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이]엉겅퀴 - 11

162일전 | 358읽음

10-IMISSYOU* 로 연락바람. 오늘 내로 연락 안하면 이 번호는 자동 폭파됩니다;-P 아, 그리고 다음부터는 택시 회사에 휴대폰 번호를 반드시 남기도록. 집 찾느라고 애 먹었잖아. Joe:]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재이는 얼굴 가득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노란 포스트잇에 연거푸 입을 맞췄다. 정말이지 이 남자는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출중했다. 서둘러 시계를 확인해보니 열두 시 일 분 전. 재이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 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010-IMISSYOU를 눌렀다. 매캐한 연기는 깨닫지도 못했다. 경쾌한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가슴도 빠르게 뛰었다.






* 영어권 나라에서는 전화기 숫자 아래 써진 알파벳으로 숫자를 대신해서 번호를 알려주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는 010-4647-7968이 나옵니다.






4. Bottom up & Top down






문을 열자 짙은 쑥색의 사파리 바지에 하늘색의 반소매 셔츠를 입은 조가 웃고 있었다. 재이는 위아래로 한 번 스윽 훑어본 후 도로 문을 닫았다. 문 너머에서 놀라는 조의 목소리가 들렸고 재이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재이야, 문 열어."



손잡이를 잡고 심호흡을 하며 속으로 열을 셌다. 그리고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걷은 후 천천히 문을 열었다.



"바쁘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멋대로 굴지 말라구요. 나도 내 생활이란 게 있는데."



단단히 팔짱을 낀 건방진 자세로 부러 인상까지 쓰면서 말하는데 눈앞에 불쑥 꽃다발이 들이밀어졌다. 탄성이 나올 정도로 예쁜 꽃다발이었다. 꽃잎이 겹겹이 풍성하게 만개한 보라색과 분홍색, 그리고 아이보리색의 장미가 이름 모를 작은 꽃들과 섞여 한 다발 가득이었다. 꽃 들고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하러 온다더니,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좋아하는 재이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어야 했다.



"이런 건 뭐 하러 가져와요. 내가 무슨 여자예요?"



더 이상 인상을 쓰진 않았지만 재이는 무뚝뚝하게 꽃다발을 도로 조에게 건네며, 물론 꽃이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서, 등을 돌렸다. 굉장히 비쌌을 거였다. 저 정도 수준의 꽃다발이라면 족히 백 불은 넘게 줘야 했다. 에스코트 할 때 여자가 받는 꽃도 장미꽃 몇 송이 종이에 둘둘 만 정도인데, 이렇게 화려한 꽃다발이라니. 이번에는 문을 닫지 않고 들어와 하던 설거지를 마무리하기 위해 물을 틀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라 들어온 조는 재빨리 문을 걸어 잠그고 낯 뜨거운 말을 던졌다.



"예쁘잖아. 나는 내쳐도 얘는 내치지 마. 얘가 무슨 죄야. 음……, 재이보다 예쁜 게 죄려나?"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이 울컥 치고 올랐지만 재이는 간신히 말을 삼켰다. 유들유들하게 희롱하는 저 농간에 걸리면 지는 거다. 넘어가나 봐라. 재이는 냉랭한 표정으로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컵만 죽어라 씻었다.



조는 꽃다발을 어디에 놓으면 좋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은 정말 작았다. 네 걸음이면 방 끝에 닿을 정도로 작았다. 심지어 한남동 집 욕실보다 작았다. 그런데 그 작은 방 안에, 침대, 옷장, 책상, 싱크대,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이 몽땅 다 들어가 있었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선물상자처럼. 꼭 재이처럼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조는 꽃다발을 책상 위에 놓고 재이를 돌아봤다.



여전히 토라진 얼굴로 그릇을 씻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니라고는 하지만 분명히 삐쳤다. 왜 삐쳤는지 도통 짐작이 가질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날 밤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얘기하다 보니 재이의 목소리가 점점 퉁명스러워졌다.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도 바쁘다고 거절하고, 그러면서도 먼저 전화를 끊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역시 전화번호를 바로 말해주지 않은 게 기분이 다 안 풀린 것일까. 조는 재이의 뒤에 바투 다가섰다. 시작할 때의 적당한 줄다리기는 나쁘지 않다. 심하지만 않다면.



"그만 봐줘라, 재이야."



부드럽게 속삭이면서 조는 뒤에서 재이를 감싸 안았다. 재이는 숨을 훅 들이켰다. 갑작스런 접촉에 그대로 발기해버렸다. 얼굴은 빨개지고 심장은 자존심도 없이 좋다고 펄떡펄떡 뛰었다. 젠장. 하필이면 얇은 반바지 차림이라 돌아섰다간 흥분한 걸 들킬 게 뻔했다. 재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포옹을 뿌리치며 슬쩍 옆으로 몸을 옮겼다.



"저리 가요, 더워요. 봐주고 말고가 어디 있어요. 우리가 무슨 사이인가? 바빠서 그래요, 바빠서."



쌀쌀맞게 말을 내뱉자마자 바로 물러나는 몸짓에 말과는 달리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너무 심했나? 재이는 물기를 턴 그릇을 정리해 위 선반에 넣는 척하며 힐끗 조의 표정을 살폈다. 화가 나거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 이 정도로 약해지면 안 된다. 재이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흠, 이거 섭섭하네. 우리 사이 특별한 줄 알았는데……."



능청맞게 굴고 있지만 섭섭하단 말에 정말 서운함이 담겨 있어 다시금 심장이 따끔거렸다. 이 정도면 됐을까. 정말 아직 뭐라 말할 수 없는 사이인데 너무 튕겨도 곤란하다 싶었다. 슬며시 마음이 누그러졌다. 재이는 손에 묻은 물기를 핸드 타월에 닦고 무심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에 작고 바삭한 종이쪽지가 걸렸다. 힐끗 봤더니 그날의 노란 포스트잇. 재이는 조가 눈치 채지 못하게 주머니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다.



I MISS YOU, 그 단어에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는데…….


잔뜩 부푼 마음으로 자존심이고 뭐고 생각도 못하고 바로 전화했더니 조는 쿨쿨 자고 있었다. 자고 있었다. 자고, 자고 있었단 말이다, 자고!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자 새삼 역류된 분노가 활활 타올랐다. 밤새 뜬 눈으로 전화를 기다렸다고 해도 상처 입은 자존심이 회복될까 말까였는데 세상에 아주 단잠을 주무시고 계셨다. 거기다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안해하는 기색이라곤 조금도 없었다. 아주 대놓고 광고하셨지. 한참 달게 자고 있는데 이 늦은 밤에 (무례하게) 무슨 전화냐는 식으로. 재이는 심호흡을 하고 몸을 돌려 조를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 좋은 사람이고 친절한 사람이에요. 처음 보는 저한테 정말 잘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뿐이에요."



"진담이야?"



고삐를 틀어쥔 손에 힘이 더욱 들어갔다. 한 번 잡은 기세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재이는, 그래서 웃으면서 되묻고 있긴 하지만 조의 눈빛이 진지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네."



차갑게 내던져진 말에 언제나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던 조의 입가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재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본능적으로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연덕스럽게 농담하며 장난을 걸 줄 알았는데 조가 정색을 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재이는 당황했다. 이렇게 진심으로 싸우려는 것은 아니었는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아까 멈췄어야 했다. 그 정도에서 멈췄어야 했는데, 붙기 시작한 가속도는 힘을 멈춰도 타력이 남아 계속 전진했다. 혼자 힘으로는 멈출 수가 없을 만큼.



"하."



믿을 수 없다는 듯, 짤막한 한숨을 내뱉으며 조는 마주 보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실망하고 상처받은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낸 얼굴이었다. 여유로운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재이도 눈을 내리깔았다.



착각이고, 오해였다……. 조는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을 꽉 쥐기만 한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연거푸 가벼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혼자 착각하고 오해했단 말이지. 혼자. 생전 하지 않던 짓까지 하면서 달려왔는데 전부 헛짓이었다.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아주 생으로 난리를 쳤군. 조는 전에는 느껴본 적 없는 허탈하고, 화가 나고, 슬프고, 기가 막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한데 뒤섞여 뭐라 정의할 수조차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이를 악물었다. 자, 나가자. 나가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작별의 말을 던지고 나가야 했다. 쿨하고 가볍게, 그냥 가뿐하게 걸어 나가면 끝. 핸드폰은 던져버리고 꽃은 쓰레기통에 처넣으면 된다. 그런데 발걸음이 도통 떨어지질 않았다.



"그럼, 그때 호텔에선 뭐야? 그것도 내 착각이야?"



생각을 다듬을 새도 없이 날로 터져 나온 말을 조는 바로 후회했다. 도대체 뭘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인가. 아무것도 없지만 끝까지 간 상대가 한둘이었던가. 구질구질하다. 깔끔하게 끝내지 못하고 매달리고 있다. 순간 깨달은 행동의 의미에 조는 충격을 받았다. 매달리고 있다. 누가? 천하의 조재혁이! 옆에서 보고 있기가 딱할 정도로 구접스럽게 매달리고 있었다. 낯을 제대로 들 수 없을 정도로 너절한 말을 던지며 자존심조차 지키지 못하고. 맙소사. 조는 자조 섞인 한숨을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됐다. 그만하자. 이 정도까지도 대단한 거였다. 어차피 안 되는 거 알면서 달려온 건데, 거기에 상대는 아니라는데 매달리는 것도 우스운 짓이었다. 결심을 굳힌 조는 자신을 추스른 후 눈을 떴다.



"미안했다. 귀찮게 해……, 재이야, 너 왜 그래?"



억지로라도 산뜻하게 이별하려고 재이의 어깨를 가볍게 쥐었던 조는 팔뚝에 떨어진 미지근한 물기에 놀라 재이를 쳐다봤다.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녀석의 어깨가 조금씩 들먹거리고 있었다. 혹시 우는가 싶어서 확인하려 했지만 재이는 세차게 도리질 치며 고집스레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결국 조가 자세를 낮춰 아래에서 위로 쳐다보았다. 재이는 주먹을 꼭 쥔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심장이 덜커덕 내려앉았다.



"인마 네가 왜 울어? 울면 내가 울어야지. 차인 건 난데."



말하고 보니 정말 차였네. 어처구니가 없는 녀석의 눈물에 맥이 빠진 조는 힘없이 실소를 내뱉으며 두 손으로 재이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두 눈의 눈물을 닦아주었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재이는 더 심하게 눈물을 흘렸다.



"이 녀석아, 그만 울어."



재이는 눈물을 멈추려고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눈물을 닦아주는 조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자꾸 눈물이 나왔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잘 되질 않았다. 상처 입은 조의 얼굴을 본 순간 자신이 더 많이 아팠다. 멈춰야 했는데, 멈췄어야 했는데 멈추질 못하고 거짓으로 상대를 상처 입혔다. 그대로 그가 떠난다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은 특별하지 않다고, 내쳐버린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자신을 외면하고 있는 조의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가슴에 맺혔다. 괜한 거짓말 때문에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심장이 질끈 조여 왔다. 저절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끝내고 싶지 않았다. 끝내고 싶지 않아. 재이는 얼굴을 감싸고 있는 조의 손을 잡았다. 좋아해요. 당신이 정말 좋아요. 재이는 고개를 들어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조를 쳐다봤다.



"미…… 미안해요."



재이는 끅끅 울먹거리며 한 마디씩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갔다.



"내…… 내가 못돼서, 못돼 먹어서……, 아, 아빠도 temper 좀 죽이라고 했는데, I…… I told a lie."



뿌연 시야 너머로 휘둥그레 커지는 조의 눈이 보였다. 그러니까 가지 말아요. 무의식적인 바람이 재이를 움직였다. 재이는 두 팔을 뻗어 조의 목을 세게 끌어안으며 느껴 울었다.



"흑흑, 미…… 미안해요. 거짓말, 거짓말이었어요."



"하, 정말…… 정말 못됐잖아."



말로 타박하면서 약간의 원망을 담아 등을 투덕거리던 조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서서히 재이를 마주 안았다. 거짓말이란 고백을 듣는 순간 기운이 쭉 빠졌다. 화가 나기는커녕 거짓말이라서 너무 다행이란 생각만 들었다. 지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기분이었다. 완전히 당했어. 조는 중얼거렸다. 이 깜찍한 녀석한테 제대로 휘둘려버렸다. 조는 재이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 몸을 뗐다. 자기가 저질러놓고도 마주한 눈동자는 아직도 겁에 질려 있었다. 정말이지 기막힌 녀석이었다. 안심을 시키기 위해 조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매만지며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만 울어. 뚝. 자, 울지 말고 웃으면 상 줄 테니까, 웃어봐. 어서."



물방울이 맺힌 긴 속눈썹이 몇 번 깜빡이더니 눈물로 얼룩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시키는 대로 웃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조는 뜨거운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가져다댔다. “이게 상이야.”라고 작게 속삭이면서. 아직도 눈물에 젖어 있는 붉은 눈가 위에 길고 숱이 많은 속눈썹이 커튼처럼 내려왔다. 소금기가 묻어 짭짤한 입술이 부드럽게 입 안으로 들어왔다. 감은 눈 아래로도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윗입술을 부드럽게 빨던 조는 입술을 미끄러뜨리며 뺨에 묻은 눈물을 전부 핥았다.



"그만 울어……, 사람 마음 아프게……."



조는 재이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가늘게 뜬 눈 위에 키스를 했다. 발갛게 달아오른 눈언저리에도, 가늘게 떨리고 있는 연약한 속눈썹에도,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재이의 등을 한 팔로 받치며 상체에 힘을 줘 눌러 바닥에 재이를 눕혔다. 마지막 눈물이 눈가장자리를 타고 흘러내려 귓불 위에 툭 떨어졌다. 재이는 손을 뻗어 조의 목을 끌어안아 당겼다. 잠시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서로에게 돌아왔다.



재이는 정신없이 조의 입술에 매달렸다. 놓칠 뻔했다는 아찔함이 욕망을 더욱 부추겼다. 재이는 아래로 드리워진 셔츠 안에 손을 넣어 조급히 파고들었다. 단단한 옆구리가 손바닥에 맞닿았다. 손에 잡히는 질량감 있는 육체는 가슴을 한층 더 떨리게 만들었다. 콧속으로 들어와 온몸에 스며드는 체향 역시 짜릿했다. 무슨 향수를 쓰는 것일까. 냄새가 너무 좋았다. 재이는 점점 더 깊이 들어오는 그의 혀를 잇새로 살짝 물어 힘 있게 빨아대며 숨을 깊숙이 들이마셨다.



"하아, 괜찮아?"



두 팔로 바닥을 단단히 지지하며 내려다보는 얼굴, 정말 잘생겼다. 자신처럼 흥분해 상기되고 몽롱해진 표정도 정말 근사했다. 재이는 눈을 가볍게 감았다 뜨는 동작으로 ‘yes.’를 말했다. 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흠, 특별하지 않은 사람하고 이런 짓 아무렇지도 않은가 보네."



조금도 변하지 않고 돌아온 짓궂은 농담에 슬며시 눈을 흘겼다. 손을 뻗어 아래로 쏟아진 조의 머리칼을 만지작거리며 재이는 막 생각난 듯 눈동자를 위로 치켜떴다.



"그러고 보니 아까 물어본 질문에 대답 안 했네~. 오해하게 해서 미안해요. 그때 좀 오래 굶은 바람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재이의 말에 조는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굶어서라…… 지금은?"



그리고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키스를 하며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으음, 지금은…… 산뜻해요."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리 사이를 파고든 무릎이 사타구니를 지그시 눌렀다. 재이는 나직한 신음을 내질렀다.



"벌써 이러면서, 산뜻하다……라. 이런 거짓말쟁이. 각오해. 오늘은 안 멈춰."



조는 즐겁게 으르렁대며 훌러덩 셔츠를 벗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가 드러났다. 누운 채 벗은 가슴을 손바닥으로 세차게 한 차례 쓸어내리던 재이는 자신을 가두었던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침대 쪽으로 뒷걸음질치자 조의 시선이 고스란히 따라왔다. 재이는 보란 듯이 웃으며 상의를 벗고 바지의 단추를 끌렀다.



"나도 이번엔 그냥 안 보내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조는 어디 해보란 듯이 여유 있게 팔짱을 끼고 재이를 응시했다. 그의 눈길은 노골적으로 지퍼를 내리고 있는 재이의 손에 머물렀다. 온몸이 저릿저릿할 정도로 흥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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