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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_망월동에서생긴일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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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개] 망월동에서 생긴 일.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장대비는 오후 다섯 시를 향해가는 현재에도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빗줄기는 더 굵어지고 있었다.

    적막한 강의실에 폭포수 같은 빗소리만 가득했다. 장마철로 접어들기에는 한 달여가 남아 있었다. 마포구에 위치한 H대학의 역사교육과 학생들은 30분이 넘어가도록 나타나지 않은 교수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괴기스러울 정도로 퍼붓는 폭우 때문인지 강의실은 평소와 달리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둘 셋씩 짝지어 잡담을 나누는 몇몇 부류를 제외하곤 모두들 걱정스러운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잡담들이라 해봤자 “우산 안 가져왔는데 큰일이네.” “비 한 번 더럽게 오는군.” “이놈의 교수새끼는 언제 오는 거냐. 아주 등록금을 날로 처먹으려고 하네.” 등의 대개가 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제외하곤 모든 게 평범했다. 드문드문 비어있는 빈자리를 제외하고는 나무랄 데 없이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학부선배들에게 미리 전해들은 출석 안 부르기로 유명한 교수, 라는 별명이 효과가 컷을 것이다.

    <그>는 여러모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물론 출석을 잘 부르지 않는다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 그의 명성 아닌 명성을 만들어 준 건 누가 뭐래도 서른셋의 젊은 나이와 책에 파묻혀 지내는 사람답지 않게 꽤 봐줄만한 얼굴, 그리고 미혼자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아는 사람은 다 아는 5.18 문학을 재집성한 유망한 학도라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 중에는 젊고 능력 있고 잘 생긴 교수와의 만남을 고대한 이도 많았다. 더군다나 오늘 같이 특별한 날이 아니면 그와의 만남은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2학년 부교수인 <그>가 4학년 전공수업에 들어오게 된 것은 S교수의 갑작스런 부친상 때문이었다. 비고는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에야 퍼지기 시작했다. 지금쯤 빈자리의 주인공들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대감만으로 보상받기엔 시간은 벌써 사십분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백번 양보해서 지금 도착한다 해도 수업시간은 채 십분도 안 돼 끝날 터였다.

    불평불만들이 짤막짤막하게 쏟아졌다. 개중엔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던 한 여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진짜 너무하신다. 벌써 사십분이나 지났잖아.” 하고 탄식하며 걸음을 옮겼다. 당당히 앞문을 열고 강의실을 빠져나가려던 바로 그때였다.

    발소리도 없이 다가온 장신의 사내가 여학생을 지나쳐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찬물을 끼얹듯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반대로 휙 돌아가 있던 의자를 바로잡는 남학생 몇몇과 머리를 맞대고 떠들어대던 수다무리들이 금세 원상태로 복귀했다.

    사내는 교탁위에 전공 책을 툭 던져놓고 학생들을 쓱 훑어봤다.

    순간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렀다. 그것은 말로표현하기 힘든 영적인 이끌림이었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 젊은 교수에게선 그런 것이 느껴졌다.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던 여학생이 콧등을 긁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머쓱한지 괜히 친구의 어깨를 툭 쳤다. 소문대로 교수는 매우 젊었다. 그러나 그것은 삼십대의 노숙한 젊음이 아니라 이십대의 설익은 패기와 열망이 느껴지는 젊음이었다. 스무 명 안팎의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홀린 듯 교수를 올려다보았다. 누구하나 먼저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교수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기운이 그들을 꽁꽁 얼려버린 듯했다.

    뒤늦게 교수가 입가를 살짝 비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서정우 입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서정우라는 이름 석 자가 울림이 되어 한 동안 강의실을 맴돌았다. 목소리에도 색깔이 있다면 젊은 교수는 분명 무채색일 것이다. 학생들은 서로를 곁눈질하며 자신을 제외한 누군가 앞장서 질문하길 바랐다.

    마침내 맨 뒷줄에 앉아있던 남학생이 젊은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 수업시간 10분도 안 남았는데요?”

    “걱정 마십시오. 지금부터 시작하면 채 십분도 안 걸릴 겁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창가로 다가갔다. 반쯤 내려온 블라인드를 완전히 위로 걷어 올리고 서리 낀 창문을 손끝으로 지분거렸다. 불쑥 창문이 들어 올려졌다. 빗물이 싸리비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젊은 교의 하얀 셔츠가 금세 촉촉이 젖어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젊은 교수는 때 아닌 사색에 잠겨 있었다. 그 사이 시간은 벌써 45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창밖으로 고정시킨 채였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18일인데요.”

    “5월 18일이요.”

    “월요일이요.”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젊은 교수는 고개를 돌려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공허한 눈빛이었다. 뭔가를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안 떨어지는 듯했다. 반쯤 넋이 나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동공이 힘없이 허공을 더듬었다.

    심상치 않은 교수의 눈빛에 학생들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숙연하게 교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교수의 입은 쉽사리 여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5분이 흘렀다. 이내 들려온 교수의 목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그거 압니까. 5월 18일에는 항상 비가 오고 기아타이거즈가 경기를 하면 무조건 이긴다는 속설이 있지요. 물론 미신은 미신일 뿐이겠지만 말입니다.”

    “에이, 교수님. 설마요!”

    “왜, 여고에도 일등, 이등 귀신 이야기 있잖아요. 그런 거 아녀요?”

    “맞아. 밤 열두시에 화장실에서 칼 물고 거울에 대고 물으면 미래의 남편 얼굴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순 개 뻥이잖아.”

    교수는 짧게 소리 내어 웃었다. 바짝 얼어있던 강의실 분위기가 살얼음판 갈라지듯 부서져 내렸다. 여기저기서 5.18에 관련된 속설에 대해 한 마디씩 꺼내놓았다. 순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전부였으나 천천히 녹고 있던 강의실 눈에 띄게 달라졌다.

    교수는 뒤늦게 창문을 닫고 교탁으로 돌아왔다. 이미 셔츠는 폭삭 젖은 채였지만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팔목을 휘감고 있던 소매를 팔꿈치 위로 접어올린 후 교수는 칠판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성심성의껏 적어나갔다.

    서정우.

    교수가 칠판을 검지 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마치 스스로가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려는 행동처럼 보였다. 학생들은 조용히 교수의 이름을 읊조렸다. 교수는 전공을 휙휙 넘겨보더니 출석부로 앞장을 떡 하니 가려놓았다.

    “다들 책을 덮으십시오. 지금부터 책은 필요 없습니다. 귀만 있으면 됩니다.”

    학생들은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지만 교수를 따라 전공 책을 뒤집어 엎어놓았다. 교수는 미소 지으며 다시 창가로 다가갔다. 학생들의 시선이 분주히 그를 따랐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하나 해드릴까 합니다. 십 분이면 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교수의 깍듯한 존댓말에 누구하나 토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알바 시간 운운 하던 조금 전의 여학생까지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즐겁다는 듯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교수는 미소 지었다.

    “10년. 아니 11년 전 즈음 되었을 겁니다. 제가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입니다만 믿지 않을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 만큼 어이없고 황당한 이야기니까요. 거기 맨 뒤에 혼자 앉은 검은 모자 쓴 남학생.”

    교수의 호령 아닌 호령소리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남학생이 벌떡 일어났다. 주위에서 와하하, 웃음소리가 터졌다. 교수 역시 부드럽게 웃으며 손가락을 위로 올렸다.

    “미안하지만 불 좀 꺼주시겠습니까.”

    “예, 예. 교수님.”

    남학생이 부랴부랴 뒷문으로 열고 밖으로 나가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고 돌아왔다. 머쓱한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 앉자 교수가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제 교탁 위를 비추는 단 하나의 형광등을 제외하곤 모두 어둠에 파묻혔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자세히 봐야 옆 사람의 얼굴이 보일 정도로 짙은 어둠이었다. 을씨년스러움이 감돌았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빗소리가 더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한 여름 밤 시골 할머니 댁에서 삶은 옥수수와 새끼감자를 까먹으며 무서운 얘기를 바라는 어린애처럼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났다. 남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틈을 좁히자 여학생들은 서로의 옆구리를 찌르며 은근히 분위기를 즐겼다. 어느덧 시간은 낮에서 저녁으로 접어 들어가고 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학생들은 책상을 손바닥 팔꿈치로 두드리며 발을 굴렸다. 마치 캠프파이어라도 하는 양 분위기가 농익어 갔다. 교수가 가까이 오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기대에 찬 두 눈을 빛내며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책상을 밀고 교수를 에둘러 쌌다. 교수가 둥그런 원안으로 들어오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다들 준비 되셨습니까.”

    비명 같은 함성이 터졌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랬다. 그게 시작이었다. 매 순간 모호한 미소를 버릇처럼 짓고 있던 젊은 교수가 스무 명 남짓한 학생들에게 들려준 신비한 이야기. 그것은 꿈이었을까. 아니면 환상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단순한 거짓말로 그들을 홀린 허깨비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왜 하필 그 날이었을까.

    5월 18일.

    어제 죽어간 이가 꿈꾸던 단 하루. 불과 오늘 밤만 지나면 19일이 될 것이다. 그럼 우리네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 싶게 현재의 나로 돌아와 그들을 기억에서 완연히 지우고 살아갈 터였다. 한 해 부족한 삼십년 동안 충분히 그래왔고 앞으로 반복될 삼백년, 또는 삼천년 동안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된다.

    그것만이 폭도라 취급받고 역사의 뒤안길 속에 사라져간 많은 이들이 우리에게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형벌이다. 살고 싶다면 기억해야 한다.

    서정우. 젊은 교수의 이야기는 <기억> 그 단어에서부터 시작한다.

    1998년 당시 나는 스물 세 살이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광주로 내려오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신입생 환영회 다음날부터 줄곧 생각해왔던 유럽배당여행을 무기한으로 미루고 내려온 터라 방학이 마냥 즐겁지 많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외할머니 댁은 광주에서도 끄트머리 즈음에 위치한 어운마을이었다.

    채 백 가구가 넘지 않는 시골마을이었는데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라곤 5.18 묘지를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거의 전무하다 시피 했다.

    나는 광주터미널에서 내려 한 시간에 한 대식 운영하는 518번 버스를 타고 어운마을에 도착했다. 일 년 만에 만난 할머니는 생각보다 정정하셨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요새는 검은머리도 다시 자란다면서 자랑삼아 머리카락을 넘겨 보이셨는데 나는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그 모습에서 나이 듦을 느꼈다.

    젊은 사람들은 굳이 자신이 나서서 젊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건 스스로 나서지 않아도 남에게 자신의 젊음을 확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든 사람은 그 반대다. 그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늙지 않았음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할머니의 그러한 확인받고 싶음에서 나이 듦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애써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명절이나 방학 때 한 번씩 내려올 적마다 내가 쓰던 방은 뒤뜰 사랑채였다. 엄마의 극성스러운 전화 덕분에 방은 마치 어제까지 누가 쓰다 간 것처럼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괜스레 죄송스러웠다. 저 팔순에 가까운 노인네가 쓸고 닦고 했을 게 눈에 선했다. 그러나 냄새만은 어쩔 수 없었는지 곰팡이의 큼큼한 향이 알싸하게 번져왔다.

    모든 게 그대로였다. 오래된 책꽂이, 책상, 삐걱거리는 의자, 담뱃불에 타들어간 장판까지. 누군가 사용한 적이 없으니 당연한 것 일 테지만 나는 아련한 향수에 젖어 들었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었다. 보이는 것이라곤 순 밭 밖에 없었지만 코 앞이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서울에 비해선 돈 주고도 못 볼 구경거리처럼 느껴졌다. 반쯤 썩어있는 나무 창틀에서 무당벌레 한 마리가 볼볼 거리며 기어갔다.

    나는 그것을 입 바람으로 후 날려 버리고 반질반질하게 닦인 방바닥에 누워 한 달 동안 이곳에서 무얼 하고 지낼지 가늠해 보았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으레 그렇듯 영어단어를 외우고, 책을 읽고, 밀린 잠을 자면서 무의미하게 보내게 될 것이다.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창고 방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나는 운동화를 꼬불쳐 신고 마당으로 내려왔다. 내 발소리에 할머니가 고개를 들었다.

    “와. 벌써 나오노? 저녁 먹을 시간 아직 안 되었는디야? 배고프나?”

    할머니의 고향은 경상남도 마산이었다. 국가유공자였던 할아버지를 만나 전라도 광주로 내려와 인생의 삼분의 일을 이곳에서 사셨는데 어찌된 것이 두 지역의 사투리가 섞여 할머니만의 언어로 재창조 되었다. 사실 저 말투 때문에 인근 경로당에서 왕따, 아닌 왕따로 숫하게 당하셨다고 한다. 하긴 동창 녀석 중에도 덜렁 차 한 대 끌고 무전여행을 하던 차에 경상북도 대구를 가게 됐는데 전남으로 시작하는 차 넘버를 보고 길도 안 가르쳐주지 않더라나. 지역감정은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나쁜 게 아니다. 역사를 알면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지역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전라도 인들이 한나라당을 찍지 않는 게 아니라 찍을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그것은 사소하지만 엄연한 차이점이 있다. 그들이 울며불며 김대중의 석방을 외쳤던 건 그의 생사여부 이상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만이 전라도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대통령 감이라는 희망. 그들에게 김대중은 선택이 아니라 구원이었다. 또한 더 이상 소외되지 않으려는 최선의 발악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역감정이라 폄하시키지만 그럴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이해하고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들이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지역감정을 역으로 이용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하이에나 같은 정치인들이 나쁜 것이다.

    나는 할머니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하늘을 희끄무레한 게딱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이른 어둠이 몰려오는지 콧등위로 한 두 방울씩 빗물이 떨어졌다.

    “할머니, 지금 5.18 묘지 갔다 오면 무서울까.”

    “‥‥‥와. 갔다 올라꼬?”

    “그냥 바람 좀 쐬고 싶어서.”

    “아야, 너는 바람을 와 남의 무덤가서 쐬나.”

    일리 있는 말이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자 할머니가 들고 있던 고추를 바구니에 넣으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창고 어귀에 걸려 있는 우산 하나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우산을 건네받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옆구리에 고추 바구니를 끼고 마당으로 나가시며 흘리듯 말씀하셨다.

    “저녁 묵기 전까진 꼭 오야. 요 앞에 선재 어매가 밤엔 귀신 나온다 카더라.”

    할머니의 우스개 농담에 나는 실없이 따라 웃었다. 우산을 펼쳐들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새 빗방울의 강도가 굵어져 있었다. 소나기겠거니 가볍게 생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5.18 묘지로 가는 길은 역시나 온 통 보이는 건 밭 밖에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밭에서 푹 삭힌 걸음 냄새가 바람에 휘날렸다. 콧구멍이 알싸했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한 때 몰아치고 사라질 소나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허나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엔 뭔가가 아쉬웠다. 내일 오면 되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가보지, 뭐. 하는 생각이 앞질러 나갔다.

    나는 발목을 감싸는 풀들을 성큼성큼 밟으며 앞으로 나갔다. 몇 대의 차들이 나를 앞질러 달려갔다. 버스는 없었다.

    묘지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나타난 버스 승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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