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엘디아룬 - 2

167일전 | 93읽음

로 아기를 안아 들었다. 보통 아기치곤 크고 무거운 아이였지만 갓난아이를 안아 본 적이 없는 그에겐 가볍기만 했다. 그는 총애하는 후궁들이 아이를 낳았을 때도 그 애들을 안아 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서툰 솜씨를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은...



"다른 애들하곤 확실히 다르게 생겼군."



... 단지 신기했을 뿐이다.



길게 자라 있는 아기의 숱 많은 머리칼은 옅은 붉은 색이었고, 살갗도 붉은 색에 가까웠다. 그야말로 눈도 뜨지 못한 핏덩이란 표현이 딱 알맞았다. 그러나 코는 오뚝하니 자리가 잘 잡혔고, 쌍꺼풀이 깊게 진 눈에 긴 속눈썹이 그리 많이 미워 보이진 않았다.



"애가 너무 빨간 것 같은데...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수석 산파가 냉큼 대답했다.



"아기씨 피부가 얇아서 피가 비치는 것이니 그리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자라면 누구보다도 고운 피부가 되실 것입니다."


"... 무슨 탈은 없고?"


"저는 의사가 아니니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특별히 민감하거나 손이 가는 피부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다만 갓난아이 때는 누구나 여리고 예민한 법이니 주의하십시오."


"흐음."



필론은 물끄러미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 입을 꼬물거리며 눈을 뜨려고 했다. 사실 누구 말마따나 '깨물어주고 싶게 귀여운' 아이라곤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 못생겨 보인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잠시 끙끙거리며 애를 쓰더니, 그 보람이 있어 조그만 눈을 힘겹게 떴다. 밝은 에메랄드 그린의 눈동자가 아직 초점이 잡히지 않아 불분명한 시선을 보내 왔다. 필론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이 돌았다. 크고 둥그런 눈으로 인상을 쓰면서 자신을 쏘아보는(?) 아이가 우스웠던 탓이다. 아이의 코가 발름거리며 몸이 움찔 하더니 에취, 재채기를 했다. 결국 그는 소리내어 작게 웃었다.



미리엠과 시녀들은 처음 보는 왕의 모습에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뜨고 바라볼 뿐이었다. 필론은 그것을 알았지만, 그들에 대해선 철저히 무시하고 아이의 뺨에 손을 가져갔다.



수석 산파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적어도 그녀의 눈앞에서 그런 극악무도한 행위가 저질러지도록 용인할 순 없었다. 결국 그녀는 용감하게도 날카로운 목소리로 왕을 제지했다.



"폐하, 그런데 손은 씻으셨사옵니까?"



'이 상황은... 여전히 모르겠다.'



자신의 몸이라도 볼 수 있으면 속이 좀 시원해지련만, 장님이나 다름없는 현재의 상황에선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히 눈꺼풀을 든 것 같은 느낌은 있는데 여전히 볼 수는 없다.



'짧아진 팔다리, 잃어버린 시력, 그리고...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귀.'



그리고 그것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 머리를 들 수가 없어.'



자신의 머리가 이렇게도 무거웠단 말인가. 몸을 뒤척일 수도 없고,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기껏해야 얌전히 등을 바닥에 붙인 채 팔다리만 위아래도 파닥이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껏 어떻게 몸을 움직여 보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것이 그녀를 기운차고 건강한 아기라고 사람들이 생각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뭔가 날 휙휙 들어서 옮긴 것 같은데. 그 붕 뜨는 느낌은.'



다행히 촉각은 그대로인 것 같았다. 아니, 더 예민해진 것 같기도 했다. 가은은 뭔가 어려운 일에 부닥쳤을 때 하던 버릇대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을 깨달았다.



'헉... 이가... 하나도... 없다!'



그녀의 몸이 충격으로 부르르 떨렸다. 그걸 시녀들은 추워하는 줄 알고 이불을 하나 더 둘러 주었다.



'...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 몸이 어떻게 된 거지?'



손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그녀의 몸에 일어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분명히 그 일은 평범한 여고 2학년생에겐 일어나지 않는 일인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니...!



'뭐야. 내 주위에 있는 건 대체 누구야? 날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지?'



그녀는 다시 한 번 목소리를 쥐어짰다. 자신은 들을 수 없다 해도 주위 사람들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 있는 건 누구......'



가은은 다시 한 번 얼어붙었다. 말을 할 수가 없어...!



'말...을 못 하게 된 거야?'



그녀는 겁이 나서 더럭 손가락을 입안에 집어넣고 혀를 찾았다. 잘 있었다. 잘리거나 이상해지지 않은 그대로였다. 다만 잇몸엔 이가 하나도 없었다. 꼭 장난삼아 어린 사촌에게 일부러 손가락을 깨물게 했을 때처럼(당연히 사촌은 아직 이가 없었다.), 맨 잇몸 그대로였다. 그녀는 다시 한번 말하려고 시도해 보았다.



'왜... 왜 말을 할 수 없는 거지...? 왜...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고...'



가은은 분노와 서러움이 겹쳐 눈물이 났다. 무서웠다. 갑자기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TV에서 보던 장애인들의 처지가 절실히 이해가 갔다. 몸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움직이던 눈이나 귀가, 목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감히 어설픈 짐작으론 엄두도 못 낼만큼 무서운 일이었다. 가은은 손에 걸리는 거친 천(사실 부드러운 담요였지만 아기의 고운 피부엔 더할 나위 없이 거칠게 느껴졌다.)에 뚫어져라 힘껏 손톱을 박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엉엉 울어버릴 것 같았다.



'아...?'



갑자기 입안에 커다란 원통형의 물체가 들어왔다. 따스하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하다. 동시에 코끝과 뺨에 매끄럽고 팽팽한, 부드러운 뭔가가 느껴졌다. 콧속에 확 풍기는 이 냄새는 분명히 어디선가 맡아본 냄새였다.



'... 젖비린내?'



입안에 알맞게 데워진 액체가 흐른다. 미묘한 맛이었다. 무심결에 목으로 그것을 넘기자 그 자극으로 입안에 든 뭔가가 다시 액체를 뿜어낸다. 가은이 생각에 잠겨 가만히 있자 입안의 물체가 입천장이며 혀 위를 툭툭 건드린다.



'이... 이건 뭐야...?'



동시에 차마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그것은 불길한 예감과도 비슷했다.



'젖을... 먹이고 있는 거야.'



하지만... 왜 '젖을 먹고 있는 사람'이 '나'인 거지? 설마...



'... 아기... 가 되어버린 건가...?'



그래.



가은의 저 안 깊숙한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녀는 멍한 상태로 대부분의 젖을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하... 하지만 내가 왜...?'



대답은 없었다. 아니, 대답할 수 없는 문제였다. 뻣뻣하게 굳어있는 그녀의 뺨을 살짝 건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요구에 따라 젖꼭지(라고 추정되는 것)를 빨았다. 입안에 넘쳐나는 젖을 기계적으로 목으로 넘기며 가은은 눈을 감았다.



'왜...?'



머릿속 가득한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멍한 상태로 있는 그녀를 찾아온 것은 잠이었다. 아기의 몸은 쉽게 피로를 느꼈다. 가은은 눈물 자국을 얼굴에 남긴 채로 곤히 잠이 들었다.



***



네, 결국은 이세계 환생물이었던 겁니다, 이 이야기는.



태어나는 상황이란 것은, 죽음처럼 경험할 수 있는 저편에 있는 거죠. 어쨌든 상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쓰고서 새삼 상상력의 한계를 느꼈다고 할까요.



진부한 이야기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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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장-예정에 없던 방문 2장-예정에 없던 방문 이튿날, 왕비의 침실에 일찍부터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어머... 그게 사실입니까, 전하?"



드 모어 후작부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물었다. 침대에 누운 미리엠 왕비는 조심스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나기도 하셔라..."



'저 못생긴 애가? 빈말로라도 절대 귀엽다곤 못 하겠네.'



후작부인은 미심쩍은 듯 연신 아기가 누운 요람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로선 저 빨갛고 못난 아기가 왕을 웃게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여지껏 본 갓난아이란 모두 하얗고 토실토실한 것이 귀엽기만 했던 것이다.



미리엠도 후작부인의 말 뒤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다.



"... 나도 내가 낳은 게 저렇게 미울 줄은 몰랐네, 셰르."



그녀의 시무룩한 얼굴에 셰리엠은 노련하게 화제를 돌렸다.



"며칠만 지나면 좀 괜찮아 보일 겁니다. 자식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폐하께서 원래 아무 언급이 없으셨는데, 어제 일을 보니 어떻게 될지..."


"미리 생각해 두신 이름은 없으신 겁니까?"



미리엠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남자애라면 필론으로 지을 생각이었는데... 여자애는..."



하긴 그녀로선 꼭 남자아이를 낳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벌써 후궁들에게서 난 왕자가 셋, 공주가 둘이었던 것이다. 셰리엠은 속으로 혀를 찼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말했다.



"이름만이라도 좀 여성스러운 게 어떨까요? 아스비오네라든지..."



갑자기 낮고 부드러운 음조의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아이는 바다를 지배할 명운을 가진 아이, 땅의 이름을 붙여 주는 건 적당치 않을 듯 합니다."



두 여인은 화들짝 놀라 문가를 쳐다보았다. 은은한 수선화 향이 흐르는 가운데, 옅은 노랑을 기조로 한 황금 실로 수놓은 로브를 입은 사람이 들어섰다. 깊이 눌러 쓴 후드 아래로 물결치는 금발, 흰 손에 푸른 수정 구슬을 든 청년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간만에 뵙습니다, 왕비 마마, 레이디 셰르."



잠시 이어진 침묵 가운데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셰리엠이었다.



"이게 누구야! 게일, 게일 맞지?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는데, 전혀 안 변했군!"



셰리엠은 득달같이 달려가 그를 포옹했다. 그는 아무리 어릴 적 친구라지만 그녀가 이렇게 반응할 지는 미처 짐작하지 못한 듯, 꽤나 당혹해 하는 태도였다.



"우리 사이에 존대할 필요 있나. 자네도 그때완 사정이 다르니 말 놓지."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후작부인과는 또 다르게 왕비도 묘하게 들떠 있었다.



"그래, 지나치게 예를 차릴 필요는 없네."



그러나 이 열렬한 반응에 찬물을 끼얹은 건 게일이었다. 그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으며 우선 아직도 그를 껴안고 있는 셰리엠을 떼어놓았다.



"야인으로 떠도는 몸이 그처럼 과분한 대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는 물이 흐르는 듯한 걸음으로 요람으로 다가갔다. 움직일 때마다 수선화 향이 물씬 풍겼다.



"... 게일?"



게일은 수정구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아 올렸다. 왠지 불안해진 셰리엠이 그의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들리지 않는 듯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어느새 깨어나 인상을 쓴 채 흐릿한 시선이나마 게일의 얼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미리엠은 아이가 울 거라 생각했지만 아이는 울먹이지도 않고 빳빳이 굳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게일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그러자 아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게일은 픽 웃은 뒤 아이를 다시 요람에 뉘어 놓았다. 자신들도 모르게 긴장해 있던 자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한숨을 쉬었다.



"아기씨가 꽤 영리하신 것 같습니다."



게일이 지나가는 투로 말하자 왕비는 고개를 갸웃했다.



"... 칭찬은 고맙네만. 여자애가 영리해봐야 어디다 쓰겠나. 그저 좀 더 예쁘기나 했으면..."


"천만에요. 분명 큰일을 하실 겁니다."



자매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큰일이라니? 언뜻 생각난 것은 역모였다.



"그, 그런... 이 아이가 반역이라도 꾀한단 말인가?"



왕비의 당황한 목소리엔 공포가 서려 있었다. 게일은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런 뜻은 아닙니다. 분명 좋은 일을 많이 하실 분입니다. 어쨌든 오늘 이렇게 갑작스레 찾아 뵌 것은..."



그는 소매 안에서 동그란 고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햇살을 받아 고리가 반짝, 황금빛으로 빛났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것은 연꽃 한 줄기가 정교하게 새겨진 팔찌였다. 군데군데 박힌 조그만 진주 알들이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 늦었긴 하지만 공주마마의 생일 선물을 전달하기 위함입니다."



게일은 허리를 굽혀 아이의 여린 팔을 잡았다. 아이가 놀라 바동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그는 팔찌를 아이의 팔에 채워 버렸다. 찰칵, 하는 소리가 나며 팔찌는 순식간에 아이의 팔에 꼭 맞게 줄어 버렸다.



"그것은... 마법의 팔찌인가?"


"예, 그렇습니다."



미리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게일은 얄미울 정도로 차분하게 대답했다.



"아직 인연이 없으니 공주마마와는 7년 후에나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잠깐만! 이대로, 가 버리는 건가?"



셰리엠은 붉어진 눈으로 외쳤다. 3년 만에 보는 건데, 이대로 보낼 순 없어! 게일은 잠시 침묵하다 빙긋 웃었다.



"물론, 아닙니다."



자매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풀이 죽었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셰리엠은 게일을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는 마음에, 미리엠은 차마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은밀한 소망으로.



"우선, 왕비마마."



게일은 수정구를 다시 집어들었다. 아이의 바동거리는 손이 그의 손을 스쳐 지나갔다. 아이는 지금 필사적으로 바동거리고 있었다. 꼭 그를 붙잡기라도 할 것처럼.



"첫 아이를 생산하신 데 대한 축하입니다. 공주마마는 4년 후에 남동생을 갖게 되실 겁니다."


"아...!"



미리엠의 얼굴이 환해졌다. 게일이 명성 높은 예언자란 사실을 알고 있는 왕비는 왕자에 대한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셰리엠은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다는 듯 미소를 띠고 있었다. 게일의 방은 어디가 좋을까? 제일 좋은 손님방을 쓰게 해야지. 그녀는 게일을 자기 집에 묵어가게 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디 셰르."



게일은 웃는 듯 마는 듯 미묘한 웃음을 띄었다.



"그리 귀엽지 않은 공주마마라도 모쪼록 친하게 지내 두십시오. 나중에 덕보실 때가 있을 겁니다. 숨겨진 칼은 푸른 황소에게 있는 법이지요."


"뭐라고?"



셰리엠은 묘하게 불길한 여운을 남기는 게일의 말에 당황해 고함을 질렀다. 미리엠은 왕자를 가지게 된다는 말에 기뻐서 제대로 듣지 않은 모양이었다.



"내가... 왕자를..."



게일은 엷은 미소를 띤 채로 중얼거렸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이 오시는군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순간 황금빛으로 빛나는 물방울들이 그를 감쌌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챈 셰리엠이 급히 손을 뻗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게일은 사라져 버렸다. 3년 전처럼. 햇살에 빛나는 황금 물방울들이 반짝이 서서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털썩 주저앉는 후작부인의 눈에 황금 글자들이 들어왔다.



'네르웨 디세르가은 필로나 크리오시스'



뚜벅뚜벅, 복도에 묵직한 걸음 소리가 들렸다. 방으로 들어온 이는 싸늘한 청회색 눈의 필론 왕이었다.



가은은 뭔지 모를 향기에 잠이 깨었다. 아기의 예민한 후각 때문이었다. 어제도 누군가에게 풍기는 향 때문에 재채기를 했다. 그런데 이 향은 그 향과는 다르게 매우 진하면서도 코를 찌르진 않았다. 왠지 모를 청량감을 느끼며 그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여전히 안 들리네.'



가은은 지루함을 느끼며 오른손 엄지를 꼭꼭 깨물었다. 그래봐야 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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