있어야지요...ㅜㅜ;; 이때부터 슬슬 애들이 망가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도저히... 깽판물에 들어갈 인물로는... 실격입니다, 네.



알다시피, 깽판물로 시작한 거라 특별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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