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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의덫1-40完[바리달][rd]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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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Prologue

    ?별은 밤을 찢고 나타나 영원한 새벽을 불러온다. 과거여, 조심하라. 미래는 오지 않는다?

    * * *

    “밤이 오고 있어.”

    이샬이 뒤를 돌아보았다. 작은 목소리는 그녀의 어머니, 파티마의 것이었다. 파티마는 이샬이 머무는 천막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이샬은 다시 시선을 돌려 하늘을 보았다. 타오르던 해가 저물고 사위가 어둑해지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하늘 너머로 이른 별이 떠오르고 있었다. 별은 이샬의 민족, 타라에게 매우 특별한 상징이었다. 그녀는 별을 사랑하고, 그 아래에 펼쳐진 드넓은 사막을 사랑했다.

    이샬은 파티마의 팔을 잡아당겼다.

    “어머니, 안으로 들어가요.”

    “밤이 오고 있어!”

    파티마가 파드득 떨며 외쳤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에는 선명한 공포가 어려 있었다.

    이샬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깜박였다. 사막의 밤은 혹독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타라 일족은 수많은 밤을 사막 한가운데에서 보냈다. 오아시스를 찾지 못해도 강인하게 이겨냈다. 밤은 타라에게 낯설고 힘든 것이 아니었다.

    질끈 눈을 내리감았던 파티마가 눈을 뜨고는 말했다. 그 눈동자가 흐리멍덩했다.

    “가야 해.”

    “어머니?”

    “이샬, 아버지께 가자.”

    가죽 끈처럼 가늘고 단단한 손가락이 이샬의 팔목을 붙잡았다. 파티마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해를 하지 못하고 눈을 끔벅거리는 이샬의 팔을 잡아당겨 재촉했다.

    이샬은 당황스러웠다.

    이제 곧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어둠이 내리고, 사막의 모래가 차가워지면 잠을 자야만 했다. 벌써 3년을 보낸 이 작은 오아시스를 떠나게 되더라도 그건 지금 당장의 일이 아니었다. 일족이 모두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 잠깐만요. 왜 이러세요?”

    이샬은 팔을 당겨 파티마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왔다. 어딘가 정신이 팔린 듯이 몽롱하게 풀려 있던 파티마의 눈동자에 희미한 총기가 돌아왔다.

    파티마는 가끔 이럴 때가 있었다.

    마치 홀린 듯이 밤하늘을 보며 알 수 없는 말을 읊고는 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파티마가 ‘예언’을 할 때마다 타라에게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고는 했다.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았던 그녀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이샬은 익숙하게,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깊은 녹색 눈동자에는 총기가 돌아왔지만, 대신 그 자리에 물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이샬.”

    “대체 무슨 말씀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샬은 아직도 파티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가슴 한 구석에서 예감이 속삭거렸다. 그건 파티마의 피를 이은 딸이자 타라 일족의 적장녀로서 물려받은 본능과도 같은 것이었다.

    파티마의 손이 이번에는 내 두 손을 꽉 붙잡았다.

    “늦었어, 늦어 버렸어.”

    “…….”

    “더 멀리 도망을 가야만 했는데 늦어버리고 말았구나. 잡혀버리고 말았어. 커다란 별에 가려 그를 보지 못한 거야.”

    “……그 말씀은.”

    “‘밤’이 왔어, 이샬. 우리는 이제 모두 죽고 말 거야.”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주 잡은 손을 통해 파티마의 감정이 전달되어 오는 듯했다. 이샬은 각오를 다질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평생을 사막을 헤매며 도망치듯 살았던 타라의 운명을 짊어져야 할 때가.

    “파티마, 이샬.”

    두꺼운 천으로 만든 문이 열리며 굳은 얼굴을 한 남자가 들어왔다. 파티마의 남편이자 이샬의 아버지, 압둘이었다. 그의 뒤로는 평소 유쾌하기만 했던 그녀의 사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낯 역시 끔찍하리만큼 어둡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이샬은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가엾게도 덜덜 떨고 있었다.

    이샬의 목구멍 아래로 진흙처럼 뭉친 감정이 울컥거렸다.

    시간이 다 됐다.

    자유로운 방랑자, 별을 따라 사는 타라 일족의 끝이 온 것이다.

    술탄은 기어코 타라를 찾아냈고, 위대한 지도자의 핏줄이 이 먼 곳까지- 이샬의 어머니, 파티마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죽이러 오고 만 것이다.

    * * *

    파티마의 예언은 늦었다.

    타라는 술탄의 추적을 따돌리지 못하고 붙잡히고 말았다. 작년 죽었다는 늙은 술탄은 타라를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젊은 술탄은 집요하게 그들을 추적했다.

    불길한 예언을 하는 유랑 민족은 젊은 술탄에게 발바닥 아래 박힌 작은 가시 같았을 것이다. 그는 작은 불안조차 허투루 넘기지 않는 성미의 소유자였다.

    이미 나이가 들어 예지 능력이 약해진 파티마의 예언만으로는 그들의 추적을 따돌리기가 힘이 들었다.

    이샬은 입술을 깨물었다.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일족, 별을 읽는 타라.

    타라는 술탄이 다스리는 제국 ‘요하마드’의 지배에 속하되 속하지 않은 소수민족이었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았던 탓에 술탄은 타라를 지배하되 지배하지 못했다. 특히 파티마가 압둘과 혼인하며 타라는 기를 쓰고 술탄의 눈이 닿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를 떠돌기 시작했다.

    파티마가 술탄과 사촌지간이기 때문이다.

    파티마와 그녀의 딸 이샬에게는 전대 술탄의 피가 흐른다. 아주 멀고 희미해 모래 위에 새겨진 새의 발자국 같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커다란 문제가 되었다.

    술탄은 타라가 숨어있는 오아시스를 찾아왔다.

    일족의 전사는 모두 제압당하여 무릎을 꿇었다. 선명한 굴욕이 떠오른 전사들의 얼굴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샬이 알기로 그들은 거친 사막에서도 손에 꼽히는 전사들이었다. 그러나 섣불리 대항하다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굽히는 편이 현명했다.

    이샬은 파티마의 품에 안겨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머리 위에는 새로운 술탄이 서 있을 것이다.

    당장이라도 모두를 죽여 버릴 것만 같았던 술탄은 아주 의외의 제안을 건넸다.

    타라의 적장녀이자 파티마의 딸을 준다면 조금 더 살려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예언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흥미가 있고 말이야.”

    술탄은 젊고 영리했지만, 또한 매우 변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덕분에 타라는 잠시지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이샬은 고개를 숙이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목소리만 들었다.

    “더 도망갈 생각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타라여.”

    그가 경고했다.

    “나는 재미없는 걸 싫어해. 사냥은 좋아하지만, 반항은 달갑지 않지. 너희들의 딸이 내 손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 목소리에는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그는 타라 일족의 목숨을 손아귀에 쥐고 있었다.

    “가치를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내 자비를 낭비하지 않길 바란다.”

    두 번은 주어지지 않을 테니까. 웃음이 섞인 목소리가 잔인하게 떨어졌다.

    타라를 죽이러 온 잔혹한 밤이자 지배자.

    그날 이샬은 타라를 살리기 위해 새로운 술탄의 하렘으로 들어갔다.

    2화

    짙은 향기가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사치스럽고 우아한 향기였다. 평생 맡아본 적 없는 향기였으나 결코 달갑지는 않았다. 사람을 유혹하는 요사스러운 향은 뱀처럼 이샬을 옭아맸다. 낯선 시선들이 달려들어 빗물처럼 쏟아졌다. 이샬은 더욱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고개를 치들었다.

    “네가 파티마의 딸이로구나.”

    우아하고 원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긴 속눈썹 아래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녀는 마치 먹잇감을 보듯 이샬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어머니와 달리 그녀는 젊고 싱그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여인이 이샬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품평하듯 냉랭한 시선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이샬은 그녀가 자신을 볼품없다고 여긴다는 걸 금세 알았다.

    여인은 새로운 술탄의 친모, ‘라비야’였다.

    라비야는 아들이 새 술탄이 된 후 하렘을 떠나 ‘눈물의 궁전’에서 지내고 있었다. 곧장 하렘에 처박힐 예정이었던 이샬을 잠시 빼돌린 것도 그녀였다.

    “이런 것에게 내 피가 흐르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

    “파티마는 나와 사촌지간이지. 아주 어린 시절, 정신이 나간 것처럼 멍청하게 굴다가 도망가버린 이후로는 얼굴도 본 적이 없지만……. 그래, 널 보니 조금 기억이 나는 것도 같구나. 그 애도 너처럼 아주 선명한 녹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지.”

    길게 기른 손톱이 이샬의 눈 아래를 쿡 찔렀다. 통증이 올라왔지만 아픈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아 참았다. 라비야는 눈을 깜박이지도 않는 이샬을 재미있다는 듯이 보았다. 그녀의 눈에 흐르는 것은 하찮은 짐승을 향한 흥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술탄께서도 참으로 변덕스러우시지. 다 죽여 버리면 쉬웠을 것을, 굳이 너를 데려오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 대해 이샬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샬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술탄은 타라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가 내민 기회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타라에 관한 전설로 야기된 것이기도 할 것이고, 일순의 흥미로 인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도 눈앞의 여인은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이해할 생각도 없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둔하고 멍청해 보이는군.’

    라비야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샬을 잠시 쳐다보다 이내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그와 동시에 이샬의 옆을 지키고 있던 관리들이 그녀의 양팔을 결박했다. 그대로 보내버리라는 듯 턱짓을 하고서 뒤돌아선 라비야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아!”

    라비야가 이샬을 돌아보며 웃었다.

    “하렘에는 이미 수많은 여인이 있단다.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고생 좀 해야 할 거야. 부디 술탄의 눈에 들어,”

    그녀는 이샬을 아래위로 훑었다. 명백한 비웃음이 어여쁜 입술에 서렸다.

    “네 일족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 * *

    술탄의 하렘.

    이샬에게는 작은 방이 주어졌다. 술탄과 밤을 보내지도, 눈에 들지도 못한 여인들에게 주어지는 아주 작은 방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충분했다. 부드러운 비단 이불과 푹신한 베개, 그리고 장식처럼 놓여있는 과일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과일이라니.

    이샬은 헛헛한 웃음을 흘렸다. 딱 알맞게 농익은 포도는 알이 크고 싱그러웠다.

    작다고 하여도 술탄의 하렘이다. 눈이 어지러운 기하학 무늬와 화려한 색감의 벽, 금장이 붙은 가구 따위는 한눈에 보아도 호화로웠다.

    보통 술탄의 하렘에 들어가는 것은 굉장한 영광이었다. 영원히 하렘 밖으로는 나갈 수 없지만 그 안에는 세상이 있었다. 하렘 안의 여인들은 배를 곪지도, 노역을 하지도 않는다. 술탄을 위해 자신을 가꾸는 것만이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그러나 이샬은 차라리 배를 곪더라도, 차디찬 모래 위에서 모포 한 장 덮고 잠들어야 할지라도 자유가 좋았다. 오아시스를 찾아 드넓게 펼쳐진 사막을 헤매는 나날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영원히 도망칠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멍청한 이샬, 아둔하고 모자란 년.’

    어머니의 능력을 제대로 물려받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최소한 새로운 술탄의 관심에서 벗어날 때까지라도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 파티마의 예지 능력이 흐려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이샬은 자신에게도 예지 능력이 생기기를 간절하게 바라왔다. 그러나 이샬은 파티마의 예지 능력을 손톱만큼도 물려받지 못했다.

    ‘술탄은 내가 예언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이샬이 예언 능력을 물려받지 못했다는 것을 들킨다면, 유예를 얻은 타라의 운명도 진정 끝이 날 테다. 그녀가 어떻게든 이 하렘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모두 끝이야. 어떻게든 속여야 해.’

    이샬은 술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머니 파티마는 술탄이 이샬에게 눈길 한 번이라도 줄까 봐 벌벌 떨며 온몸으로 그녀를 감싸 안고 있었다. 술탄 또한 타라의 적장녀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녀를 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샬이 가족과 떨어져 하렘에 이송되는 도중에도 그녀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

    타라가 머물고 있던 작은 오아시스에서 요하마드 제국의 수도 ‘람싸드’까지 오는 데에는 꼬박 보름이 걸렸다. 그동안 이샬은 밤새 한 숨도 자지 않고 밤하늘을 올려다 봤다. 부서진 유리가루처럼 반짝거리는 수많은 별들을 보고 또 봐도, 아무리 봐도 이샬은 어머니처럼 예언을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자지 못해 붉어진 눈가가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샬을 괴롭히는 가장 큰 감정은 자괴감이었다. 파티마의 딸, ‘이샬 파티마 타라’라고 이름까지 물려받은 주제에 정작 예지 능력은 갖지 못하여 가족들을 모두 죽게 만들지 모른다는 사실이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이샬이 가진 건 예지가 아니라 고작 다른 사람보다 조금 뛰어난 직감에 불과했다.

    ‘그런 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고작 직감 정도로는, 술탄의 흥미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 빤했다.

    몸을 옹송그리고 얕은 숨을 몰아쉬던 이샬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실례합니다, 타라 님.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이 작은 방의 새로운 주인이 누구인지는 이미 온 하렘이 다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이샬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목소리는 차분하고 건조했다. 누구도 그녀가 울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문이 열리고 여인 셋이 들어왔다.

    가장 앞에는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갈색 피부의 여인이 서 있었다. 그 뒤로 공손한 낯의 젊은 여인이 두 명 시립해있다. 이샬은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여인은 이불 위에 앉아있는 이샬을 발견하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여정이 꽤 길었다고 들었습니다만…… 목욕은 하셨습니까?”

    “아뇨. 그럴 시간은…….”

    “…….”

    여인이 쯧 혀를 찼다. 이샬의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노골적으로 더럽다는 듯 쳐다보는 눈길을 받으면서도 당당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보름의 여정은 바빴고, 술탄의 전사들은 이샬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밥을 제 때 주기는 했지만 그나마도 이샬이 거의 먹지 않자 신경을 꺼 버렸다. 이샬은 밤에는 일어나 하늘만 노려보았고, 낮에는 혼절하듯 잤다. 당연히 보름간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한 몰골이었다. 라비야가 그녀를 보고 비웃었던 이유도 이것이었다.

    “저는 이 궁을 관리하는 이크라라고 합니다. 이크라라고 부르면 됩니다.”

    “…….”

    이샬은 대답 없이 이크라를 보기만 했다.

    “말을 할 줄 모르시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압니다만.”

    “……이샬, 이샬 파티마 타라.”

    이샬이 말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제 입으로 소개를 해야만 하는지를 고민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 이 요하마드 제국이 낯설었고, 자신을 잡아가둔 하렘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제 처지를 알고 있다고 하여도 솟구치는 감정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크라는 그런 이샬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샬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개를 숙인 이샬의 정수리를 이크라는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우선 씻으시죠. 그 꼴로 술탄 앞에 나설 수는 없으실 테니.”

    이크라가 손짓하자 그녀의 뒤에 서 있던 시녀들이 이샬에게 다가갔다.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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