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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바겐]메리제인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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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광장의 대형 트리는 아침에도 불을 꺼놓지 않은 알 전구들로 반짝거렸다. 크리스마스트리의 화려한 불빛을 보고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쉬움과 기대감이 흥분으로 끓어 넘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런 상태로 연말연시를 맞이하나,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며 연도가 바뀌었는지 모 르고 지나가나, 매한가지이지 않을까. 도원은 마땅히 억울해야할 상황에서도 생각만큼 억울함이 큰 것 같지 않은 모순에 쯧, 하고 입 안으로 혀를 찼다. 도원의 반응에 노인은 연신 싱글벙글 웃었다.

    “잠깐 같이 나갈까.”

    한숨을 내쉬는 도원을 위해서 노인이 손수 소장실 문을 열어 주었다.

    “자네 딸 이름이 뭐였더라, 화향이라고 했던가.”

    “네.”

    “몇 살이지?”

    “내년에 초등학교 들어갑니다.”

    “내년에 여덟 살이란 말이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줘야겠네.”

    도원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편의점에서 산 하얀색 양말이 베져나온 실 내화를 보면서 도원은 말이 없었다. 앞서가는 소장을 뒤따르던 도원은 양 손 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소장이 어린 여자애들은 뭘 사주면 좋을까, 요즘 애들도 인형 가지고 노냐며 묻다가 뒤쳐진 도원을 돌아봤다.

    “인형은 좀 유치하지? 로봇 어때.”

    도원이 멈추었던 걸음을 옮겼다.

    “변신 로봇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요즘 여자애들이 더 씩씩하다니까!”

    소장을 뒤따르면서 도원은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들을 끼딱였다. 엄지로 약 지 안쪽을 긁듯이 쓰다듬었다. 손가락에 걸리는 이물질이 없었다. 선물의 종 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소장의 말을 들으면서도 오늘도 갈아 신을 양말과 속옷을 편의점에서 하나 더 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장이 유럽 세미나에 참석하는 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도원은 소 장과 함께 떠나는 심리사들로부터 업무를 인계받았다. 이해가 안 되면 바로 물어봐달라는 선배들의 말에 도원은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한 번도 출국 준비를 서두르는 그들을 붙잡고 묻지 않았다. 모든 내용을 숙지한 도원은 매일 아침 열시마다 치르는 정기회의도 무리 없이 진행했다. 연구소 에 남은 사람들은 선임들의 부재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도원이 처리하 는 일이 선임들만큼 매끄러워서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항 까지 소장을 배응할 여력이 없던 도원은 전화만으로 그들에게 배옹 인사를 해주었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적은 뒷전이고 유럽 여행에 들뜬 노인의 목 소리는 밝았다. 귀국할 때 선물을 잊지 않겠다는 말에 도원은 됐으니까 돌아 오면 자신에게 일주일의 휴가를 보상해달라고 했다. 비행기에 타이겠다는 핑 계로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린 노인이었다.

    도원은 한동안 당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느라 목 뒤와 어깨가 뻐근했다. 손으로 굳은 어깨 근육을 주물러주면서 벗어둔 속옷과 양말을 검은 봉지에 담았다. 퇴근 준비를 얼마 만에 해보는 건지, 도원은 실내슬리퍼를 구두로 갈아 신는 것마저 어색해했다. 주차장에는 며칠 동안 멈추어 서 있던 도원의 자동차는 찬 공기에 얼어 있었다. 도원은 차에 시동을 걸고 차의 엔진이 녹 을 때까지 기다렸다. 서리가 맺힌 차창을 와이퍼로 닦았다. 반쯤 얼어붙은 얼음 결정들이 와이퍼의 움직임에 따라 반원 모양으로 긁혀 떨어져나갔다. 시야가 확보된 후에야 기어를 바꾸었다. 퇴근 시간의 도로는 꽉 막혀 있었 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도원은 핸들을 쥔 채 꾸벅 졸기도 했다. 뒤따라 오던 차가 클랙슨을 울렸다. 도원은 안 되겠다 싶은 생각으로 큰 도로에서 빠져나와 좁은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피스텔 건물 뒤편의 일차선 샛 길을 이용하려 했다. 새로 만든 도로는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도원처럼 오피스텔 세입자가 아니면 도로에 차를 모는 사람이 전무했다. 신호등은 며칠 전에 고장 나고 고쳐지지 않았다. 붉은 불 이 영원히 초록색으로 변하지 않는 도로였다.

    집에 도착한 도원은 신발을 벗자마자 바닥에 드러누웠다. 씻어야하는데 귀 찮았다. 옷만 대충 벗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커다란 곰 인형을 끌어안았다. 모든 것에 지친 듯 도원은 인형을 끌어안은 채로 순식간에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땐 하루가 바뀌어 있었다. 도원은 상체만 들어 창밖을 바라봤 다.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진눈깨비가 안개처럼 부옇게 차올랐다. 불 을 견 맞은편 상가 건물은 윤곽선조차 흐렸다. 건물의 불빛들은 가물거리며 곧 꺼질 촛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렸다. 사람들은 어제보다 더 깊이 고개를 숙 였다. 부끄러워해야할 햇살도 없는 어두운 아침부터 코까지 빨갛게 얼어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도원은 열의 없이 출근 준비를 시작했다. 사워를 한 후 말리지 않은 머리를 흔들어 털었다. 빨랫감을 오피스텔 일 층에 있는 세탁소에 맡기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뒤쪽 도로의 신호등은 여전히 고장 나 있었다. 붉은 신호등 밑에서 멍하니 멈추어 서있던 도원이 뒤늦게 정신을 차 렸다. 연구소로 향했다. 소장과 주요 책임들이 자리를 비운 연구소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도원이 자신의 연구실에 가방을 풀어놓고 가운을 갈아입었다.

    다시 일상이었다. 어제처럼 다시 회의를 하고 대충 끼니를 때우고 차를 타 고 집으로 돌아가 어질러진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잠을 자아: 할 일상. 오늘도 내일도 반복되어야할 하루. 도원은 그 일상이 변함없기를 바랐다. 당분간은 그러길 바랐는데.

    “도원 선생님.”

    허락도 없이 열린 문 너머에서 한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도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그녀는 눈발에 젖은 운동화로 바닥더! 검은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호통에 과장된 몸짓으로 죄송하다고 사 과하기도 했다. 연구실 문을 닫고 들어온 여자가 짧은 머리를 긁적였다. 여 전히 소년처럼 활기차고 순진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 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이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서 나이를 잘 먹지 않는 사 람, 이라는 생각을 하는 도원이었다.

    “왠지 부끄럽네요. 그동안 바빠서 연락도 못했는데 불쑥 찾아와서 죄송합 니다.”

    “괜찮아요. 해 바뀌기 전에 얼굴 봐서 좋은 걸요.”

    “지금 시간 되세요? 긴히 드릴 .말이 있어서요.”

    M ? W

    0-.

    “안 될까요?”

    “여유롭게 모닝커피를 하면서 얘기하는 거 어때요.”

    “앗, 제가 한 잔 사드릴게요! 제일 비싼 거로! 샷이든 크림이든 다 넣어서 주문해도 되어요!”

    “정^요?”

    반색하며 기뻐하는 도원을 보며 빈유미는 주머니를 살폈다. 지갑을 차어! 두고 왔다는 말에 도원이 진심으로 실밍하는 얼굴을 보였다. 빈유미는 곤혹 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사드릴게요. 지갑 얼른 가져을게요, 라고 말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의 반음을 보자 도원은 자신이 너무 심술궂었 다는 것을 인정했다. 커피 하나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버린 상황이 우스 웠기에 도원은 소리 내어 웃었다.

    “농담이에요. 오랜만에 봐서 놀린 건데 여전하네, 빈유미 씨는.”

    “선생님이 여전하셔서 좋아해야할지.”

    “좋아해야지. 내가 한결같은 사람이라는 소리잖아요.”

    “ ? ≪

    _T그-.

    “또 표정이 곤란해지셨네. 알았어요,그만 놀릴게요. 커피는 조금 있다 내 가 사줄 테니까, 여기 온 이유부터 들어보죠.”

    “네? 선생님 아직 보고 못 받으셨나요?”

    “보고요?”

    “팀장님께서 협조 공문 보냈다고 저를 바로 여기로 보내신 거였는데요, 확 인 안 하셨어요?”

    “언제요? 어제 밤 11시까지 이메일 체크했지만 온 거 없었어요.”

    “오늘 아침에요.”

    “빈유미 씨 가만 보니까 참 얄미운 짓을 했어요. 업무 시간이 아닌 때에 이메일 보내놓고 이렇게 뻔뻔한 거 봐.”

    “하하, 그, 그게, 저도 그냥 시키는 대로만 달려온 거라서요.”

    “그래서 날 보자마자 그렇게 곤란한 표정을 지었구나.”

    “죄, 죄송합니다.”

    “커피는 빈유미 씨가 쏘겠지.”

    “그럼요. 당연하죠.”

    그녀는 이마를 가지런히 덮은 앞머리를 들추고 손부채로 바람을 날렸다. 매일 한파를 갱신한다는 날씨에 땀을 홀리고 있었다. 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 기에. 도원은 컴퓨터를 켜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받는 사람은 소장이었고, 자신은 소장이 부재한 동안 책임을 져야하는 사람으로서 참조에만 올라와있 었다. 그러나 내용을 보아하니 비행기에서 자고 있을 소장이 오전 중으로 답 변 부탁드립니다, 라는 회신 요청을 들어주기는 힘들어 보였다. 경찰청 협조 공문을 살펴본 도원이 턱을 됐다. 고개를 갸웃하며 모로 숙였다.

    “이거 생각보다 내용이 큰데요. 이런 문제는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경찰청의 수사팀장의 사인을 한 번 더 확인한 도원은 빈유미를 쳐다보았 다. 그녀는 처음의 어수룩한 표정을 지우고 경찰청의 강력계 형사다운 얼굴 을 만들었다. 의자를 끌어당겼다. 도원의 책상 앞으로 몸을 바싹 붙이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선생님이 결정하셔도 되는 문제에요.”

    “소장님이 안 계신 거 알면서도 그런 말을 하시다니.”

    “당연히 알고 왔습니다.”

    “이상하네. 뒤통수 맞은 기분이야.”

    “진짜 아니에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만큼 그렇게 어렵고 무겁고 타이 트한 문제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음, 우리 빈유미 형사님이 상관 사인을 못 알아 볼 리가 없는데. 상관 사 인 있는 공문을 일개 연구소원이 어떻게 승인하고 확인메일을 보낼까요.”

    도원은 모니터 화면을 빈유미를 향해 돌렸다. 이메일에는 워터마크로 박혀 있는 수사팀장 사인이 엄지만 한 크기로 찍혀 있었다. 빈유미가 고개를 끄덕 였다.

    “선생님이 곤란하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쪽이 좀 급해져서 막무가 내로 밀어붙이는 인상을 주게 된 것 같아요. 그 점은 정말 죄송합니다. 보셔 서 알겠지만 급하게 상담이 필요한 분이예요. 맹강조 소장님께 사인 받는 게 절차가 맞긴 하지만, 어차피 소장님께서 사인하셔도 상담은 선생님이 전담하

    셨을 거예요. 저희 쪽에서 상담사로 명확하게 지목한 게 선생님이세요.”

    턱을 괴고 있던 도원이 자세를 바로 했다.

    “지목이라니. 설레는 말이네요.”

    “농담 아닌데요.”

    “아뇨, 정말로 설레요. 제가 그쪽이랑 검찰 쪽 얽히기 싫어서 여기 연구소 로 온 거 알잖아요. 그런데도 아직까지 저한테 뭔가를 맡기고 시킨다는 게 여러 의미에서 설레요. 이러다 스토킹 당하는 거 아닌가 몰라.”

    “그 점은, 으, 죄송합니다. 저희도 더 이상 선생님 괴롭히고 싶지 않았어

    요.”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나른 건 여기 사인한 사람미지, 빈유미 씨가 무슨 의사 결정권이 있겠어요.”

    다시 수사팀장 사인을 손끝으로 두드린 도원이 웃어보였다. 빈유미는 목구 멍이 좁아진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도원의 시선을 피했다. 도원과 몇 년 동안 얽히면서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지만,도원은 사적인 자리에서조 차 자신보다 어린 여자에게 말을 놓지 않았다. 빈유미를 편하게 부르는 법도 없었다. 그쪽, 빈 형사님, 빈유미 씨. 언제나 딱딱한 호칭은 도원의 마음의 거리를 나타냈다. 빈유미는 그러한 도원의 태도를 알고 있었다. 도원이 왜 그러는지 이유도 잘 아는 터였다. 하지만 불편함을 애써 모른 척 했다. 바늘 이 돋은 양 입안이 거칠었지만 말을 이어야했다.

    “박창구 형사님 기억하세요?”

    도원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빈유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박 선배한테 일이 좀 생겼습니다.”

    도원은 몇 년 전, 수사 당국을 도와 일을 할 때 처음으로 협업했던 중년 남성을 떠을렸다. 도원의 기억 속 그는 굉장히 섬세하고 히스테릭했다. 세상 을 향해 가시를 세우고 사는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 평소에는 까다롭지 않았다. 하지만 수사가 제대로 풀리지 않거나 모종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침 처럼 곤두서는 사람이었다. 손을 씻으려는 강박증이 발동하면 얼굴을 만진 후에도 씻고, 펜을 잡은 후에도 씻고, 음료수통을 잡은 후에도 씻어 손등의 살이 희게 일어날 정도였다. 손톱을 물어뜯다가 피가 나기도 하고, 일정한 시간마다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신경이 예민해 때의 박 형사는 동료들이 놓칠 수 있는 증거를 올가미처럼 잡아서 건져 올렸다. 수사에 유능한 사람미었 다. 그런 사람이 수사팀장의 이메일을 받을 정도로 큰일에 휘말렸다는 것을 쉽게 생각해낼 수 없었다.

    “박 형사님이 전담한 범죄사건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보네요.”

    “아뇨,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저희 과까지 떨어지는 강력범죄는 없었 어요. 평소랑 다를 바 없었거든요. 적당히 흥분되고, 적당히 아쉬옴이 남는 그런 연말만 보내고 있었거든요. 아, 그런데 뭐지,동창회인가. 그런데 갔다 오시더니 너무 이상해지셔서.”

    “동창회요?”

    “네,그렇게 들었어요. 고등학2인지, 대학교인지, 그런 자세한건 모르겠고 요. 연말이라 오랜만에 누구 좀 만난다고 했는데 그 모임에 다녀오고 난 후 부터 이상해지셨어요.”

    “신경증이 더 심해졌나요.”

    “그러면 차라리 낫게요. 약간 아니, 조금 많이 이상해지셨어요.”

    빈유미는 정확한 단어를 꼽지 못하고 그 주변부를 에둘러 배회했다. 직속 선배를 나쁘게 말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신경증이 발전되 어 상징계가 부서지기 시작하는 사람의 특징 역시나. 도원이 빈유미가 말하 지 못하는 단어를 말했다.

    “조현병 비슷한 증상이라도 있는 겁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난처하게 웃었다. 직속 선배의 정신이 분열되고 있 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상담 해주실 수 있는 분이 선생님뿐이세요. 현직 형사시고,비밀 수사를 많이 맡았던 분이라서 일반 심리상담소나 정신과는 찾을 수가 없어요. 특수 한 상황이라서 선생님께 직접 부탁드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가 결정할 수는 없어요. 소장님께 연락해서 절차대로 진 행할 수 있도록 조치할게요.”

    “아, 물론이죠. 고맙습니다, 선생님.”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웃어 보인 빈유미는, 그러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도원은 소장이 탄 비행기를 확인하고 수사팀장이 보낸 이메일에는 위성 전 화를 확인해달라고 답장을 쓰려했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 도원이 행동을 멈추었다. 그는 빈유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짧게 커트를 친 머리카락 사써 로 여전히 땀미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집고 나온 물방울이 이마와 턱에 모여 덩어리를 이루고 있었다. 연구실에는 난방기를 틀지 않았다. 실내는 땀이 홍 건해질 만큼 덥지 않았다. 빈유미의 맨투맨 셔츠 아래로 드러난 손목에 빼곡 한 소름이 돋아 았는 것을 보았다. 덤지도 않은데 땀을 홀리고, 춥지도 않은 데 살갖이 굳어 있다. 도원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빈유미를 바라봤다. 그 녀는 뒤늦게 도원의 시선을 눈치 했다. 말아 올라가있던 소매를 내렸다. 웃 어 보이려는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박 선배를 부탁드릴게요. 선생님밖에 없어요.”

    왜 이렇게까지. 도원의 의문이 이어지기 전에 문 밖이 어수선해졌다. 여럿 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의 욕설과 호통이 오고가던 목소리가 문을 열고 쳐 들어왔다. 형사들에게 제압당한 사내가 연구실 안쪽으로 밀려들어와 바닥에 눕혀졌다. 도원은 놀라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한적하고 조용한 연구소에 서 사람들이 몸싸움을 벌일 일 자체가 없기에 육체적인 소요는 도원에게 낯 선 것이었다. 얼어붙은 도원을 대신하여 빈유미가 남자들에게 부탁했다. 맹 강조 소장님이 탄 비행기에 위성 전화를 걸어서 바로 이메일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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