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이]엉겅퀴 - 4

162일전 | 313읽음

쏟아지는 물줄기를 한껏 즐겼다. 살짝 오른쪽으로 휘어진 페니스는 아주 크진 않았지만 적당한 사이즈였고 빛깔도 모양도 좋았다. 조는 한쪽 눈을 감고 손가락을 들어 대략 사이즈를 쟀다.



"저 정도면……, 13센티는 되겠군. 좋아! Not bad."



씻고 있으니 좀 살 것 같았다. 재이는 몸을 감싸는 뜨거운 물줄기가 기분이 좋아 나른한 표정으로 만족스런 신음을 토해냈다. 여유가 생기자 좀 전의 상황이 떠오르며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퉁퉁 부어서 웃긴 꼴에, 밤새 몇 번이나 토하는 것을 봤으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키스한 것일까. 무슨 맛이었을지 생각하던 재이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나 같았으면 비위가 상해서 대놓고 토했을지도 몰라.


정말이지 못 말릴 정도로 장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재이는 생각에 잠겨 혼자 쿡쿡 웃다 무심결에 눈을 떴다. 침대에 앉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조와 정통으로 눈이 마주쳤다. 조는 능숙하게 윙크를 하며 팔을 들어 커다랗게 원을 그리듯 손을 흔들었다. 별 생각 없이 배시시 웃던 재이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는 욕실이고, 저기는 침실이다. 난 여기에 있고, 조는 저기에 있는데…….


느른하게 풀어져 있던 재이의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졌다.



Oh. My. God!


입이 커다랗게 벌어짐과 동시에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욕실 문이 열렸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재이는 미친 듯이 뛰어나와 조에게 달려들었다. 흠뻑 젖어 매끄러운 알몸이 그대로 조를 내리깔았다.



"What the hell are you doing?! Fuck!"



그러나 조는 조금도 여유를 잃지 않고 외려 더 키득거리며 재이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욕망이 잔뜩 묻어나는 새된 목소리로 속삭였다.



"베이비, 육탄공격이라니……. 하아, 그렇게 누르면 너무 자극적이잖아."



부끄러움과 화가 뒤섞여 재이의 얼굴은 불타는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앞뒤 생각 없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알몸인 것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내버려 두자니 너무 분했고, 그렇다고 이대로 있자니 이건 외려 하자고 졸라대는 몸짓 같았다. 이를 악문 채 재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벌떡 일어나 다시 욕실로 달려가며 외쳤다.



"You pervert! I never make out with you! Never! Never ever!” 이런 변태! 내가 당신하고 하나 봐! 절대! 절대로 안 해!





2. 이탈리아 대리석






짧은 단발머리에, 수수한 감색 정장이 잘 어울리는 윤성혜가 전략팀 중장기 전략담당 상무 비서로 발령을 받은 것은 석 달 전이었다. 출산과 육아 문제로 이전 비서가 휴직을 한 바람에 성혜가 임명을 받았을 때 다른 여비서들은 은근히 부러워했다.



그녀가 모실 훤칠한 키에 선이 굵고 분명한 외모를 가진 상사는 성한그룹 총수의 장남이었다. 서울대를 나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정통 후계자 코스를 밟은 그가 성한 자동차 상무로 입사한 것은 벌써 2년 전의 일이었다. 성한에서 자동차 산업을 시작한 지는 십 년이 채 안 된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룹에서 주력으로 밀고 있었고 앞으로도 전자를 뛰어넘는 대표 사업이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가 자동차 계열에 입사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입사 후 그는 고객의 컴플레인 1 순위였던 A/S의 시스템을 완전히 뒤바꿔 능력을 입증했으며 차기 모델 마케팅 전략에서도 뛰어난 수완을 보였다. 그리고 오 전무를 제외한 기존의 다른 임원들과도 커다란 마찰 없이 조직을 잘 운영해 신망 또한 차근차근 쌓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몇몇 대표이사들은 아버지를 능가하는 재목이 될 거라며, 성한의 밝은 미래를 장담하기도 했다.



게다가 사생활에서도 다른 3세들처럼 복잡한 여자관계로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고, 직장에서는 함께 일하는 여직원들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다해, 그녀의 상관은 사내에서 인기가 높았다. 사귀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집안끼리 혼담이 오가는 것도 아니라서, 입사 동기들도 ‘어머, 너 잘해봐라. 혹시 아니? 그러다 재벌가 며느리 될지.’라며 질투 섞인 충동질을 쳤다.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사실 성혜도 은근히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다.



화려한 미인은 아니었지만, 단아하고 기품 있는 외모에 어릴 적부터 조신하다는 말을 듣고 자란지라, 그녀는 자신 정도면 그가 반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나 상무가 비서를 뽑을 때 필수 조건으로 내건 것이 미모도 몸매도 아니요, 커피를 제대로 드립할 줄 아는 기술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성혜는 여느 때처럼 정성을 다해 커피를 드립한 후 쟁반에 받쳐 들고 노크를 했다.



컴퓨터를 키고 상황 모니터의 전원을 넣은 후 데스크를 정리하고 있던 조는 커피를 들고 들어오는 비서를 향해 예의 바르게 아침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윤성혜 씨. 좋은 아침입니다."



윤 비서도 아니고, 미스 윤은 더더욱 아닌, 언제나 풀 네임을 불러주는 상사의 배려는 확인할 때마다 감동적이었다. 게다가 오늘의 아침 인사는 여느 때보다 한층 더 부드러웠다. 마치 방 안에 퍼지는 커피 향만큼이나 그윽하게 다가와 성혜는 두근거리기 시작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야 했다.



"오늘은 에티오피아 이가셰프입니다. 좋아하시는 French 배전으로 내렸어요."



"늘 신세가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돌아앉는 상사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순간 성혜는 흠칫 놀랐다. 흠이란 걸 찾아볼 수 없어서 아쉬울 정도로 완벽한 얼굴 위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반창고가 떡하니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오른쪽 눈썹 위, 뼈가 도드라진 곳은 반창고를 붙였음에도 벌겋게 부어오른 티가 역력하게 났다.



가죽 의자에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에티오피아 커피 특유의 부드러운 신맛과 밀랍 향기를 즐기던 조는 방 안에 감도는 침묵을 알아채지 못했다. 입 안을 애무하는 은은한 와인 맛이 목구멍 너머로 넘어갔을 때 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고 윤 비서의 놀란 토끼 눈과 마주쳤다. 그는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눈가를 쓰다듬었다.



"별 거 아닙니다. K1에서 최홍만과 한판 붙었습니다. 만만찮은 상대였어요."



본인이 생각해도 썰렁하기 짝이 없는 농담을 던지고 수습이 되지 않아 조는 진지한 업무 모드로 자세를 바꾼 후 스케줄 북을 든 채 가볍게 턱을 괴었다. 성혜는 민망함을 감추려 작게 헛기침을 하고 이번 주 일정을 또박또박 낭독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11시에 임원들, 각 부서 팀장들과 주례 팀장 회의가 있습니다. 화요일엔 본사에서 오후 2 시에 임원간담회가 있습니다. 예산 조정과 채권단에 올리는 보고에 대한 회의입니다. 자료는 오늘 날짜 디렉토리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나면 바로 부산 출장이 잡혀 있습니다. 영업부 강 부장님과 기획 2팀 정 차장님이 수행합니다. 부산 공장 시찰이 끝난 후에는 부산 공장 임원진과 회의 및 저녁 식사가 잡혀 있습니다. 수요일 오전에 부산 영업국 방문하시고 서울로 돌아오신 오후 4시에 관훈 클럽에서 ‘환경변화와 한국 기업의 나아갈 길’이란 주제로 초청 강연이 있는데 참석하기로 되어 있으시고요, 끝나고 회원들과 저녁 만찬이 있습니다. 사장님과 회장님도 참석 예정입니다."



윤 비서는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목요일엔 신성 인디케이트 대표이사님과 함께 골프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입니다. 김동진 의원님도 오시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속초 연수원에서 H34 프로젝트와 가을 파리/도쿄 모터쇼를 위한 워크샵, 그리고 마라톤 전략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워크샵은 목요일부터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윤 비서가 불러주는 내용과 스케줄 북에 기록된 월간 계획을 점검하던 조는 고개를 들었다.



"예. 그런데 목요일은 실무자들끼리의 회의가 주를 이루는지라 꼭 참석할 필요는 없다고 해서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상무님께 보고 메일을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일 함을 열었다. 토요일부터 올라온 보고와 결제 관련 메일이 삼십 통이 넘게 주르륵 올라왔다. 품질경영실의 QM 리포트와 한참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새 모델 관련 보고 메일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조는 제목을 읽으면서 항목과 중요도에 따라 메일을 분류해 나눈 후 첫 번째 메일을 클릭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한 주도 잘해봅시다."



메일을 일일이 살펴보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회의 시작 전까지 시간이 빠듯할 듯싶었다. 조는 책상 옆에 놓아둔 회의 자료를 손으로 후루룩 훑어 내렸다.



주례 팀장 회의는 언제나 간단하게를 부르짖지만, 이 사람들은 간단하다는 말의 뜻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조직의 생리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조금 맥이 빠졌다. 꼼꼼하게 세부사항을 챙겼던 전임자와 달리 조가 원하는 것은 간단했다.



중장기 전략에 맞게 계획된 실무 수행이 달성되었는가, 그러지 못했는가. 달성되었다면 다음 수행 과제는 무엇인가, 달성되지 못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이 세세한 업무를 하나하나 알 필요는 없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 가장 적합한 능력을 가진 팀장이 따로 있는데 미주알고주알 챙길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회의 시간도 점심시간 직전 11시를 잡아놓건만, 매주 올라오는 자료들을 보면 1시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분량이었다. 주례회의의 목적은 산지사방에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팀들 간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현재의 위치 확인이라고 누차 말했건만.


조는 자료 첩을 소리 나게 툭 책상 위에 던져놓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스크린 세이버 위에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오른쪽 눈썹 위의 반창고가 확연하게 눈에 들어와 조는 두 손 놓고 당해버렸던 주말의 기억에 피식 웃어버렸다.



짓궂은 장난에 시뻘개져서는 어쩔 줄 모르고 씩씩거리더니 결국 분이 풀리지 않은지, 재이는 맹렬한 속도로 돌진해와 그대로 조에게 헤딩을 해버렸다. 갑작스런 충격에 별이 반짝반짝, 머리는 어질어질, 한참 정신 차리지 못해 비틀거리는데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뜨겁고 진득한 액체가 손을 흠뻑 적셨다.



"이탈리아 대리석인 줄 알았더니, 완전히 짱돌이었어."



그리고 재이는 피를 철철 흘린 채 공포 영화를 찍고 있는 조를 내버려두고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것으로 재이와는 끝이었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 생각해보니, 그의 숙소가 어디인지, 직장이 어디인지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혹시나 해서 모텔 안을 스윽 훑어봤지만, 영화에서처럼 단서가 될 만한 흘려진 물건은 한 개도 없었다. 그래서 데뷔 인생 십 년 만에, 조는 모텔까지 데리고 들어간 상대와 아무 일도 없이, 발효된 키스맛과 영광의 상처만을 추억으로 간직한 채 씁쓸히 돌아서야 했다.



"수치야, 수치."



이 수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슴속에 묻은 채 혼자만의 트라우마로 간직할 것인가, 아니면, 예의 바른 인간답게 받은 것은 고스란히 갚아줘야 할 것인가.


조는 처리해야 할 결제 메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엉뚱한 고민으로 골몰하기 시작했다. 인연이 아니려니 생각에서 지우면 될 텐데 묘하게 자꾸 밟혔다. 술에 취해 배시시 웃던 얼굴하며, 분해서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모르고 씩씩대던 모습하며, 무엇보다 늘씬하게 쭉 빠진 알몸하며 말이다.



'당신한테 나를 너무 많이 보여준 것 같아서…….'



목덜미를 붉히며 잠시 보여주었던 마음의 자락에 다리 사이의 무게가 참을 수 없게 느껴졌다. 조는 벌떡 상체를 일으켜 세워 멀티 폰의 9번 버튼을 눌렀다.



"윤성혜 씨. 기획 3팀 정보자료과의 서 과장님 급히 제 방으로 오시라고 해주십시오."



합리적인 이성과 냉철한 판단력이 주종목이긴 하지만 때론 본능의 명령이 가장 정확할 때도 있었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말이다. 가지고 싶고 가질 수 있는 것을 놓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솟아오른 욕망으로 인해 잔잔했던 수면이 일렁였다. 짜릿한 기쁨이 물결 위에 반짝거렸다. 조는 기대감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인터폰을 통해 윤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고 문이 열렸다.



"안녕하십니까, 상무님."



"안녕하십니까, 서 과장님. 편하게 앉으십시오."



서 과장은 다가오는 조 상무를 보고 주춤거리며 소파 옆에 서 있었다. 과장이 상무와 독대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무슨 일로 급하게 자신을 찾은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서 과장은 상무가 소파에 앉는 것을 지켜본 후 자리에 앉았다. 언젠가 백화점에서 본 것 같은 모카 색의 고급 물소 가죽 소파였다. 가운데 놓인 테이블도 금빛 펄이 화려하게 빛나는 이탈리아 대리석이었다.



이래서 성공을 해야 하는 거야. 서 과장은 아리따운 비서가 주는 음료 잔을 손에 쥐며 생각했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 상무란 직함을 가지고 이나영 뺨치는 미인을 비서로 거느리고 있다. 얼마나 돈을 들여서 장식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는 근사한 사무실에서 말이다. 서 과장이 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상무는 몸을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먼저 서 과장님, 이 이야기는 off the record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서 과장은 저도 모르게 몸을 바싹 긴장시켰다. 긴장된 목울대가 위아래로 크게 움직였다. 상무는 대답을 구하듯 시선을 맞춘 채 움직이지 않았고 서 과장은 그 파워에 밀려 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조심스레 상무가 입을 열었다.



"미국 Ford에서 닥터 재이 킴, 한국명 김재이라는 자동차 엔진 기술 전문가가 은밀히 내한했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현새의 뉴



아란테의 엔진 결함 문제로 왔다는 정보입니다. 오늘 안으로 이 사람이 서울 어느 호텔에 머물고 있는지 찾아봐주십시오. 비공식에다 극비



사항이니, 서 과장님께서 직접 움직여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루트로 입수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쟁사 베스트셀러 카의 결함과 관련된 정보라면 상당히 중요한 게 틀림없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일 뿐. 서 과장은 임무의 막중함에 입매를 딱딱하게 굳혔다.



"즉시 처리하겠습니다. 아무리 늦어도 오늘 안으로 원하시는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서 과장님만 믿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 부탁하는 모습에 서 과장은 어쩐지 우쭐해졌다. 그래도 정보자료과에서 잔뼈가 굵은 자신을 상무가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 되지 않을 터였다.



서 과장은 주먹을 가볍게 쥐고 서둘러 방을 빠져나갔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상무가 원하는 정보를 가장 빨리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 돌아선 조의 입가에는 벌써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성한의 정보력은 국가정보원에 필적할 만한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힘을 남용한다는 사실이 조금 뜨끔하긴 했지만 순간이었다. 성한으로서도 자신이 한시 바삐 심리적 안정을 찾아 일에 집중하는 게 이득이 될 터였다. 자신의 안녕이 곧 회사의 안녕 아니겠는가.


창가에 서서 저 아래 보이는 남대문을 응시하던 조는 아직도 부기가 가시지 않은 눈썹 주변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이봐 재이 킴. 이 빚은 톡톡히 갚아야 할 거야."



***



"에취!"



연방 터져 나오는 재채기에 재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비볐다. 어쩐지 한기가 들었다. 한여름에 무슨 감기인가 싶기도 했지만, 재이는 정말 감기에 걸렸다. 서울의 냉방 장치 위력은 대단했다. 밖은 찜통처럼 더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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