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이]엉겅퀴 - 6

162일전 | 259읽음

기를 바꿔 들었다. 평소에는 그다지 말수가 많은 편이 아닌데 오늘따라 아빠는 전화를 끊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잠자코 이야기를 나누던 재이는 전화를 끊을 때쯤 그가 왜 전화를 했는지 눈치 챘다. 아빠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그쪽과 연락이 닿았는지 물었다.



"아니, 아직 안 했어요. ……. 천천히 하려구. 스쿨도 나가고 이사도 하고 좀 적응되고 나서. 에이,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연락 되면 아빠한테 제일 먼저 말할게. 약속."



전화기 너머에서는 ‘알겠다.’는 짤막한 대답이 들려왔다. 재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뭐래도 나 아빠 아들이잖아. 아들 믿지? 응. 알았어. 자주 전화할게요. 네네, 내일 만들면 바로 번호 알려 줄게. 사랑해, 아빠. 바바이."



재이는 아빠가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 딸깍 하는 소리가 나고 윙 하는 신호음이 들리고 나서야 천천히 수화기를 내려놨다. 재이는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니 까만 테라스 창문을 바라보았다. 어디나 똑같은 방 안의 풍경, 그리고 조금은 다를 자신의 모습이 유리에 비쳤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던가. 아빠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냥 알고 싶은 거다.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을 뿐이다. 본능 같은 것. 확인을 해야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힘들고 두렵지만 밟아야 할 필수 코스 말이다.



재이는 침대 옆에 놓아둔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 그리고 맨 뒤에 출입국신고서와 함께 넣어둔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되서 빛바랜 사진 한 장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엄마가 자신을 안고 있었다. 한동안 엄마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재이는 사진을 뒤집어 아래에 써 있는 열 자리 숫자와 짤막한 주소를 눈으로 읽었다.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전부 외워버린 숫자였지만 재이는 읽고 또 읽었다.



'우리 착한 아기……. 착한 아기. 미안하다, 약속 지키지 못해서. 엄마는……. 미안해, 둘만 두고 먼저 가서…….'



아픈 기억에 눈물이 조금씩 솟아났다. 재이의 손을 꼭 잡고 연방 미안하다고 말하던 엄마의 눈은 아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슬픔과 두려움에 젖어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엄마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재이는 알았다.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가족의 비밀을 이미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는 몰랐다. 재이는 침대에 누워 가슴 위에 사진을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여느 때처럼 아빠와 나란히 앉아 야구를 보던 재이는 뭐에라도 홀린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아빠, 그런데 내 친아버지는 누구야?” 아빠 손에 있던 맥주 캔이 그대로 카펫 위로 떨어졌다. 이십삼 년 간 그들이 필사적으로 지키려 했던 비밀의 문이 어이없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창백해진 아빠 대신 재이는 캔을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한 움큼의 티슈를 뽑아내 카펫을 적신 맥주를 닦아냈다. 그때 왜 그랬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재이는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아마도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리라. 태어났던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가.


깊게 생각에 잠겨 있던 재이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누구세요?"



침대에서 일어나 사진을 다시 제자리에 넣어두고 문으로 다가갔다. 밖에서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재이는 몇 번 헛기침을 한 후 좀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룸서비스입니다."



재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룸서비스는 시키지도 않았고 이 호텔은 싼 데라 그런 것도 없었다.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곧 두려움이 밀려왔다. 미국하고 달리 한국의 치안은 매우 훌륭하다고 듣긴 했지만 그래도 서울은 대도시이니 갱 같은 게 없을 리 없었다. 재이는 침을 꿀꺽 삼키고 긴장감을 감추려 큰 소리로 외쳤다.



"룸서비스 시킨 적 없는데요."



혹시 총알이라도 날아올까 봐 잔뜩 긴장해 벽에 바투 붙어 섰다. 문 밖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갔나 싶어서 방 안으로 살짝 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더 세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너무 놀라 비명이 터져 나올 뻔했다.



"411호에서 시킨 것 맞습니다."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하얗게 질린 채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재촉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참내, 의심하곤. 어이, 재이 킴. 문 열어. 나야, 나."



나라니. 서울 바닥에서 재이에게 나라고 말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다. 누구지? 혼란스런 상태에서 문고리를 감싸 쥔 재이는 어딘지 모르게 친숙한 목소리라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어?"



"어는 무슨 어. 재미없게 의심은 많아가지고. 뭐해? 어서 안전장치 풀어야지. 언제까지 세워둘 거야?"



엉겁결에 재이는 시키는 대로 안전장치를 풀고 문을 활짝 열었다. 조는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와 양손에 들고 있던 묵직한 비닐봉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긴장이 풀어지자 황당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이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늘 거침없는가!



"룸서비스는 무슨! 여긴 그런 거 없다구요. 무지 놀랐잖아! 오려면 폰부터 하고 와야죠. 아! 근데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짓궂은 장난에 책망을 하면서도 재이의 목소리는 반가운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어떻게 알았을까? 열심히 머리를 굴리던 재이는 지업을 만났던 낮의 기억을 떠올렸다. 괜찮다고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 혹시나 지업 씨가 말해준 걸까? 하지만 왜 찾아온 걸까? 전화만 해도 되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오다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흠, 그게 궁금해? 이건 안 궁금하고?"



갑자기 조가 몸을 획 돌리며 바싹 다가와 얼굴을 눈앞에 들이밀었다. 재이는 주춤 한 발 뒤로 물러나면서 고개를 숙였다. 땀내가 살짝 섞인 그의 체향이 강렬할 정도로 비강을 자극했다. 심장이 조금씩 더 빨라지며 얼굴에 열기가 모였다.



"아니, 거기 말고. 내 물건이 좀 실하긴 하지만 지금은 아니고."



다시 시작된 농지거리에 뭐라 항변할 새도 없이 조는 재이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고 그제야 재이는 그가 가리키는 오른쪽 눈썹 옆을 볼 수 있었다.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 위에는 투명한 반창고가 떡하니 붙어 있었다.



"미…… 미안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실수였어요. 하지만, 당신이 그런 짓을 하니까!"



변명에서 시작된 말이 원망으로 흐르는 찰나 조는 가차 없이 말을 잘랐다.



"됐어, 이 빚은 톡톡히 받을 테니. 근데 우리 베이비, 목소리는 왜 그래?"



"아, 감기 걸렸어요."



갈라져 높게 올라가던 목소리가 걱정하는 기색에 바로 수그러들었다. 조는 빙그레 웃었다. 이런 점도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꼿꼿하게 단단히 자신을 세우다가도 이쪽이 부드러워지면 한없이 여린 속내를 드러냈다.



"스시 사왔는데 이건 좀 그렇겠네. 뜨거운 국물 같은 게 좋잖아. 식사는 했어?"



"아니요, 아직. 괜찮아요. 스시 좋아해요."



재이는 사가지고 온 음식을 꺼내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조는 세팅을 하느라 구부정하게 숙인 재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감기에 걸렸다면 초밥처럼 냉한 음식이 좋을 리 없었다. 목도 잔뜩 부었는지 어째 목소리가 많이 잠겨 있었고 눈가도 불그스레한 게 열도 있는 것 같았다. 조는 손을 뻗어 티셔츠 위에 드러난 목덜미에 손등을 댔다. 화들짝 놀라며 재이는 조의 손을 물리쳤다.



"열이 좀 있네. 잠깐 기다려. 금방 올게."



어떻게 말릴 틈도 없이 조는 문을 열고 휙 나가버렸다. 재이는 멍하니 닫힌 문을 바라보다 그대로 소파에 주저앉았다. 도대체 이 사람의 속도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어’ 하고 있으면 어느새 다가와 옆에 있고, ‘으응?’ 하면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한국 사람의 특징이 ‘빨리빨리’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조보다 빠른 사람도 있을지 의문이었다. 고등학교 때 친하게 지냈던 해경이도 꽤나 빠른 녀석이었지만 조에 미치지는 못했다.



재이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놀란 바람에 물리치긴 했지만 목덜미를 문지르던 커다랗고 차가운 손의 느낌이 좋았다. 가슴속 깊이까지 스며들던 강렬한 체향과 함께 탄탄하게 벌어진 가슴팍이 떠올랐다. 재이는 소파에 머리를 기댄 채 스르르 눈을 감았다. 짜릿했던 입맞춤의 기억이 욕망에 슬며시 불을 지폈다. 조와는 절대 안할 거라는 단호했던 맹세는 흔적도 없이 증발된 지 오래였다. 그에게 안기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재이는 달뜬 한숨을 내쉬며 손바닥으로 사타구니를 지그시 눌렀다.



그때 힘차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고 재이는 용수철처럼 소파에서 튀어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상상했던 모든 것에 스스로 부끄러워져 얼굴을 붉혔다. 재이는 서둘러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시고 차가운 물통으로 얼굴을 비볐다.



"문 여는 데 왜 이리 오래 걸려?"



들어오는 조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 있었다.



"토…… 토일렛에 있었어요."



"설렁탕 먹지? 거 왜 고기국물 말이야."



"네, 먹는 건 다 잘 먹어요. 고마워요."



부드럽게 웃는 조의 미소를 보자 진정시켰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짓궂게 장난칠 때도 있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는 친절했다.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걸까. 그냥 심심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혹시, 혹시 나를 조금은 좋아하는 걸까. 고마운 마음과 그에게 느끼는 어떤 감정,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의문이 한데 뒤섞였다.



조는 소파에 털썩 앉아 스시를 한쪽으로 밀어놓고 새로 사온 음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회용 용기 안에는 뽀얀 설렁탕 국물이 가득 차 있었다. 조는 파를 듬뿍 넣고 소금으로 살짝 간을 한 후 깍두기 국물을 따라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을 말아서 재이 앞으로 내밀었다.



"먹어. 감기 걸렸을 때는 이게 최고야. 여기에 이것까지 곁들이면."



극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조는 즐거운 얼굴로 산(山) 한 병을 꺼냈고 재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초록색 병만 봐도 속이 메슥메슥했다.



"으으, 싫어요. 소주는 안 마실래."



"저런. 벌써 서울의 낭만을 잊은 거야?"



조는 준비해 온 작은 종이컵에 술을 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낭만에만 빠져 살 순 없으니까요."



대답을 한 뒤 재이는 휘휘 젓던 국밥 한 술을 떠 입에 넣었다. 빨갛고 파란 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영 식욕을 일으키질 않아 주저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보기보단 맛있었다.



"하, 그거 명언이네. 낭만에만 빠져 살 순 없다……. 크으. 이런 낭만이라면, 난 거부하기 힘들 것 같은데, 하하."



조는 기분 좋게 한 모금을 넘기고 도시락에서 스시 한 점을 꺼내 간장에 찍은 후 입에 넣었다. 입 안에 퍼지는 산뜻한 초밥 맛이 일품이었다.



"많이 마시지 말아요. 건강에도 안 좋은데."



"흐음, 걱정해주는 거야?"



재이는 대답 대신 국밥을 떠 먹었다. 서울의 밤에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다니는 양복 입은 남자들이 참 많았다. 다들 집에도 안 가고 어디서 그렇게 술을 마시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시티에서는 밤거리를 쏘다니는 샐러리맨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퇴근하고 바로 와서인지 조도 오늘은 신사복 차림이었다. 목 단추는 끄르고 팔을 걷어붙인 상태였지만 화이트 셔츠에 양복 바지 차림이었다. 머리도 주말처럼 편한 스타일이 아니라 이마가 드러나게 깨끗이 빗어 넘겨 단정한 인상을 연출했다. 솔직히 멋있어 보였다.



"괜찮아. 스시에 소주가 빠지면 허전하다구."



조는 천천히 스시와 소주를 즐기며 열 때문인지 홍조를 띤 얼굴로 밥을 먹는 재이를 바라보았다. 조사 결과를 가지고 찾아온 당황한 얼굴의 서 과장이 떠올라 조는 술잔을 기울이며 속으로 웃었다.



'죄송합니다, 상무님. 서울시내 특급 호텔을 전부 뒤졌지만 말씀하신 재이 킴은 없었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른 1, 2급 호텔까지 찾아보긴 했는데 반포동 한강 호텔에 말씀하신 재이 킴이 투숙해 있긴 했습니다만, 나이가 만 스물셋이고 아무래도 저희가 찾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한 자료는 두고 가라고 말하고 좀 더 애써보라며 서 과장을 내보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야근하고 있을 서 과장이 가엾지만 어쩌겠는가. 공사를 구분 못하는 상사 하나 잘못 만난 셈 쳐야지. 사실 스스로도 그다지 믿기지 않았다. 회사 직원을 이용해 재이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고 여기까지 찾아온 자신의 행동이, 이성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무슨 바람이야, 천하의 조재혁이.'



가벼운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진지한 것도 아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다르니까. 마음이 가고, 몸도 갔던 상대들 모두 흥이 나고 즐거우면 만나고 식으면 그에 따라 자연스레 헤어졌다. 마음에 들었지만 이래저래 어긋나는 상대들은 인연이 아니려니 생각하고 미련조차 두지 않았다. 게이지만 사회에서는 영원히 일반으로 살아야 하는 인생이기 때문에 포기한 부분이 있어서일지도 몰랐다. 그런데 재이는 뭔가 달랐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지 재이는 밥을 먹으면서 연방 손등으로 땀을 훔쳤다. 귀여웠다. 그래, 그만 인정하자.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달라서 뭘 어쩌겠다는 건가. 결국에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끌리는 대로 다가가 같이 자고 적당히 사귀다 적당히 헤어지고. 한때를 함께 나누었지만 상대는 자신의 풀 네임조차 알지 못하고. 조는 자조적인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 좀 씻고 올게요. 온몸이 땀이에요. 이거…… 정말 굉장하네요."



"안 돼. 좀 찝찝해도 내버려둬. 그렇게 한 차례 땀 흘리고 약 먹고 자면 내일 아침엔 좀 개운할 거야."



조는 주머니에서 약국에서 사온 감기약을 건넸다. 이건……. 계속된 조의 친절에 감동해서 심장은 욱신거리는데 조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무렇지도 않게 늘 하는 행동처럼 말이다. 재이는 약봉투를 받아들고 한참을 가만히 있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누구한테나 이렇게 sweet해요?"



얼굴이, 목소리가 묘하게 딱딱해졌다. 그냥 가볍게 농담처럼 물어봐야 되는데 잘 되질 않았다.



"응?"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듯 조가 반문했다. ‘억울해.’ 재이는 혼자 중얼거렸다. 자신은 이렇게 휘둘리고 있는데 그는 너무나 여유가 넘친다. 억울했다.



"……오해하고 싶어지잖아요."



그의 시선을 피해 돌아서며 결국 재이는 속내를 드러냈다. 등 뒤에서 침묵이 흘렀다. 오랜 시간이 아닐 텐데 재이는 그 짧은 무언의 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조용한 방 안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가 우레처럼 크게 들렸다. 잠시 후 어깨를 감싸는 단단한 팔과 등과 맞닿은 탄탄한 가슴이 재이를 보듬어 안았다.



"마음껏 오해해줬으면 좋겠네."



목덜미에 차가운 조의 입술이 느껴졌다. 지그시 눈을 감으며 재이는 가벼운 흥분이 섞인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입술이 목덜미를 더듬으며 올라와 살짝 귓불을 물었다. 커다란 조의 손은 티셔츠 안을 파고들어 매끈한 복부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엉덩이에는 단단하게 발기한 그의 성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하고 싶다. 욕망이 꿈틀거렸다. 재이는 허리께를 맴도는 그의 손을 잡아 천천히 아래로 이끌었다. 뜨거운 손이 꼿꼿해진 성기에 닿는 순간 아찔할 정도의 흥분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그대로 품에 안긴 채 재이는 몸을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조의 눈동자도 타오르는 욕망으로 인해 짙어져 있었다. 재이는 조의 목을 두 팔로 휘감아 끌어내려 세차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배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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