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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밀]황제를훔친소녀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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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회: 1화 -- >

    [황제를 훔친 소녀]

    written by. 윤밀

    창백한 손이 부드러운 스카프위에 머물렀다. 작년 아버지의 생일 파티때 그에게 주었던 스카프였다. 단순한 생김새를 좋아했던 그를 위해 푸른 스카프위에는 어떤 무늬도 없었다.

    허나 어제 끔찍한 전갈과 함께 내가 받은 스카프에는 생전 보지 못했던 무늬가 생겨나있었다. 붉게 튀어 점점으로 물들은 자욱들에 아찔한 감각이 머리를 뒤흔든다. 이것이 정말 아버지의 피란 말인가. 나는 하루아침에 고인이 된 아버지의 스카프를 껴안고 흐느꼈다. 어째서 그는 이런 위험한 전쟁에 참가했단 말인가. 나에겐 왜 그의 참전에 대한 귀뜸하나 오지 않았던가.

    믿을 수 없는 그의 죽음 앞에 울음밖에는 터져나오지 않는다. 그러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다. 어두운 저택 안에서 등불도 없이 거닐고 있었다. 마침내 내 앞에 멈춰선 이는 내가 익히 봐왔던 얼굴이였다. 나와 같은 흑색의 머리카락. 다만 다른 것은 붉은 눈동자.

    "바라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남동생의 옷자락을 잡았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나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그를 붙잡고 뒤흔들며 울부짖었다.

    "대체, 왜 아버지가! 어째서 아버지는 홀로 전쟁터에 가신 거지? 왜 나에겐 알리지 않은 거야! 바라한, 넌 알고있었을 거 아냐. 어째서...!"

    "에델."

    그가 옷자락을 잡고 있던 나의 손을 떼어내었다.

    "조용히해."

    난 한 순간 멍해졌다. 얼간이 같은 표정으로 남동생을 멍청이 쳐다보기만 했다. 바라한은 얼핏 조소가 섞인 목소리였다.

    "그렇게 흥분하지마. 무엇이 잘못됐지?"

    "무엇이 잘못됐냐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지 몰라서 그래?"

    "잘 알고 있어. 네 아비가 죽어 슬프다 투정부리고 있는 거잖아."

    "뭐라고?"

    그건 결코 친 아버지를 두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바라한의 얼굴은 처음보는 사람의 것 같았다.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내 남동생은 생전 이런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과묵했지만, 겸손하며 가족을 배려하는 동생이었다. 말수는 적으나 속이 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나는 분노에 차 오른손을 휘둘렀다. 소리가 나도록 세게 뺨을 맞았건만, 바라한은 화도 내지 않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엇다. 호흡이 가빴다. 일그러진 내 얼굴을 보며, 그가 맞은 뺨을 천천히 매만진다.

    "네가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진작 그렇게 하지 그랬어. 그랬다면 아버지가 죽지 않아도 됐었을텐데."

    "뭐?"

    "그가 왜 죽었는지 알고 싶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한 순간에 벽으로 몰아붙여졌다.

    "윽!"

    부딪힌 등이 쓰라려 나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바라한은 자비없이 내 양손을 붙잡고 자신의 안에 가두었다. 어둠 속에선 그의 낮은 목소리만이 귓전을 맴돌았다. 나는 남동생의 음성에 처음으로 소름이 끼쳤다.

    "항상 네 일그러진 얼굴이 보고 싶었어."

    손을 빼보려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바라한의 변화가 당황스러웠다.

    "놔...놔줘."

    숨기려하지만 솟아나는 두려움으로 입술이 떨린다. 뜨거운 숨결이 목에, 귓가에 와닿았다. 주체할 수 없이 심장이 뛰어댔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내가 예전에 너에게 했던 말 기억해?"

    "무슨..."

    "네가 이상해진 것 같다고 했었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 이상해진 건 네가 아니라 나였던 것 같아."

    목에 닿던 숨결이 점차 가까워지더니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목에 느껴졌다. 새빨간 혀가 목선을 따라 움직인다.

    "으..읏! 뭐..뭐하는!"

    "네가 날 미치게 만들었어."

    목을 지분거리던 입술이 점차 위로 올라갔다. 어느샌가부터 흘러내리고 있던 눈물을 그가 진득하게 핥아올렸다. 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바라한은 나의 턱을 쥐어잡았다.

    "이렇게."

    뚫어지듯이 다가오는 시선에 숨이 턱 막힌다. 왜 그동안 잊고 있었던가. 그가 자신을 꿰뚫듯이 바라보는 순간이 있었다. 모든것을 발가벗기든 훑어내리던 순간이 있었다. 너무 오래되어 잊고있었을 뿐이었다. 아니면 그저 오해일 뿐이라 부정하고 싶었던걸까.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감겨진 눈에선 끊임없이 눈물만 흘러나왔다. 어디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다. 애초에 나의 존재가 오류였다.

    다시 그 끔찍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모든것이 낯설고, 두려웠으며 난 그에 저항할 수 없었다. 본래의 난 이곳에 존재해야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에델'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나의 모든 것이 그녀로 변해갔던가.

    그리운 나의 방이 떠오른다. 뿌옇던 기억을 열고 나의 본래 집, 나의 친구들이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에델'이 아닌 '김혜진'이였던 나의 기억들이 퍼져나갔다.

    * * *

    작게 난 창문으로 져가는 석양 빛이 번졌다. 턱을 괸 채 멍한 시선으로 앞을 응시하는 이는 지금 나의 모습과는 다르다. 무료함에 지쳐가던 난, 당시에 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혜진아! 빨리 와서 밥먹자."

    친구의 부름에도 침묵으로 일관한 채 네모난 모니터 속 화면에만 집중하였다. 곧이어 다시 재촉소리가 들려오자 이번에는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아, 조금만 기다려. 나 아직 세이브 지점까지 못갔어."

    "그거 그냥 놔두고 와. 우리끼리 여기 있는 거 다 먹어버린다?"

    "다 먹으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난 몰라. 더 늦어지면 진짜 다 먹을 거다?"

    덕분에 급해진 마음으로 마우스를 연타했다. 미연시 게임주제에 쓸데 없는 대사가 많다. 그래봤자 엔딩은 침대에서 그거하는 걸 텐데.

    식사도 접어둔 채 내가 하고 있던 게임은 '황제를 가진 소녀'. 일명 19금 미연시 게임이였다.

    미연시, 같은 말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물론 내가 하고 있는 건 미소녀가 아닌 미소년이지만, 어쨌든.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주인공으로 플레이하며 주위의 캐릭터들을 공략하는 게임이었다. 플레이 캐릭터는 당연히 여자이고, 나름 역하렘이라 잘생긴 남캐들도 많이 나왔다. 여주는 얼굴도 이쁘장하고 뒷배도 두둑한 귀족가 영애이다. 그리고 그런 온갖 보정을 받은 여캐의 주위로 수많은 남자들이 몰려든다.

    일국의 황제부터 시작해서 교황, 수인족, 반마까지. 아직 히든이벤트를 다 찾은 건 아니라 모든 남캐가 나온 건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야말로 웬만하게 잘난 남자들은 다 꼬인다고 보면 된다. 미연시 게임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처음에는 건성으로 플레이를 시작했었는데, 갈수록 난이도가 어려워져 점점 승부욕이 불탔다. 오늘에야말로 엔딩을 보리라 결심했었다.

    "전 신에게 일생을 바치기로 맹세했지만, 도저히 이 마음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당신을...사모하고 있습니다. 데이아 영애."

    "하아. 이제야 교황놈이 넘어왔네."

    무표정한 얼굴로 클릭만 눌러댄다. 주요 4캐릭터중 황제 다음으로 클리어 난이도가 높다는 교황의 고백을 받아냈다. 성격은 온순하고 말투도 부드러워서 잘 넘어올 것 같은데, 의외로 고백받기가 어려운 캐릭터이다. 직업이 교황이라 그런가. 여튼 이 녀석 공략하느라 꼬박 하루가 걸렸다. 어서 엔딩을 보고 싶은데 선택지마다 함정투성이였던지라 여간 짜증이 치밀었던 게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이로써 하렘 4관왕이었다. 교황에게 고백을 받아냈으니 이제 침대로 갈 타이밍이었다. 혹은 그대로 신전 안에서 씬이 뜰 수도 있겠다.

    난 구슬픈 느낌의 배경음악을 들으며 다음 장면을 기다렸다. 슬슬 나올 때가 됐는데.

    "교황 성하... 전, 전 이게 죄 짓는 것만 같아요. 하지만..하지만 저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는 못참겠어요! 사랑해요. 당신에게 안기고 싶어요..."

    그야말로 홈런을 날렸다. 여자가 저런 애절한 목소리로 안기고 싶다고 하는데 거절할 남자는 없었다. 드디어 고통스러웠던 플레이 시간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단 생각에 미소가 입가에 번져나갔다.

    "영애... 이리로."

    교황이 팔을 뻗어 여주의 분홍머리를 쓸어내리기 시작한다. 애절하게 안겨있던 여자가 고개를 들자 교황이 여주의 턱을 살며시 들어올린다. 둘의 입술이 점점 가까워져갔다. 그리고...

    띡.

    "어?"

    흥미진진해 하며 관람하던 내 앞에 나타난 건 화끈한 19씬이 아니라 시커먼 화면이었다. 순간 얼이 빠졌다.

    "뭐야 이거... 왜 꺼졌어?!"

    "깜짝이야,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그래?"

    "갑자기 컴퓨터가 꺼졌어. 이거 갑자기 왜 이래."

    "허... 네가 하루종일 컴퓨터만 붙들고 있으니 고장난 거 아냐?"

    그러고보니 3일동안 줄창 켜놓고 미연시를 돌렸더랬다. 내심 뜨끔하다. 그나저나 세이브가 됐을지 걱정이 들었다. 만약 세이브가 돼있지 않다면, 꼬박 하루에 걸려서 한 교황 공략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헛짓을 한 셈이 되는 것이다.

    긴장하며 다시 컴퓨터 전원을 누르는데 파워가 들어오지 않는다.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아예 맛이 갔네..."

    "어머, 어떡해. 안됐다. 그러니까 치킨 먹으랄 때 먹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됐어!"

    며칠간이나 쏟았던 시간이 허사가 되었다. 이제 곧 엔딩을 볼 수 있었는데.

    허나 날라간 파일은 돌아오지 않는다. 난 축쳐진 어깨로 친구들이 치킨을 뜯고있는 마루로 나왔다. 세라와 미정이가 테이블을 두고 둥그렇게 앉아있는 자리에 비집고 들어갔다. 애들은 낄낄대며 웃으면서도 날 나름 위로해준다.

    "괜찮아. 컴퓨터가 망가졌음 하나 사면 되지!"

    "맞아. 네 미연시 왕자님들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19금 떡신은 다시 플레이하면서 보면 더 좋잖아?"

    "그래, 야한 장면 못 봤다고 슬퍼하고 그러지마."

    방금했던 말은 취소다. 위로가 아니라 더 약올리고 있다. 난 짜증스럽게 치킨다리를 하나 잡곤 뜯었다. 정말 친구라서 봐준다, 얄미운 것들.

    세라와 미정이는 어릴적 고아원에서부터 같이 자라온 친구다. 우리 모두 5살도 안되는 어린 나이에 버려진 탓에 친부모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덕분에 어린 나이부터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온 나에게 내 친구들은 참으로 소중한 존재였다.

    잠시후 치킨 세 마리를 모두 헤치운 나와 친구들은 빵빵하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수다가 이어지고 늦은 밤에서야 아이들이 떠났다.

    적막해진 집에 가만히 앉아있던 난 머리를 글쩍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컴퓨터를 새로 하나 사야하나.'

    쓸만한 걸 사려면 돈이 꽤나 깨질 터다. 통장에 들어있는 돈을 계산하며 방으로 들어서는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망가졌다 생각했던 컴퓨터 화면이 켜져있었다.

    "뭐야? 이거 다시 켜지네."

    아까 잠깐동안만 전원이 나갔던 건가, 돈이 굳었단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마우스를 잡고 커서를 움직이니 아까까지 플레이 하던 미연시 게임의 첫 화면이 뜬다.

    '세이브가 되어 있을까.'

    컴퓨터가 다시 켜지는 것만해도 다행인데 파일까지 세이브 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마우스를 옮겼다. 그리고 게임 플레이를 누른 순간, 눈앞이 순식간에 검어졌다. 그야말로 암흑이었다.

    어지러운 감각은 잠깐이었지만, 이미 중심을 잃었기에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난데없는 충격에 몸 움직이는 게 쉽지않다. 아예 일어나질 못하고 있는데 나의 손끝에 부드러운 것들이 잡힌다. 생경한 감각이었다.

    이상하단 생각에 눈을 떠 확인하니 꽃들이었다. 오색찬란한 꽃들이 햇빛을 받으며 흔들리고 있었다. 어둡던 나의 방이 아니었다, 내가 넘어져있던 곳은.

    당혹감에 제대로 된 사고가 여의치 않다. 나는 한참이나 그 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람의 음성을 듣는다.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

    "에델. 괜찮느냐."

    어느샌가 남자는 내 곁에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짙은 흑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묶은 남자에게선 좋은 향기가 났다. 그의 음성은 자상했고, 다정한 시선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허나 나는 그를 알지 못했다.

    "울지 않는구나."

    "아.."

    "착하다, 내 딸."

    인자한 미소와 함께 큰 손이 내머리를 쓰다듬었지만, 난 그에게 마주웃어 줄 수 없었다. 적어도 난 그때까진 그의 딸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 -- 2 회: 1화 -- >

    [황제를 훔친 소녀]

    written by 윤밀.

    그는 다정했다. 나를 딸이라고 부르던 그 남자는, 부드러운 손길로 날 일으켰던 아버지는 말이다. 푸른 눈에 담긴 맹목적인 애정과 마주하자, 하나 둘 몸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융화라도 되는 듯. 에델 요르단. 그건 새로운 몸의 이름이었다. 무심코 내려다 본 손이 작기만 했다. 시야가 낮았다. 올려다 본 남자는 내 아버지라고, 기억이 속삭였다. 나는 킬링타임으로 하던 19금 미연시 여자 캐릭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여주도 아니고, 공략해야 하는 남주 캐릭터도 아니다.

    남주 캐릭터 공략에 방해만 되던 연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내 머릿속에는 그 연적의 기억이 재생되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나는 얼이 빠졌다.

    “거짓말이야.”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계속 넋이 나가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도 그저 다정하기만 했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가족의 애정에 눈물이 흐를 것 같던 걸 겨우 참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방 거울 앞이었다. 거울 속의 소녀도 입을 벌렸다. 검은 머리와 푸른 눈을 가진 소녀는 아름다웠다. 볼을 꼬집어보았는데 현실처럼 아파서 화들짝 손을 내렸다. ‘현실처럼’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아, 아.”

    목소리는 청아했다. 김혜진의 것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더 여리고 더 가녀렸다. 김혜진은 거울 속의 소녀처럼 예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다정한 아버지도 없었다. 비현실적인 현실감에 호흡이 떨렸다.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 * *

    짝.

    고개가 돌아갔다. 얼얼함을 느끼기도 전 다시 턱이 붙잡혀 정면을 직시해야 했다. 과거를 더듬던 생각이 강제로 현실로 끌어당겨졌다. 동생은 날 보며 웃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나 때렸니?”

    “이제야 날 보네.”

    동생의 눈이 포만감을 품고 휘어졌다. 나는 울음에 쫓겨 호흡을 헐떡거렸다.

    “바라한, 난, 네 누나란다.”

    “난 널 누이라 생각한 적 없어, 에델. 그 날 이후로 말이지.”

    “…….”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뚝뚝 떨어졌다. 코끝이 찡해져 괴로웠다. 시선이라도 피하고 싶었는데, 턱이 단단한 악력에 고정되어 있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핏빛으로 물든 바라한의 눈은, 지금 이 순간 죽음처럼 무겁게만 다가왔다.

    내 손 안에 쥐어진 스너프에는 여전히 아버지의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현실이 아버지가 죽었음을 재차 깨우쳐주었다. 심장 위를 비통함이 무겁게 짓눌렀다. 주먹을 거세게 쥐었다. 바라한은 날 들여다보다가 거칠게 턱을 놓아주었다. 호흡이 헉, 하고 터졌다. 입술 끝을 깨물었다.

    “아버지…….”

    나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오늘 밤 황실에서 열리는 연회 준비 잊지 마.”

    애정을 갈구하던 어린 동생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없었다. 어느새 굵어진 채 비소만 섞여 있었을 뿐. 아버지의 죽음에 비통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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