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럼] The game 4round - 6

163일전 | 55읽음

위치에 오자 저절로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아……."


"왜 그러는 가!"


"아니, 문이 중간부터는 저절로 열렸습니다."



순간 하르바 백작의 표정이 바뀐다.



"그럼, 들어가겠습니다."



제르아 형님의 말로는 외궁의 안은, 횃불도 켜지 않았는데도 환하게 밝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아사야의 눈에는 그저 새카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동굴 같은 것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나무 때문에 햇빛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격이 되지 않는 자는 중간에 튕겨 나온다고 한다. 만일 중간에 거부를 당한다면 그것은 아사야의 탓이 아니다.


이곳을 통과하고픈 마음, 거부를 당하고픈 마음 그 두 가지 마음이 한곳에서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다.


철컥-


아사야의 장화에 달려 있는 갑주가 돌에 부딪혀 소리가 난다.


한발자국, 그리고 또 한발자국, 아사야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발을 내디뎠다.


그 순간이었다.



"어--?"



묘한 감촉이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상한 막 같은 것이 있어서 그 사이를 통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이상한 이질감에 아사야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떴다.



"아!"



어두울 것이라 생각했던 안이 이상하게도 밝다. 눈이 부실 정도의 빛은 아니었지만 주변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밝기다. 제르아 형님의 말대로 횃불도 없고 등잔 같은 것도 없다.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안은 넓은 동굴과도 비슷해서 발 밑이 그리 평평하지는 않았다. 일단 이런 광경이 보이는 것을 보니 아사야는 이 외궁에 발을 디딜 자격이 충분했던 모양이다.


잠시 주변을 확인한 후, 아사야는 몸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조금전과는 또다른 느낌이 이상하게 몸을 감싼다.



"안전합니다. 사리예 공주님."



모습을 감추었던 아사야가 다시 나타나자 모여있던 기사들의 입에서 오오-하는 환호성이 들린다.


아사야는 사리예 공주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부들 부들 떨고 있던 공주는 그래도 굳건한 걸음으로 다가와 아사야의 손을 잡았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날지도 모르지만, 다치거나 하진 않습니다. 천천히 들어오세요."



사리예 공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 뒤를 또 다른 기사들이 뒤를 따른다.


쑤욱-하고 그 이상한 감촉을 다시 한번 느끼고 나자, 시야가 밝아진다. 사리예 공주 역시 무리 없이 입구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왔다. 아사야는 사리예 공주의 손을 잡은채, 다시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엔 당황한 얼굴의 기사 셋이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통과할 수가…."


"마치 벽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울상인 얼굴들이다. 특히, 숙부의 시신이라도 찾아야 겠다며 자신해서 온 사례첼 후작가의 소년은 완전히 절망한 듯했다.



"사레첼 후작님의 시신은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결국에 통과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사리예 공주뿐인 모양이다.


울상이 되어 있는 사례첼 후작가의 소년에게서 망토 한 장을 더 받아들은 아사야는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불안한 표정은 그의 손을 잡고 있던 사리에 공주의 얼굴에도 떠올라 있었다.



"춥지는 않으신 지요 공주님."


"네. 괜찮습니다."



어리긴 하지만 공주로 태어나 공주로 자란 아가씨다. 나름대로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



"제가 공주님을 지킬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아사야는 공주의 어깨에 둘러진 도톰한 망토를 좀더 여며주었다. 지난번의 사고를 길잡이 삼아 조금이라도 위험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준비한 물건이다.



"아사야."


"네. 사리예 공주님."


"아사야라고 불러도 되죠?"



애써 의연함을 보이려 했던 공주는 아무래도 불안했는지 조금은 어린아이다운 말투가 되어 있었다.



"물론입니다."



올해 열네 살의 사리예 공주는 영특하고 총명하다는 칭송이 자자한 귀여운 소녀였다. 특히 왕가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아 열 네 살의 나이에 왕립 마법학교에서 수석을 거듭하고 있는 재녀 중의 재녀였다.


이른 아침, 왕궁에 도착한 아사야의 앞에는 황송하게도 궁왕이 직접 나와 당부의 말을 건네 왔다. 어린 딸을 잘 부탁한다며 국왕은 아사야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미 첫 딸인 소이라 공주가 한번 실패한 일이다. 그 사지에 다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어린 딸을 보내야 하는 국왕은 왕으로서의 책임과, 아버지로서의 부성애 사이에서 외롭게 서 있었다. 아마도 국왕은 가슴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경우는 다르지만, 이미 아버님과 큰형님을 잃은 아사야는 국왕의 그 안타까운 마음을 너무나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자신의 옆에서 조용히 걷고 있는 사리예 공주가 소중하게 생각되었다.



"아사야는 무섭지 않아요?"


"무섭지 않습니다."



무섭기보다는 사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있었다.



"아. 발 밑을 조심하세요."



제르아의 말에 의하면 분명 이 안에서 지진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길이 조금 불편할 뿐, 지진의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찌된 것일까?'



아사야는 사리예 공주를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왕궁의 넓은 복도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밖에서 볼 때는 그리 큰 건물이 아니었는데 아마도 뒤의 작은 언덕과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원래는 동굴인 곳을 입구에 작은 입구를 만들고 마치 외궁처럼 보이게 꾸몄을지도 모른다.


이 안에 들어오면 어디로 어떻게 가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아사야는 전혀 듣지 못했다. 다만 작은 공주는 이미 모든 이야기를 들은 듯, 두려워하면서도 착실히 안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기예요."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자 커다란 공간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인간의 손이 닿은 듯, 또는 닿지 않은 듯, 묘한 공간이었다. 아사야는 재빨리 안을 둘러보았다. 사례첼 후작의 시신이 어디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조금 전 걸어왔던 그 길처럼 거칠지도 않고, 작은 돌멩이 하나 떨어져 있지 않다. 벽과 천장은 거칠게 깍아낸듯 했지만 바닥만큼은 깨끗하고 하얀 대리석이 둥그런 모양으로 깔려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석비 같은 것이 세워져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사리예 공주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 순간 이상한 소리가 아사야의 귀에 들려왔다.



『증명하라.』



귀울림일까 환청일까?



"사리예 공주님 들으셨습니까?"



갑작스런 아사야의 말에 공주가 뒤를 돌아다본다. 의아한 표정이다.



"네?"


"뭔가 소리가…."



그리고 다시 한번.



『증명하라.』



"지금 또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어딘가 다른 공간이 있는 걸까요? 설마 사례첼 후작님?"



사리예 공주의 말에 아사야는 황급히 주변을 살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의외로 어딘가에 다른 곳으로 통하는 비밀스런 문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벽을 두드리며 그 넓은 공간을 한바퀴 돌아도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환…청이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아니에요. 이곳…천장이 이렇게 둥글게 되어 있어서인지, 목소리가 울리잖아요. 그래서 뭔가 잘못 들었을 거예요."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럼."



후욱-하고 공주가 심호흡을 한다. 그녀는 어깨를 감싸고 있던 망토를 해치고는 허리에서 뭔가를 꺼내 손에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아사야는 반짝이는 짧은 검신을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사리예 공주님!!"


"괜찮아요. 죽거나 하려는 건 아니니까요. 보세요."



사리예 공주가 손짓을 한다.



"여기, 조금 핏자국이 있죠?"



공주가 가리킨 곳에는 정말로 까맣게 말라붙어 있는 핏자국이 있었다.



"이건, 고대의 주문이 새겨진 석판이에요. 여기에, 증거가 되는 피를 떨어뜨리면, 글자가 떠오른대요. 그것이 위저드 페이스의 봉인을 풀 수 있는 주문이라고 해요."


"그런…."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초대 왕비님은 세레스님의 피를 이은 자.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니까 무섭지… 않아요."



공주가 들고 있는 칼은 보기에도 예기가 서린 날카로운 칼이었다.



"소이라 언니도 하셨던 일이니까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칼을 들고 있는 사리예 공주의 손은 정말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그녀가 피를 본적이 있을까? 아마도 한번도 본적이 없을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자신에게 상처를 내는 행위 같은 것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보다 못한 아사야가 공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매우 송구스럽습니다만. 제가 해드려도 되겠습니까 사리예 공주님?"


"아사야."



그를 바라보는 소녀의 얼굴에 눈물이 가득 하다.



"많은 피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니 손가락 끝 정도면 될 겁니다. 이래봬도 기사입니다. 칼을 다루는 데는 공주님 보다는 전문이죠."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면 될 겁니다."



다른 경우였다면 이것은 불경죄에 해당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안해요 아사야."


"괜찮습니다."



피를 보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다. 그것이 인간의 피든, 몬스터의 피든. 상처를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상대가 인간, 그것도 사리예 공주라는 것이 조금 걸리지만, 어쩔 수 없다.


공주의 손에서 예리한 칼을 받아들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눈을 감으셔도 됩니다."



아사야 역시 마음을 굳게 먹고 공주의 새하얀 손가락에 날카로운 칼날을 데었다. 아야 하는 작은 신음 소리를 낸 공주가 살그머니 눈을 뜬다.



"많이 아프신 가요."



공주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대로 빨간 피를 석비의 윗면 평평한 곳 위로 치켜올렸다. 톡톡- 붉은 피가 평평한 면에 떨어졌다. 그것은 매우 신기한 볼거리였다. 그것을 볼거리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빨간 피가 몇 방울 떨어지자 석판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붉은 피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선이 되어 그 위를 흐르기 시작했다. 선은 곧이어 글자가 된다.



"주문이에요!"



기쁜 듯한 공주의 목소리에 아사야도 감격했다. 성공인 것이다!


공주는 천천히 빨간 글자들을 읽어 내렸다.



"여기. 세레스의 후예가 계약에 따라 왔으니, 그대 피의 계약을 기억하고 눈을 뜨라. 봉인 해제."



짧은 주문이었다. 주문의 영창이 끝나자 석판 위의 글자들이 춤을 춘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하나의 선이 되어 조그만 홈을 따라서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희미하게 빛나던 석판은 다시 빛을 잃고 주변이 조용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죠?"



아사야에게 물어도 그가 어떻게 된 것인지 알 리가 없다.



"분명히 주문을 외우신 거죠? 공주님."


"네. 하지만."



당황한 공주가 울음을 터트리려 한다. 순간,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설마!!'



쿠르르릉 하는 소리가 넓은 공간에 울려 퍼진다. 아사야는 황급히 망토자락으로 공주를 감싸고 그 자리에 엎드렸다. 쿠르릉 소리는 점점 커져 귀를 울리고 온 몸을 흔든다.



"큭--."



뒤에서 돌덩이가 떨어져 내려는지 날카로운 아픔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어 크고 작은 돌이 우수수 떨어진다. 간신히 지탱하고 있던 몸이 옆으로 쓰러질 정도로 강력한 지진이 두사람을 덮쳤다.



"캬아아아아아!!!"


"----!"



품에 안은 공주를 더욱더 힘껏 끌어안으며 아사야는 몸을 웅크렸다. 실패하더라도 어린 공주를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공주의 호위기사로 왔다. 설사 그가, 제르아 형님처럼 불구의 몸이 된다해도 목숨을 바쳐 구해야 했다.


순간, 아사야의 머릿속에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거나 죽을 고비를 넘길 때 떠오른다는 과거의 기억이 바로 이런 것일까? 아버지와 형제, 그리고 사히드, 그리고 그와 함께 목숨을 의지하여 싸웠던 기사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스쳐 지나간다.


지진은 더욱 심해지고, 몸을 덮치는 돌들의 무게가 크기가 점점 커지는지 고통이 심해진다. 눈을 꼭 감은 그의 얼굴 위로도 날카롭게 쪼개진 돌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죽을 순 없어! 살아 돌아가겠다고 맹세했어!!'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흔들리던 지면이 우뚝하고 멈추었다. 마치, 지진이라고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양,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주변이 고요해진다. 지진이 있었다는 흔적은 오로지 주변에 떨어져 있는 낙석들 뿐.


아사야는 살며시 눈을 떴다. 온몸이 아프지만, 어디가 부러지거나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품안의 공주가 무사한지 살폈다. 지진의 충격 때문에 정신을 잃은 공주가 힘없이 늘어져 있다.



"공주님! 사리예 공주님!!"



어깨를 흔들어 그녀를 깨우려하지만 사리예 공주는 좀처럼 눈을 뜨려하지 않는다. 순간 그녀의 얼굴 위로 붉은 피가 떨어져 내렸다.



"공주님?"



순간 공주가 다친 건가 해 새파랗게 질렸던 아사야는 곧 그것이 자신의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라는 것을 알아채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신을 잃긴 했지만 특별히 어디를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공주님. 사리예 공주님."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공주는 눈을 뜨지 않는다.



"이런…."



결국, 사리예 공주도 실패를 한 것이다.



"젠장!! 젠장!!! 빌어먹을!!!"



아사야는 바닥을 내리치며 고함을 질렀다.



『어리석은 인간.』



순간, 낮은 목소리가 귀를 스치고 지나간다. 이번에는 정말로 귀울림 같은 것이 아니다. 그 목소리는 낮고 흐릿하지만 똑똑하게 아사야의 귀에 들려왔다.



"설마…."


『그 아이에게는 자격은 있으나, 능력이 부족했다.』



이번에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까지 확실히 느꼈다.


고개를 들은 아사야는 심장이 멈출 것 만 같은 충격을 느꼈다.



『어리석어.』



"당신은…."



희미한 인간의 형체가 석비 위에 떠올라 있었다. 흐릿하긴 했지만 새카만 옷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사야의 시선이 그의 몸을 따라 올라갔다. 순간, 새파란 안광이 아사야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청안의 위저드!"



『맞아. 그렇게들 불렀지.』



"보, 봉인이 해제 된 겁니까?"



풋-하는 웃음소리가 들린 기분이다. 실제 그의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감촉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족하다고 말했을 텐데?』



"하, 하지만 그럼 어째서."



스으윽--하고 공중에 떠 있던 형체가 바닥으로 내려온다.



『수고를 끼치지 마라.』



"……."



『일어서라.』



그 목소리는 마치 절대적으로 따라야할 명령처럼 들렸다. 아사야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자격을 증명해라.』



그 새파란 눈동자가 아사야를 사로잡고, 그의 말에 따르게 한다.


바닥에 떨어진 돌들 사이로 걸음을 옮긴 아사야는 석비의 앞에 섰다. 청안의 위저드 페이스의 형체는 아사야의 바로 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다.


그의 희미한 손이 아사야의 이마 쪽으로 다가왔다.



『나의 계약은 피의 계약.』



다시, 감촉으로 느낄 수 있는 웃음이 온몸을 덥치고, 그리고 스쳐지나간다.


아사야는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것처럼, 이마에 손을 댔다. 뜨거운 피가 그의 얼굴 반쪽을 적시고 있었다. 흠뻑 젖어버린 손을, 아사야는 무의식중에 석판에 올렸다.


아사야의 시선은 새파란 눈동자에 고정된 채 그 어느 곳에도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손아래에서 그가 흘린 피가 글자의 모양이 되어 가는 것도 그는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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