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네]The Rabbit Holic 1,2부 - 4

167일전 | 253읽음

다. 정말로 토끼 때문에 표정이 밝았다 우울했다 하는 것이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두고 온 양 청승을 떠는 모습은 신기하기까지 했다. 시에란의 눈동자가 장난기로 반짝거렸다. 그가 무언가를 꾸밀 때의 표정이었다. 시에란은 색다른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 왔어.”




이런저런 말을 하다 보니 금세 가넷의 궁에 다다랐다. 상아색의 골조로 된 우아한 문은 커다랗고 붉은 보석이 잔뜩 박혀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문이 스르륵, 열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 두 명의 힘으로 저 큰 문이 부드럽게 열린다는 것은 정말 미라클이다.



정중하게 허리를 굽히는 두 시종의 사이로 시에란이 앞서서 걸어가고 제상이 그 뒤를 따랐다. 상아색의 대리석으로 된 중앙 계단을 올라 가장 먼저 마주친 방이었다. 잠시 시에란이 발을 멈추자 소리도 없이 따라온 시종들이 다시 문을 열었다. 아늑해 보이는 우아한 방이었다.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여기서 머무르도록 해.”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휙, 하고 제상이 돌아보자 도어보이 중 한명이 눈을 댕그랗게 뜨고 입을 막고 있다. 제상의 시선이 고정되자 시에란도 덩달아 시선을 돌렸다. 노란기가 도는 푸석푸석한 빨간 머리에 갈색 눈. 옅은 주근깨. 박색에 가까운, 좋게 말해 평범한 얼굴이다. 소심한 성격인 듯 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덜덜덜, 떨고 있다.




“네가 앞으로 제상의 시중을 들어라.”


“시중?”




제상은 즉각 반문했다. 정작 당사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입을 가리던 손도 툭, 내린 채 입을 헤- 벌리고 멍하니 시에란을 쳐다볼 뿐이었다. 시에란은 도어보이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는 다정하고 장난스러운 소년황제였다.




“이름이 뭐지?”


“...콜, 콜린입니다. 폐하.”




정신을 놓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생긴 대로 소심한 말투이다. 시에란의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입을 열게 되는 영광을 입은 자들은 모두 그랬다. 일단 느닷없는 승진에 콜린은 매우 놀란 상태였다. 한낱 도어보이에서 순식간에 귀인의 전속시종이 된 것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데다가 황제께서 직접 궁까지 바래다준 사람이다. 게다가 가넷의 궁의 가장 좋은 방에 머물게 된다. 보통 귀한 사람이 아닌 것이다. 타국의 왕족이나 귀족이라고 해도 이런 전례는 없었다. 멍청하고 둔하다는 평을 듣는 머리이지만, 콜린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성, 성심성의껏! 모시겠습니다!! 폐하.”


“좋아.”




시에란은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콜린의 얼굴이 타는 듯이 붉어졌다.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얼굴인지 구분하지 못할 만큼 붉었다. 그야말로 홍당무였다.




“콜린. 제2시종장에게 가서 정식 시종의 옷을 받고 간단하게 일을 배워라.”


“예, 알겠습니다.”




콜린의 목소리는 어느새 잘 훈련된 시종의 것으로 돌아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 속의 들뜬 기운을 숨길 수는 없었다. 황제께서 이름을 불러주셨다! 콜린은 기쁘게 제2시종장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남겨진 다른 도어보이는, 제발 황제께서 도어보이가 충원되기 전까지 나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시에란이 제상의 어깨에 걸쳤던 망토를 벗기며 물었다.




“조금 더 자겠어?”




제상이 고개를 저었다. 포근함이 사라지는 것에 조금 아쉬움이 들었지만, 본래 주인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할 수가 없다.




“아니. 배고파...”




제상의 말에 시에란은 힐끔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한 시가 다 되어가고 있다. 제상의 말을 들으니 왠지 자신도 허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벌써 점심때로군. 그런데 아까 수프와 빵을 먹지 않았나?”


“제대로 못 먹었어...시에란의 열성적인 팬 때문에 말이지.”




툴툴대며 볼멘소리를 하는 제상의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시에란은 저도 모르게 진심으로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푸훗. 라세인이 달달 볶았군. 여기에서 오찬을 들겠다.”




시에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도어보이가 명령을 전달하러 요리사에게 갔다. 오랜만에 온 가넷의 궁의 손님이다. 게다가 황제께 요리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였다. 요리사는 신이 나서 자신의 솜씨를 발휘할 것이다.




시종 둘이 사라지자 커다란 방에는 완벽하게 둘만 남았다. 시에란은 자연스럽게 제상의 어깨를 안아 소파로 이끌었다. 시에란의 손에 이끌려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어깨의 손이 치워지지를 않는다. 사람과의 지나치게 친밀한 접촉에 제상은 몸을 사렸다.



시에란의 팔에 제상의 딱딱하게 긴장된 근육이 닿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대단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시에란은 짐짓 모르는 척 제상을 더 끌어안았다. 제상은 더욱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내가 어깨에 팔을 두르는 것이 싫어?”


“아, 아니...”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숨결이 목덜미에 닿는다. 제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시에란에게서 달콤한 향기가 풍겼다. 시에란은 슬쩍 제상의 목덜미를 쓸었다. 제상의 몸이 펄쩍, 뛰었다. 재밌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싫은 티를 내고 있는 거지?”


“싫, 싫은 게 아니라 익숙하지가 않아서...”




시에란이 강제로 고개를 돌리자 마치 처음으로 남자의 품에 안긴 귀족가의 영애처럼 제상이 두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였다.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온 것처럼 아련한 붉은 빛이다. 제상의 답을 유도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다. 시에란은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상이 보기에 난 토끼와 닮았지. 그리고 그대는 토끼를 좋아해. 이 상황에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없어?”




시에란이 물어봤을 때엔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그저 묘한 향기와 시에란의 온기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릴 따름이었다. 그런데 계속 시에란의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니 검은 욕망이 피어올랐다. 머리를 빗겨주고 싶었다. 당근을 먹여주고 귀를 만져주고 싶었다. 그리고 안아주고 싶었다. 하얀 몸을 부둥켜안고 체온을 나누고 싶었다.



어쩌면 시에란은 정말 토끼의 현신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곧 끝날 거니까, 조금은 제멋대로 굴어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 자신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밑져야 본전이다. 어차피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거절당하는 것은 조금 쓰리긴 하지만 그래봤자 깨어나면 아무도 모른다. 제상은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시에란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 토끼가 되어줘.”




시에란의 고개가 제상의 어깨에 톡, 떨어졌다.





-4-





잠시 그렇게 멈춰 있더니 어느 순간 고운 선을 그리는 등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떨림은 점점 더 커졌다. 부들부들 떨리는 것에 제상이 놀라 다독이려는 순간 크크크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웃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놀림 당한 기분이 들어 제상은 발끈하여 그의 이름을 외쳤다.




“시에란!”




크흠, 하며 시에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입가에 맺힌 미소는 아직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볼은 발갛게 물들어 있다. 제상과 눈을 마주친 시에란은 다시 푸흡,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제상의 매서운 눈초리를 의식하고서 겨우겨우 마음을 가다듬어 차분한 상태로 돌아왔다. 황제가 되기 위해 배웠던 제왕학의 처음이다. 협상에 앞서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정심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여유를 가지고 자신이 이 계약의 우위에 있음을 보여야 한다. 시에란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러나 느슨한 자세로 제상에게 물었다.




“내가 그대의 토끼가 되어준다면, 그대는 나에게 무엇을 줄 거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장난인가 싶기도 하지만 눈이 너무나도 진지하다. 하지만 여유로운 시에란의 자세는 왠지 제상을 초조하게 했다.




“달라고 해도 난 가진 게 없는데...”




시에란이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튕겼다.




“그렇다면, 그래. 일을 해. 내가 시키는 일을 훌륭하게 해낸다면, 기꺼이 그대의 토끼가 되어주지.”




왠지 시에란이 그렇게 말하니 그리 해야 할 것만 같다. 몸을 쓰는 일이라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마 자신에게 막노동을 시킬 리도 없을 테고...서류정리 정도의 일이라면 반장생활하면서 많이 해봤으니 괜찮다. 아, 자신이 이곳의 글을 모른다는 것은 문제가 될지도 몰랐지만,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시에란이 어떻게든 해주지 않을까. 혹시 정말 판타지 소설에서처럼 이상한 글자들을 저절로 이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아.”


“그럼 계약 성립인 것인가? 내일부터 본성으로 나오도록. 안내는 네 시종인 콜린에게 맡기면 될 거다.”


“맡겨두십시오, 폐하.”




제상이 배시시 웃으며 시에란의 어깨를 탁탁, 치는데 갑자기 문이 스르륵 열렸다. 두 사람 모두 자세는 그대로 두고 고개만 돌렸다. 두 사람과 마주친 시종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죄, 죄송합니다!”




분부한 대로 점심이 준비되었음을 알리러 왔던 시종은 제상과 시에란의 밀착된 자세에 놀라 다시 문을 닫으려고 들었다. 시에란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되었다.”


“실례했습니다, 폐하. 식사를 준비해두었습니다.”




슬쩍 보아도 음식을 담은 캐리어는커녕 손도 두 손 다 빈손이다. 제상이 입을 삐죽이는데 시에란이 일어선다. 그 바람에 그의 어깨에 올려져있던 제상의 손이 툭, 떨어졌다.




“갈까?”


“응.”




시에란을 따라 들어간 곳은 붉은 카펫이 깔린 식당이었다. 외국영화에서나 보던 긴 식탁에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다. 시종의 안내를 받아 긴 식탁의 상석에 시에란이 앉고, 그 오른쪽 옆에 제상이 앉았다. 앤티크풍의 보석 박힌 금 촛대와 거울처럼 얼굴을 비춰내는 금빛 포크가 여섯 개, 나이프가 여섯 개, 스푼이 두 개. 갑자기 부담이 밀려왔다.




“맛있게, 먹어.”




맛있게, 에서 한번 끊어 강조를 하며 시에란이 말했다. 안쪽이었나? 바깥쪽이었나? 제상은 포크의 순서에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시에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재빠르게 눈짓으로 시에란이 쓰는 포크를 캐치했다. 가장 바깥쪽의 것이다. 오호라. 제상은 자연스럽게 음식들을 둘러보는 척 하다가 포크를 집어 들었다.



자, 처음은 샐러드이다.



약간 새콤한 드레싱이다. 풀은 언제나 토끼에게만 맡겨왔던 제상이기에 조금 난감하지만 생각보다 쓴 맛도 없고 상큼한 것이 맛있다. 물론 샐러드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은 배가 고파서일지도 모른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안 나도록 힘주고 있느라 고생했다. 예상외로 잘 먹고 있는 제상과 달리 시에란은 한 입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이내 포크를 놓았다. 시에란이 포크를 놓자 빠르게 접시가 치워지고 조개 같은 것이 나왔다. 조리된 굴이다. 제상은 풀을 버리고 굴로 갈아탔다. 신기하게도 비린내 없이 맛있었다. 시에란은 역시나 한 조각 맛보더니 포크를 내려놓는다.



수프의 차례였다. 이번에는 큰 쪽이겠지. 제상은 스푼을 집어 들었다.







음식은 맛있었다.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겠지만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매콤한 구이도 맛있었고, 꽃처럼 생긴 튀김도 맛있었다. 향긋한 소스를 뿌린 생선 요리도 좋았다. 흰 살 생선과 붉은 살 생선, 양쪽 다 맛있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독특한 맛조차 꿈에서는 이렇게 리얼하게 느낄 수 있나보다. 다음엔 좀 더 비싼 요리를 요구해 볼까. 신나서 깔끔하게 접시를 비워내는 제상과 달리 시에란은 매우 깨작거렸다. 뭔가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다들 입만 대고 두 번 이상 손이 간 요리는 단 하나 뿐이었다. 정확하게는 세 번 스푼이 간, 수프뿐이었다. 입이 짧은 모양이다.




“맛있어?”




제상이 그렇다고 답하자 시에란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고기를 썰어 제상의 입가에 가져다댔다. 제상이 움찔하며 주위를 살폈다. 식사시중을 드는 시종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시에란이 재촉하듯이 포크를 살짝 흔들자 제상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었다. 한번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시에란은 자꾸 음식을 잘라 자신이 먹는 대신 장난치듯이 제상에게 음식을 먹여댔다.



맛있어? 라고 묻고 제상이 고개를 끄덕이면 키득거리다가 또 다른 음식을 내밀었다. 먹여주는 것에 재미가 들린 모양이었다. 제상은 아기돼지처럼 한입 크기로 썰린 음식을 잘도 받아먹었다. 접시도 거의 비워지고 배가 빵빵하게 불러왔다. 제상이 먹는 속도가 느려지자 시에란이 먹이기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그릇들이 전부 치워졌다. 분명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다. 뒤이어 나온 것은 아이스크림이다. 투명한 크리스털의 오목하고 넓은 잔에 예쁘게 담겨 있었다.




“맛있어.”




차가운 아이스크림은 입에 들어가자마자 사르륵 녹았다. 현실의 다양한 아이스크림과는 다르지만 재료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몸에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자신이 원래 이런 것을 좋아했었던가? 아무리 기분 좋던 꿈도 깨어나면 전부 잊어버리니 알 방법이 없다. 다양한 과일 맛이 풍겼다. 상큼한 오렌지, 달큰하고 깊은 포도, 이 겨울에 딸기, 그리고 톡 쏘는 것 같은 민트도 있었다. 음식을 그렇게 먹어대 놓고 제상은 다시 아이스크림에 심취했다. 이번엔 시에란도 깨끗하게 그릇을 비워냈다. 착각인지 아닌지 시에란이 마지막 한 숟갈을 입에 넣을 때 뒤에서는 한숨소리 비슷한 것이 들린 것도 같다.












식사가 끝나자 시에란은 다시 제상을 아까의 방에 데려다 주었다. 복도의 싸늘함과는 대조되는 훈훈한 방이다.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보니 방 여기저기 보석이 박힌 것이 왠지 떨떠름하다. 여기 박힌 보석이 하나라도 없어지면 자신이 의심받는 것은 아닐지 슬쩍 걱정도 됐다. 과하게 큰 방, 침대도 과하게 크다. 그러고 보니 교복은 어디에 있을까.




“시에란 내 옷은 어디에 있어?”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어서, 아마도 버렸을 텐데. 중요한 건가?”


“그건 아니지만...”




어차피 꿈인데 뭐 어떠냐는 태평한 생각이 뒤따랐다. 학교에 이런 옷을 입고간다면 모를까 그럴 리도 없고 그럴 수도 없었다. 제상이 뒤늦게 깨달은 옷은 끈 하나로 여며진 앞섶에 하늘하늘한 원피스 모양을 하고 있다. 설마 잠옷이겠지. 잠옷이라도 남자가 이런 원피스를 입는 것은 이상하다. 시에란이 입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셔츠와 바지인 것으로 보아 항상 이런 치마를 입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거, 잠옷?”




자신의 허리 부근을 슬쩍 집어 올리며 제상이 물었다. 반대쪽의 허리라인이 드러나 펑퍼짐했던 옷이 조금 요염해 보인다. 얇은 천이 실루엣을 그대로 드러낸다. 시에란이 삐죽,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자못 위험해 보여 어, 하는 소리를 내며 제상이 뒤로 물러섰다. 시에란이 위협하듯이 다가왔다. 아, 역시 커 보이잖아. 실없는 생각을 하며 제상이 얼굴을 굳혔을 때, 느닷없는 공격이 시작되었다.



빈틈, 옆구리를 절묘하게 파고든 손가락은 사정없이 예민한 부위를 더듬어댔다. 제상은 몸을 마구 비틀며 저항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응하게 되는 생리적인 현상인 것이다. 제상은 결국 꾹, 다물었던 입술을 벌리고 말았다.




“푸하하하, 그만! 크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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