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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라몬티] 그림자의 주인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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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편/키아라몬티] 그림자의 주인 1부

    루하 03-13 15:57 | HIT : 2,561

    작가님 메일은 [email protected] 이며,

    아래는 허락메일의 내용 일부입니다.

    얼마 전 문의 메일을 받아 보니,

    소설을 못찾아서 발췌만 보고 가예약을 해 주신 분이 있더라구요.(이렇게 은혜로우실수가;;;)

    또 완결란에 없어서 못봤다는 분도 계시고 해서,

    그간의 게으름을 떨치고(네, 파천나태권을 12성 대성할 수는 없는 팔자인가 봅니다;)

    1부 완결본을 보내드립니다.

    현재 퇴고 중간이라 어떨지 모르겠네요.

    -비문, 오타를 찾는다고 찾았는데 계속 보이다니, 너는 양파인 것이냐(혼자 버럭했지요;)-

    바쁘시겠지만 야밤동과 마유동에 완결을 올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애착이 많이 가는 글이라 소장본계획까지 덜컥 세웠는데

    여러 분들을 귀찮게 하는 것 같습니다.ㅠㅠ

    덕분에 요즘 조마조마하고 두근두근하고 그러다 가슴이 바짝바짝 타는 것 같기도 하고.....그러네요^^

    (중략)

    +++++++++++++++

    - 이 여진을 살려 주십시오.

    - 제발 이 여진을 살려 주십시오.

    - 제발 이 불쌍한 여진을.......

    수피아족의 최고 장로는 난감했다.

    청년이 데려온 여인은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팔 다리는 멍이 들고, 크고 작은 생채기를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하혈을 한 흔적도 있다. 피가 흐르다 흙먼지와 엉겨 붙었는지, 몸을 휘감고 있는 찢어진 천 자락은 이런 저런 얼룩으로 가득했다. 산발을 한 머리카락과 피와 땟물로 지저분한 얼굴. 느리고 약한 가슴의 기복으로 간신히 자신이 죽지 않았음을 주장하는 여인의 몸은 언뜻 보기에도 무슨 일을 당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청년의 초췌한 상태로 보아 이렇게나마 여인을 데려오기 위해 모든 힘을 쏟은 것이 분명했다. 어서 환자를 치료 해주고 안정시켜야 하겠지만 문제는 이 환자를 데려온 인물이다.

    - 이 여진을 살려주십시오.

    할 줄 아는 말이 한가지인양 계속 같은 말만 중얼거리는 청년만 아니었어도 최고장로는 벌써 저 여인을 안으로 들였을 것이다. 그것은 최고장로 근처에 위치한 다른 수피아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장로 근처의 몇몇은 분함을 참지 못한다는 듯 눈을 부라리기까지 했다. 어떤 이는 이를 갈면서 입안으로 욕설을 웅얼거리기도 한다. 나머지 영문을 모르는 이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선뜻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심각한 상처로 정신을 잃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짓이 야박하다고 소리칠 만도 하건만 청년은 요지부동이었다.

    - 이 여진을 살려주십시오.

    한 가지 말만을 되풀이하는 청년의 태도에 최고장로의 입가가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 비록 자애롭고 영민하신 수피아의 피를 이어받아 감히 나 같이 우매한 늙은이조차 수피아로 이름불릴 수 있다는 것을 자부하나, 배덕자에게 베풀 친절까지는 물려받지 못했소. 분명 이 늙은이 독단으로 상처받아 아픈 여진을 방치하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중죄요. 허나 그대가 데려온 여진이라면 얘기가 다르리다.

    가시가 있는 최고장로의 말에 수피아의 젊은이들은 웅성거렸다.

    배덕자.

    끈끈하고 깊이 있는 유대감을 가진 수피아족에게 배덕자란 금기시되는 단어였다. 그만큼 단어는 존재하되 단어가 가리키는 실체는 존재하기 힘든 것이 바로 배덕자였다. 그럼 정말 우리 수피아에 배덕자가 존재했던 것인가? 배덕자란 단지 수피아림의 수많은 전설에나 나오는 자가 아니던가? 젊은이들은 수척해 보이는 청년을 새로운 눈으로 예의주시했다.

    청년은 숲의 가장자리, 즉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밀림-수피아림의 입구에서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안하고 버티고 있었다. 겨우 세 사람 정도 앉을 만한 공터에 정신 잃은 여인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그 옆에 자리한 청년으로 인해 숲의 입구는 막혀 있었다.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수피아족에게 있어 숲의 입구란 침입자들에 대한 공격과 방어가 최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하나의 점, 또는 외부를 살피기에 가장 적절한 점을 의미한다. 여인을 기대 놓은 나무는 이 근방에서 가장 크고 나뭇가지가 튼튼한 흑단나무이다. 그리고 저 청년으로 인해 현재 여인이 기대어진 나무 위에 있는 한 수피아의 젊은이는 불안한 듯 아래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배덕자가 입구에 도착해 농성을 벌일 때까지 저지하지 못하다니 이건 근무태만이나 마찬가지다.

    - .......여진입니다. 제가 받아야 할 벌을 이 여진까지 받을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

    - 한낱 배덕자로 인해 고귀한 여진마저 피를 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저는 더 이상 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여진을 살려주십시오.

    가뜩이나 간첩이랍시고 여기저기서 부랑자를 가장해 보내오는 여인들로 인해 수피아족은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거기다 또다시 군대를 일으킬 생각을 하는 저 오만한 아카로시스로 인해 수피아림 전체가 술렁이는 요즘이다. 최고장로는 반갑지 않지만 동시에 청년을 반길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을 잠시 저주했다. 일부러 지금 찾아온 것이 아닐까 의심할 만큼 청년이 수피아족을 찾아온 시기는 적절했다. 수피아족은 지금 이 청년이 너무나도 필요했다.

    - 여진을 안으로 들여라.

    - 하지만 장로님!!!

    - 그리고 감시를 덧붙이도록. 아, 영주(影主)는 잠시 이 늙은이 좀 봅시다.

    주위를 둘러싼 몇몇에게 빠르게 지시를 내리고 호기심 어린 젊은이들의 불만도 일축한 최고장로는 아까부터 흑단나무 뿌리근처에서 움직이지 않는 청년에게 대화를 청했다. 기절한 여인을 부축하고 새벽이슬에서 보호하려는 듯 동물가죽으로 여인의 몸을 감싸는 등 잠시 부산스런 몸놀림들이 있었다. 청년은 미동도 하지 않고, 심지어 감사의 말조차 없었다. 하지만 예의를 모르는 뻔뻔한 자의 기색을 찾기는 힘들었다. 오직 지독하게 지친 눈동자로 바닥을 음울하게 비추고 있을 뿐이었다.

    - .......말씀하십시오.

    - 일단 올라오셔야 하지 않겠소?

    - 이대로가 좋습니다.

    수피아족은 나무 위에서만 생활한다. 저렇게 혈기왕성한 청년의 경우에는 땅을 딛는 것을 수치로 여기기도 한다. 젊은이이면서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마냥 거칠기만 한 밀림의 땅을 밟는 자는 수피아족 중에는 죄인 밖에 없다.

    최고장로는 낮게 혀를 찼다. 눈앞의 청년은 죄인을 자처하고 있었다. 세월이 주는 무게만큼의 진중함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좀 전에 청년에게 화를 내버린 자신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 내가 마음의 수련이 부족했나 보오. 배덕자라니, 듣기 마뜩치 않았을 텐데 늙은이 노망이라 여기고 일어나십시다.

    - 아니, 배덕자가 맞습니다.

    - .......예담 야난.......

    최고장로의 입에서 그리운 단어가 흘러나왔다. 예전에는 이렇게 딱딱하게 예의를 차리지 않았었다. 그림자의 주인도 저렇게 장성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수피아족의 삶의 터전인 밀림, 수피아림. 그리고 그 수피아림의 수호자인 그림자와 그들의 주인. 천재 영주를 맞이했던 날 그들은 기쁨에 겨워 들떠 있었고 온 수피아족은 축제분위기였다. 오랜 전설과 똑같이 어린 나이에 그림자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그림자의 새주인은 변성이 지나지 않아 좀 더 가녀린 목소리와 덜 자란 어깨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수피아족의 자랑이자 상징이었다. 저 욕심 많고 지칠 줄 모르는 아카로시스로부터 종족을 지켜낼 수 있는 희망이었다. 손자와 비슷한 나이인 그런 영주를 보며 넉넉하게 웃음 짓던 때가 있었다.

    - 저는 배덕자가 맞습니다.

    - .......

    - 숲을 못보고 나무 한 그루만 보았습니다. 어리석게 수피아림을 등져 버렸던 제 스무 살을 원망합니다. 이 어리석은 아들 때문에 상처 입은 형제들이 많겠지요. 그런 형제를 품으신 우리의 어버이 수피아림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속으로 삭이셨을는지요. 부디 어버이께 조금이라도 용서를 빌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까부터 간신히 주저앉아 있는 듯 보이던 그는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밀림의 습한 흙에 천천히 이마를 갖다 대며 몸을 떨었다. 웅크린 그 몸을 찬 새벽의 공기가 짓눌렀다. 청년은 그렇게 자신의 고향인 밀림을 향해 엎드렸다. 눈물조차 내비치지 못하고 있지만 최고장로는 그가 오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청년은 거친 호흡을 내뿜는 대지 위에 무릎 꿇고 이마를 대어 수피아족이 어버이라 믿는 그들의 터전, 밀림을 향하여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었다.

    밀림에서만 사는 수피아족, 그들의 자부심이자 전설인 그림자의 주인이 돌아온 어느 새벽의 일이었다.

    ***

    진양은 왼손에 덩굴줄기를 휘어 감고, 나무 아래로 뛰어내려 상대 병사의 얼굴에 검을 박아 넣었다. 미처 피가 튀어 오르기도 전에 덩굴의 탄력을 이용해 건너 나뭇가지로 몸을 옮긴다. 화살이 날아와 스치지만 진양은 유유히 높은 나뭇가지 위로 안착했다. 전형적인 수피아 전사의 공격 방법이다.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 화살 조준을 할 수 없는 것에 아카로시스 제국의 정벌군은 분통을 터뜨렸다.

    제국군은 너무 무모했다. 아무리 숫자로 밀어붙여도 나무 위를 날아다니다시피 하는 수피아족을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화살을 쏘아 대도 빽빽한 수목에 막히고 덩굴줄기에 걸려 수피아족을 맞추지는 못했다. 심지어 화살에 쓰러진 적을 생포하는 것조차 요원했다. 쓰러진 적에게 달려가 포박하기도 전 다른 수피아족이 뛰어내려 부상당한 동료를 구해 나무 위로 피신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울창한 수목이 뒤덮인 수피아족의 터전은 어마어마한 넓이의 밀림으로 제국의 가장 남쪽 국경과 맞닿아 있었다.

    짙푸른 녹음만이 우거진 대륙의 남단을 수피아족은 수피아림이라 불렀다. 크다 못해 거대해서 기가 질리는 상록활엽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찬 곳이다. 교목들 사이로는 관목들이, 그 사이로는 다시 덩굴들이 나무를 휘어 감았다. 온갖 식물들과 이름 모를 곤충, 짐승들이 들어찬 밀림이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었지만 수피아족이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것은 무려 천 년도 더 된 일이다. 작은 오솔길조차 없는 밀림에서 자유로이 활동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수피아족뿐이었다.

    이 거대한 밀림은 수피아족에겐 생명의 땅이었고 제국군에겐 죽음의 땅이었다. 일단 길도 없는 숲으로 발을 내딛기만 하면 덩굴줄기에 얽힌 돌멩이와 나무창이 날아들었다. 정벌군도 화살을 쏘아 대지만 맞고 아래로 떨어지는 수피아족은 극히 미미했다. 보통사람에겐 까마득한 높이인 나뭇가지 위를 자유로이 타고 다니는 수피아족은 쉬이 화살에 맞아주지 않았다. 같은 원거리 무기였지만 더 발달하고 살상력이 높은 제국군의 화살은 어쩐지 제 기능을 잃어버린 듯 했다.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소수로 싸우는 수피아족 전사는 제국군의 누구보다도 강력했다.

    밀림의 초입인 흑단나무숲에 제대로 들어서기도 전에 부상당한 병사들의 수가 쌓이자 이번 제 7차 수피아족 정벌군의 총사령관인 듀테론 황자는 다른 패를 꺼내 들었다.

    곧 정벌군의 하급 병사들은 덩굴에 묶인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창에 손이 꿰뚫리면서도 도끼질로 오직 나무만을 쳐내기 시작했다. 도끼질을 하는 병사들의 뒤에서 정벌군 궁수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활시위를 당겼다. 하지만 싸움에 유리한 위치를 가진 수피아족 전사들은 화살을 피해 밑으로 돌과 나무창을 날렸다. 이에 병사들은 속절없이 쓰러졌다. 인간의 힘으로 쓰러트리기에는 밀림의 나무들은 너무 크고 우람했다.

    하지만 엄청난 병사들의 희생으로 마침내 숲의 가장자리 나무들이 차례로 쓰러져 갔다. 밀림의 거대한 생명력을 흡수하던 나무가 하나, 둘 쓰러지며 서서히 공터가 만들어 졌다. 결국 수피아족은 쓰러지는 나무를 피해 좀 더 숲의 안쪽으로 몸을 옮겼다. 나무 위를 옮겨 다니며 전투를 하는 수피아족 전사들에게 나무가 없는 공터는 불리했다.

    휙휙-.

    바람소리를 내며 몸을 날리는 나무 위의 전사들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이 날아든다.

    "아주 발악을 하시는군."

    미친 듯이 도끼질을 하는 병사를 내려다보며 한 수피아 전사가 입을 열었다. 그는 대담하게도 병사가 도끼질을 하는 나무의 나뭇가지에서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두 발만을 나뭇가지에 대고 팔짱을 낀 남자는 정찰부대 전사 제륜이었다.

    "그렇지 않아? 야난?"

    "그러게요. 나무가 쓰러지는 속도보다는 우리가 피하는 것이 훨씬 빠를 텐데."

    대답을 한 청년은 같은 나무의 다른 나뭇가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높은 나무 위에 서 있었지만 더없이 안정되어 보였다. 유난히 검은 머리칼에 흰 얼굴의 그는 전사라기에는 좀 마른 감이 있었지만 골격을 감싼 근육들은 실전무예를 효율적으로 펼칠 수 있도록 적절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눈매가 속내를 짐작하기 힘들어 보였다.

    허리춤에 찔러 둔 나무창을 뽑아 든 그는 별 다른 조준도 없이 아래로 창을 던졌다. 나뭇잎을 찢고 잔가지를 부러뜨리며 무서운 속도로 창이 날아갔다. 가벼운 나무창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속도였다. 두려움과 다급함이 뒤섞인 몸짓으로 도끼질을 하던 병사는 어깨에 갑자기 꽂힌 나무창에, 비명을 지르며 나무에서 떨어져 나갔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들이 악을 쓰며 병사들을 정렬시킨다.

    "허드슨, 됐어. 뒤로 빠져 치료해!!"

    "이봐, 거기. 방패로 옆 친구 머리 가려 줘야지!!!"

    "돌이 위에서 날아온다. 머리를 조심해~!!!!"

    "도끼 말고 톱 가진 사람 없나?!"

    두 수피아족 남자는 기울어지기 시작한 나무에서 좀 더 뒤에 있는 나무로 몸을 날렸다. 흑단나무의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숨어 있던 몸이 드러나자 도끼질하던 한 병사가 참지 못하고 도끼를 날린다.

    "크아아악, 저 죽일 놈들!!"

    도끼는 엉뚱한 나무의 줄기에 박혔을 뿐이다.

    "이 자식, 도끼를 던지면 어떡해?"

    "저 원숭이 새끼들 좀 보세요. 대 놓고 우리를 비웃는단 말입니다!! 허드슨 어깨에 창 던진 것도 분명 저 자식들......."

    "그만 뒤로 빠져 있어, 해리. 다음 교대!!"

    시끄러운 상황에도 냉정하게 조준을 하고 있던 제국의 궁수들은 화살을 날렸다. 공중으로 뛰어올랐던 제륜과 disks은 화살비를 피해 다른 나무의 가지에 안착했다. 심지어 야난은 등 뒤의 나무로 뛰어 오르면서도 앞을 주시하며 화살을 쳐내는 묘기까지 보였다.

    "여전하시우, 영주(影主)?"

    건들거리는 목소리의 또 다른 청년이 야난이 서있는 나뭇가지로 옮겨 왔다. 장성한 사내라기에는 조금 앳된 얼굴이었다. 아까 덩굴에 몸을 휘감고 제국군 병사를 해치우던 돌격부대 전사 진양이었다.

    "영주는 다 그렇게 나무를 잘 타나? 영주를 보면 아카로시스 돼지들이 왜 우릴 원숭이라고 하는지 알겠수다. 킥킥킥킥."

    비꼬는 듯한 말투와 영주라는 호칭에 야난은 잠시 진양에게 눈길을 돌렸다. 갓 전사가 된 진양은 야난에게 적의와 시샘이 강하다. 왜 이 형제는 전쟁 중에도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적을 앞에 두고 분열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좋은 분위기는 아니다.

    "진양. 버릇없게 그게 무슨 소리야?"

    제륜이 점잖게 나무란다. 야난을 꼬박꼬박 영주라고 부르면서, 그 이름에 걸맞은 대우를 하지 않는 이 철없는 전사는 아직 세상사는 법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숨겨진 영주의 힘을 제대로 알면 저렇게 버릇없게 굴지는 못할 텐데. 거기다 야난은 전설에나 등장할 법한 천(千)의 영주였다.

    하지만 스무 살 전후의 혈기왕성한 사내아이들은 전설보다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폭발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믿기 때문인지 수피아림에 복귀한지 이제 겨우 몇 개월이 지난 야난을 쉬이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나무 타는 것이 아주 빨라서 빠른 몸놀림이 주특기인 정찰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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