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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몽채화] 나비야이리날아오너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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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님의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져갔다.

    서릿발 같은 그 눈초리 때문에 나는 차마 힘들다는 내색도 하지 못하고

    잠자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건 단지 내 잘못으로 넝마조각이 되어버린 도련님의 비단저고리 때문에

    비롯된 분노 같지는 않았다.

    내일은 이 집 주인 나리의 첩이 도착하는 날이었다.

    도도하고 인정 없기로 소문난 마님의 성격상,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대부의 아녀자가 한낱 질투를 할 수는 없는 일.

    마님은 승상 나리께 대놓고 불평을 늘어놓지는 못하고,

    애꿎은 나에게 그 화풀이를 하고 계신 게 분명했다.

    "침모 (남의 집에 매여 바느질을 맡아하고 일정한 품삯을 받는 여자) 딸이라 믿고 맡긴 게

    실수였구나. 그 비단이 얼마짜린지 알기나 하느냐?"

    결단코 모른다.

    단지 내가 눈치 챌 수 있는 건,

    내 몸을 팔아도 그 비단 값에 못 미칠 거라는 사실 정도였다.

    이럴 때는 그냥 납작 엎드려 용서를 빌어야 했다.

    하지만 거대한 물동아리를 들고 벌을 서고 있는 와중에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이미 힘을 잃어버린 내 팔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고,

    물동에 찰랑찰랑 담겨있던 차가운 물이 내 등줄기로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네 년은 평생 종살이를 시킬 수밖에 없겠구나."

    이 거대한 자택의 침모였던 엄마는 3개월 전 이름 모를 병을 앓다 돌아가셨다.

    우리 집안은 평범하게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민초 중 하나였으나,

    전염병 때문에 돌아가신 아버지 때문에 엄마는 홀로 나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그나마 어렵게 닿은 연줄을 타고 승상 댁의 침모로 들어올 수 있었고,

    천한 종의 신분은 아니었던 탓에, 마님은 그럭저럭 우리를 대접해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내 신세는 단번에 천덕꾸러기로 변해버렸다.

    얌전하게 바느질 하는 방법은 배울 생각도 하지 않았던 터라

    마님이 믿고 맡긴 저고리 손질을 엉망으로 망쳐버렸다.

    구차하게 변명도 할 수 없을 만큼 넝마가 되어버린 저고리는 내가 봐도 한심할 정도였다.

    이 집의 하나뿐인 도련님이 입는 저고리는 이 나라에서 가장 비싼 비단으로 만든 것이었다.

    거지나 입을 것 같은 그 거적 떼기를 마님 앞에 공손히 바쳤을 때,

    나에게 돌아온 것은 거대한 물동아리와 따가운 눈초리와 멈추지 않는 불호령뿐이었다.

    그동안 엄마의 바느질 솜씨 덕분에 먹이고, 입히고, 재워왔지만

    이제 나는 마님에게 잘 하는 것도 없고 귀찮기만 한 눈엣가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번에 종년으로 전락해버릴 내 위치를 생각하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새 침모를 구하던가 해야지. 덕구야, 얼른 장에 가서 비단 한 필만 사오너라."

    분노 때문에 벌겋게 변한 얼굴로 마님이 덕구 아저씨를 찾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그 살얼음판에서 벗어나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마님은 곳간 앞에서 비질을 하고 있을 덕구 아저씨를 찾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

    곧 마님이 돌아와 나에게 호된 잔소리를 퍼부을 걸 잘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물동이를 들고 있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동이를 내려놓기 위해 아까부터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팔의 힘을 약간 풀었다.

    하지만, 팔꿈치를 살짝 굽히는 동시에 모든 힘이 풀려버린 팔은 무게중심을 잡지 못하고

    물동이를 바닥에 떨어뜨려 버리고 말았다.

    무지막지한 파멸음과 함께 처참하게 박살난 물동이의 날카로운 파편이

    무릎을 꿇고 있던 내 옷 위에 흩어 진 것은 둘째 치고,

    물동이에 가득 담겨있던 물이 내 옷을 흠뻑 적신 것도 둘째 치고,

    이 광경을 마님께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어차피 깨진 물동이, 혼날 것은 각오하고 재빨리 뒷수습부터 해놔야만 했다.

    나는 울상을 짓고 물동이의 파편조각을 정신없이 주워댈 수밖에 없었다.

    날카로운 사금파리에 찔린 손가락들 사이에서 피가 줄줄 새어나오는 것은 아랑곳 않고.

    마님의 매질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깟 상처쯤 무심하게 넘겨버릴 수 있었다.

    "나비야."

    그 때, 지금 막 대문에 들어선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도련님이었다. 걱정 어린 눈빛으로 인상을 찌푸리며, 그는 내 행색을 바라보고 있었다.

    늙은 승상 나리의 하나뿐인 아들, 박한주. 올해로 열일곱 살.

    혼례를 치루기에 적은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도련님의 혼례가 조금 늦춰진 것은,

    승상 나리가 이번에 새로 들이는 첩실 때문이었다.

    승상 나리가 아무리 딱히 정해진 혼례 절차 없이 첩실을 맞아들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비와 아들이 같은 시기에 사람을 맞아들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서두를 것은 없었다.

    도련님은 대사농(재무장관에 해당하는 직책) 댁의 아가씨와

    이미 혼약이 되어 있는 상태였으니.

    "어찌 이랬어."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파편을 치우는 내 손길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하얀 비단 옷자락이 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순간, 한숨을 깊이 내쉰 도련님이 다짜고짜 내 손을 휙 낚아챘다.

    "도련님, 마님 아시면 또 난리 나요. 놔주세요."

    도련님이 나보다 한 살 위인 탓에, 우리는 거의 같이 성장해왔다고 봐도 무방했다.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뛰놀 수 있는 형제가 없는 도련님은 언제나 남매 같은 정을 내게 쏟아 붓고 있었다.

    마님은 언제나 그 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 때문에 나를 싫어하시는 것도 같았다.

    "피가 나지 않느냐."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님 곧 오실 거예요. 천한 몸에 손대시면 안 됩니다."

    내 말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도련님은 품 안에 있던 비단손수건을 꺼내 내 손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이제 정말 비단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조심성 없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건 심하지 않느냐."

    곱고 하얀 얼굴선, 따뜻함을 가득 담고 있는 눈빛, 부드러운 웃음.

    그 말간 얼굴과 마주하고 있는 것도 죄악이기에, 나는 서둘러 고개를 숙여버렸다.

    "나는 너에게 다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린 시절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도련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입고 있는 옷이 다르고, 평소 먹는 음식이나 받는 교육조차 달랐지만

    그건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다.

    언덕을 뛰어다니고, 꽃을 구경하고, 개울을 바라보고.

    자연을 벗 삼아 놀기만 해도 한없이 모자란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도련님의 혼기가 차오를수록, 나는 그에게 다가가는 게 겁이 났다.

    미천한 신분으로 그의 앞에 나설 자격은 없었다.

    때문에 아무 대가없이 베푸는 그의 친절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또 무슨 일 때문에 이러고 있었느냐?"

    비단 손수건을 내 손에 칭칭 동여매 준 도련님이 나를 향해 물었다.

    "저기, 도련님 비단 저고리를 제가 망쳐놔서, 내일 작은 마님한테 인사 올릴 때 입을 옷인데."

    승상 나리는 새로 들이는 첩실에게 '작은 마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라고

    누누이 일러두신 상태였다.

    물론 그 호칭을 큰 마님 앞에서 사용하는 즉시,

    돌아오는 건 호된 매질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하인들은 알아서 눈치껏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승상 나리는 그 첩실에게 푹 빠진 상태였다. 혼기가 찬 아들의 혼례조차 미뤄둘 만큼.

    "겨우 저고리 하나 때문에."

    도련님은 어이없다는 듯, 설핏 웃음을 지었다.

    "어머님 심기가 많이 언짢으신 모양이구나."

    ".........."

    "들어가거라. 계집아이가 젖은 옷을 입고 나다니면 안 되느니."

    "아니요, 도련님. 저는......"

    아직 마님의 벌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은 그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 뻔했다.

    "됐다, 내가 책임지지."

    나비. 그것이 내 이름이다.

    볼품없이 깡마른 열여섯 살 침모의 딸에게 도련님이 베푸는 친절은 어떤 종류의 감정일까.

    애정도, 우정도 아닌 한낱 동정인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엄마의 조언을 너무 잘 기억하고 있는 탓에,

    나도 도련님께 별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다.

    "나비 네 이년,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저지른 게야!!"

    그 때, 멀리서 마님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쪽으로 걸어오는 마님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물동아리를 깬 것도 모자라, 도련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마님을 화나게 한 모양이었다.

    나는 서둘러 비단 손수건이 감긴 손을 뒤로 감추었다.

    이것까지 마님 눈에 보이면 당장 짐을 싸들고 쫓겨나야 할지도 몰랐다.

    작지만 평화롭고 상권이 발달한 이 연희국(演熹國) 안에서,

    내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승상 나리의 그늘 아래 몸을 의탁하는 것뿐이었다.

    "이젠 비단 뿐만 아니라 물동이까지 망치는구나!! 내가 오늘 네 년의 정신머리를

    고쳐주겠다. 일어나, 광으로 가자."

    광 안에 갇혀 정신없이 얻어맞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졌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마님께 맞은 게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당할 때마다 아찔할 정도로 무서운 공포감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마님께 한 번 얻어맞고 나면 며칠은 앓아누워야 할 정도로 폭력의 정도는 심각했다.

    마님의 화를 더 돋우지 않기 위해 손을 등 뒤로 숨기고 비단 손수건을 풀어내려 했을 때,

    "제가 물동이를 깼습니다, 어머님."

    도련님의 부드러운 음성이 바람결을 타고 내 귀에 흘러들어왔다.

    아들이라면 껌뻑 죽는 마님이 순간 멈칫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아이를 놀려주려 물동이를 세게 밀었는데, 그만 바닥에 떨어져버렸습니다."

    평소 점잖은 도련님은 절대 그런 행동을 일삼지 않았다.

    마님도 평소 도련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아들이 천한 년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불쾌하신 모양이었다.

    하지만 도련님의 말을 믿지 않고 막무가내로 나를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귀한 몸인데 조심 좀 하지 그랬느냐. 천한 년과 놀아나는 행동은 삼가라."

    "명심하지요."

    연희국은 세습(가문에 속하는 신분, 재산, 직업 등을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일) 제도를

    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련님은 당연히 귀한 몸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앞으로 승상 나리가 될 몸이었던 것이다.

    "나비 너."

    마님의 매서운 눈초리가 다시 나를 향했다.

    도련님이 쥐어준 비단 손수건을 등 뒤에서 만지작대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별당에서 일해라."

    별당에서 일하라는 건, 앞으로 작은 마님을 모시라는 의미였다.

    마님은 나를 도련님 눈앞에서 치워버리기 위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 셈이었다.

    "역겨운 첩실을 모시는 건 골칫거리인 너 하나로도 충분하겠지."

    별당은 도련님이 거처하는 방과 가장 멀리 떨어져있었다.

    새로운 주인을 위해 단장을 마친 별당은 승상 나리의 관심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지금 마님은 거대하고 화려한 별당의 주인, 작은 마님을 나 혼자서 모시라고 했다.

    결국 나는 혼자서 작은 마님의 수발을 들고, 그 수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건 평범한 종살이보다 더한 고생이었다.

    작은 마님의 성품이 온화하지 못한 경우,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얻어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될 수도 있는 것이다.

    마님은 스스로의 생각에 흡족한 듯, 미소를 보이며 뒤돌아 발을 옮겼다.

    도련님은 살짝 미소를 보이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거라."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차마 도련님의 손을 마주 잡을 수는 없었다.

    나는 물에 젖은 땅바닥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비단 손수건이 피와 흙에 젖어 엉망이 되어있었다.

    "손수건은 깨끗이 빨아서 드릴게요."

    손수건 따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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