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네]The Rabbit Holic 1,2부 - 6

193일전 | 278읽음

없는 마른 체형이시군요.”




곧이어 어디에서인지 알 수 없게 줄자가 튀어나와 이곳저곳을 둘러댔다. 가슴, 허리, 엉덩이는 물론이고 팔 길이, 목둘레, 다리 길이, 손목 둘레, 허벅지, 골반부터 무릎까지의 길이 온 전신의 수치를 잰다. 제상이 얼떨결에 그녀의 카리스마에 휘둘려 시키는 대로 팔 들었다 내렸다하는 사이 차곡차곡 제상의 신체 치수는 쌓여갔고, 흡족하다싶을 만큼 이곳저곳을 더듬은 뒤에 그녀는 만족한 얼굴로 줄자를 집어넣었다.




“이제 옷감을 골라보실까요?”




끝이 아니라는 것에 제상은 인상을 찌푸렸고, 레인이 알아서 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콜린은 안도했다. 자신에게 디자인이라든가, 색이라든가 고르게 했다면 분명 실수하고 말았을 것이다. 능숙한 디자이너를 부르길 잘했다.




“전반적으로 붉은 계열의 색이 잘 어울리십니다. 붉은 색은 얼굴을 화사하고 생기 있어 보이게 하지요. 흔치 않은 검은 색의 머리카락을 갖고 계시니 그 유니크함을 강조하기 위해 검은 색의 천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겨울이니 고급 양모로 된 모직 원단을 사용하겠습니다.”


“잠시만요. 너무 많은 것 같아요.”




레인이 말을 잠시 쉬는 틈을 타서 제상은 재빨리 말을 끼워 넣었다. 자신이 여기서 몇 달 살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많다. 쓸데없는 돈 낭비이다.




“뭐가 많다는 것인지요?”


“옷이.”




짧게 말하곤 제상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학생이라서 그다지 쇼핑하러 다닐 일이 없었던 제상은 옷을 사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생활하는 데는 몇 벌의 츄리닝과 코트, 교복이면 충분했다. 기성복도 잘 안 사는데 맞춤이라니. 대충 들은 것만 스무 벌이 훌쩍 넘는다.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고 리얼한 꿈은 처음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많다니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니실 겁니까? 그건 황궁에 머무는 객으로서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가넷의 궁에 머물도록 은혜를 받으셨다면, 그러한 황제폐하의 손님답게 항상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제상의 작은 반항에 레인이 정색하고 나섰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 같다. 어차피 자신의 돈도 아니다. 황제라고 했으니 부자겠지. 그런 그가 백화점에서 옷을 사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영국의 왕세자도 그랬나? 어쨌든 이 나라의 디자이너라서 다행이다. 이름만 들어본 아르마니, 베르사체 보다는 그래도 덜 부담스러울 테니 말이다.




“...네.”


“좋습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많은 귀족들이 그녀를 찾지만 이정도로 씀씀이가 좋은 고객은 없다. 지금 수도에서 잘 나간다 하는 상급의 디자이너들도 레인에게 맡기는 비용의 절반이면 족했다. 그녀에게 옷 스물여섯 벌을 맞춘다는 것은 대부분의 귀족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제상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가짓수만 따지자면 일반적인 귀족이 가진 최소한의 정도였다. 가지고 있는 옷이 한 벌도 없으면서 레인 위커를 불렀던 것이 문제였다. 레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기에 가까운 판매행위지만, 부자들이 돈을 써줘야 경제가 돌아가는 법이다. 게다가 모처럼 의욕이 생기는 괜찮은 모델이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야말로 최상의 고객인 셈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평소라면 이런 파격적인 제안은 하지 않는다.허락하는 이도 잘 없겠지만 일단 그런 말을 꺼내지도 않는다. 그녀가 맡겨달라고 한다는 것은 자신이 디자인부터 재단, 재봉까지 전부 맡겠다는 의미였다. 기성품에 가까운 다른 귀족들의 옷과 달랐다.



레인은 왠지 설레기 시작했다. 허락만 떨어진다면 그녀의 마음대로 만들어도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요즘 소녀들의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미모의 소년 기사단장 만큼 매력적인 소년이다. 그 하겐의 옷을 만들 때도 이렇게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하겐의 머리색은 눈앞의 남자에 비하면 회색 머리나 다름없었다. 파티에 데뷔하기만 한다면 그의 이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재목이었다. 가넷의 궁에 머무는 황제의 손님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슈가 될 만 했다. 외모도 받쳐준다. 그런 그가 레인이 만든 옷을 입는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 될 것이었다.




“좋아요.”




맞춤복이라서 이것저것 천을 고르라, 디자인을 고르라 귀찮게 할 것 같았는데 다행히 본인이 모두 책임지겠다고 한다. 그다지 옷에 까다롭지 않은 제상은 바로 오케이이다. 귀찮음을 덜어주겠다는 데 마다할 리가 없다.



허락이 떨어졌다! 기쁨의 탄성을 지르는 속마음과 달리 레인의 겉가죽은 차분하게 싱긋, 하고 미소 지었다.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황제의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옷을 입히려면 서둘러야 했다. 평민이라고 그녀를 무시하는 귀족들도 많았다. 상냥하게도 존댓말을 쓰다니. 나중에 시종에게 야단을 맞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레인은 그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단은 기성복을 가공해서 내일 아침까지 보내드리겠습니다. 스물여섯 벌이면...저도 조금 빠듯하군요. 모두 완성시켜서 다음 주 월요일에 보내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아요.”




그렇게 오래 꿈이 지속될까 싶지만 제상이 생각하기에도 많은 양인데 다음 주 월요일까지라니, 대단한 사람이다. 역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계가 아닌가.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요?”




장시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콜린이 비로소 입을 열 기회가 생겼다. 그는 재빠르게 답했다. 그동안은 그가 할 말도 알아서 척척 말하는 레인 때문에 아무 말도 못했던 것이다.




“화요일입니다.”




제상은 잠시 갸웃했다. 분명히 목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화요일이라니. 생각해보니 꼭 꿈의 시간이 현실과 일치할 필요는 없다. 맨홀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장기 입원이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수능이 얼마 안 남은 이 시점에 팔이라도 부러지면 큰일이었다. 될 수 있다면 오른팔만 피해갔으면 하는 심정이다. 어쨌든 일주일 만에 스물여섯 벌을 완성하겠노라고 말하는 레인 위커도 참 대단한 사람이다.




“내일 아침까지 셔츠 다섯 벌과 바지 두 벌, 코트 두 벌을 보내 드릴 테니 그걸로 일단 급한 불은 꺼주십시오.”




급한 불이라기엔 많은 옷이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볼일이 끝났나 싶더니 갑자기 기사 서임식을 받는 기사처럼 우아한 동작으로 레인이 무릎을 꿇고 슬리퍼에서 제상의 발을 꺼냈다. 휘청거리는 제상의 몸을 콜린이 붙잡았다. 이리저리 줄자를 휘감으며 사이즈를 잰다. 무례한 행동이지만 시종도 그 주인도 그런 것에는 서툴렀다. 물론 지적한다고 해도 레인이 그런 말을 귀담아 들을 리도 없었다.




“제가 깜박했네요. 구두 장인은 제가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이즈는 틀림없이 이대로 전할 테니 염려 마세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는 세련된 자세로 살짝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그렇게 레인 위커는 따박, 따박, 구두소리를 남기며 퇴장했다. 한 사람이 줄었구나, 제상은 안도했다. 그나저나 자신도 모르는 깊은 내면에서 새 옷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나보다. 꿈은 원래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지 않던가. 토끼를 빼닮은 시에란은 분명히 그 무의식의 발현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왜 겨울인지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왕이면 봄이나 가을이 될 것이지.






보석을 고르는 것도 의외로 쉽게 끝났다. 제상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콜린이 사정하고 보석상이 끈질기게 노력해서 겨우 브로치 두 개와 심플한 로켓 목걸이 하나를 구입했을 뿐이다. 레인과 구두 디자이너의 싱글벙글한 얼굴을 보고 자신도 한몫 단단히 잡으리라 생각했던 보석상만 오늘 불린 세 사람 중에 홀로 울상이 되어 돌아갔다.







"그나저나 제상님."


“네?”


“또 존댓말을 쓰시네요. 말씀 놓으세요. 제발. 그렇지 않으면 제가 꾸중을 듣습니다.”


“알았어.”




또 무심결에 존댓말을 쓴 것이다. 제상은 고개를 끄덕였고 시종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째 보기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은 그의 임시 주인이다.






-6-






“...나세요...상님. 일어나세요. 제발...”




한참을 불렀는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제 황제폐하께서 여덟 시까지 본성으로 제상을 안내하라는 명을 내리셨는데 벌써 일곱 시 반이 넘어간다. 덕분에 연석을 몇 번이나 달궜는지 모른다. 어제 분명히 일찍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나왔는데 왜 이렇게 못 일어나는 지 알 수가 없다.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을 꺼려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 황제폐하나 시종장에게 혼나는 것보다는 제상에게 혼나는 것이 나았다. 콜린이 눈을 질끈 감고 제상의 팔을 건드리는 순간, 제상의 눈이 반짝 떠졌다. 흐에엑. 콜린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늦었습니다아.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제상은 미적미적 거리며 몸을 웅크렸다. 따뜻한 이불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다. 오늘은 알람이 울렸는데 못 들었는지 아니면 아직 알람이 울릴 시간이 아닌 것인지 벨소리를 들은 기억이 없다. 도대체 몇 시지? 제상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옆자리를 더듬었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왜 핸드폰이 없을까? 오늘도 학교에 지각하면 또 무슨 핑계를 대야할 지 걱정이다. 매번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는 것도 식상하다. 장염에 걸렸다고 할까. 수능을 앞두고 있으니 크게 혼나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따라 이불이 유난히 더 푹신하고 포근한 것 같다. 아, 정말 나가기 싫다. 이래서 겨울이 싫었다. 요즘 날씨가 이상해져서 아직 10월 말인데도 한 겨울처럼 코트를 입어야 했다. 모두 다 지구 온난화의 폐해이다. 이러다가 정말 여름, 겨울만 번갈아 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계절의 변화는 예전 같지 않았다.




“제상니임...”




눈을 뜨길래 일어나는가 싶더니 밍기적거리면서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갑자기 제상이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방에서는 들릴 리 없는 타인의 목소리에 놀란 것이다. 사색이 되어 일어난 제상은 이리저리 주위를 살폈다.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방은 그의 방이 아니었다. 아직도 꿈에서 깨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났는데도 여전히 꿈속이라니. 지긋지긋하게 긴 꿈이다 가넷의 궁에서의 첫 번째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미안해.”




잔뜩 울상이 되어있는 콜린의 얼굴을 마주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빨간 머리만 아니라면 그냥 동네 옆집 형 같은 모습이다. 어쩐지 미안해져서 제상은 사과를 했다.




“사과는 괜찮으니 빨리 준비해주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벌써 45분이에요.”




8시까지 앞으로 15분. 씻고 옷을 갈아입기에도 조금 빠듯한 시간이다. 그제야 어제 시에란과 했던 약속을 떠올린 제상은 황급히 눈을 비벼 눈곱을 뗐다.




“옷 좀 부탁해!”




콜린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들어가자 방만큼 큰 욕실이 있었다. 방과는 달리 차가운 공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잠을 깨는 데엔 아주 탁월한 효과다. 곧장 따스한 김이 올라오는 세면대로 향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바로 뜨거운 물이 나온다. 공기는 차가운데 신기하게도 물이 따뜻했다. 대충 고양이 세수만 하려다가 며칠 물 한 방울 안 닿았을 머리가 생각났다. 첫날부터 냄새를 풍기는 것은 곤란하다. 찬장을 살펴보니 통이 있긴 있는데 전부 모르는 글자로 이것저것 쓰여 있다. 제상은 새삼 실감했다. 정말로 한국 배경이 아니구나. 하긴 한국어가 쓰여 있다고 해도 조금 실망할 것 같다. 인간의 잠재의식은 참 대단한 것이다. 도대체 저런 문자를 어디서 봤다고 떠올린 것인지.




“콜린! 머리는 뭐로 감지?”




잘 안 들릴까 싶어 크게 말했더니 소리가 욕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귀 따갑다. 다행히 들렸는지 콜린이 들어왔다. 콜린은 보라색 유리병을 꺼냈다.




“이걸로 하시면 돼요. 그런데 제상님. 시간이...”


“알았어.”




제상은 어설프게 이리 저리 뚜껑을 돌렸다. 그냥 열릴 줄 알았는데 잘 안 열린다. 돌리는 것도 아니고 당기는 것도 아니다. 일부러 이런 병에 샴푸를 담아둬서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것이 분명하다.



가만히 제상이 하는 것을 보고 있던 콜린이 아, 하고 얼빠진 소리를 냈다. 자신이 했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제상이 서툰 것도 당연하다. 시종장님이 아시면 경을 치시겠다. 콜린은 능숙하게 뚜껑을 열고 세정제를 덜어내 재빨리 제상의 머리에 문질렀다. 달콤한 향이 확 풍겼다.




“제상님, 눈 감으세요!”




원래는 목욕을 할 때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머리를 뒤로 젖혀 시종이 하는 것이지만 시간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제상의 숙인 고개를 이용하여 그대로 머리를 감겼다. 겨울이니 땀도 별로 안 날 거고, 머리만 감아도 될 것이다. 아마도...괜찮을 것이다.



제상은 얼떨결에 통을 빼앗긴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이 그렇게 답답해 보였나 싶다. 콜린은 아주 서둘러서 머리를 문지르고 물을 부었다. 아직 따뜻해서 다행이다. 세면대 의 물이 나오는 연석을 달구기 위해서는 아래층에서 불을 때야 했다. 제상이 일어나지 않아서 몇 번이나 계단을 왕복했는지 모른다. 왜 제 때 주인을 깨우지 못했냐고 -속내는 장작을 많이 쓴다고- 한소리 듣긴 했지만 제상은 가넷의 궁에 머무는 단 한 명의 손님이었다. 황제가 각별히 신경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시종장은 길게 말하지 않았지만,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 됐어요.”




미끈한 기운이 가실 때까지 헹궈내고 수건을 꺼내어 제상의 머리카락을 말렸다.




“이건 내가 할게.”




제상은 콜린의 손을 치워내고 스스로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어내면서 욕실을 나섰다. 대충 말리고 콜린이 내미는 하얀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었다. 놀랄 만큼 몸에 딱 맞는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 나름 큰 사이즈로 사두었던 교복은 그것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제상의 키가 커서 약간 짧았다. 그래도 다들 그런 교복을 입고 있으니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몸에 딱 맞는 옷을 입게 된 것이다. 꿈이지만 이렇게 편할 줄 몰랐다. 팔을 굽혔다 폈다 해보았다. 어디 하나 거치적거리는 구석이 없다. 지금 현실에서 무슨 옷을 입고 있기에 이렇게 활동이 편안한 것일까. 신기한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제상을 콜린이 재촉했다.




“7시 54분이에요!”




혼나는 것은 자신이 될 테니...벌써부터 울상을 짓는 콜린이다. 콜린은 제상을 붙잡아 바지와 같은 천으로 만들어진 조끼와 재킷을 입히고 그 위에 검은색의 코트를 덧입혔다. 역시나 딱 맞는다. 이렇게 기성복을 수선한 것으로도 충분한데 괜히 맞춤복을 주문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렇게 셔츠만 빼고 올 블랙으로 무장한 제상은 콜린을 따라 방을 나섰다.




“절 따라오시면 돼요.”




다행히 가넷의 궁과 본성은 아주 가까웠다. 최단거리의 루트인 아샤 델 칼시디나는 황제만의 공간이라 아무나 드나들 수 없어 통과할 수는 없지만 그 옆을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까운 편이라고 해도 5분은 부족한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칼시디나를 지나면 곧바로 본성이지만 궁의 규모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뛰실래요?”


“뭐. 그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콜린이 달리기 시작했다. 계단을 내려가 커다란 정문을 빠져나갔다. 제상은 궁 안과 밖의 급격한 온도차를 두 뺨으로 실감했다. 콜린은 두툼한 솜옷으로 무장한 채였다. 제상의 옷은 그보다 얇았지만 질 좋은 양모로 된 옷은 솜옷보다 보온성의 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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