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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티김] 캔디 크러쉬외전무삭제,완결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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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맨물]

    28년 게이인생 이정우, 옆팀 상사에게 제대로 꽂혔다. 그런데 알고 보니 7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네?

    어딘가 애매모호한 옆팀상사 김석준과, 김석준을 죽어라 싫어하는 직속상사 한태선. 그리고 한태선만 죽어라 쫓아다니는 파워게이 재벌3세 강도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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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년 만의 한파, 백년 만의 폭염. 100년 전의 지구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평화로웠던 90년을 보내고 다시 한 번 찾아온 이상기류는 4월이라는 말이 무색해지리만치 서늘한 봄비를 앞세워 모종의 경고를 시작한다.

    조만간 인간들은 공룡처럼 화석 속에서나 발견될지도 몰라. 내 머릿속이 끝까지 이런 것들로만 가득할 거란 걸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지애가 문득 번쩍 손을 들어 뺨을 올려붙였다.

    손에 든 우산은 펼 생각도 않고, 덜 여문 나뭇잎 사이로 죽죽 흘러내리는 빗물을 고스란히 맞고 있던 그녀는, 끝끝내 아무 말도 없다.

    비가 오는 날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뜻한 봄날에 갑자기 끝내버리기에는 너무 오래된 연애였으므로.

    나는 가볍게 목례하고 나무 그늘 아래를 벗어났다. 호숫가를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짙은 물안개와 거세게 내리는 장대비 때문에 좀처럼 앞을 분간할 수가 없다. 용기를 내 한 발짝 내딛자, 우산 위로 후두둑 소릴 내며 빗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니트 사이로 축축히 배어드는 진득한 습기에 팔뚝을 타고 소름이 돋았다.

    7년을 만난 여자다. 셔츠부터 구두까지 지애가 고르지 않은 것이 없다. 지애가 만들어 놓은 반찬거리들은 여전히 냉장고를 가득 메우고 있고, 오늘 아침에 열어본 옷장마저 지애가 정리해 둔 상태 그대로였다. 지애가 고쳐 놓은 시계가 울면 일어나 집을 나서고, 지애가 사준 지갑을 지애가 도색해 놓은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걸..로 하루를 끝내 왔다. 이렇게 살아온 7년을 마무리하기로 결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밤이다.

    네가 나한테 이럴 수는 없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빗속을 뚫고 전해지는 상실감으로부터 도망치듯 빠른 걸음을 걸었다. 차박차박 물 웅덩이 차는 소리가 울릴 때마다 바닥에 고여있던 빗물이 무릎까지 튄다. 시커먼 얼룩들이 발목을 잡는 것만 같아서, 얼른 차에 올라탔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문득 본네트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이 짧게 진동한다.

    - 어디야?

    액정 위로 반짝반짝 나타난 글자에 문득, 그제야 얻어맞은 뺨이 아파온다.

    맥없이 늘어져있던 손을 들어 간단하게 메시지에 답장했다. 그리고는 카시트를 원래 위치로 당기고, 시동을 켜고, 와이퍼를 당겼다.

    속절없이 앞유리를 흐리던 빗줄기가 러버에 밀려 깨끗하게 옆으로 밀려난다. 이렇게 잔뜩 비를 맞은 덕에 내일이면 더욱 선명하게 피어날 나무들이 시야에 가득찬다.

    우웅 하고 낮게 울리는 엔진소리에 천천히 핸들을 돌리며 악셀을 밟았다. 새파랗게 새순 돋은 나무들 사이 어딘가에 지애가 있다. 풍경들과 함께 뒤로 멀어지는 그녀를 뒤로, 나는.

    지금부터 지옥으로 기어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캔디 크러쉬

    Stage 1

    90년대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은 크게 대통령과 미스코리아로 대변할 수 있었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맨주먹 신화를 몸소 겪은 부모들은 생각했다. 아, 내 새끼도 잘만 하면 대통령이 되겠거니. 미스코리아가 되겠거니. 그래서 저마다 자식들을 태권도 학원에 보내고, 피아노학원에 보냈다. 이로 인해 모든 어린이들의 방 한 켠에는 각종 콩쿨에서 입상한 앳된 얼굴이 사진으로 콱 남아 있다.

    나는 그 많은 어린이들 중에서 은근히 튀는 존재였다. 죽었다 깨어나도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걸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에, 어릴 적의 생활기록부를 뒤져보면 장래희망 란에 떡하니 ‘버스 운전수’라고 적혀있기 일쑤였으므로.

    그랬다. 나의 어린 대통령과 초능력자와 산타클로스 따위는 없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가난한 부모님 아래서 자란 탓에 각종 학원을 섭렵할 여유가 없었다는 비극적인 스토리가 깔려있는 것도 아니었고, 크게 상처를 받았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그냥 알았다. 덕분에, 모두가 현실과 부딪히며 절망할 때 조금 더 수월하게 버텨낼 수 있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거였으니까. 맞은편 차선에서 같은 번호의 버스를 만나면 멋지게 인사하는 정도가 버스운전사로써 멋져 보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것이, 내게 그렇게 큰 상처가 되지는 않았으니까.

    다만, 이 평범하고 평화로운 세상 속에서도 단 한 가지 견뎌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내가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시는 순간에는 반드시 버스가 온다거나, 집안에서 잃어버린 성적표는 반드시 부모님이 찾는다거나, 바꾼 답은 무조건 틀린다거나.

    혹은 지금처럼, 불길한 예감이 절대로 빗겨 나가질 않는다거나 하는 등의 머피의 법칙이 나만의 평화를 깨기 위해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드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방금 전 팀장님이 만질 때만 해도 멀쩡하던 복사기가 왜 내 턴에서 버벅대는 걸까.

    제대로 씹혔는지 카트리지 뒤에서 기묘한 비명을 지르다 기어이 작동을 멈추고야 만다. 죽은 자처럼 말이 없는 복사기 뚜껑을 괜히 한대 툭 쳐 보았다.

    "선배님, 이거 고장난 것 같은데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사수를 불렀다. 데스크 앞에서 잔뜩 구겨진 채 재고표를 점검하고 있던 박상갑씨가 내 말에 한숨을 푹 쉬며 이 쪽으로 휘적휘적 걸어온다.

    "아니, 이건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이래."

    뾰족한 펜 같은 걸로 저만치 희미하게 삐져나온 종이조각을 툭툭 건드리다가, 안 되겠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업체에 연락을 돌리는 모습에 고개를 푹 숙였다. 대량 복사를 할 때면 정확히 50퍼센트의 확률로 고장나는 게 이 복사기라는 놈이지만, 기기의 상태와는 상관 없이 언제나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책임자는 복사기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말단이다.

    한 쪽 손을 허리에 얹고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박 선배가 고갯짓으로 사무실 문 쪽을 가리킨다.

    "영업1팀 가서 돌려 와. 바쁘니까 빨리."

    "예."

    작업중이던 서류들을 챙겨 사무실을 벗어났다. 평소 같으면 중간중간 눈치 보며 빠져나온 월급도둑들로 가득했을 복도가 오늘따라 유독 조용하다. 나와 같은 처지의 신입들이 가끔 복사물들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닐 뿐, 쥐새끼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조용한 복도를 가로질러 영업1팀으로 넘어왔다.

    "복사 돌리러 왔냐?"

    인중 위에 펜을 올리고 의자 위에서 넋을 놓고 있던 동기 종환이가 손만 번쩍 들어 인사하며 그런다. 사무실 안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안 잘리려고 다들 아등바등하는 난리통 속에서도 묘하게 칠 때 치고, 빠질 때 빠지는 요령 덕에 모가지만 간신히 간수해 가면서 평화로운 나날을 영위하고 있는 녀석이다.

    "어. 근데 오늘 무슨 일 있냐? 다 어디 갔어?"

    "다 외근 나갔었는데 오늘 김팀장인가 뭔가가 귀국했다고 막 다들 돌아오는 중이래. 눈치보며 짜져 있어야겠어."

    "김팀장이 누군데?"

    "나도 몰라. 우리 입사하기 전에 발령났을걸? 나도 본 적은 없어. 오자마자 이사실에서 뭐 한다더라."

    으쌰 하고 일어나서는 꺼져 있던 복사기 전원을 틱 켜며 묻는다. 도와줄까? 얼씨구나 하고 인쇄물의 반을 넘겨 주었다.

    삑. 지이잉. 철커덕. 간단한 셋팅 끝에 깔끔하게 복사물을 뽑아내기 시작하는 기계에서 잠시 눈을 떼고 양 팔을 휙휙 돌려보았다. 한바퀴 돌릴 때마다 억 소리가 절로 난다.

    "아니 근데, 뭐가 이렇게 많어. 너네도 바빠 지금?"

    "오늘은 좀 덜해. 우리 부장님 외근나갔걸랑.“

    “엥? 이따 우리랑 너네랑 합동회의 한다던데?”

    “좀 있음 점심시간이구만 무슨.”

    어느새 복사가 끝났는지, 종환은 차곡차곡 쌓인 인쇄물을 들고 앞장선다.

    기다란 다리로 휘적휘적 복도를 걷는 게 확실히 사람은 허우대가 길어야 간지가 사는 법인가보다. 기획부 사무실 앞에서 종환은 복사물을 내 팔 위에 멋지게 딱 얹어주었다. 윙크를 한 번 하고 사라지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휴, 느끼한 새끼.

    평소 사무실을 나설 때보다 딱 곱절로 늘어난 서류들을 꾸역꾸역 끼고 복귀했다.

    “어이고, 오셨습니까.”

    지잉 자동문이 열리고, 한 발짝 들어서기 무섭게 박선배가 내 쪽을 향해 구십도로 허리 숙여 인사한다. 저마다 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도 나를 힐끔 보더니 꾸벅 인사를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버버 하고 있는데 문득, 옆으로 쌩 하고 찬 바람이 분다.

    “희경씨. 부지 확보건 결제 안 올려요?”

    척척 걸어가 데스크 위에 브리프케이스를 휙 던지고 돌아선 것은, 2팀 엄나무로 통하는 한태선 팀장이다. 오늘따라 유독 저조한 분위기에 다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꾸물댄다.

    “아, 그게. 영업1팀 팀장님 오시자마자 미팅 하기로 되어 있다고, 그 때 세부사항 논의한다고 하시던데요.”

    우리 팀에서 가장 짬이 딸리는 김희경씨가 쭈뼛쭈뼛 말하자, 이제 막 재킷을 벗어 파티션 위에 대충 걸쳐놓던 한 부장의 눈썹이 꿈틀한다.

    “그게 왜 1팀으로 넘어갑니까?”

    “그게...이틀 전에 연락이 들어갔다고....”

    “.....”

    와, 장난 아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인데, 좀 전까지만 해도 그저 점심시간 버프를 받아 다소 나른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쩌적 얼어붙는다.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달달 떨던 김희경씨가 시퍼렇게 질린 채 한팀장에게로 기어간다.

    “정우씨, 오늘 진짜 조심해야겠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내 귀에 속삭이며 인쇄물을 받아든 박 선배가 내 질문에 어이없다는 눈으로 날 잠깐 보더니, 이내 아아 하고 피식 웃는다.

    “아, 신입이라 잘 모르는구나. 영업1팀 김석준 팀장이라고 오늘 귀국한 양반이 하나 있는데, 우리 팀장이랑 철천지 원수야. 그 양반 해외지사 발령가고 한창 분위기 좋았는데, 씨부럴.”

    “아니 얼마나 사이가 안 좋길래 저 정도예요?”

    평소에도 다소 무섭기는 했지만, 일처리가 깔끔해서 그렇지 알게 모르게 사람들 다독이면서 일하는 스타일이었는데. 한번 터지면 무섭겠구나 싶었어도 막상 저렇게 누구 하나 잡자고 탈탈 터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니, 마른침이 절로 꿀꺽 넘어간다.

    그와 동시에, 고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한팀장이 마우스를 휙 집어던지듯 책상에 놓으며 그런다.

    “다들 소회의장으로 가세요. 20분 후에 3공장 부지건으로 영업부랑 합동 회의 들어갑니다. 부장님 귀에 안 들어가게 알아서들 단도리 잘 하고.”

    그러고는 펜 한 자루 챙기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침묵으로 가득한 사무실에 지잉 하고 자동문 열리는 소리만 조용히 울리고, 동시에 얼음처럼 서 있던 김희경씨가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종이 넘기는 척만 하던 사원들이 후덜덜 떨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쯤 부터였다.

    “와, 대박. 봤냐.”

    “오늘 누구 하나 잡는다에 맥주 2천.”

    “저도요.”

    불호령이 떨어질까 서둘러 자료를 챙기며 사원들이 그런다.

    우리는 뭐 한 게 없으니 얼른 따라오기나 하라는 박선배를 주춤주춤 따라 소회의장으로 가는데, 영업부 사무실에서 종환이 툭 튀어나온다. 못 볼 것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을 하며 매달려오는 종환에 깜짝 놀라 어깨를 받쳐들었다.

    “정우야, 나 너무 무서워....”

    덩치에 안 맞게 우는 시늉을 하는 종환에게 이때다 싶어 딱 들러붙었다.

    “야. 장난 아니다. 우리 팀장님 리얼 개빡쳤어.”

    “말도 마라. 그 김석준이라는 인간도, 오자마자 딱 나보고 할 일 없냐고 묻는데, 세상에 입만 웃고 눈이 존나..으엉엉엉.”

    “봤어? 잘생겼어?”

    “그만 좀 해, 이 새끼야.”

    우리는 공포에 떨며 소회의장에 들어섰다. 긴급 소집이 떨어진 탓에 외근으로 전부 빠져있던 영업팀 사람들도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다. 대충 눈치를 보며 박선배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주위를 슥 둘러보았다.

    상석에 앉아 석상처럼 미동도 않는 한팀장의 옆자리에는, 못 보던 절세미남이 앉아 있다. 운동 깨나 한 모양인지 떡 벌어진 어깨 하며, 잘 맞춘 셔츠가 한 몸인 것처럼 탄탄한 가슴팍을 맵시좋게 두르고 있다. 깔끔하고 우아하게 선이 고운 한팀장 옆에 앉혀 놓으니 굵직굵직 반듯한 것이 한 폭의 그림이다.

    간만에 보는 미남의 모습에 침을 흘리며 구경하는데, 문득 옆얼굴로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 게 느껵진다.

    뭔가 싶어 돌아본 곳에 앉아 있는 것은,

    “어....?!”

    “올 사람 다 왔으면 시작하죠.”

    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저 바닥까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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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디 크러쉬

    Stage 02

    살짝 손을 들어보이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 했다. 다행히도 초침이 정확히 열두 시를 지나자마자 떨어진 한태선 팀장의 말에, 평정을 지킬 수 있었다.

    “......”

    끝나고 보자는 사인에 얼떨떨한 정신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스크린에 펼쳐진 PPT(사실 아무 내용 없이 그냥 회사 로고만 박혀 있었지만)에 집중하는 척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한팀장의 옆 자리에 앉아있던 절세미남이 손가락 반 만한 리모콘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키도 겁나게 크구만.

    “영업1팀 김석준 팀장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3공장 부지 문제로 이렇게 급히 합동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듣기만 해도 오줌 지릴 것 같은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그가 문득 한태선 팀장을 힐끔 내려다본다.

    “당장 일 주일 뒤에 도장 찍기로 되어있던 걸 잠깐 2팀에 맡겼는데, 일이 좀 복잡하게 된 것 같더군요.”

    그러고는, 봄날의 햇살처럼 젠틀하고 따스한 미소와 함께 레프트 훅을 멋지게 날린다. 다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와중에, 한팀장의 고운 이마가 꿈틀, 하며 살짝 찌그러진다.

    “예. 1팀에서 알아서 하신다고 가져 가셨다면서요?”

    “준비가 된 게 있어야 당장 가서 뭐라도 집어올 것 아닙니까. 첫 미팅 들어간 게 한 달 전인데 아직도 이 문제를 질질 끌면서, 뭐 용지 면적 가지고 실랑이 중이라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죠.”

    “동네 구멍가게도 아니고 신축 공장부지랍시고 받아온 게 그따윈데, 그냥 도장 찍었다가 허가 안 나면 김팀장님이 다 뒤집어 쓰실 겁니까?”

    동네 구멍가게. 라는 말에 김팀장의 젠틀한 미소가 순식간에 싸늘한 무표정으로 바뀐다.

    “2팀 자료 넘어온 거, 일부만 봐도 개판이던데. 나 없는 동안 이따위로 진행하셨습니까?”

    “이보세요. 지금 뭐라고 했어요? 개...판?!”

    불안불안하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한팀장도 폭발이다. 언성을 높이며 벌떡 일어서는 그의 모습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숨 죽이고 있던 사원들이 덜덜 떨며 인쇄물에 의미없는 필기를 시작한다.

    “개판을 개판이라고 하지, 그럼 어떻게 부를까요.”

    “애초에 무리인 기획을 다짜고짜 마무리하라고 넘겨주신 그 결단력이 참 부럽네요. 인수인계를 어떻게 했길래 옆 부서까지 끌어안고 죽겠다고 난립니까?”

    진짜 스펙타클하다. 언제나 일정한 감정선을 유지하고 있던 한팀장이 저렇게까지 돌아버리는 모습을 처음 본 종환이도 입을 떡 벌린채 사태를 관망중이다.

    막장 드라마만큼이나 재미있는 상황 전개에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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