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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몽채화]화랑세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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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몽채화

    블루드림 (http://cafe.daum.net/chaehwa )

    팸카페 히스테릭 핑크 Hysteric Pink ( http://cafe.daum.net/S.F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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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청아의 넓은 소맷부리에 따사로운 분홍빛 봄 햇살이 한가득 담겼다.

    청아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듯 들뜬 기운에 사로잡혀 한 마리 나비처럼 나풀나풀 발을 내딛었다.

    푸른 잎사귀에서 피어난 꽃망울을 바라보던 그녀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청아는 몸을 숙여 풀숲 한가운데에 앉았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붉은 빛을 머금은 꽃봉오리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야트막한 봄의 동산은 군데군데 터질 듯 들끓는 자연의 생기를 숨겨놓고 있었다.

    청아는 폭발적인 생명력을 자랑하는 동산을 거닐며

    어제 밤하늘에 떠 있던 별을 기억 속에 되새겼다.

    청아의 맑은 눈동자에 박힌 별 하나는 유난히도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별이 자신의 운명과 맞닿아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누님, 아버님이 찾으십니다.”

    때마침 뒤에서 들려오는 강파의 목소리에 청아는 입 꼬리를 틀어 올리며 웃어보였다.

    순박한 소녀처럼 천진난만함을 가득 담고 있던 그녀의 표정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몸에 한가득 배어있는 봄의 기운을 의도적으로 몰아내려 노력하면서

    청아는 꽃밭에 파묻혀있던 몸을 꼿꼿하게 세웠다.

    진한 갈색 빛으로 세상을 살피던 그녀의 눈은

    순식간에 표독스러울 만치 새까맣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처럼 고운 얼굴이지만

    그 안에 섞인 강렬한 눈길과 애교스러운 교태는 뭇사람들을 당황시키곤 했다.

    말갛게 씻긴 얼굴 위로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녀는 운명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곳에서 욕망과 뒤섞인 영광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 신라 진평왕 때 승려 원광이 화랑에게 일러준

    다섯 가지 계율)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신라의 귀족인 수광은 진골(眞骨, 신라의 신분제도인 골품제도의 한 등급,

    성골 다음의 계급으로 정치활동과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특권이 주어진다)

    출신으로 그의 어머니가 왕족의 후예였다.

    진골 출신만이 입을 수 있는 자색의 비단 의복을 입고 흰 수염을 쓰다듬고 있던 그는

    청아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대뜸 질문을 던졌다.

    마치 그녀를 시험하는 듯 엄숙한 어조였으나

    청아는 그런 외숙부의 모습에 조금도 겁먹지 않으며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쳐들었다.

    원형 탁자에 놓인 찻잔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기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잔을 들어 올려

    뜨거운 찻물을 한 모금 삼키는 외숙부를 바라보던 청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군이충(事君以忠),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고 사친이효(事親以孝), 효도로서 어버이를 섬깁니다.

    교우이신(交友以信), 믿음으로 벗을 사귀고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서 물러섬이 없으며

    살생유택(殺生有擇), 산 것을 죽임에 가림이 있습니다.”

    청아의 외숙부인 수광은 똑 부러진 그녀의 대답을 듣고도

    옳다거나 그르다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다.

    청아의 아비는 여행을 도중에 만난 산적들의 습격으로 세상을 떠났고

    수광은 임신한 채로 지아비를 잃은 여동생을 군 말 없이 거두어주었다.

    몸이 약했던 여동생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울음을 터트린 청아는

    태어날 적부터 제 어미 살을 파먹고 태어난 것이 분명했다.

    저를 낳다 죽은 어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청아는 어린 시절부터 한껏 날이 선 계집의 독기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 그녀가 두려운 까닭은

    함부로 그 독기를 내세우지 않고 감출 줄 안다는 점에 있었다.

    그녀의 고운 자태 속에는 영악함이 있었고 아름다운 미소 안에는 잔혹함이 있었다.

    주변사람들은 입이 마르도록 청아의 고운 미색을 칭찬했지만

    수광은 청아를 마주할 때마다 무거워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폐지되었던 원화제도가 부활한다.”

    사내들로 이루어진 화랑의 근본은 계집들로 구성된 원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계집들의 강렬한 질투로 인해 원화제도를 폐지하고 화랑을 만들었다.

    도의를 닦고 기예를 즐기며 명산대천을 유람하는 화랑이란

    귀족의 자제들로 구성된 신라의 기틀이었다.

    수광의 쌍둥이 아들인 강파와 한파 또한 화랑의 일원이었다.

    외모가 출중하고 두뇌가 영리하며 재능이 우수한 화랑들의 우두머리를 풍월주라 하였는데

    왕은 그 풍월주를 여인으로 뽑고자 했다.

    사내들로만 이루어진 화랑의 반란을 두려워함이 그 이유였다.

    그 풍월주가 될 원화로서 손색없이 최고로 꼽히는 자가 바로 청아였다.

    “네가 과연 화랑들의 주인이 된다 하면 어떤 각오로 임하겠느냐?”

    수광은 조카딸의 가슴 속의 감춰진 채 활활 타오르는 그 불길이 무서웠다.

    그녀가 이끌어 가야 하는 화랑들은 약 200여명으로

    그들을 따르는 낭도들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다.

    가능하다면 수광은 청아를 어느 촌구석 농부에게 시집보내

    그녀로부터 야기되는 모든 혼란을 막고 싶었다.

    격자무늬 창틀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머금은 청아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으나

    그만큼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세상에 만족할 줄 모르는 여인이었다.

    끝없는 이상과 지칠 줄 모르는 야망은 마치 숨결처럼 청아의 옆에 꼭 달라붙어 있었다.

    전대 풍월주가 반란으로 처형된 후

    화랑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소년들과 청년들은 급속도로 망가져갔다.

    풀어질 대로 풀어진 귀족 자제들의 규범은 눈뜨고 봐주지 못할 정도로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화랑보다는 한량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그들은 문란하고 자유로운 성 생활을 즐겼으며

    본인들의 본분마저 망각하고 있었다.

    청아는 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희망이었지만

    그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는 요부이기도 했다.

    "숙부님, 동산 위에 올라가보니 메마른 가지에 맺힌 꽃망울이 하나둘씩 터지기 시작하더군요.”

    청아는 언제나 본인의 뜻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의미를 돌려 말하는 데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수광은 은근하면서도 절대적인 힘을 지닌 그녀의 어법에 두려움을 느꼈다.

    “화랑, 한 떨기 꽃과 같은 사내들이 전부 그곳에 몰려 있습니다. 계집보다 고운 자태와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내들이 신라를 이끌어 나갑니다.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가

    여기에서 나오며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여기에서 생깁니다. 나라가 그 화랑들을

    제 손에 맡긴다면 어찌 그 임무를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

    원화 청아가 풍월주의 직책을 받아들인 그 날,

    크게 세 갈래로 나눠진 화랑의 유파가 그녀의 손 안에 들어갔으며

    풍월주를 돕는 부제의 직책을 맡고 있는 지고, 학문과 도덕분야의 오원, 무예분야의 사공,

    현묘(춤과 음악)분야의 목운, 예술분야의 연후, 유화(산천경개 유람)분야의 강파,

    제사와 공사(조정의 각종 공식 행사)분야의 한파가 전부 그녀의 품에 소속되었다.

    한가롭고 따사로운 어느 봄 날, 화랑들이 다스리던 그들의 세상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청몽채화

    블루드림 (http://cafe.daum.net/chaehwa )

    팸카페 히스테릭 핑크 Hysteric Pink ( http://cafe.daum.net/S.F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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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라벌, 신라의 수도이자 나라의 중심인 그 곳에 화랑들의 훈련소가 있었다.

    부러울 것 없는 귀족 가문의 자제들은 화랑들의 훈련소인 발화지(發花地)에서 군사훈련을 받곤 했다.

    말을 타고 활을 쏘며 검을 휘두르는 일련의 행동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하는 화랑들의 숭고한 희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꽃이 피는 땅, 누가 처음으로 그 이름을 사용하였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훈련하는 화랑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꽃 천지, 그들이 곧 신라의 미래였다.

    평소에는 여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는 구역이었으나

    새로운 풍월주인 청아에게는 그 모든 규율이 예외였다.

    청아는 발화지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여인이었다.

    과거 원화가 존재하고 그 원화가 화랑들을 다스린 적은 있었으나

    현재는 그 모든 규범들이 깨끗하게 잊힌 뒤였다.

    안락함에 물든 기 센 화랑들이 순순히 원화 청아를 받아들일 것인지,

    그 모든 해답은 청아의 손에 달려있었다.

    “전대 풍월주가 반란으로 인하여 처형되었으니 폐하께서도 심려가 크시네.”

    발화지에 입성한 청아를 곧장 깔끔한 내실 안으로 이끈 사람은

    화백회의(귀족출신으로 구성된 신라의 회의기구)를 주관하는 상대등(신라의 최고 관직) 소항이었다.

    청아의 숙부인 수광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그 이전에도 얼굴을 마주한 적이 많았다.

    발화지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청아는 인내심이 강한 여인이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어차피 발화지는 그녀가 다스리는 공간이 될 것이었다.

    “반란을 주도한 풍월주와 그를 따르던 화랑과 낭도들은 전부 처리했네. 자네는 새롭게

    재정비된 화랑들을 다스려야 할 임무를 맡은 게야.”

    반역으로 처형된 화랑들은 뜻이 있고 의지가 곧은 사내들이었다.

    청아는 그 점을 인정했으나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는 않았다.

    그들의 행동력에는 감탄하는 바였으나

    허술한 전략에 의해 몰살당한 사실에 대해서는 치가 떨리도록 경멸하고 있었다.

    그녀는 반역자들을 옹호해줄 만큼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청아는 그처럼 무모하게 덤비는 철없는 혈기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선견지명이 뒷받침된 빈틈없는 계획과 권력을 향한 곧은 야망만이 그녀가 믿는 전부였다.

    반란에 가담하지 않고 살아남은 화랑들은 두 부류로 나뉠 수 있었다.

    왕을 향한 충심이 깊은 인물들,

    또는 미래보다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신선놀음하는 일에 여념이 없는 자들.

    청아는 화합하기 어려운 두 부류의 사내들을 아울러야 할 의무가 있었다.

    “곧 화랑들이 소집될 것이네. 전대 풍월주를 대신하여 내가 자네에게 풍월주의 직책을

    부여해주겠네. 자네를 도울 부제 지고는 14세 때 화랑이 된 유능한 인재이니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그에게 조언을 구하게.”

    청아는 소항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서도

    그 대화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듯 눈꺼풀을 내리깔고 입을 다물었다.

    청아는 지고라는 자의 성향을 확실히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풍월주를 향한 충심이 깊은 인물이라면 아낌없이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겠으나

    장래 청아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라면 언제든 그 싹을 제거해야만 했다.

    “화랑은 크게 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네. 좌삼부, 우삼부, 전삼부. 자네와 함께

    성장해온 수광의 아들 강파와 한파도 화랑이니 그 정도는 잘 알고 있겠지.”

    이미 파악하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청아는 지루해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풍월주로서 화랑의 모든 것을 손아귀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백 번 천 번을 들어도 아깝지 않은 이야기였다.

    “현재 화랑은 세 유파로 갈라진 상태이며 그것이 곧 좌삼부, 우삼부, 전삼부라 할 수 있네.

    강파와 한파는 전삼부에 소속된 화랑이지. 산천경개(山川景槪, 자연의 경치)를 유람할

    장소를 물색하고 하늘에 올릴 제사를 받들며 조정의 각종 공식 행사에 참여하는 게

    그들의 일이네. 강파와 한파는 전삼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들로 쌍둥이 중 형인

    강파가 전삼부의 우두머리인 전방대화랑의 직책을 맡고 있네. 그들이 다스리는

    전삼부의 유파 이름이 자오미강파(自悟美强派). 스스로 깨닫고 아름답게 강해지겠다는 뜻이네.”

    강파와 한파는 청아에게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태어날 때부터 수광의 손에 자라온 청아는 그들에게 친절한 우애를 내보이면서도

    일정 선을 넘지 않는 자제력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사촌끼리 혼인할 수도 있는 신라의 결혼제도를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화랑들이 산천을 유람하는 까닭은

    전쟁을 대비해 미리 지형을 익혀두고 전술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파악하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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