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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바겐]메리제인1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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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제인1

    남자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움직임은 없었다. 원래부터 정물로 존재한 사 람처럼 방미라는 프레임 속에 덩그마니 놓여있었다. 시체 같은 몸에서 살아 있는 부위는 두 발이 유일한 것처럼 보였다. 짤막하게 올라간 정장 바지 밑 으로 하얀 발목과 맨발이 드러나 있었다. 혈관이 비치고 매가 도드라지는 마 른 발등은 상처 하나 없었다. 희고 깨끗해서 외설적으로 느껴지는 발이었다. 그는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걸어본 적이 없고, 되약볕에 살이 타는 일도 없는 것처럼 살아온 듯했다. 하얀 발은 오래된 명화에서나 나올법한 부 르주아 여성의 그것처럼 처량하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버림받았냐고 물으면 발끝을 오므리며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할 것 같았다.

    하염없이 앉아있던 남자의 머리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일 렁이는 커튼 그림자 때문에 남자는 비로소 눈을 깜박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 난지도 모르는 얼굴로 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창틀이 희붐하게 빛나고 있 었다. 지난밤 굳어진 창문의 서리가 햇살에 녹아서 그림자로 흘러내렸다. 남 자는 초점이 없는 눈으로 창가를 응시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문으로 손을 뻗었다. 창틀에 굳어 있던 작은 얼음 조각들이 바스락 깨어졌다. 서리 를 부서뜨리며 창문을 열자 벌어진 틈 사이로 냉기가 들어왔다. 남자의 손끝 이 차가워졌다. 고르게 호흡하는 입술에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목에 좁쌀 같은 소름이 돋았지만 남자는 창문을 더 열어 거리를 내다보았다. 도로에는 사람미 없었다. 광장은 멀리서 보아도 비어 있었다. 지평선으로 가로지르는 강물은 수면부터 조용했다. 매번 보아왔던 이른 아침 풍경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행지의 낯선 모습을 지켜보듯 그렇게 창틀에 한동안 기대어 있었다.

    “어머, 도 선생님.”

    입김이 달라붙어 머리끝이 젖어갈 때쯤, 남자는 몸을 바로 세웠다. 등 뒤 를 돌아보자 언제 왔는지 모를 여자가 문고리를 잡고 서 있었다. 그녀는 한 손에 칫솔과 폼클렌져를 들고 있었다. 이제 막 자다 일어난 얼굴로 부스스한 머리를 손질하던 여자가 의아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웬일이세요? 도 선생님도 여기서 주무셨어요? 아, 저 들어가도 되죠?”

    여자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로 걸어간 그녀는 봉분처럼 솟아 있는 이불을 보고 허리를 숙였다. 이불 끝으로 누군가 의 짧은 머리카락이 베죽 솟아 있었다. 이불에 가려져 얼굴을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이 방에 도 선생님이라 불린 남자 외에도 다른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다시 신발을 신었다. 문고리를 잡고 남자에게 고갯짓을 해보였다.

    “여기서 수다는 못 떨겠어요. 나가서 얘기 좀 하실래요?”

    그녀의 요청에 남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급한 일 있으세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이 이른 아침에 도 선생님 될 줄 몰라서 반가워 서 그렇지.”

    “아, 그럼 이 앞 카페 갈까요? 제가 커피 사드릴게요.”

    “커피 말고 밥은 어떠세요?”

    “아침 식사 안하셨구나.”

    “네,저 오늘 숙직 당번이었거든요. 도 선생님은 당번 아니시던데 여긴 무 슨 일이세요?”

    “그냥 뭐, 이래저래 그렇게 됐네요.”

    “어머. 대답 피하시는 거 봐.”

    “하하.”

    남자는 맨발로 바닥을 디뎠고, 실내 슬리퍼를 신었다. 여자의 시선이 바짓 단에 반쯤 가려져 있는 새하안 발등을 자연스럽게 향했다. 정장 차림에 맨발이라니. 낯선 조합에 여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여자 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문밖에는 당직실, 이라고 써져있는 흰 플라스틱 글자판이 누런 손때에 절어있었다.

    “저기, 도 선생님.”

    여자의 부름에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망설이는 듯싶더니 조심스럽 게 입을 열었다.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남자가 복도를 청소하는 아주머니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다가 비로소 여자를 쳐다봤다. 아침햇살 때문인지 남자의 검은 홍채가 평소보다 연했다. 부옇고 탁해서 기운이 없어 보였다.

    “아뇨,아무 일 없어요.”

    “정말이죠?”

    “제가 오늘따라 이상하게 보이나요?”

    “잘 웃던 분이 기운이 없으신 것 같아요.”

    “아침이잖아요. 아침엔 힘이 없죠.”

    “어머머, 그 얘기 들으면 사모님께서 섭섭해 하시겠다.”

    동료 사이에 이정도 능은 할 수 있는 듯 여자는 남자의 옆구리를 손으로 찔렀다. 그러다 문득 남자의 왼손 약지가 비어 있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얼 마 전까진 보석이 제법 박힌 금색 반지를 빠짐없이 끼고 다녔다. 손을 씻을 때도 벗지 않았고, 당직실에서 잠을 잘 때도 빼놓지 않았다. 무언가에 골몰 할 때면 그 반지를 반대편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습관까지 있었다. 여자의 시 선이 다시 하만 발등을 향했다. 반지도 양말도 없는 남자. 원래 이런 남자였 던가. 여자는 생각을 멈추었다.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단정한 옆모습은 지쳐 보였다. 당직이면 아침에 기운이 없고 피곤해보일 이유가 되었지만, 그 침착 한 정도는 여자가 느끼기에 이질적이었다. 눈가에서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에 반쯤 가려져서, 남자의 시선이 어찐지 멍하기까지 했다.

    “아, 뭐 먹을까요.”

    남자가 중얼거렸다. 마른 입술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버석했다. 여자는 저도 모르게 움칠했다. 관음 하듯 남자의 옆얼굴을 쳐다보던 시선을 재빨리 돌렸다. 다행히도 남자는 여전히 신발 밑창을 끌듯이 느린 걸음으로 걷기만 했다. 뭐 먹어야 좋을까요, 하고 제 말을 복창하는 남자의 시선은 흐렸다. 정말로 배가 고파서 반쯤 정신을 놓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돼지국밥 어떠세요. 아, 설렁탕이 나을까요. 한 블럭 더 걸으면 이십사 시 간 감자탕집도 있던데.”

    “도 선생님, 실내화에 맨발이예요. 멀리 못 나가요. 정신 차리세요.”

    “아, 맞다.”

    “허.”

    정말 별 일 없는 거 맞나. 미심쩍게 쳐다보는 여자의 시선을 그제야 눈치 첸 남자였다. 그는 여자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어 보였다. 여자는 애써 한숨을 삼키고 모른 척 앞만 바라봤다. 평소에는 많은 것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던 남자가 오늘따라 유독 허술하고 부족해보여서, 그게 오히려 완벽하게 비추었던 남자의 결핍처럼 느껴져서, 여자는 남자가 묘하게 섹시하다는 생각 을 했다. 그녀의 시선은 반지가 비어있는 왼손 약지를 몇 번이나 향했다. 그 때마다 홈칫 놀란 여자의 한숨도 이어졌다.

    미국의 한 주립대학교에서 심리학 전공,철학 부전공, 연계된 대학병원에 서 임상심리 수련과정 수료 박사 학위 취득 후 한국에서 정신보건임상심리 사 일급 통과, 국가기관에서 국가 기밀 사건 피해자의 상담 치료 및 학술 연구,프로파일러의 수사를 돕던 중 개인적인 이유로 일을 그만둔 뒤에 국가 지정 연구소에서 정신분석학 연구 중.

    경력을 살펴보던 노인은 이력서 상단의 이름과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도 원. 사진 속 그는 밝고 단정했다. 삼십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업종의 특성상 젊은 축에 드는 편인데도, 미국에서 발표한 논문들이 신프로이트학파에 큰 반향을 일으켜서 유명세만 따지면 굴지의 학자만큼이나 잘 알려져 있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미국 수사 당국이 직접 도원을 스카우트하려 했었다. 그 제안들을 거절하고 한국에 온 후에도 해외의 학자들로부터 공동연구 제의를 꾸준히 받는다는 소문이 있다. 수사 당국과 학회 안팎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수사 당국의 일이 자신의 성격이 맞지 않는다며 학술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고위급 공 무원들이 도원을 찾아오고 있지 않나.

    연구소에 공무원들이 찾아올 때마다 정신과 전문의와 심리학 박사들이 농 담 삼<아 그런 말을 했다. 삼급 떴다, 이급 떴다, 일급 떴다. 연구소에 입사할 때 비밀서약서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방문하는 공무원들의 정보를 급수로 나누어 말했다. 삼급은 경찰청장, 국정원장, 국회의원이다. 이급은 장차관들, 일급은 대통령. 경호차를 수 대 끌고 검은 차에서 내리던 일급을 눈앞에서 봤을 때, 연구소 사람들은 덩달아 도원을 어려워하게 되었다. 일급이 직접 찾아오는 정신분석학자라니. 같이 일하는 동료라도 부담스러운 게 당연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히 도원에게 미운 터럭이라도 박히면 앞날이 깜깜할 것처럼 굴었다. 덕분에 도원 자체가 대인관계에 무리가 없는 성격임 에도 불구하고 연구소에서 혼자 지내는 일이 많았다. 본인이 혼자 지내는 것 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서 다행이긴 했지만,동료들이 계속 어색해하면 협업 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노인은 문서를 다시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노인의 책상 너머에는 도원 이 앉아 있었다. 이력서 사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얼굴이었다. 학문에 뜻아 없었다면 여자 여럿은 울렸을 것 같았다. 운동을 제 때 못하고 끼니를 거르 는 일이 많아서 마른 게 홈이지만, 일급이 대우하는 정신분석가라는 타이틀 이 없어도, 이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지 않던가. 그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렵다는 인상을 주는 모양이지만. 노인은 혀를 찼다.

    “당직이었다면서 밥은 잘 챙겨 먹었나.”

    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침에 감자탕을 먹었어요.”

    “감자탕? 아,우리 회식 많이 하는 거긴가.”

    “아뇨, 다른 곳이예요.”

    “그래? 맛은 어떤데?”

    “맛은 잘 모르겠는데요, 들깨 가루도 안 부려주고 너무 인색했어요.”

    “나도 들깨가루 싫어해. 국물에 넣으면 럽럽하잖아.”

    “저는 콩국수에도 부려먹고, 미역국에도 넣어 먹거든요.”

    “이런 노인 입맛을 봤나. 나도 그렇게 안 먹는데.”

    “소장님이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도원은 노인의 머리를 쳐다봤다. 이마가 벗겨져서 흰머리가 듬성듬성 흔들 리고 있었다. 도원의 시선과 말투는 무례할 수 있었지만 그 행동 기저에 노 인을 얕잡아보거나 놀리려는 기색은 없었다. 노인은 큼큼, 목을 울린 후에 다시 입을 뗐다.

    “내가 도 선생을 부른 건 다른 게 아니라 뭐 좀 부탁하고 싶어서 그래.”

    그 말을 생소한 표정으로 받아들이는 도원이었다.

    “부탁이 아니라 명령을 하셔도 되죠.”

    “어허, 이 사람끼.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마구 부려 먹나. 오공 때나 하던 얘기를 젊은 사람 입에서 하면 안 돼. 덱, 앞으로 그 런 말 쓰지 마.”

    “연구소장끼 소원에게 일을 시키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었나요.”

    “그럼 엉덩이를 토닥여줄 테니 커피 타오겠나, 미스터 도.”

    “그건 오공 때도 욕먹던 성희롱입니다만.”

    지그시 쳐다보는 도원의 시선에 노인은 히죽 웃었다. 각을 세우고 경직되 게 대답하는 또래 박사들과 달라서 이런 말랑말랑함을 가진 도원을 평소에 도 좋아했다. 의사들은 의대 풍토 때문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는 걸 이해하지 만, 심리사들까지 협진이나 연계 상담을 하면서 의사들 풍토에 물들어 경직 되어 있는 분위기가 안타까웠다. 이러한 조직 문화에 물들지 않는 도원이 대 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친구가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기에 노인은 미소 띤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내일 모레가 맞지 싶은데, 부소장이랑 연구소원 몇 명 데리고 유럽 세미 나랑 포럼에 참석하게 되었어.”

    도원이 여상한 얼굴로 끄덕였다.

    “벌써 그럴 시기네요. 이번엔 학계 이슈가 커서 세미나도 규모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맞아. 주목받는 학자들도 많아서 세미나가 이틀로 잡혀 있는 경우도 있더 라. 그래서 거의 한달 간 자리를 비울 예정이야.”

    “평소보다 길게 비우시네요.”

    “이왕 유럽 간 거 조금 놀다오는 게 좋지 않겠나. 최근 반 년 동안 월차도 한 번 못 내고 야근에 당직까지 하던 소원들이 불쌍해서 말이야. 여름에 주 지 못한 휴가를 겨울에라도 쓰라고 유럽에 머무는 시간을 더 늘렸거든.”

    “아, 네, 이해합니다.”

    “앞으로 한 달 간의 병원이랑 연구소 일정도 살펴보니까 크게 무리 없을 것 같더라고. 고정적으로 치료 받던 환자들이라서 유럽 가는 담당의들이 인 수인계하기도 편할 테고 당국에는 사전에 통보했어. 새로운 환자들은 우리 기관 말고 다른 쪽으로 보내질 거야. 어때?”

    “아……,예, 유럽에서 일 보시고 놀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남는 소원들도 억울해서 막 죽고 싶을 정도는 아니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은데요.”

    “다행이네.”

    “그런데요, 소장님.”

    “ ? ?,,

    “그걸 왜 저한테 다 얘기하는 건가요?”

    “왜긴 왜야, 우리 도 선생이 나 없는 동안에 심리사들을 책임지라고 하는 소리지.”

    도원은 눈을 깜박였다. 노인의 정수리에서 흔들리는 흰색 터럭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뒤의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침 해가 낮은 하늘에 걸려 있었다. 햇살은 새벽녘의 서리를 모두 녹이고, 텅 비어있던 광장을 따뜻하게 데우는 중이었다. 사람들은 목도리로 감싼 얼굴을 숙이고 하나같이 제 발등 을 쳐다보고 있었다. 마치 따사로운 겨울 햇살이 발등에 못처럼 떨어지는 것 이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멈추어 서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는 사람들의 인색함을 보면 겨울이 맞았다. 아니, 텅 빈 광장에 우뚝 솟은 인조 크리스마 스트리가 연말 분위기를 한껏 자극하는 겨울의 한 복판이었다.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 맞이하는 때에 도원은 자기 혼자만 그 속에 속하지 못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요.”

    다시 묻는 도원에게 소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나 대신 책임 좀 부탁하네.”

    책임의 일을 떠올린 도원이 반발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제가 왜 소장님을 대신해서 연구소 일정을 책임져 야 하는 거죠. 저 그럴 깜냥이 안 되는데요.”

    “어허, 이 사람이, 과도한 경손은 오히려 독일세. 우리 연구소 심리사들 중 에 깜냥으로 치면 자네가 이거지!”

    엄지를 치켜세우는 노인을 도원이 질색한 얼굴로 쳐다봤다.

    “책임자면 휴가도 없잖아요. 제 겨울 휴가는요.”

    “아까 이력서 보니까 우리 도 선생이 입사한 지 일 년도 안 되었더라고. 내가 일 년 차에게 휴가를 주겠다고 사인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소장님, 말씀에 너무 큰 모순이 발견되었어요. 그렇게 새파란 신입에게 심리사 책임을 맡기는 건一.”

    “괜찮아, 자네 나이보다 십몇 년 더 산 심리사도 자네만큼의 경력을 쌓은 사람미 없어. 다들 인정할 거야.”

    “인턴 때도 못 겪은 불합리한 상황이군요.”

    “우리 감자탕 먹으러 갈까?”

    “고작 물에 빠진 돼지 갈비에 제가 넘어갈 것 같습니까.”

    “들깨 가루도 많이 넣어달라고 할게.”

    “아,진짜.”

    “일이 많지 않을 거야. 말했잖은가. 추가 환자도 받지 않을 거고 기존 환 자들만 여유롭게 보면 된다고. 이번에 책임 맡아주면 다음에 무슨 일 있을 때 우선순위로 빼줄게, 어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는 노인을 보며, 도원은 이렇다 할 말을 삼켰다. 도 원의 억울한 표정에 노인이 재빨리 더 나아질 대우를 보장해주었다. 본래 책 임들이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정시출근, 정시퇴근을 약속할 것이다. 야근도 최소화할 테다. 다른 연구소원들이 도원을 어려워해서 과한 업무를 부탁하거 나 그러지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 말라고 구슬렸다. 도원이 책임지기 싫다고 해서 결과를 번복할 소장이 아니었다. 이틀 뒤에 출국한다면, 도원을 대신할 책임을 다시 구하고 인수인계하기도 번잡스러워할 사람이었다. 도원은 습관 처럼 창밖을 쳐다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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