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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엘디아룬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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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롤로그 -

    엘디아룬-약속된 자들 - 프롤로그 -

    동굴은 어두웠다. 정교한 세공이 된 황금 촛대의 가지 위에 놓인 다섯 개의 노란 초는 일렁거리는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그런 촛대가 여덟 개, 동서남북의 방위를 맞춰 놓여 있었다. 촛대의 바깥쪽은 커다란 원이, 그 안에는 촛대를 꼭지점으로 한 정팔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동서남북의 네 방위에는 제단이 각각 하나씩 자리잡고 있었다. 똑같은 재질의 흑청색 돌을 깎아 만든 제단들은 촛불 아래 매끄럽게 잘려진 단면을 번쩍이고 있었다. 북쪽의 제단과 서쪽의 제단에는 청년이, 동쪽에는 여인이 각각 누워 있었다. 모두 벌거벗은 듯 그들의 몸 위에는 하얀 천이 덮어져 있었다. 그들의 가슴 께에 딱딱한 검은 돌처럼 보이는 것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남쪽의 제단에는 사람 대신 붉은 색 테를 한 족자가 얹혀 있었다. 족자의 색깔이 누렇게 뜬 걸로 봐서 무척이나 오래된 것 같았다. 누런 종이 위엔 희미하게 녹색으로 변색된 잉크로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이 씌어 있었다.

    "드디어 시작인가..."

    무겁게 감돌던 동굴의 적막을 깬 것은 낮고 부드러운,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남자는 옅은 노란색의 로브에 달린 망토를 깊이 눌러쓰고 있었다. 금실로 놓은 문양은 화려하면서도 세밀했다. 그의 오른손은 푸른 수정구를 꼭 쥐고 있었다. 후드 밑으로 굽슬거리는 금발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발걸음으로 정팔각형의 중앙으로 걸어갔다. 정북향을 하고 선 남자는 수정구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의 입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흘러나왔다. 일정한 가락과 리듬을 지닌 그 목소리는 처음엔 간신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낮고 고요했지만 갈수록 높아지고 커져갔다. 손에 든 수정구는 찬란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와 더불어 제단에 누운 세 사람의 위에 놓인 돌이 허공에 떠올랐다. 남쪽의 족자의 붉은 테가 주위에 붉은 빛을 뿌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빛이 하나로 뭉치며 주위가 새하얘졌다.

    "... ...!"

    일순간, 거짓말처럼 주위가 고요해졌다. 조금 전 크게 자라났던 촛불은 북쪽과 남쪽을 남기고 모두 꺼져 있었다. 남자는 잠시 뻣뻣하게 굳어 있다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몸이 경련하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조금 뒤, 남자는 울컥 피를 토해 냈다. 그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소매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았다. 피는 촛불 아래 검붉은 빛을 띠며 손수건으로 스며들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 어, 어째서...?"

    목소리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는 제단으로 다가갔다.

    남쪽의 족자에는 짙은 녹색으로 단 한 문자가 나타나 있었다. 에람(고대 신어)으로 '예'를 뜻하는 히안. 그것은 예상했던 일이니만치 놀랄 일도 아니었다.

    북쪽의 청년의 가슴 위엔 옅은 하늘색의 투구가 놓여 있었다. 은빛 금속으로 된 장갑은 착용자의 얼굴을 반 이상 가릴 것이다. 청년의 가슴이 미약하게 아래위로 들썩이는 것이 확실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청년의 뺨에 손을 대 보고선 온기가 느껴지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의 사람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처음 그대로, 인형처럼 굳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꺼진 촛불말고도 변한 것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는 동쪽의 황금 팔찌와 서쪽의 갈색 너클 한 짝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

    사실, 엘디아룬은 깽판물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원제는 '악당전설'. 하지만, 계속 시리어스물만 써 본 저로선... 역부족이었다고 해 두지요. 애들도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무엇보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애들을 그려낼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상당히 칙칙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게 제 예상입니다.(요컨대 성격의 문제라는 거죠... 하아.) 상당히, 라고 표현한 것은... 어쩌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ㅡㅡ;; 아아, 하지만 너무 심각해지실 필요는 없어요. 가볍게 읽어주세요, 가볍게.

    =+=+=+=+=+=+=+=+=+=+=+=+=+=+=+=+=+=+=+=+=+=+NovelExtra([email protected])=+=

    1부 1장-공주 탄생 제 1부-가은 <공주로서의 7년>

    1장-공주 탄생 포넨테(태양이 지는 방향)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 크리오시스 왕국의 중심부라면 단연 수도인 알드라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알드라스의 중앙에 폰다멘타(토대)라고 불리는 그리 높지 않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왕성 로카포르테(성채)가 서 있다. 그 안에도 수십 개의 궁이 있어서, 궁마다 주인이 따로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심부를 고르라면 첫째는 왕이 있는 태양궁이었고, 그 다음이 왕비가 있는 백조궁이었다.

    그런데 백조궁이 오늘따라 소란스러웠다. 오늘 아침, 미리엠 왕비는 식사를 하다 말고 진통이 오는 것을 느꼈고, 그때부터 백조궁의 시녀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수건 좀 갖고 와, 수건!"

    "더운물은 어떻게 됐나!"

    부산한 것도 잠시, 준비는 완료되었지만 기다리는 아기는 아직 나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왕비가 초산인데다 본디 몸이 약하기도 해서, 아침 일찍 시작된 산고는 해질 무렵이 되어서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백조궁이란 이름답게 하얀 색을 기조로 꾸며진 왕비의 침실은 때아닌 열기로 후끈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아기를 받기 위해 필요 없는 것들은 모두 멀찌감치 치워진 뒤였고, 왕비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는 구관조조차 황금 새장과 함께 옆방으로 가야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방 가운데 있는 침대에선 끊임없이 왕비가 죽는소리를 냈다.

    왕비만 힘든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힘들긴 매한가지였다. 열두 시간이 넘도록 아기는 머리조차 내밀지 않고 있었다. 수석 산파만이 기진맥진한 왕비의 곁에 붙어 서서 격려를 계속했다. 왕비의 어머니는 이미 작고한 뒤였고, 동생인 후작부인도 언니만큼이나 지쳐서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마마, 잠시 숨을 돌리시고 다시 힘을 내십시오...! 귀여운 아기씨 얼굴을 보셔야지요..."

    노파의 조용한 목소리가 잦아드는 가운데 시녀들은 한쪽 구석에서 소곤거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지 않아?"

    "글쎄... 우리 어머닌 큰오빠 낳을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렸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하루를 넘기면 위험하겠지?"

    "그런 소리하는 게 아니다. 어느 귀가 들을 줄 알고..."

    "그런데 왕자님일까 공주님일까?"

    "아까 들으니 아기씨가 좀 커서 이렇게 힘든 거라고 하던데..."

    "그럼 왕자님 아닐까?"

    "아악!"

    왕비의 찢어지는 비명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다시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어두웠다. 가은은 몸을 더욱 웅크렸다. 아까부터 계속된 희미한 울림이 그녀의 평온을 방해하고 있었다.

    '웅... 시끄러...'

    이 포근한 곳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일주일만에 찾아온 편안한 잠을 포기할 순 없었다.

    ".....!"

    별안간 강렬한 진동이 느껴졌다. 가은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뭐, 뭐야?'

    눈을 뜨긴 떴는데, 이게 대체 뜬 건지 감은 건지. 온통 캄캄해서 보이는 게 없었다. 그녀는 문득 자신이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건 아기 때 졸업한 줄 알았는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입에서 뗐다.

    '... 어라?'

    손가락을 떼긴 뗐는데 뭔가 이상하다. 자신을 둘러싼 것은 축축하고 말랑말랑한 공간. 아니, 다음 순간 그 공간은 터질 듯 팽팽하게 그녀를 압박해 왔다.

    ".....!"

    온몸으로 진동이 전해져왔다. 동시에 공간은 숨막힐 정도로 그녀를 밀어댔다.

    '으윽, 머, 머리가 뭔가에 끼였잖아?'

    그렇게 세게 죄는 공간에 갇혀 있자니, 가은은 자신이 제대로 숨이나 쉬고 있는지 궁금했다.

    '... 음. 숨이 막힌다거나 하는 건 없는데... 근데 여긴 대체 어디지?'

    설마 자는 사이 방이 좁아져 버린 건 아닐 테고... 하지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성진 비명과 함께 공간이 그녀를 밀어붙였다. 그녀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와아악!!!'

    머리 약간 위쪽, 그러니까 이마 위에서 고리 같은 것이 그녀를 꽉 죄고 있었는데, 요번의 진동으로 그 고리가 코 바로 위까지 쑥 내려왔다.

    '머, 머리가 어지러워...'

    대체 무슨 일인진 모르겠지만, 가은은 본능적으로 이대로 있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 고리가 눈두덩을 꽉 죄고 있어선지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물론이고 압력에 못 이겨 머리가 짜부라질 것 같았던 것이다.

    '나가야 돼!'

    가은은 끙끙거리며 머리를 밀어댔다. 다시 한 번 거센 진동이 찾아왔고, 그녀는 놀랄 틈도 없이 고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것은 환한 빛, 그리고 엉덩이에 느껴진 강한 충격.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

    가은은 정말 놀라 버렸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크기도 하셔라. 참말 씩씩한 아기씨이십니다."

    수석 산파는 재빨리 아이를 받고 탯줄을 끊었다. 곧 아기는 더운물로 옮겨져 씻기기 시작했다. 체구도 크고 불그레한 머리칼이 길게 자라 있는 데다, 낳자마자 기운차게 바동거리는 것이 확실히 얌전한 아기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아... 왕자... 겠지?"

    왕비의 가냘픈 목소리가 침대 위에서 들렸다. 아기를 씻기던 젊은 산파들이 웃으며 대답했다.

    "웬걸요, 공주마마이십니다."

    "폐하를 닮으셨는지 어지간히 기운이 세셔야지요."

    "피는 못 속이는가 봅니다."

    미리엠은 맥이 탁 풀리는 것 같았다. 왕자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으흑..."

    시녀들이 그녀의 흐느끼는 얼굴을 물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후작부인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이 없었다. 그녀는 방을 나가려고 하다 그제야 생각난 듯 왕비에게 절을 했다.

    "축하합니다, 마마."

    말과는 달리 방을 나서는 후작부인의 얼굴은 쌀쌀하기만 했다.

    '흥, 계집애라니! 나 원 참!'

    복도에 키가 훤칠한 30대 초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곱슬머리가 부드럽게 목덜미를 덮고, 입술 위를 덮은 콧수염과 가무잡잡한 피부가 관능적이다. 하지만 날카로운 까만 눈은 사뭇 위협적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옅게 그을린 피부에 긴 다홍색 머리칼을 소녀처럼 그대로 늘어뜨린, 당돌한 초록색 눈동자를 지닌 후작 부인과 잘 어울렸다.

    "어떻게 됐소?"

    "... 다 틀렸어. 계집애요."

    후작부인은 남편의 말에 내뱉듯이 말하고 고개를 저었다. 드 모어 후작은 별 표정 변화가 없었으나, 그 눈은 더 이상 빛나지 않았다. 후작부인은 짜증스럽게 흐트러진 머리칼을 손질했다.

    "... 애가 크긴 크더라만. 일껏 기대만 한 셈이지. 애초에 그 애한테 바라던 내가 바보예요. 예전부터 그랬지만 뭐 하나 마땅한 구석이 없어. 얼굴 반반하고 언니란 것만 빼면 나을 것도 없는 주제에..."

    후작은 덤덤하게 부인의 투정을 듣고 있다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뭐, 그 정도면 됐소. 최소한 석녀는 아니란 것이 증명되지 않았소. 마마께서도 아직 젊으시니 태자를 생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소."

    "애가 좀 귀엽기라도 했으면 폐하께서도 백조궁에 자주 들르시련만... 평생 그렇게 못난 애는 처음인걸."

    후작은 투덜거리는 부인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쌌다. 부인은 입을 삐죽거리면서도 불평을 멈췄다.

    "그런데 폐하께선 어디에?"

    "한 알레온(30분) 전에 회의가 끝났으니 아마 서재에 계시겠지. 아기씨가 금방 나올 것 같지 않다는 기별을 받으셨으니... 지금쯤이면 납실 때가 되었을 텐데."

    후작의 예상은 과연 틀리지 않아, 조금 뒤 필론 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작 부부는 고개를 깊이 숙여 절을 했다.

    왕은 불꽃같은 머리칼을 지니고 있었지만 청회색 눈은 서늘하기만 했다. 큰 키에 그린 듯 단정한 눈썹과 잘생긴 코, 하얀 얼굴과 또렷한 이목구비의 미남자였지만 얇은 입매엔 어딘지 거만함과 비웃는 듯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외모만큼이나 냉혹한 성품의 왕을 나라 안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공주라고 들었네. 실망이 크겠군."

    듣기 좋은 낭랑한 목소리였지만 후작은 등에 식은땀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후작부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리 크고 우렁찬 울음소리의 아기씨가 여자라 아까울 정도입니다. 그다지 귀엽게 생기지 않았으니 큰 기대는 마시옵소서."

    왕은 엷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후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당돌한 아내의 덕을 보는 때가 많았다. 그는 본래 소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왕의 냉혹무비한 처사를 항상 곁에서 보게 되니 자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만 돌아가도록 합시다. 축하 선물도 올려야 할 테고, 할 일이 많소."

    후작부인이 한숨 섞인 어조로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옷은 새로 준비해야 할거예요. 좀 작을 것 같더군."

    가은은 황당했다.

    '분명히 난 소리를 질렀어. 정말로 목이 울렸는데... 그런데 왜 안 들리는 거지?'

    그리고 주위가 뭔가 굉장히 시끄러운 상황인 것 같긴 한데... 무슨 소리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올려서 헤비 메탈 류의 음악을 너무 오래 들었을 때처럼, 웅웅거리는 소음이 그녀가 들을 수 있는 전부였다.

    이상한 건 청각만이 아니었다. 희미하게 밝은 것과 어두운 것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밤에 보게 되는 사물의 어슴푸레한 윤곽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장님 신세.

    '가위눌림인가? 이런 식으로 가위 눌려 본 적은 없긴 하지만...'

    팔다리는 이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려 하다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해보다 친구가 가르쳐 준 가위눌림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써 보기로 했다. 크게 기지개를 켠다고 생각하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 안... 잡힌다....'

    머리 위로 손을 올리긴 했는데... 머리 너머로 맞은 편 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그녀가 스스로 인정했듯 짤막하고 포동포동한 팔다리라곤 해도, 이렇게 짧진 않았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아아!!!!!'

    아무튼 가은이 그렇게 패닉 상태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산파들은 그녀를 깨끗이 씻겨 보송보송한 담요에 싸 놓았다. 산파 하나가 왕비에게 물었다.

    "마마, 아기씨를 한 번 안아 보시겠습니까?"

    "... 별로 보고 싶지 않구나."

    "그래도 초유는 먹이셔야지요. 유모에게 젖을 먹이게 하더라도 첫 사흘은 꼭 마마께서 주셔야 합니다."

    수석 산파가 엄한 목소리로 말하며 아기를 억지로 안겨 주었다. 미리엠은 미간을 찌푸리고 아이를 들여다보다 탄식했다.

    "... 여자 애 치고는 예쁜 데가 없구나. 폐하께서 어찌 생각하실 지..."

    "분명히 아기자기한 구석은 없지만, 그 점이 맘에 들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

    머리 위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와 미리엠은 깜짝 놀랐다.

    "폐, 폐하..."

    감미로우면서도 어찌 그리 차가운 목소리인지, 미리엠은 이 남자를 사모하면서도 또한 두려워했다. 그 아름다운 얼굴로 눈도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남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사람을 상처 입히는 말을 줄줄이 입에 담을 수 있는 남자.

    왕은 냉랭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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