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엘디아룬 - 11

190일전 | 90읽음

쳐 줘야 할 수 있는 분은 말이죠. 이 말은 속으로 삼켰다. 더 이상 무엄한 말은 곤란했다. 평소엔 자주 농지거리도 했지만, 이번처럼 진지한


문제에선 말 한 번 잘못했다 사형장로 직행할 지도 몰랐다. 저렇게 보여도 저 공주는 속을 알 수 없는 '어린애'니까 말이다.



네르의 얼굴에 살짝 쓴웃음이 떠올랐다 사라졌다.(카잔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곧 그녀는 카잔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 감사합니다."



카잔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깊이 숙여 답례했다. 그러고는 시선을 자꾸 피하는 것이 우스워 네르는 까르르 웃었다. 빗방울이 대리석 테라스를 통통 두들기며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냈다.



***



카잔과의 러브러브를 생각한 것은, 이 대목 쓰고부터였을겁니다... 지금 나이를 생각해야지 하는 분들 계시죠? 하지만 네르의 실제 나이는 카잔보다 세 살 아래라구요...



카잔은 실없긴 해도 상냥한 사람입니다. 늘 웃고 다녀도 속을 디벼 보면 심각하지요...ㅡㅡ;;(첫 등장의 칙칙한 표정을 기억하시는지?) 네르처럼 고민 있으면 혼자서 땅 파고 얘기 잘 안 하는 남자죠. 네르가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은, 상당히 큰 사건입니다. 그녀 성격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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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8장-Royal Family 8장-Royal Family 네르는 교육받은 대로 치마를 양옆으로 살짝 들어올리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드 모어 후작부인의 얼굴에 만족한 미소가


스쳤다. 우아하게 답례하는 후작부인의 다홍색 머리칼이 머리장식의 에메랄드와 함께 반짝 빛을 발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길."


"마마께서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검은 곱슬머리가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고개를 드는 드 모어 후작의 눈에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네르는 상긋 웃고 등을 꼿꼿이 폈다. 나흘 간 맹훈련을 받은 결과였다.



"지난번 생일 때 깃펜을 보내주셨습니까?"



공주가 속삭이듯 물어오는 바람에 후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습니다.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이군요."


"다음엔 좀 더 어린 아이가 쓰기 쉬운 걸로 보내 주십시오."



푸웃. 후작부인은 황급히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후작은 다소 당황했지만 역시 노련했다.



"그럼 다음엔 에냉(hennin)을 보내 드리도록 하지요. 그게 취향에 맞으시는 것 같군요."



공주의 얼굴이 팍 일그러지는 걸 보며 후작은 쿡쿡 웃었다.



'그런 애들이나 쓰는 모자를 누가 쓴다고!'


에냉은 딱딱한 천으로 원추형의 모자를 만들어 쓰고 그 위에 원형의 베일을 덮어 늘어뜨린 것이다. 한국에서 어린애들 생일 때 씌워 주는 종이 원뿔 모자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곳에서도 한때 유행했다 불편해서 지금은 축제 때 애들밖에 쓰지 않는 모자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네르는 얼른 그 자리를 피했다. 여기서 더 밀리는 날엔 낭패다. 몇 발짝 떼기도 전에 다른 사람이 말을 걸어 왔다.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그녀는 웃는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속으로 눈물을 좍좍 뽑고 있었다.



'일 났다... 아저씨 옆에서 안 내려오는 건데...'



연회장 정면 벽에 붙은 30센티 높이의 연단 위에는 필론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 옆에는 미리엠 왕비가 어딘지 불편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다.


보라 빛 머리칼 덕에 얼굴이 한층 초췌해 보인다.



'음, 저 아줌마도 하마터면 못 알아볼 뻔했지. 에라이, 엄마가 되어가지고...'



그 특이한 머리만 아니었으면 공주는 엄마도 못 알아보는 불쌍한 아이가 될 뻔했다. 아무튼 연회장 입구에서 왕비와 만나 어찌어찌 필론이 공주의 소개를 하고,


외워 둔 인사말을 떠든 다음, 30분 정도를 연단 위에 마련된 자신의 자리에서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하지만 후작부인이나 유모가 가르쳐 준 것과는 다르게 도무지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올 생각을 않는 것이다!(말 한 번 잘못해서 사형장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인사하고 무사하면 왕이 오늘은 미치지


않았단 소리니 다들 줄줄이 뒤를 따르겠지만.) 그게 다 필론의 엄청난 카리스마(?) 덕이었다.



'손님들이랑 한마디도 안 하는 것도 실례라고 해서 내려오긴 했는데... 이건 전진이 안 된다.'



일단 아는 얼굴인 후작 부부에게 가서 인사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카잔에게 가 보려고 생각했는데... 이때다 싶었는지 사람들이 벌떼같이 몰려온다. 한 십여 명


얼굴을 보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헷갈리기 시작한다. 빨간 머리가 무슨 백작, 파란 머리가 무슨 자작 하는 식으로 기억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먼저


사람들의 데이터까지 이상해져버렸다. 거의 기계적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다.



'... 카잔 경! 호위기사는 이 때 나서는 거라고!'



제발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를 기억에서 삭제할지 정리를 해 달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



일순 주위가 조용해졌다. 악사들이 자아내는 고요한 선율만이 연회장을 감돌고 있었다. 가늘고 높은 바이올린 소리가 불안하다.



"생일을 축하한다. 네르웨 디세르가은 필로나... 크리오시스, 나의 누이여."



음절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발음하는 자신의 이름은 아직도 어색하다. 마치 자신이 여기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듯한 기분. 네르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아니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는 남자아이의 이름을 떠올렸다.



'카르트 젬블 필론 크리오시스...'



카잔은 하릴없이 포도주나 홀짝거리고 있었다.



'음, 역시 이 위치는 사람이 잘 안 온단 말이야.'



주단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커다란 기둥은 연회장 전체에 둘러진 새빨간 휘장이 시작되는 곳. 기둥 옆에는 하얀 바탕에 푸른 무늬가 들어간 큰 도자기 꽃병이 세워져 있다.


꽃병에는 노랑, 연분홍, 하얀 색의 자그만 꽃들이 소담하게 어우러져 있고, 그 위로 휘장의 금색 술이 늘어져 꽃가루가 온통 범벅이 될 지경이다. 그 꽃병 뒤로 카잔은 몸을


숨기고 네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저럴 줄 알았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게 그냥 옛말은 아니라니까?'



네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생글거리며 인사를 받고는 있지만, 절대 저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카잔이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애들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말라고.'



저 귀족들이야 안면 텄다고 좋아하겠지만, 저 꼬마가 사람 사귀는 데 그다지 취미가 없다는 건 그녀와 가까운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놀이 상대를 맡은


여자아이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또래 여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인형놀이라든가 하는 것 따위-에는 공주 자신이 한 달만에 넌더리를 냈던 것이다.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라 그녀가 애늙은이라는 거였다. 서너 살짜리 애들과는 도무지 대화가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금 나이가 든 귀족 소녀들과 노는 것도 무리였다. 매일 책이나 붙잡고 앉아 이상한 말이나 하는 여자 애랑 놀고 싶은 소녀는 눈 씻고 봐도 찾기 힘들 것이다.


몸치장이라든가 무도회 계획이라든가 이상형의 남자라든가 하는 것에 '전혀'라고 해야 할 정도로 관심이 없는 공주는 그런 것에 통달하고 싶어하는 귀족 소녀들과 애당초


인연이 없었다.



카잔은 다시 한 모금 포도주를 넘겼다. 그의 얼굴에 느긋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흠, 이거 꽤 맛이 좋은데? 이 깔끔한 맛은 코넬 지방 같고, 대충 3, 4년쯤 된 건가?"



맛 좋은 포도주, 볼 만한 구경거리, 그런 대로 괜찮은 음악. 역시 연회는 포도주 먹으러 오는 거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 거기, 뒤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와."



뒤에서 흠칫 하는 기색이 느껴진다. 머뭇머뭇하더니 그의 앞으로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 이는 금발 더벅머리의 꼬마였다. 하얀 블라우스에 빨간 볼레로 재킷과 나비


넥타이, 역시 빨간 모직 반바지가 귀엽기만 하다. 왼뺨에 보조개가 패이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절대 악동 콤비의 일원이라곤 생각할 수 없었다.



"... 레데이브냐?"



에헤헤, 하며 꼬마가 배시시 웃었다. 그 어수룩한 반응에 카잔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미안한 건 알아 가지고..."


"... 많이 혼났어?"


"혼나다 뿐이냐? 너도 폐하 봤지? 그 찬바람 쌩쌩한 얼굴을 세 시간동안 마주보고 있었다, 임마! 그 날 정말 사형장로 직행하는 줄 알았어!"


"제데브가 삼촌 무덤에 꽃다발 놔줄 테니 참으라고 했어."


"크윽...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나 않지. 근데 너 혼자 왔냐? 엘스는?"


"엄마는 머리가 아파서 안 온대. 세느웰님도 속이 안 좋다고... 그런데 뮤랑 필로나는 아마 올 거야. 하뮈님이랑 시렌님을 엄청 졸랐거든. 그래서 점심 먹을 때쯤엔 올 거야."


"그런가..."



카잔은 다시 잔에 입술을 갖다댔다. 향긋한 냄새가 올라온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야, 제데브는 어디 갔냐?"


"응? 그게..."



레데이브는 뜨끔한 기색이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아이를 다그치려던 카잔은 갑자기 주위가 조용한 데 놀랐다. 반사적으로 네르가 있는 쪽을 살피던 그는 쓴 입맛을 다셨다.



'젠장, 제대로 안 보이잖아?'



사람들이 한 쪽으로 물러서고 있다. 귀부인들의 페티코트 사락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조금 전까지 보이던 자그마한 공주는 넓디넓은 치마에 가려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바이올린의 선율과 함께 아이의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일을 축하한다. 네르웨 디세르가은 필로나... 크리오시스, 나의 누이여."



어디서 들은 목소린데... 그의 의문을 풀어준 것은 레데이브였다.



"어, 카르트 저기 있었네? 어딜 가는가 했더니."



'카르트... 그 녀석이었나. 세느웰도 없으니 혼자 온 건가? 아, 펜라르도 같이 있겠지.'



과연 그의 예상대로 무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청년 기사가 보였다. 진회색 머리칼을 짧게 깎은, 예리하게 각이 진 얼굴과 콧날이 날카로운 생김새다. 근육이 붙긴


했지만 키가 훌쩍한 탓인지 전체적으로 호리호리해 보이는 몸에다, 딱딱한 얼굴은 거만해 보인다. 카잔은 그가 어떤 눈을 하고 있을지 알고 있었다. 틀림없이 그 회색 눈은


조소와 함께 명문 귀족다운 오만함을 품고 있을 것이다. 펜라르 베누토 아라일, 카잔과 동갑인 그는 일왕자 카르트의 호위기사였다.



하지만 이 고귀한 핏줄의 젊은이에 대한 카잔의 평가는 이러했다.



'저 할아버지 같은 표정은 여전하군. 넌 근엄해 보이는 게 아니라 신경질적으로 보인다, 임마.'



"... 평안하셨습니까, 오라버니."


"평안하다라... 너는 이 오라비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을 셈이냐? 섭섭하구나."



카잔은 손에 들고 있는 잔을 확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 제발 애들다운 대화를 좀 해 달라구! 왜 내 주변엔 평범한 애들이 없는 거야?'



그건 그렇고 안 보이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나. 그는 조바심이 나서 좀더 잘 보이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바람에 그의 곁에 있던 레데이브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네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손끝이 차가워진다. 자신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강한 적의를 보이는 '오빠'라니.



'빌어먹을, 태어나서 한 번도 안 본 오빠한테는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일단 저 쪽이 네르보다 상당히 크다. 네르도 보통 아이치곤 꽤 큰 편이지만 카르트도 두어 살쯤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8살이라고 들었는데 거의 10살 정도로 보인다


. 운동이라도 하는지 어린 나이에도 딴딴해 보이는 장딴지라든가 거무스름하게 햇살에 탄 얼굴, 왕족으로서 교육받은 꼿꼿한 자세와 거만함이 뒤섞인 위압감에 자신도


모르게 주춤해 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얼굴 자체도 위협적이었다. 숱 많은 검은머리, 뚜렷한 짙은 눈썹 밑에는 부리부리한 까만 눈, 우뚝한 코와 끝이 살짝 비틀린 입술은


명백한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저 타오르는 눈이라니. 이렇게 강렬하고 직접적인 원한을 겪어본 적이 없는 그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쟤한테 못


할 짓이라도 했나?



'... 많군.'



거의 4년 간 아빠를 독차지하고 있었던 데다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다. 거기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으니 엄마 옆에서 얼마나 들볶였겠는가. 왕족들에 대한


교육열은 엄청난데다 여기선 여자의 지위도 낮다. 여자 따위에게 진다는 건 자존심 강한 남자 왕족들에겐 참을 수 없는 치욕일 것이다.



'그래, 원한의 상당 부분은 그걸 거야.'



그렇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고민하는 동안 다행히 저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떨 필요 없다. 네 생일 파티를 망치려고 온 건 아니니 말야. 난 다만 널 위한 작은 선물을 준비했을 뿐이란다."



카르트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어 보였다. 순간 네르는 절로 몸에 소름이 돋는 게 느껴졌다.



'... 저 놈, 8살이라면서 저렇게 징그럽게 웃을 수가 있는 거야?'



혐오감에 몸부림치는 네르에게 카르트는 뭔가를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을 덮고 있던 하얀 천이 너울거리며 떨어졌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새까만 뭔가를 쥐고


있었다. 네르는 처음엔 그게 뭔지 몰랐다. 그러다 귀부인 중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그것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꺄아아아아!!! 고, 고양이가...!"



까만 새끼 고양이였다. 다만 그 고양이가 눈을 까뒤집은 채 죽어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뻣뻣한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고, 입가엔 거품이 흘러나와 있었다.


목에 매어진 새빨간 리본이 제멋대로 그 조그만 몸을 감고 있는 것이 애처롭고, 가련하고, 서글펐다.



몇 사람이 더 비명을 질렀다.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지나칠 정도로 비위가 약한 귀부인이 버티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리라. 주위가 술렁거리고 있었다.



"이런 무례한! 대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전하!"



어느새 달려온 카잔이 네르의 앞을 막아서며 호통을 쳤다. 카르트의 눈썹이 올라갔다.



"너야말로, 고작 호위기사 주제에 무슨 무례냐! 썩 비키지 못할까!"



카잔은 이를 드러내며 일왕자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펜라르의 한 마디가 더 신경을 긁었다.



"샤흔 가는 본래 예의 없는 자가 태반입니다. 고정하십시오."



카르트는 그 말에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카잔의 눈에 칼날 같은 예리한 기운이 스쳤다. 뜨겁게 타오르는 불은 맹렬한 기세로 얼어붙었다.


카잔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것을 바라보는 펜라르의 얼굴에 야릇한 웃음이 떠올랐다.



네르는 눈을 크게 뜨고 시체를 보고 있었다. 비명도, 눈물도, 울음도, 카르트가 기대한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얼굴이 파랗게 질리길 내심 바랐지만, 그것조차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카르트는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뭐야, 너무 겁이 나서 얼어 버린 거냐? 이래서 여자들이란..."



네르는 눈을 감았다. 지독하게 쉬어버린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고양이는... 저 때문에, 죽은 겁니까?"


"그래.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이 몸이 직접 마련한 거다. 마음에 들거라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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