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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륭옹] 먹이는결국사로잡힌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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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83쪽

    먹이는 결국 사로잡힌다 (상)

    1.

    "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레포트는 다음주까지 제출이니 마감날짜 꼭 지켜주세요. 그럼 모두 수고했습니다. "

    언제 들어도 깐깐하게만 들리는 선생의 목소리에, 대놓고 책상에 엎어져 코를 골던 아이들이 하나둘 눈을 비비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암- 하고 보란듯이 하품하는 아이들과 재미없는 수업에 욕설을 퍼붓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선생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가방에 주섬주섬 교재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벌써 8년이나 된 구형 노트북에 '레포트 다음주까지 제출'이라고 메모한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가방에 넣었다. 누군가 그런 나를 보며 킥킥대며 비웃어댔다. 나를 비웃는 건지, 아니면 이젠 그 어디서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8년산 구형노트북을 비웃는 건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전자 후자 다 해당될 지도 모르겠다.

    펼쳐져 있던 교재를 덮자 검은색에 빨간색 글자로 새겨진 교재명이 드러났다.

    이 수업의 과목명은 ' 뱀파이어와 인간의 공존 ' 교재는 '오르니티어는 괴물들에게 정복당했다' 라는 브라이언 켈파 저서의 뱀파이어 혐오론이 가득담긴 책이다. 원래 교과목의 개설목적은 뱀파이어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계급구조등에 대해 알아보고 인간과 공존하는 현재, 그들을 어떻게 봐라봐야 하는가... 였지만, 뱀파이어 포비아이자 이 교재의 저자이기도 한 브라이언 켈파 선생에 의해 뱀파이어들이 어떤 족속들이며 어떻게 인간들에게 해악을 끼치는지 알고 뱀파이어와 뱀파이어 추종자들을 혐오해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수업 내용과 선생이 이렇다보니, 젊은층에서 뱀파이어가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 수업은 당연히 인기가 없었다. 과연 비인기 과목 중 단연 돋보였다.

    켈파 선생은 소문에 의하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학교 내 뱀파이어들에게 위협을 당하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꿋꿋했다. 되레 켈파 선생은 교무과에 이 과목이 전교생이 꼭 들어야 할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기도 했지만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교실임에도 불구하고 매 학기 여섯명 정도만이 듣기를 희망하는 이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간, 뱀파이어들 뿐만이 아니라 전교생이 들고 일어날 지 모를 일이니 현명한 처사였다.

    나는 진급 학점이 모자른 탓에, 그리고 수강인원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나머지 다섯명이 이 수업을 신청한 이유도 나와 얼추 비슷한 것 같았다. 수업태도를 보아하니 말이다. 여섯으로 시작했던 수업은 이제는 넷으로 줄어 있었다. 수업을 시작한 첫날 두 명이 그 다음 시간부터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그 두 명이 뱀파이어였기 때문이다.

    첫시간부터

    ' 뱀파이어들은 인간의 피에 미친 짐승에 불과하다'

    ' 그런 짐승들이 오르니티어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데도, 이 나라의 젊은이들은 맞서 싸우기는커녕 스스로 피지배자가 되기를 자처한다. 심지어 틴에이저들은 그 짐승들을 추종하고 그 짐승들의 먹이가 되길 원하며 급기야 그 짐승들과 같은 짐승이 되기를 바라기까지 한다. 정말 어리석고 멍청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그 어리석은 생각은 일종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정부와 언론매체들이 적극 권하고 있다. 그들은 그것이 잘못됐다는 걸 모르는가? '

    ' 20년전 정부가 뱀파이어들에게 손을 들고 얻어 낸 불가침 조약은 우습고 치졸하다. 정부는 그것이 정말 오르니티어의 국민들을 보호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가? '

    ' 지금이라도 정부는 다시 헌터들을 양성하여 그들을 몰아내야 한다. '

    ' 그들은 몰아내야 할 짐승들이다 '

    라고 소리높여 주장하는 교수를 짐승취급 당한 그들이 곱게 볼 리가 없었다. 두 뱀파이어들은 '씨발놈아 곧 뒈질 줄 알아라' 욕설을 퍼붓고 나가버렸는데, 그 기세가 제법 살기등등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켈파 선생은 살아있었다. 이번에도 켈파 선생의 생사 여부를 두고 벌어진 내기판에서의 승자는 그는 무사할 것이다 라는 데에 건 소수의 학생들과 교사들이었다.

    켈파 선생이 살아있는 이유는 뱀파이어들의 힘이 모자라기 때문도, 켈파 선생이 뱀파이어들과 맞서고도 살아 남을 수 있으리만치의 힘을 가졌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5년 간의 전쟁 후 만들어진, 뱀파이어와 인간 사이의 불가침 조약 때문이었다. 그 조약이 없었다면 켈파 선생이 이태껏 이 인기없는 과목을 도맡아 하고 있을 일도, 내가 켈파 선생의 지루한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슬림함과는 거리가 먼 덩치 큰 노트북과 500페이지짜리 교재 두 권을 담은 가방은 무거웠다.

    등산용 백팩을 힘들게 어깨에 매고 교실을 빠져나오자 시끌벅적한 소음이 귀를 찔러댔다.

    " 아오 씨발. 지겨워 뒈져버리는 줄 알았네. "

    나보다 조금 먼저 교실 밖을 나간 남자가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솔직히 나도 동감이었다. 이 수업은 정말 지루했다. 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눈이 감겨버린다. 교수의 깐깐한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릴 정도라니... 하지만 반복학습도 아니고, 5주 동안 같은 내용만을 반복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켈파 선생의 수업능력은 그 열정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듯 했다.

    복도는 종소리와 함께 교실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창문 틈새에서 새어 들어오는 바람이 추워 옷을 여미는 건 나뿐이었다. 국제뉴스로 가끔 나오기까지 하는 오르니티어의 살인적인 겨울바람도 그들이 복도에서 휴식을 누리는 걸 방해하지 못했다. 유행에 뒤떨어진 남루한 더플코트는 둔해 보일 정도로 두터움에도 불구하고 추위를 막는데 한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빌어먹게도 나는 약골이었다. 몸이 약해 빠졌다.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감기는 지긋지긋하게 내게 붙어다녔다. 어렸을 때는 잦은 병치례로 돌아가신 할머니 속을 그렇게 썩혔다. 병원에 갈 만큼 좋은 형편이 아니라 아파도 언제나 집에서 버텨야만 했었다. 가난한데 아프기까지 한 몸을 가진 자는 오르니티어에서 죄인이었다. 몸이 약해서일까. 오르니티어에서는 보기 드문 동양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르니티어 사람들만큼이나 내 얼굴은 창백했다. 만약 이목구비까지 그들과 눈에 띄게 다르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무턱대고 구경꺼리나 이방인 취급 당하는 일도, 누군가들의 불필요한 관심을 받아 불편해야 할 일도 없었을 테니까...

    오르니티어에서 동양인.. 거기다 가난하고 몸집도 왜소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놈은 좋은 취급을 받을 수가 없다. 구경꺼리 이방인.... 심하면 역병신 취급까지 받았다. 십년 전부터 아시아와 유럽전역을 휩쓸고 있는 원인모를 전염병 탓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원래가 오르니티어는 외국인들에게 친절하지 않은 나라였다. 동양인 뿐만이 아니라, 오르니티어 사람이 아닌 외국인들 대부분이 나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오르니티어에는 다른 나라에 비해 외국인이 별로 없는 편이었고, 때문에 외국인은 그렇게 희귀하지만 거부감 느껴지는 생물 취급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 어이~ 거기 옐로우-- 옐로우 멍키이이~~ 아, 씨발 졸라 지저분하네. 씻고 좀 다녀라! 으하하 "

    나를 놀리는 그들의 말에는 특별히 악의가 담겨 있지는 않다. 그냥 눈에 보이니까 심심풀이 땅콩으로 건드려나 보자는 것과 비슷했다. 따라서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었다. 못 들은 척 시선도 주지 않고 지나가봤자 억지로 나를 쫓아 와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내게 어떤 반응을 얻어내고자 건드리는 게 아니라, 그저 심심풀이 자기만족이니까..... 놀림감이 될 지언정 차라리 속은 편했다. 이목구비가 다르다는 이유로 괜히 샌드백 취급 당했던 초.중학교 때에 비하면 차라리 벌레 취급을 하더라도 무관심으로 대해주는 고등학교는 살기 좋았다. 피해준 것도 피해 받은 것도 없으면서 괜히 찾아와서 힘자랑이나 해대는 머리굳은 놈들이 별로 없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낄낄대는 타인의 비웃음들을 뒤로 하고 복도 끝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내려가 건물 현관에 가까워질 수록 찬바람은 더욱 더 심해졌다.

    북적대는 아이들 틈을 비집고 좁은 현관문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마자 불어닥치는 냉기에 콜록 하고 기침이 터졌다.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은 기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설프게 둘러져 있던 목도리를 다시 단단히 둘렀다. 주머니에서 꺼낸 장갑을 두 손에 끼운 뒤 마지막으로 코트에 달린 모자를 푹 뒤집어 눌러썼다. 목도리와 장갑 그리고 두터운 코트는 1년의 반 이상이 눈으로 뒤덥히는 오르니티어에서 사는 나같은 약골에겐 필수였다.

    최대한 목도리에 얼굴을 묻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학교는 피곤했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저녁에 배를 채울만한 먹을거리를 사가는 것은 방과후 일과 중 하나였다.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 싫어 어깨로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편의점 아르바이트 생이 시큰둥한 얼굴로 나를 힐끗 쳐다보곤 다시 시선을 들고있던 게임기에 고정시킨다. 아르바이트 생은 딱히 손님을 감시할 필요가 없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CCTV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있으니까.... 이 편의점의 사장이 얼마나 차갑고 인정머리 없는 사람인 지 알고 싶으면, 몰래 물건을 훔치려 시도해보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10살짜리 아이가 배고파서 초코바 하나를 훔쳤다는 이유로 사람들 보는 앞에서 멱살을 잡고 이빨이 나갈 정도로 후려친 사람이었다.

    카운터를 지나쳐 음료코너로 다가갔다.

    오늘은 우유 두개로 저녁을 때울 생각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 돈 나올 구멍따윈 아무데도 없었다. 노후연금은 벌써 세달 전에 끝이었다. 빈민가 거리에 사는 이들에게 정부가 지급하는 생활보조금으로 한 달을 버티는 건 불가능 했고, 할머니가 물려주신 책방은 소득 제로였다. 빈민가 거리의 골목 구석에 위치한 책방에 손님이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러니 아끼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선반 위에 붙여진 가격표를 눈으로 훑어보며 그나마 제일 싼 500리터짜리 우유 두개를 집어 들었다. 그 때 바로 옆에서 탁 하고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그 쪽으로 돌아보다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있던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이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허벅지까지 짧게 줄인 교복치마를 두른 여자는 붉은 액체가 담긴 팩을 들고 있었다. 팩에 크게 쓰여 있는 Blood+ 라는 브랜드명으로 그 팩에 담긴 붉은색 액체가 다른아닌 피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르니티어의 어느 편의점이나 뱀파이어들을 위한 혈액코너는 항상 존재했다.

    팩이나 페트병 또는 캔 종류등으로 피는 다양하게 포장 되어 혈액코너에 진열되어 있었는데, 브랜드 명은 딱 두 가지였다. Blood+ 와 LenKARD. 둘 다 혈액 판매 업체로 유명했다.

    " 뭘 봐? "

    편의점에서 피를 사다 먹는다는 건 곧 그녀가 뱀파이어라는 것을 의미한다. 시비가 붙어봐야 좋은 꼴을 보기 힘들었다.

    시선을 돌리자, 여자가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살짝 치고 지나간 듯 보였지만 실은 어깨가 아릴 정도로 아팠다. 힘이 엄청났다. 당연했다. 뱀파이어니까...... 그들이 오르니티어의 특권층이자 권력층이 된 이유가 바로 인간과 다른 힘 때문이다. 고작 힘이 쎄서?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힘이 쎄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충분하다. 힘이라는 것은 권력의 절대적인 가치였다. 비단 육체적인 것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돈 역시 힘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이 나라에선 뱀파이어라는 이유만으로도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나는 절대적인 약자였다. 빌어먹을 현실이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우유를 들고 카운터 쪽으로 갔는데, 때마침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간 여자 뱀파이어가 계산 중이었다.

    그녀가 혈액 팩을 내밀자 아르바이트 생이 익숙하게 바코드를 찍는다.

    삑--

    " 2만5천렌 입니다. "

    2만 5천리언은 정부가 내게 주는 생활보조금과 정확히 일치했다.

    어마어마한 값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지갑에서 돈을 꺼내 지불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욕설을 퍼붓는다.

    " 빌어먹을 블러드 플러스. 맛도 더럽게 없는 주제에 맨날 가격은 올리고 지랄이야. B급이 주제에 뭐 이렇게 비싸? "

    그녀가 고른 혈액 팩에는 Blood+라는 브랜드명 말고도 /B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그것은 곧 그 피가 B급이라는 소리였다. 피는 신선도나 그 피를 제공한 사람의 성별 연령대 그리고 그 회사나름의 기준으로 크게 A.B.C 세개로 등급이 나뉘었다. 나는 인간이므로 A급과 B급의 맛 차이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뱀파이어들은 피가 주식이자 기호식품이므로 피 맛에 민감했다. 그들은 피를 가지고 당도를 논하는 종족들이었다. 그들은 맛있는 피일수록 달다고 표현했고 비린내는 쓰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비린내가 적고 당도가 높을 수록 A급이라고 말한다. 물론 내가 인간인 이상 평생을 가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깨달을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혈액팩을 집어 든 그녀가 아르바이트 생에게 모서리 끝을 잘라달라고 말하자, 아르바이트 생이 익숙한 폼으로 가위를 꺼내 끝을 조금 잘랐다. 그러자 그녀가 빨대를 그 안에 넣고 쪽쪽 빨아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아르바이트 생은 조금 질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아무리 요즘 뱀파이어들이 오르니티어 틴에이저들의 워너비가 되었다 한들, 피를 음료처럼 쪽쪽 빨아먹는 것에서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하얀 빨대를 통해 그녀의 붉은 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피를 멍하니 응시하다, 아르바이트 생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지갑을 꺼냈다. 지갑안에는 4천렌 뿐이었다. 이것이 나의 전재산이었으며, 그중 2천렌은 우유값으로 나가야 했다.

    혀를 차며 오늘이 정확히 며칠이었는지를 떠올렸다. 28일이었다. 생활보조금이 나오는 5일까진 앞으로 8일이나 남은 것이다. 2천렌으로 8일을 버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역시 오늘은 가야하나.... 아르바이트 생에게 돈을 건네며 한숨을 쉬었다.

    오르니티어는 센테리아 강을 기준으로 크게 동쪽과 서쪽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이 곳은 바로 오르니티어의 동쪽 구역이었다.

    동 오르니티어와 서 오르니티어. 이것은 지형적인 구분이 아니라 오르니티어의 실질적인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두 뱀파이어의 지배구역을 의미했다.

    오르니티어의 동쪽 구역에 산다는 것은 곧, 제렌이라는 뱀파이어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서쪽 구역에 산다는 것은 곧, 엑시언이라는 뱀파이어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렌과 엑시언은 그 보기 드물다는 뱀파이어 순종들이었다. 그들은 정확히 20년전 한참 정부 소속의 헌터들과 뱀파이어들이 전쟁 중일 때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리고 나타나자마자 정부가 키워 낸 수백명의 헌터들을 단 하루만에 몰살 시켰다. 정확히 12월 27일 새벽이었다. 이것은 뱀파이어 관련 다큐나 서적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로, 뱀파이어들 사이에서는 승리의 날이라고 부르며 축제를 벌이기도 했다.

    동쪽과 서쪽을 지배하는 뱀파이어들이 도대체 무슨 힘을 얼마만큼 가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온갖 소문으로 근거없는 얘기들이 떠돌 뿐이었다.

    어쨌건 그들은 강했기에 뱀파이어들의 왕이 되었고, 그들을 주축으로 숨어있던 다른 순종들이 일종의 권력층을 형성했다. 말했다시피 순종은 보기 드물었다. 전체 뱀파이어들의 1할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대부분의 뱀파이어들은 인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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