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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역린逆鱗 1_75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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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001 서(序) =========================

    역린(逆鱗)! 용의 턱밑. 그 거꾸로 솟은 비늘.

    피의 원한을 남긴 자. 갑절의 피로 그 혈채를 되받으려니.

    떠올릴 수 있는 과거는 온통 차가운 빛이었다.

    기억의 가장 밑바닥 남아있는 잔상(殘像)은... 오랑캐의 창에 꿰여 목숨을 달리하던 아버지의 신음소리. 그리고 시린 눈밭 위를 칼날을 피해 내달리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 살아간다는 것. 열 살을 갓 넘은 청유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삶의 길을 열어주고 목숨을 잇게 해준 고마운 은인. 사라진 나라 발해의 무장. 고휘에게 삼년을 수족으로 살겠다고 약조하였다.

    그 삼년지약(三年之約)의 시간도 그리고 약조가 슬피 사라진 역린의 세월도... 한 걸음 한 걸음... 모두 시린 칼날 위에 머물고 있었다.

    이 글은 사라진 발해와 후발해의 흥망 그리고 정안국으로 이어지는 역사무협소설입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빌어쓸 뿐 역사적 사실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범향 배(拜) ([email protected])

    00002 탈주(脫走) (一) =========================

    여진(女眞) 오랑캐의 땅.

    굵은 눈발이 살을 에는 북방의 삭풍에 실려 새하얗게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늘과 땅은 온전히 하나였다.

    새하얀 눈 속을 비집고 힘겹게 내려앉은 어둠 속.

    시간은 이미 자시(子時)를 넘어섰다.

    열 살은 갓 넘었을까. 사내 아이가 비루한 방문인 듯 달려있는 거적의 한끝을 밀고 문턱을 넘어섰다.

    아이는 잠에 취한 두 눈을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서너 채의 집채와 담장으로 둘러쳐진 이곳. 여진 완안부(完顔部)의 은패천호(銀牌千戶)의 사저(私邸)였다.

    말이 좋아 사저이지 여진의 여염집보다 그리 썩 나을 것도 없었다.

    은패천호와 그 처자들이 머무는 안채를 제법 멀리하고 대문의 앞 헛간인 듯 늘어선 곳. 이 집의 십여 명의 노비가 머물렀다.

    이 은패천호의 사저에 딸린 노비에게도 그 높낮이는 따로 있었다.

    약탈의 전리품인 듯 끌려온 고려의 아녀자와 아이들. 여진 땅의 노비에서도 마지막의 군상(群像)들이었다.

    청유(靑兪)는 그렇게 노비였다.

    청유의 고개가 천천히 한 편으로 기울어졌다.

    두 눈동자는 슬며시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가슴 속 깊이 아로새긴 듯, 어깨 위에 살을 태워 박아 놓은 낙인. 이미 새겨진 지 두어 해를 넘어섰으되 옷 속에서 ‘노(奴)’의 흉물스러운 살갗은 여전히 쓰라렸다.

    하늘을 올려보았다.

    여전히 쏟아 부으며 흩날리는 눈보라.

    온 세상을 덮으며 아무리 하찮은 흔적이라도 모두 덮을 듯하였다.

    그렇다면... 저 눈 위에 내려앉는 한발 한발의 새로운 족적(足跡)마저 지우지 않겠는가.

    일순 눈이 번쩍였다.

    그래. 이 여진의 땅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지금이었다.

    달리 채비를 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입는 옷이라고 하여 여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래턱이 실룩였다.

    남루한 옷깃을 다시 여미고는 건너편 부엌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한껏 손아귀에 힘을 주어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엌문을 열었다.

    삐이걱.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부엌문 열리는 소리가 한여름 밤 천둥소리였다.

    바삐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담장 안은 여전히 새하얀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저기였던가.

    열려진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빛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벽을 더듬거렸다.

    손 끝에 걸리는 것. 바구니였다.

    왕골로 성기게 이어 만든 바구니. 뚜껑을 열었다.

    입가에 미소가 씨익 일었다.

    역시 건포였다.

    이 은패천호의 집에서 욕심이 이는 것. 이 건포 조각뿐이었다.

    비릿한 맛. 입안에 침이 고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꽁꽁 얼어버린 이 험준한 여진의 땅을 지나 고려에 이르려면... 단지 며칠이라도 허기진 뱃속을 달래주어야 할 터. 저 건포만한 끼닛거리는 없었다.

    포로인 듯 끌려와 시작된 비루한 여진 노비의 삶. 흡족히 배를 채운 적은 없었다.

    이미 오래된 습관인 듯 굳어버린... 그렇게 하루 한 끼이면 족하였다.

    손아귀로 뿌듯하게 들어오는 서너 개의 건포 조각들.

    이 정도면 충분하였다.

    아무렇게나 손끝에 잡히는 천조가리에 건포를 둘둘 말아 어깨에 비스듬히 매었다.

    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눈발은 여전히 거셌다.

    희멀건 어둠. 저 건너에서 아버지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모습. 서너 해를 되돌려 떠오른 겨울. 고려라고 새로이 이름 지어진 그 땅의 끝자락. 여진 오랑캐의 그 시커먼 창을 등에 꽂고는 연신 입가로 선혈을 울컥거리던 모습. 그 모습 그대로였다.

    숨을 헐떡이며 붉은 피와 함께 아버지의 입에서 새어나오던 말.

    아버지의 얼굴은 희미해지고 있으되 그 말은 한껏 노한 하늘의 우뢰소리보다도 더 크게 귀를 흔들었다.

    ‘살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살거라. 이 아비를 생각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살거라. 이 험한 세상. 살아가는 것만이라도...’

    경구(警句)였다. 아버지가 하늘을 대신하여 내려준, 천부(天賦)의 부적이었다.

    입을 다문 아버지. 연신 손을 흔들어 저 눈발 속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이미 하루가 지났다.

    이 산을 넘으면 내리막인 줄 알았다.

    미끄러지고 뒹굴며 나무와 바위의 뿌리를 움켜쥐었다.

    새하얗게 벽인 듯 가로 막았던 북방의 산. 겨우 겨우 마루에 올라섰다.

    하아. 산이 산을 넘고 그 산을 또 다른 산이 막고 있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이 어둠. 이 험산을 무작정 내려갈 수는 없었다.

    북방의 차가운 바람이 헐거운 옷깃을 비집어 살갗을 에고는 빠져나갔다.

    바람에 눈을 크게 뜰 수도 없었다.

    한껏 가늘어진 눈으로 주위를 살폈다.

    서너 장 앞. 땅 위에 가로질러 박힌 듯 커다란 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저 밑이라면 아쉬운 대로 뼈까지 스며드는 바람을 그을만 하였다.

    바위 밑 굳게 쌓여진 눈을 파내었다.

    바람이 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제법 아늑하였다.

    어깨와 가슴을 가로질러 단단히 맨 천조가리를 풀었다.

    건포 조각을 하나 집어들어 이빨로 물었다.

    말린 고기가 아니라 차라리 얼음덩어리였다.

    앙다문 두 어금니가 아렸다.

    찌이익.

    건포는 비명을 지르며 찢기었다.

    질겅질겅.

    입안에 퍼지는 내음새. 비릿하였다.

    씹었다고 하여 그저 삼킬 수는 없었다.

    입 속에 우겨넣은 건포 조각이 아주 잘게 썰어져 더 이상 이와 혀의 놀림이 필요 없어질 때까지... 그리 천천히... 천천히 씹어야 이 작은 건포조각이 온전히 자신의 몸속에 녹아들어갈 터. 서둘러 삼킬 수 없었다.

    이제야 겨우 몸을 괴롭혔던 허기가 밀려나고 있었다.

    눈길을 나서 하루의 밤과 낮을 쉬지 않고 걸었다.

    허기만 가신다고 나아질 몸은 아니었다.

    이미 눈꺼풀은 천근인 듯 절로 감겨지고 있었다.

    팔다리를 잔뜩 끌어 웅크렸다.

    몸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휘몰아치던 눈보라는 말끔히 사라지고 없었다.

    끄응.

    몸이 굳었는가.

    몸을 펴는 것조차 힘겨웠다.

    두 팔과 두 다리. 뼈와 뼈 사이의 관절 하나 하나를 끝에서부터 꼼지락거리며 움직였다.

    두두둑.

    뼈마디들이 비명을 지르며 힘겹게 펴졌다.

    이제 조금 살 것 같았다.

    노비의 신분에 떨어져 이리 멀리 나온 적도 없었다.

    이 산이든 골짜기 너머 저 산이든 그 모습이 눈에 익고 발에 채이었던 곳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둠이 조금이라도 가진 지금. 서둘러 몸을 놀려야 할 것 같았다.

    갈 곳이 있는 것도 반겨줄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남쪽으로 발을 바삐 놀리다 보면 고려의 땅에 이르게 될 것이었다.

    고려라고 땅의 이름이 바뀌었으되 온전히 고려의 땅도 아닌 곳. 이따금씩 모습을 보이는 고려의 군졸보다도 한겨울 삭풍처럼 여진의 도적들이 무리지어 훑고 지나감이 더 잦은 곳. 그 공험진(公險鎭)의 변방. 그 고향에 이르면 아버지의 기억이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흔적이 흐르고 있을 터. 그것이면 족하였다.

    두 팔을 앞다리인 듯 바위틈을 기어 나왔다.

    새하얗게 펼쳐진 눈의 산맥들. 눈이 그쳤다고 하여 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쌓인 눈은 무릎을 가리웠고 앞으로 나서려는 두 발밑을 잡아끌었다.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어제와 같은 하루였다.

    후우. 아니, 아니지. 결코 어제와 같은 하루는 아니었다.

    힘겹다고 어찌 같은 힘겨움이겠는가.

    어제와 오늘의 발의 무게. 너무 달랐다.

    한발 한발. 깊은 눈은 발을 연신 잡아 당겼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어쩌면 지금쯤이면... 그 여진의 놈들. 도망치는 노비의 뒤를 쫓는 것[추노 追奴]을 업(業)으로 삼아 살아가는 그 놈들이 바짝 뒤를 쫓고 있을 지도 몰랐다.

    몇 개의 산마루를 넘었는지 가름조차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저 멀리 그 높이를 뽐내듯 연이어 산들이 솟아 있었다.

    후우. 후.

    숨은 턱밑에 차올랐고 두 다리는 땅에 박힌 듯 꿈쩍하기가 어려웠다.

    사방은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제의 밤은 차라리 따스했다.

    바람을 그을 바위틈조차 없었다.

    눈보라가 사라졌다고 하여 북방의 시린 바람이 멈춘 것은 아니었다.

    할 수 없었다.

    겨우 겨우 밀어낸 좁다란 눈의 웅덩이. 몸을 우겨 넣었다.

    길었던 밤이라고 하여 쉰 것도 아니었다.

    굳어진 무릎도 얼음 조각인 듯 꼼짝도 하지 않는 손가락도 청유 자신의 마음과는 너무나 달랐다.

    끄응. 우두둑.

    꼭 입에서 내뱉는 신음소리만큼 뼈의 마디마디가 조금씩 움직였다.

    청유는 힘겹게 고개가 눈 웅덩이의 밖으로 내밀었다.

    귓불을 스치는 세찬 바람소리조차 뼈마디 우둑 거리는 소리에 묻혀 있었다.

    따악.

    순간 머리가 흔들리고 눈앞이 번뜩였다.

    00003 탈주(脫走) (二) =========================

    이름은 고휘(高輝)였다. 이미 사라진 나라. 발해의 좌맹분위소장(左猛賁衛小將)이었다. 혹여 그 성씨를 따라 가다보면... 어쩌면 먼 옛날 고구려의 왕족 끄나풀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나 딱히 되찾을 성씨도 아니었다.

    그리 낮지 않던 한 때의 벼슬자리. 발해의 도읍,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에서 무공으로도 그 뛰어난 지모로도 고휘 자신을 넘어설 자. 그리 흔치 않았다.

    몸에 익힌 무공보다도 더 뛰어난 절기를 가진 자. 좌맹분위에서는 고휘를 무공에 미친 자라고 쑥덕거렸다.

    하지만 그 절기라는 것. 검을 놀려 써 먹을 수도 없었다.

    머릿속과 혀 위에만 존재하는 절기. 고휘는 역시 무공에 미친 미치광이였다.

    거란의 기마대는 너무나 엄청났다.

    거칠 것이 없는 무인지경의 발해의 강역(疆域). 발해의 군졸들이 채 전열을 다듬기도 전. 국경을 넘어서 발해의 도성을 짓밟았다.

    그렇게... 거란의 오랑캐들의 창칼에 발해의 도읍, 상경용천부(上京龍泉府)의 성문이 열리던 그 날. 발해의 크고 작은 무장들은, 천하의 모든 곳을 향해 길게 뻗었던 그 휘황찬란한 주작대로(朱雀大路)를 따라 열을 지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거란의 오랑캐들에게 단전(丹田)을 내어주고 비루하게 목숨을 얻었다.

    죽음만이 폐왕(廢王)에 대한 충정은 아니었다.

    옮기기도 힘겨운 듯 무거운 발걸음으로 가보인 듯 물려받은 외날검 하나를 등의 배랑 속에 매어달고 그렇게 성벽을 넘었다.

    목숨은 이어야 했다.

    단전을 내어주어 한낱 내기(內氣)조차 다룰 수 없으되 알고 있는 것은 검 밖에 없었다.

    내력이 없는 검. 아니 내기를 담을 수조차 없는 검.

    그 검으로 걸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였다.

    그렇게 뛰어든 살수의 세계. 위태로이 두어 해를 살았다. 그 살수의 길에서 목숨을 내어놓지 않고 이리 살고 있다는 것. 어쩌면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하기야 말이 좋아 살수였지, 어디 이름을 내어건다고 청부금을 싸들고 달려들 자들이 많기나 하던가.

    세상이 각박하다고 그리 청부금을 내리 깎는 자들. 그저 끼니를 이을 정도의 벌이로 그 살수의 삶을 연명하였다.

    살수로 사십 줄을 넘어선 이 나이에도 목숨을 이은, 이 행운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춤사위와도 같은 몸놀림. 그리고 머릿속 가득한 잔재주 때문일 것이었다.

    점점 버거워지는 나잇살. 이대로 벌이도 제대로 아니되는 살수의 길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은... 그 길지 않은 명(命)만을 재촉하는 일이었다.

    이제는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다시 일어설지도 모를 사라진 나라의 깃발을 기다리며 비루하게라도 목숨을 계속 이으려면... 그 휘황찬란했던(?) 살수의 세계를 떠나야 했다.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고휘에게 있어서...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굶어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그 즈음 눈에 뜨인 일거리가 추노(推奴)꾼이었다.

    무공이 빼어난 자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흔적을 뒤쫓는 빼어난 눈. 살수의 길에서 얻어진 본능(?)과도 같은 감(感). 그리고 도주하는 노비들의 꼼수를 살필 수 있는 이 빼어난 머리. 추노꾼은 하늘이 고휘 자신에게 내려준 천혜의 밥벌이였다.

    그렇게 밥벌이를 따라 흘러 들어온 이 여진 완안부의 제법 큰 고을. 이곳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추노꾼은 없었다.

    눈이 지겹도록 내리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폭설 속에 도망을 갈 노비가 있겠는가.

    오늘 하루도 푼돈이나마 얻어 쓸 일거리는 생기지 않을 모양이었다.

    쉰다고 좋을 리는 없었다.

    손깍지를 끼고 방안에 벌러덩 누웠다.

    가뜩이나 낮은 시커먼 천장이 더욱 내려와 있었다.

    으음. 어디로 가야하나. 마을 끝 주막으로 가야하나. 아니지. 그 살쾡이같은 주모가 이제는 술을 내어주지도 않을게야. 그 동안 깔아놓은 외상값이라도 조금은 갚는 시늉은 해야... 한 주발 얻을 수 있을테지.

    하지만 술 몇 잔을 위해 그 피비린내 뭉글거리는 살수의 길에 다시 나설 수는 없었다.

    고휘 자신의 목숨은 그리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

    에잇. 빌어먹을.

    좀 더 칼을 갈고 닦아 제법 굵직한 청부를 받지 못하였던 것이 공연히 후회스러웠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질끈 눈을 감았다.

    “여보게. 고휘. 안에 있는가?”

    꿈결인 듯 누군가 부르는 듯하였다.

    몸이 절로 움직였다.

    고휘 자신의 거처를 찾을 자. 달리 없었다.

    “뉘시오?”

    서둘러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 떡하니 뒷짐을 지고 자는 저 아래 은패천호 댁의 집사(執事)였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자가 자신을 찾을 까닭은 없었다.

    은패천호의 집에 도망을 할 노비는 없었다.

    제법 나잇살이나 있는 사내 노비들은 이미 오랜 시간 은패천호의 사저에서 머문 터라 새삼 도주를 할 이유가 없었다.

    아. 아니지. 혹여 젊은 노비 놈이 다른 집의 계집종과 배가 맞아 야반도주를 하였는가.

    에구. 고휘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런 연놈들을 잡아오기가 가장 싫었다.

    아무리 살수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울고불고하는 연놈들을 떼어내어 끌고 오는 것.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죽여서 시체를 메고 올 수도 없고 산 자를 끌고 오자니... 되돌아오는 내내 귀는 지옥과도 같았다.

    한껏 일그러진 표정이 목소리 위에 실렸다.

    “어떤 놈이 도주하였소?”

    집사의 목소리도 퉁명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네도 그 놈을 알게야. 서너 해 전 여름. 고려의 공험진에서 잡아왔다는 그 어린 놈 말이야. 왜. 왜. 그...”

    아. 저리 말도 아니되는 말로 더듬거리며 기억을 재촉하는데... 신기하게도 저 집사의 말을 따라 그 어린 녀석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생각나오. 놈의 눈빛이 사나워 놈을 길들인다고 은패천호께서 닷새를 굶겼는데도 헛간에서 버젓이 걸어 나왔다는... 아. 그 때 그 놈. 무엇을 먹고 버티었다고 하소?”

    집사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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